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손님?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해가 기울고 하늘이 서서히 남색으로 물들 무렵. 야간 시장을 시작하기 30분 전. 사람들은 벌써 한 푸드 트럭 앞에 줄을 서기 시작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꼭 먹어야 해?”
“야간 시장에서 여기 버터 감자 안 먹으면 의미가 없다고 블로그에서 그랬어. 좀만 참자.”
여자를 달래는 남자의 말대로였다. 유독 이 트럭 앞만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를 찬 남자는 속으로 생각했다.
‘야간 시장 푸드 트럭에 맛집이 있다더니. 정말인가 보군.’
장사가 임박하자 남자는 퍼포먼스를 하듯 버터 하나를 팬 위에 –툭 떨어뜨렸다.
“와, 냄새.”
“좋은데?”
사람들이 냄새에 혹하는 사이 엄민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도구 만진 손을 씻지도 않고 식재료를 만지다니. 거기에 이 버터 향. 싸구려군.’
불안감이 엄습했다. 부족한 위생 의식. 싸구려 식재료. 허접한 퍼포먼스. 운이 좋아 유명세를 잘탄 집 들의 모든 특징이 전부 보였다.
‘버터 감자는 감자와 버터가 중요할 텐데. 버터를 이딴 걸 쓰면 뭐로 맛을 내는 거지?’
양념이나 시즈닝을 이용한 자극적인 맛? 그렇다면 그야말로 제대로 헛걸음이었다.
‘기다렸으니 맛은 보고 가겠지만···.’
남자는 반쯤 기대를 덜어냈다.
가로등과 다채롭게 장식된 조명에 불이 들어왔다. 푸드트럭도 장사를 시작했다.
“사장님 맛있게 부탁드려요!”
“네. 날씨도 쌀쌀한 데 오래 기다리셨죠? 금방 해드릴게요!”
꽤 험악한 인상과 달리 주인장은 꽤나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손님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진심인 듯했다.
‘서비스나 마인드는 좋군. 저 덕을 좀 본 건가?’
요리법은 평범했다.
휴게소에서 파는 버터 감자와는 조금 다른 방식. 양식의 조리법이긴 한데 엄청 특별한 건 아니었다. 굳이 따지면 엉성하고 미숙했다.
‘완전 잘못 짚었군. 또 인터넷에 속았어.’
서비스를 보려고 이곳까지 온 게 아니었거늘. 헛걸음 한 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던 그때였다.
“진짜 맛있네. 보기엔 평범한데 왜 맛있는거지?”
“그러니까. 그저께 먹고 난 이후로 계속 생각나더라니까.”
남자는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귀를 의심했다. 이런 반응이 나올 수가 없었다. 아니, 나와서는 안 됐다.
마침내 남자의 차례. 남자는 조심스레 말했다.
“버터 감자 하나 주시고 양념은 제일 잘 나가는 거로 주시오.”
“그럼 소금과 딜로 준비하겠습니다.”
남자는 뭐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 주방을 유심히 살폈다. 살필수록 처참했다. 위생은 가까이서 보니 더 최악이고 솜씨도 미숙했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은데, 솔직히 이 수준이면 요리사라 부르기도 민망하군.’
자신한테 권한이 있다면 바로 폐업을 명령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주인장은 그런 남자의 생각도 모른 체 싱글벙글하며 감자를 굽고 있었다.
“어?”
감자를 뒤적거리던 주인이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곤 화들짝 놀라더니 조심스레 남자에게 물었다.
“혹시, 한식대전 충남 대표 엄민호님 아니십니까?”
한식대전은 최근 끝난 화제의 프로그램이었다. 팔도를 대표하는 명인이나 맛집 사장이 나와 요리로 붙은 진검승부는 큰 화제를 일으켰다.
엄민호는 그 명인 사이에서 3등을 한 실력자였다.
“알아보면 사람들이 몰려들 테니 비밀로 해주세요.”
엄민호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대, 대박!”
매우 놀라던 주인이 인상을 찌푸리는 엄민호의 얼굴을 보고는 황급히 목소리를 낮췄다.
“죄, 죄송합니다. 근데 셰프님께서 여기까지는 어인 일로...”
“시장조사 나왔습니다. 요즘 여기가 아주 유명하다고 해서요.”
젊은 주인은 감격에 넘쳐 말을 잇지 못했다. 감자를 잘못 납품받아 혼쭐을 나며 겨우 시작한 푸드 트럭이지 않았던가!
‘이렇게 손님도 넘치고, 이제는 셰프의 방문까지. 나 진짜 요식업의 천재 아냐?’
젊은 주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정성스레 담은 버터 감자 한 접시를 내밀었다.
“맛있게 드십쇼!”
“감사합니다.”
엄민호가 뒤로 돌려는 찰나.
“잠시만요!”
젊은 주인이 그를 불러 세웠다.
“혹시 여기서 드시고 짧게라도 평가나 조언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흠.”
‘잘 됐어. 이 핑계로 위생도 좀 지적하고 요리 기본 정도는 좀 알려줘도 좋겟지.’
하고 싶은 말을 할 적당한 핑계거리가 생긴 셈. 엄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엄민호는 감자하나를 입에 넣었다. 싸구려 버터의 가벼운 풍미와 함께 퍼지는 소금의 짭짤함이 느껴졌다.
‘예상대로 조잡한 싸구려 맛이군. 왜 이런 데가 자꾸 뜨는 건지, 참...’
의문이 고개를 쳐들 때쯤,
요리의 핵심인 감자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부서졌다.
‘이, 이건...!’
순간 엄민호의 머리 속에 느낌표가 떴다.
너무나도 곱게 퍼지는 감자 입자들이 입 안에 단맛과 감칠맛의 향연을 벌였다.
‘이거였나? 재료가 요리사의 실력을 웃돌고 있어! 요리가 오히려 재료의 맛을 방해할 정도야!’
엄민호는 이제야 사람들이 소금을 뿌려간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가장 맛을 덜 해치는 양념이었기에 그들도 모르게 소금을 선택한 게 틀림없었다.
“어떻습니까?”
젊은 주인은 기대 어린 눈으로 엄민호를 바라봤다.
‘어디서 이런 감자를... 설마?’
감자를 삼킨 엄민호가 말했다.
“자네, 혹시 임종철 명장님과 아는 사이인가?”
****
“리노. 적당히 먹어!”
“멍!”
김서준의 허가를 받은 리노는 즐거운 발걸음으로 미트루트가 심어진 밭으로 향했다. 능숙하게 입으로 줄기를 쥔 리노는 단번에 미트루트를 뽑아냈다.
“진짜 잘 캐네.”
고구마처럼 생긴 새빨간 미트루트 5개를 리노는 곧장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신농의 땅에서 자라는 작물은 유기농이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다. 워낙 성장이 빠르고 땅에 영양이 풍부하다 보니 농약과 비료를 쓸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리노는 아무 걱정 없이 현장에서 갓 캔 싱싱한 미트루트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먹고 있어!”
김서준은 밭을 한 바퀴 돌며 잡초를 뽑았다.
‘볼수록 대단해.’
임종철의 표현을 빌리면 신농의 땅은 자동화 농장이었다. 하우스처럼 어떤 설비 없이도 온도를 최적으로 유지하고 있었다.
아무리 밖이 춥고 바람이 불어도 밭에만 들어오면 딱 포근한 온도와 적당한 바람으로 바뀌었다.
김서준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
‘물 주기와 잡초 제거뿐이지.’
물 주는 건 어렵지 않았다.
‘케레스의 농기구’로 소환한 물뿌리개 덕이었다. 생긴 건 황금색이라는 것만 빼면, 꽃집에서나 볼법한 물뿌리개였다.
‘근데 물이 계속 나오지.’
물을 길어 오갈 필요가 없으니 일은 간단해졌다. 밭을 산책하듯 이렇게 걷고 있노라면 금세 물 주기는 완료였다.
‘정말 힘든 건 잡초 제거야.’
잡초만은 직접 뽑아줘야 했다. 케레스의 농기구도 잡초만 제거하는 형태의 도구는 없었다.
‘작물처럼 잡초가 급속 성장을 하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진짜 대단하다.’
매일 올 때마다 새롭게 고개를 쏙 내미는 잡초들. 왜 잡초만큼 질기다는 표현을 쓰는지 김서준은 톡톡히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렇게 물을 뿌리는 와중에도 여기저기 잡초가 눈에 밟혔다.
‘얼른 물 뿌리고 뽑아야지.’
손이 근질거렸다. 잡초 뽑는 일은 은근 쾌감이 있었다. 마치 묵은 여드름을 짜는 듯한 느낌이랄까.
한편으론 귀찮지만, 또 한편으로는 재밌는 소일거리이기도 했다.
“개운하네. 그치?”
“멍!”
모든 일을 마친 둘은 길에 걸터앉았다. 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한번 수확 후 다시 심은 감자와 토마토에서 자란 파릇한 싹이 갈색 밭을 수놓고 있었다.
“다들 무난하게 잘 자라고 있는 거 같고, 이번에도 풍작을 할 거 같아. 그치?”
리노는 대답 대신 꼬리를 흔들었다. 김서준이 그런 리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번에 수확하면 친구들도 좀 보내줘야겠다.”
“멍!”
“아, 그래 너도 줄게. 어차피 많아.”
‘맞아. 너무 많아.’
작물을 수확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일주일에서 이주면 충분했다. 그런데 용도는 자급자족이다 보니 작물이 남아돌았다.
‘땅도 엄청 놀고 있지.’
워낙 생장이 빠른 탓에 500평이면 감자, 토마토, 미트루트 정도는 휴경까지 해가며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정도였다.
‘작물이야 늘린다고 하지만 그래도 남겠지...’
어르신 말대로 좀 팔아볼까. 잉여 생산물 정도는 가볍게 팔아봐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또다시 불쑥 튀어나왔다.
‘또 시작이네.’
오랜만에 맛본 성취감은 너무 자극적이었을까. 똑같이 여유로운 풍경을 보고 있건만 자꾸만 새로운 일을 벌이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근데 이제 31살인데. 은퇴한 거 후회 안해요?”
“괜찮습니다. 열심히 살았거든요.”
“그래요? 근데 난 좀 아까운 거 같아요. 이번 사건 해결한 거도 그렇고. 아까 할아버지 이야기하는 거 보니까 농사도 엄청 잘 짓는 거 같은데.”
“아직은 그때처럼 치열해지고 싶지는 않아요. 이제 겨우 한 달이니까요.”
“그럼 치열하게 말고 가볍게 하세요. 저처럼요.”
‘가볍게라...’
즐거운 밤을 보냈던 그 날.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노을이 했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건 괜찮으려나.”
김서준이 고개를 젖히며 혼잣말을 뱉었다. 푸른 하늘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
생각에 빠져있던 김서준이 놀라 휴대폰을 꺼냈다. 임종철의 전화였다. 김서준은 가볍게 헛기침으로 목을 푼 후 통화버튼을 눌렀다.
“네, 어르신. 잡초 뽑고 있었습니다. 아, 아닙니다. 이제 끝마치고 집 가서 점심 먹으려고 했습니다. 네. 네? 제 손님이요?”
김서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 손님이 왜 거기를···.”
****
“정말 어르신이 지으신 농산물이 아니라는 겁니까?”
“그 친구도 그렇게 말했다며. 내가 누군지 모른다고.”
임종철이 껄껄 웃었다.
‘그 감자 맛이 어르신의 농산물이 아니라고?’
엄민호는 임종철의 대답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이 먹어본 감자 중 최상의 맛이었다. 대한민국 유일한 농사 명장이 아니라면 누가 그런 감자를 길러낸다는 말인가?
“믿을 수가 없군요. 그 감자가 어르신의 것이 아니라니.”
“말했잖여. 난 이제 은퇴했다고. 이제 농사도 내먹을 거나 조금 짓는 게 다여.”
엄민호가 안타까움에 고개를 떨궜다. 엄민호의 식당은 모두 임종철이 지은 최고급 식재료만을 사용했었다.
그러나, 그가 은퇴한 이후.
아무리 좋은 재료를 공수해도 임종철이 지은 것만큼 좋은 재료는 없었다.
‘다시 어르신이 농사를 시작한 줄 알았는데. 아쉽게 됐어.’
엄민호가 씁쓸한 표정을 본 임종철이 나지막이 물었다.
“그 감자 말일 세. 내가 지은 감자보다 맛있지 않았나?”
“네? 아...그게...”
“괜찮여. 나도 먹어 봤으니까. 맛있지?”
“...네, 맛있었습니다. 그런 감자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이 그걸 어떻게...?”
임종철이 씩 웃었다.
“내가 지은 건 아니지만, 누가 지었는지는 알고 있지. ”
“!!!”
엄민호의 눈이 커졌다.
“원하면 소개해 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물론입니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내 손님 중에 어르신을 먼저 찾아갈 사람이 있나?’
김서준의 지인은 대부분 헌터였다. 그들이 시골 이장과 지인일 리 없지 않은가? 굳이 알만한 사람을 따져 보면···.
“....노을? 그런 스타일로는 안 보였는데.”
김서준이 괜스레 민망해했다. 그러자 리노가 무슨 일 있냐는 듯 바라봤다.
“애는 그런 거 궁금해하는 거 아냐.”
집으로 돌아온 김서준은 가볍게 집안을 정리하고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식사는 하고 오신다고 하셨지.’
점심 메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잔칫날 이후, 마을 사람들이 고맙다며 반찬과 김치를 잔뜩 챙겨준 덕이었다. 덕분에 냉장고 안이 먹을 거로 가득 차 있었다.
‘보기만 해도 든든하네.’
김서준은 다시 한번 속으로 감사해 하며 반찬거리를 꺼냈다.
“오늘은 파김치랑 고사리 무침이랑..”
그때였다.
인터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음? 식사하고 오신다더니 그냥 오셨나?’
김서준이 고개를 갸웃하며 인터폰으로 다가갔다. 화면 안에는 처음 보는 사람의 얼굴이 떠 있었다. 임종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손님이 아니야. 누구지?’
“누구십니까?”
“기, 김서준 씨 되십니까?”
긴박한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로 들려왔다.
“맞습니다만 누구신지···.”
그 순간 화면 속 청년이 절규했다.
“도와주세요! 아니, 살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