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멋있어!
“아이고, 임 씨!”
“우리 막내 왔구먼?”
“요즘 왜 이렇게 뜸했어?”
마을회관에 들른 임종철을 알아본 주민들이 환하게 임종철을 맞이했다. 비록 10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이지만, 막내인 임종철을 그들은 열렬히 맞이했다.
그때, 최 씨 할아버지만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임 씨. 벌써 다 나은 겨?”
“그게 뭔 소리여. 일한 게 아니라 임씨가 어디 아프기라도 한 겨?”
“우리 이장이 어디 아프면 큰일이지!”
최 씨의 말에 모두가 걱정 어린 표정으로 임종철을 바라봤다. 임종철이 웃으며 말했다.
“아유. 아녀유. 자전거 타다 좀 넘어졌는데 최씨가 과장한 거유.”
“과장은 무슨. 자전거 타다 아주 지대로 넘어져서 다리에서 피를 철철 흘렸잖여. 제수씨가 차까지 끌구 오구.”
“큰일이 났었네!”
“아이고. 마을 도로가 안 좋아서 타는 건 무든 조심해야 혀.”
“고럼. 저번에 나도 경운기 타고 가다 뭐에 걸려서 두렁에 바퀴가 빠졌잖여.”
주민들이 한 마디씩 거들며 임종철을 걱정했다.
임종철의 얼굴에 주름이 가득할 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그들 눈엔 여전히 귀염둥이 막내인듯했다.
‘그래서 여기가 좋은 거지.’
임종철을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다쳤었는데, 저기 마을 외곽에 사는 청년이 고쳐줬슈.”
“마을 외곽? 거기 큰 나무 있었던 자리? 거기 또 누가 이사 왔는가?”
“거기 예전에 살던 김 씨 알쥬? 그 양반 아들이 돌아왔어요. 집도 새로 짓고.”
“그려? 그럼 그 아들이 의사가 되어서 온겨?”
“잘 됐구먼! 도시가 멀어서 한번 나가기도 힘들었는데!”
“실력도 좋은가 보네. 그걸 하루 만에 그렇게 씻은 듯이 다 고친 걸 보니! 허허허!”
아무래도 다리를 고쳐줬다는 말에 모두 오해한 듯했다. 임종철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 친구 의사 아녀유. 농부 유.”
“농부? 농부가 어떻게 다리를 고쳐?”
임종철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다들 놀라면서도 부럽다는 듯 말했다.
“그 포션이라는 거 나도 좀 몇 개 있었으면 좋겠구먼.”
“나도 그려. 병원 한 번 가려면 아주 고역 인디.”
임종철이 쓴웃음을 지었다. 포션 한 병의 가격은 최소 몇십만 원. 이제는 거의 수입도 없는 늙은 주민들이 사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관리 안 해서 난리 난 도로도 그렇고. 포션도 그렇고. 그냥 내가 돈 좀 써야 하나.’
임종철은 그때 자신과 같은 고민으로 누군가는 벌써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
“집이 엄청 좋네요.”
안에 들어온 노을은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집안을 채운 회색 톤의 소품. 심지어 지금 앉아 있는 심플한 테이블과 의자까지.
‘진짜 잘 해놓고 사시네. 요즘 젊은 농부들은 원래 이렇게 사는 건가?’
인별그램에서 본 카페에 살림을 차린 듯한 광경에 노을은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감사합니다. 손님이 오실 줄 몰라서 준비한 게 없는 데 이거라도 드시죠.”
김서준이 접시 하나를 올렸다. 슬라이스한 토마토 사이사이 겹쳐놓은 하얀색 모차렐라 치즈의 색감이 눈을 사로잡았다.
“직접 키운 토마토로 만든 카프레제입니다.”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되는데···.”
“그래도 손님으로 오셨는데 대접은 해드려야죠.”
‘마침 나도 먹어보고 싶었고.’
집으로 오는 길. 100%라는 숫자가 떠 있길래 갓 따온 토마토였다. 바로 맛보고 싶었다.
‘뭘 이렇게까지 대접해? 설마 나한테 반한 건 아니겠지? 그러고 보니 얼굴도 꽤 잘생겼고. 집도 좋고. 가정적이고. 괜찮을지도...’
김서준의 속을 모르는 노을은 반쯤 농담 섞인 망상과 함께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생각 없이 토마토와 치즈를 함께 입에 집어넣었다.
“!!!!”
순간 그녀의 눈썹이 들썩였다.
‘뭐, 뭐야?’
분명 별다른 소스도 조리도 안 한 토마토인데, 농후하면서도 진한 단맛과 싱싱한 감칠맛이 느껴졌다.
“와, 이거 진짜 맛있네요! 혹시 본업이 요리사세요?”
“아니요. 요리는 취미입니다. 그리고 이건 요리라고 하기도 민망하네요. 치즈랑 토마토 그냥 썬 거 같이 드린 거라. 하하···.”
“그냥 썰기만 하고 아무것도 안 하신 거예요? 진짜요?”
“네.”
“근데 왜 이렇게 맛있지?”
노을은 스스로 미식가라 자부했다. 식도락은 그녀에게 있어 가장 큰 쾌락 중 하나였고 그만큼 자신에게 엄격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의 혀가 양손을 들고 항복했다. 어서 더 넣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와, 여기에 와인까지 있었으면 진짜, 크···.”
“네?”
“아, 아니에요. 말이 헛나왔네요. 하하···.”
속으로 말한다는 게 그만 너무 간절해 입 밖으로 나와버렸다. 노을은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말을 얼버무렸다.
카프레제가 담겨 있던 그릇은 순식간에 비어 버렸다. 노을은 뒤늦게 너무 빨리 먹은 거 같아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아까 말씀드릴 게 있다고 하신 게 뭘까요?”
김서준은 그녀가 다 먹길 기다린 후, 조심스레 용건을 물었다. 요리를 준비하고 극진히 대접한 진짜 이유는 사실 여기에 있었다.
‘혹시 리노의 정체를 들킨 건가?’
처음 그녀를 봤을 때, 김서준은 가장 먼저 이점을 염려했다. 그랬을 경우, 어떤 협상을 해서라도 리노를 지켜주고 싶었다.
‘리노는 이제 내게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
김서준은 내심 긴장했지만,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노을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노을이 뜸을 들이며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혹시 주변 국도가 통행금지 되었다는 이야기 들으셨나요?”
‘아니구나!’
김서준은 탁자 아래 불끈 쥐고 있던 주먹을 풀었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아, 뉴스에서 봤습니다. 마나 먹은 풀로 뒤덮였다고···.”
“네, 맞습니다. 사실 그 일을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혹시 그 마나 먹은 풀의 제초를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제초요? 뉴스에서는 군경에 헌터까지 투입되어서 곧 해결될 거 같다고 하던데···.”
“...부끄럽지만, 지부장님하고 도지사님이 기사를 막은 겁니다. 우리가 잘 수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요. 실은 사태가 심각합니다.”
‘사태가 심각하다고?’
이상한 일이었다. 고작 마나 먹은 풀을 제거하는 일이 아니던가. 헌터까지 나선 마당에 사태가 심각하다는 게 사뭇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상태인 겁니까?”
“처음에는 모두가 간단한 작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마나 먹은 풀이 너무 엉켜서 일반 도구는 듣지도 않습니다. 헌터들의 도구를 써도 조금 베어내는 게 고작입니다.”
“그 정도입니까?”
“더군다나, 오늘 작업한 만큼 내일 다시 자랍니다. 어떤 날은 저희가 작업하는 속도보다 더 빠른 날도 있고요.”
‘생긴 게 같아도 능력이 다를 수 있는 건가.’
일전에 봤던 기사 속 사진에 풀은 분명 트랙터로 치웠던 그 풀과 같았다. 하나, 그 풀은 막강한 재생력을 지니지는 않았었건만.
녀석은 아무래도 생긴 거만 같지, 더 독하게 변한 녀석들 같았다.
“심각하긴 하네요.”
“맞습니다. 근데 지난번에 보니 그 황금색 트랙터로 마나 먹은 풀을 제거하시는 게 떠올라서 이렇게 부탁드리러 왔습니다. 혹시 도와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노을은 간절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김서준은 그런 그녀를 바라봤다.
‘지부장에 총괄 팀장. 거기에 도지사도 엮여 있는 일이라는 거지.’
순간, 길드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던 김서준의 기질이 떠올랐다.
머릿속 계산기 빠르게 두들겨졌다.
‘뭐지? 착각인가.’
김서준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온화하다. 너무나도 온화한 데, 묘하게 싸한 촉이 느껴졌다.
“그럼 우리 거래를 좀 해볼까요?”
김서준이 미소를 지었다.
****
-구구구.
박력 넘치는 배기음이 일정한 박자를 만들며 들려왔다. 제초작업이 한창인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듯한 소리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스포츠카 소리 아냐?”
“대단한 헌터라도 불러왔나? 혹시 S급?”
“이제와서 S급? 설마. 그리고 소리는 비슷한 데 박자가 조금 느리지 않아? 약간, 뭐랄까. 경운기?”
“무슨 경운기······.”
말을 하던 헌터의 입이 멈췄다. 동료의 시선을 따라 대화를 나누던 이의 시선도 움직인다.
하나둘 그들을 따라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저게 뭐야?”
“저거 트랙터 아냐?”
“아니, 무슨 트랙터가 저래?”
멀리 지평선 너머에서부터 떠오르는 해처럼 모습을 드러내는 황금빛 트랙터.
-구구구.
트랙터의 울림이 커지자 노을이 미소를 지었다.
‘병신같지만 멋있어.’
언젠가 봤던 그 말이 떠올랐다.
황금색 트랙터라니. 이 얼마나 눈에 띄는 싸구려 CG같은 디자인인가.
그러나, 이렇게 보고 있자니 어떤 대형 SUV보다 묵직하고, 지프(Jeep)만큼 강인해 보인다.
“멋있네. 트랙터가 뭐 저렇게 멋있냐?”
“황금색인데 신기하게 멋있네.”
“멋있긴 한데. 트랙터를 왜 또 부른 거야?”
“어차피 또 망가질 텐데. 무슨 트랙터 모양의 마도구라도 있는 건가?”
“그냥 다른 길드에 도움 요청하지. 진짜 관료제 개 같네.”
“에휴. 얼른 경력 쌓고 탈출해야지.”
헌터들은 금세 흥미를 잃었다.
아무리 멋져야 자기 것도 아니고. 트랙터는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그들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총괄 팀장님.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1팀장이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다.
“괜찮아야지. 내가 저걸 부르려고 진짜 얼마나 깨졌는데···.”
노을은 김서준이 내건 조건을 떠올렸다.
‘헌터 쪽에는 상비약으로 쓸 수 있는 포션을 마을에 제공하고. 도청에는 마을 전체 도로를 포장해달라고 했지. 거기에 사례금 별도라니.’
비용을 합치면 정부가 줄 수 있는 포상금치곤 과했다. 하지만 김서준은 이렇게 주장했다.
“기관에 배당된 예산 중에 남는 거 쓴다고 생각하라고 하세요. 어차피 돈 남으면 다음 예산 많이 타려고 땅 갈아엎고 난리 치잖아요. 시골구석 마을까지 신경 썼다고 기사도 내라고 하시고.”
맞는 말이었다. 보상금을 따로 개인에게 지급하는 것과 그냥 기관이 가진 예산을 운용하는 건 아주 다른 얘기였다.
‘거기에 적절한 명분까지.’
게다가 자신을 도민의 지원이 아닌, 헌터 관리국이 부른 용역에 하나로 처리하라고 했다.
‘공은 저를 부른 기관에 넘기는 대신 저는 사례금을 용역 비용으로 받으면 되겠죠.’
그야말로 모두가 이득을 볼 수 있는 탁월한 대안이랄까.
‘물론 나만 빼고.’
대안은 나쁘지 않다.
하나, 애초에 네가 잘했으면 이런 협상도 안 해도 되지 않냐. 최연소 어쩌구니 다 거품이다
등등.
여러 가지 인격 모독적인 발언을 들어야만 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노을은 머리에 참을 인(忍)을 새겼다.
이 일만 잘 지나가면 또다시 시간이나 축내고 돈을 받는 월급 루팡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여태 그랬던 거처럼.
“1팀장. 애들한테 다 작업 중지하고 옆으로 빠져서 대기하라고 해. 난 저분이랑 이야기 좀 하고 올 테니까.”
“알겠습니다.”
노을이 다가오자 김서준도 트랙터에서 내렸다. 그는 예의 헌터 슈트를 입은 모습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김서준이 먼저 노을에게 정중하게 인사했다.
“덕분에 안녕은 못 하겠네요.”
“하하. 죄송합니다. 대신 일은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죠.”
“꼭 그러셔야 합니다. 믿고 있겠습니다.”
“그럼 일단 풀부터 확인하고 작업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잠깐 쉬라고 전해주십시오.”
김서준은 노을에 지시한 후, 마나 먹은 풀로 다가갔다.
‘정보를 먼저 확인해서 완전히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 해.’
오늘 제거했는데 내일 자라면 다 부질없는 짓이 될 뿐이다. 완벽하게 싹을 쳐낼 방법을 알아내야 했다.
[가시박]
‘박’과 한해살이풀. 생식능력이 좋고 타감 물질(주변에 다른 식물이 자랄 수 없게 하는 물질)을 뿜어 유해 식물로 알려져 있다.
<용도>
없음
<상태>
강화 : 생식능력과 씹힘성(질긴 정도)가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스킬)
‘마나 먹은 풀이 아니었어!’
마나 먹은 풀은 돌연변이라고 나온다. 정보 역시 상태를 제외하면 크게 제공되는 게 없었다.
반면, 이 생물은 이름이 있었다.
더 놀라운 건 눈에 보인 정보였다.
‘정말 가시박이었어!’
일전에 이 뉴스를 봤을 때, 임종철이 이야기했던 적이 있었다. 생긴 게 가시박 같다고.
‘과연 어르신이야!’
그 말이 맞았다. 덕분에 제거 방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엉킨 줄기는 내가 치우고 헌터들은 뿌리를 제거하면 되겠지.’
그런데, 중요한 건 이게 아니었다. 그 밑에 적힌 단서였다
‘강화가 되어 있다고?’
헌터 생활을 하면서, 식물을 강화하는 스킬을 가진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게 불가능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신농이 된 거처럼. 누군가는 그런 능력을 가졌을 지도 몰라.’
그리고 그 누군가는 이런 이상한 짓을 벌이고 있다.
‘근데 왜?’
이유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한가지.
‘범인은 이 주변에 있을 확률이 높아.’
이 난리를 쳐 놓고 그냥 집에 가서 발 뻗고 잔다? 그럴 리가. 분명 현장을 즐기고 싶을 게 분명했다.
하나, 뉴스는 별일 아니라는 듯 보도했고 현장 사진도 인터넷 뉴스에 쓰인 한 장뿐.
‘방법은 직접 와서 보는 것뿐이겠지. 어쩌면 억울해서 더 큰 일을 벌이고 있을 수도 있고.’
물론 확신할 수는 없다. 돌아갔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돌아오게 만들어서 잡아야 하겠지.’
김서준의 머릿속이 정리를 끝마칠 때 즈음. 옆에서 초조하게 보던 노을이 물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김서준이 그녀를 바라보고 말했다.
“팀장님. 웃으세요.”
“네?”
“저랑 화기애애한 대화를 하는 척 웃으세요. 하하하.”
김서준이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다. 노을 역시 의아한 얼굴로 따라 웃었다.
“그 상태로 들으세요. 이거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네?”
“이 사태를 초래한 범인이 있을 겁니다. 지금부터 제 지시에 따라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