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24화 (24/139)

24. 안 돌아가

“진짜 놀랍네···.”

신의 축복을 받은 직업은 그 능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건 운 좋게 바람 신 ‘제피로스’의 축복을 받은 전소민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무슨 트랙터에 굴착기를 소환해? 그런 소환은 처음 봤어.”

식탁에 앉아 있던 전소민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김서준. 솔직히 이야기해 봐. 너 농부 된 거 아니지? 무슨 드래곤이라도 된 거 아냐?”

주방에서 요리하던 김서준이 털털하게 웃었다.

“그건 네가 좋아하는 소설 이야기고. 난 순도 100% 사람이야.”

“그럼 더 말이 안 되는데. 그렇게 거대한 걸 소환하고도 말짱하잖아?”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네.”

“거기에 정령도 그래. 정령을 그렇게 많이 소환했는데, 힘든 기색 하나도 없고. 그런 마력은 드래곤 밖에 못 가지는 거 아냐?”

“정확히는 그 소설 속 드래곤이지. 실제 드래곤이 그런지는 아무도 모르잖아. 드래곤이 실제로 나타난 적은 없으니까.”

“하여간 진짜 아깝다. 그 마력으로 전투 관련 직업이었으면, 세계 랭킹 1위를 했을 텐데.”

툭 던지듯 이야기하지만 내심 속이 쓰렸다.

‘던전에서 써먹을 능력이었으면 서준이는 바로 길드로 돌아왔을 테니까. ’

김서준은 그런 전소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가볍게 대답했다.

“됐어. 난 지금 좋아. 자, 밥이나 먹자.”

김서준은 그렇게 말하며 보글보글 끓는 찌개가 담긴 냄비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와, 이거 오랜만이다!”

새빨간 국물에 떠 있는 감자와 애호박 등, 각종 채소가 둥둥 떠 있는 고추장찌개를 본 전소민이 입맛을 다셨다.

“이거 진짜 먹고 싶었는데!”

“그럴 거 같았어. 이게 네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니까. 아마 그때보다 더 맛있을 거다. 먹어봐.”

“뭐야? 남는 시간에 요리연구도 하는 거야? 이제 농부에 요리사까지 다 하는 거야?”

“그런 건 아니고. 감자랑 같이 한 번 떠먹어봐.”

“감자?”

전소민의 말에 김서준은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알겠어. 잘 먹겠습니다.”

한껏 기대를 품은 전소민이 살짝 기름이 뜬 빨간 국물과 함께 깍뚝 썬 감자를 떴다. ‘호호’ 불러 살짝 식힌 후 전소민이 숟가락을 입에 넣었다.

‘역시 맛있어.’

색깔만큼이나 칼칼하고 얼큰한 매운맛이 혀를 '탁' 친다. 호박과 양파, 감자 등이 만들어낸 은은한 단맛이 매운맛 뒤로 진한 여운을 남긴다.

그 여운과 함께 부드럽게 감자가 부서진다. 솜이불처럼 얼얼해진 입안을 덮은 포실한 감자 입자는 이내 감칠맛을 펑펑 터뜨렸다.

“와···.”

전소민은 기막힌 맛에 할 말을 잃었다.

“맛있지?”

“응...”

짧은 대답과 감탄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보다 더 이 감동을 잘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전소민은 한 번 더 숟가락을 떴다.

“원래도 맛있었는데 이건···! 이 감자는 진짜 대박이고. 너 전직을 요리사로 한 거 아냐?”

“그게 아니고. 그 감자가 맛있어서 그래.”

“감자가?”

“이거 내가 직접 재배한 감자인데···.”

김서준은 자신의 감자 사업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전소민은 그 놀라운 친구의 성공담에 귀를 기울였다. 이야기는 놀라우면서도 재밌었다.

“그때 엄민호 셰프님이 오셨는데···.”

“엄민호 셰프? 그 한식대전에 나온 대가님?”

“어. 대박이지? 그분이···.”

전소민은 맞장구를 쳤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갔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의 회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술까지 걸치니 시간은 더욱 빨리 간다.

“시간이 벌써 1시다. 이제 잘까?”

“어? 어. 그래.”

“아까 짐 푼 방에서 자. 거기 침대도 있으니까. 추우면 얘기하고.”

김서준은 전소민을 잘 챙긴 후 방으로 돌아갔다. 전소민은 웃으며 침대에 누웠다. 이렇게 기분 좋게 침대에 누운 게 얼마 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진짜 좋다. 진짜 좋은데···.’

아까의 두 사람의 모습을 되뇔수록 점점 가슴이 무거워졌다. 전소민은 애써 그 감정을 외면하며 잠을 청했다.

****

해가 낮게 뜬 시간.

여느 때처럼 김서준은 밭으로 향했다. 이제 심은 지 4일째 건만 토종작물을 심은 텃밭도 이제 초록빛이 가득했다.

“노움이 감자밭 맡아줘. 여긴 내가 할게.”

“알겠습니다움! 얼른 끝내고 오겠습니다움!”

“그래.”

노움은 움들과 함께 경례한다. 그리고는 곧장 감자밭으로 향한다. 김서준은 리노를 데리고 텃밭으로 갔다. 그러나 평소와 다른 점이 있었다.

“쟤네 진짜 귀엽다. 저 경례는 맨날 하는 거야?”

휴가 3일 차. 농사일을 지켜보던 전소민은 지루했는지 농사일을 돕겠다고 했다. 김서준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

‘일손이야 더 있으면 좋으니까.’

어차피 할 일도 잡초 제거가 전부 아니던가. 막을 이유가 없었다.

“응. 노움은 꼭 저걸 하더라고. 내가 안 해도 된다고 해봤는데 꼭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진짜? 생긴 건 꼬마인데 완전 군인이네.”

전소민이 농담하며 킥킥거렸다.

“그러니까. 근데 또 저 경례 빼면 다 꼬마고. 참 신기해.”

“하긴 리노랑 노는 거 보면 딱 우리 조카 같더라니까.”

“벌써 시작하는 겨?”

두 사람이 텃밭에 도착하자 의외의 인물이 그들을 반겼다.

“어, 어르신?”

“멍!”

“우리 강아지도 왔구먼.”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리노를 쓰다듬으며 임종철이 말했다.

“마침 소민이가 오늘은 일한다고 하기도 했고. 몸도 찌뿌둥혀서. 일 좀 하러 왔는디. 괜찮지?”

“물론이죠.”

“할아버지, 그럼 저랑 같이해요! 저 많이 알려주세요!””

엊그제 이미 인사를 나눈 전소민은 임종철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그려. 그려. 잡초만 뽑으면 되니까 얼른 허자구.”

텃밭으로 들어간 후 임종철과 전소민은 김서준과 반대쪽으로 향했다. 양 끝에서부터 제거해 가운데서 만날 계획이었다.

‘이거 좋다.’

전소민은 잡초 뽑기에 금세 심취했다. 흙을 만지고 풀을 만지는 일이 묘한 기분을 선사했다. 마치 자연이 자신의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기분이었다.

‘냄새도 정말 좋고.’

흙과 풀이 만드는 내음과 함께 들이마시는 상쾌한 공기는 머리를 맑게 해주는 기분이었다.

‘이래서 서준이가 농사에 빠졌나.’

일이 마치 휴식처럼 느껴지는 묘한 기분.

‘이런 기분을 언젠가 느꼈던 거 같은데···. 언제였지?’

의문은 길지 않았다. 작업이 이어지고 어느새 무아지경에 빠져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면 눈앞에 잡초를 발견하면 뽑는 그 단순한 반복을 하고 있었다.

‘농사가 체질인가.’

전소민이 ‘풋’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뭐 재밌는 게 있는겨?”

“아, 아닙니다. 뭐가 좀 떠올라서요. 그나저나 농사 참 좋네요. 뭔가 힐링 받는 기분이에요.”

“도시 사람들한테는 그런가 벼. 그래서 요즘은 치유 농업을 따로 하는 농부들도 있고 그러더라고.”

“시골 사람한테는 아닌가 봐요?”

“이게 일이니께. 게다가 서준이야 땅이 알아서 온도 습도 맞춰주지. 작물은 뿌리면 쑥쑥 자라지. 트랙터도 엄청 좋지. 뭐 부족할 게 없어서 다르겠지만. 일반 농부는 또 다르지.”

“아, 그래서 이렇게 쌀쌀한데도 작물 잘 자라는 거군요.”

“그럼. 이건 뭐랄까. 유기농 하우스 농사랄까. 완전 특이한 경우지. 일반 농부는 이런 여유는 꿈도 못 꾸지. 내 평생 부러워한 농부는 서준이가 처음이라니께.”

임종철이 저 멀리 잡초를 뽑고 있는 김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참 대견하지.”

“대견해요?”

“이렇게 좋은 능력 갖추고 이런 좋은 일을 하잖어. 이거 봐봐. 특이허지.”

임종철이 대파 하나를 가리켰다. 대파는 곧게 뻗은 대 중간부터 다시 여러 갈래로 퍼지며 자라고 있었다.

“네. 전 처음 봐요.”

“요놈이 삼동파라는 녀석인데 토종 대파여. 나머지도 다 토종작물이고.”

“토종이요?”

“그려. 서준이가 설 자리 잃어가는 작물 구한다고 심은겨. 대단허지?

“와! 진짜 대단하네요! 감자 사업도 한다더니 좋은 일도 하고 있네요.”

전소민이 첫날 김서준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두 달밖에 안 됐는데, 사업도 모자라서 이런 거까지 신경 쓰다니. 역시 서준이야.’

전소민은 김서준의 능력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사업 수완도 좋고. 농사도 잘 지고. 아마 나 다음으로 한국에서 대단한 농부가 될지도 몰러.”

임종철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럼요 서준이가 능력이 얼마나 좋은데요!”

전소민도 따라 웃었다.

‘맞아요. 얼마나 좋았는데요···.’

동시에 마음 한편을 짓누르던 감정은 점점 커져만 갔다.

****

“오늘 고생했어.”

하루를 마치고 둘은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칙’소리를 내며 맥주를 딴 둘은 캔을 부딪쳤다.

-꼴깍꼴깍.

시원한 맥주가 목을 타고 넘어갔다. 전소민이 그 상쾌함에 짧은 탄성을 뱉었다.

순간의 정적이 흐른다. 어색한 공기를 깬 건 김서준이었다.

“길드에 문제 있어서 온 거지?”

“으응?”

전소민이 어깨를 들썩인다.

“아, 아냐! 그냥 쉬러 온 거라니까?”

“너 요즘 광고나 대외활동이 많던데. 네 성격에 그럴 리가 없잖아. 갑자기 놀러 온 거도 그렇고.”

“...그냥 돈 좀 벌려고···.”

“기사도 났더라. 너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잠시 활동 중단한다고. 갑자기 코피도 흘렸다며?”

“어...”

무어라 말하려던 전소민이 결국 고개를 끄덕인다.

“네 말이 맞아. 나 길드 때문에 너 보러왔어.”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랬나.’

부자연스러운 게 너무나도 많았다. 휴가도 그랬고 태도도 그랬다. 인터넷을 찾으니 이유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너뿐만 아니라 길드 대표 헌터들은 다 여기저기 텔레비전이나 너튜브 같은데 나오기 바쁘던데. 특히 MP사가 제작한 프로그램에. MP사가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김서준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전소민은 어쩔 수 없이 현 상황을 실토했다.

“...MP사가 보낸 경영진이 대형 길드가 게이트 토벌만 할 순 없는 거라고. 수익 개선을 위해서는 좀 더 이미지 관리도 해야 한다면서 사업 계획을 세웠어. 팀장들이 동의했고. 그래서···.”

김서준이 빈 맥주 캔을 구겼다.

“수익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뭘 한 거야? 아니, 내부 잠식이 되기 전에 막았어야지! 다들 뭘 한 거야?”

“...”

“하긴 다들 서로 부 길드장 되겠다고 견제하느라 바빴겠지. 아니 MP사에 아부하느라 바빴으려나?”

김서준은 치밀어 오르는 욕을 겨우 참았다.

목숨 걸고 몬스터를 잡는 데 숭고한 뜻을 가진 전소민 같은 사람은 아주 극소수다. 대다수는 쉽게 많은 돈을 벌기 위해 게이트에 들어간다.

‘그런 이들이 욕심에 눈이 멀지 않았을 리 없지.’

MP사의 작은 회유에 그들은 쉽게 넘어갔을 터였다. 그 지긋지긋한 사람들을 떠올리자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 온 건 날 다시 데려가려고 한 거야?”

“그, 그게...”

전소민이 머뭇거리자 김서준이 단호하게 말했다.

“미안해, 소민아. 난 안 돌아가.”

전소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어차피 내가 간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지금 여기서 난 너무 행복해. 이 마을도 좋고 좋은 사람이 가득해. 농부라는 직업도 너무 좋고 농사도 즐거워.”

‘맞아. 그래 보였지...’

헌터 일로 함께 승승장구하던 시절도 저만큼 표정이 좋지 않았다. 김서준은 이제야 자신의 자리를 찾은 듯했다.

계속 마음만 졸이며 한마디 말도 못 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김서준은 무언가 입에 올리려다 이내 말을 삼키고 말했다.

“...그냥 지금처럼 농부로 살아가고 싶어. 그래서 난 안가. 설령 네 부탁이라도.”

전소민은 자신이 보고 생각한 바가 맞았다는 걸 다시 한번 저 입으로 확인했다. 속상했다.

하지만 그보다 미안했다. 상처를 치유 받고 이제 자리 잡은 김서준에게 자신은 불청객이 되어버렸다.

‘여기 와서는 안 되는 거였어...’

적어도 지금, 이따위 용건을 들고 와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

“....”

어색한 정적이 둘 사이를 흘렀다.

‘말해야 해. 미안하다고 해야 해.’

할 말이 있었다. 꼭 해야 하는 말. 그런데 차마 그 입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애먼 맥주만 한 모금 들이켰다.

씁쓸한 맥주와 함께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입을 떼려는 순간.

-위잉!

비상벨이 울렸다. 김서준의 휴대폰에서 난 소리였다.

‘세계수의 보안 경보?’

김서준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냈다.

“이, 이건?”

CCTV로 보이는 영상 속 거대한 무언가가 세계수가 있는 언덕에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

“설마 몬스터?”

순간 전소민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최소 A급 이상의 몬스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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