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축복받은 송이버섯
가을 풍경의 핵심은 단풍이랴.
천고마비의 하늘이 도화지처럼 펼쳐진 아래 울긋불긋 물감처럼 물들인 단풍이 가득해야 가을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한적한 시골, 사람의 흔적조차 닿지 않는 가을 산의 절경은 앞서 말한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매일 보지만 신기해.”
마치 액자 속 그림을 보는 듯하다. 하나 미세하게 하나하나 변화를 이루더니 이내 절경으로 완성되었다.
굳이 따지면 멋진 그림의 과정을 계속 지켜보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 멋진 그림은 완성되었다가도 곧장 변한다.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진짜 좋다.’
풍경을 바라보는 여유. 그리고 행복을 느끼며 김서준은 오늘도 가볍게 조깅으로 하루를 열었다.
리노와 김서준은 여느 때처럼 밭을 지나, 마을을 둘러온 후, 아버지의 묘에 들린 뒤 세계수로 향했다.
“진짜 여기만 다르네.”
세계수 반경 약 10m쯤 될까.
이곳은 안으로 들어가면 풍경이 달라지는 게이트처럼 파릇파릇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초록색 잔디로 만들어진 경계 너머 단풍 역시 주변과는 다르게 유난히 강렬하다.
‘볼수록 참 묘하네.’
더더욱 묘한 건 그 가운데 선 세계수였다. 한 달도 안 지났건만, 이제는 꽤 큰 물푸레나무로 성장했다.
두꺼운 줄기와 가지 위로 쨍한 초록빛을 뿜는 나뭇잎은 보기만 해도 휴식을 취하는 기분이었다.
‘진짜 멋있다.’
김서준은 세계수와 주변의 기묘한 절경을 사진첩에 담았다. 사진첩에는 매일 찍은 세계수의 변화가 마치 육아일기처럼 잘 모여 있었다.
“멍!”
“알겠어.”
리노는 사진을 좋아한다. 아니, 소리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김서준이 사진을 찍을 때면 리노는 자신도 찍어달라며 보챘다.
-찰칵!
하나 전혀 귀찮지 않았다.
리노의 모습은 항상 새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귀여웠기에. 리노의 모습 역시 다른 앨범으로 잘 정리 해두었다.
‘친구들 오면 보여주면 좋아하겠지.’
그러고 보니, 이제 집들이를 한번 할 때가 되었다고 김서준은 생각했다. 한번 작물을 모두 수확했고 이번에는 스스로 힘으로 다시 심었다.
아직 어엿한 농부라 부르긴 뭣해도, 농사에 제대로 발은 들인 셈.
‘귀농했고. 정착했어. 라고 이제 말할 정도는 된 거지.’
게다가 직접 수확한 맛있는 채소들로 요리도 대접하고 싶었다.
‘조만간 한번 연락해봐야지.’
이런저런 생각과 함께, 김서준은 세계수의 울타리로 다가갔다. 김서준은 고민 끝에 울타리를 다시 세우는 대신 깔끔하게 보수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것도 추억이니까.’
아버지가 울타리를 세우던 날을 기억했다. 울타리를 보고 있자면 그날이 떠오르는 거 같았다. 그런 소중한 추억을 치우고 싶지 않았다.
대신 주변에 이런저런 마도구와 CCTV로 보안에 힘을 줬다.
“다행히 아무 일도 없었나 보네. 그치 리노? 응?”
옆에 있어야 할 리노가 없었다. 김서준이 고개를 갸웃하며 리노를 찾았다.
하얀 엉덩이에 달린 귀여운 꼬리가 빠르게 팔랑거리는 게 보였다.
“뭐해? 너 설마?”
고개를 아래로 숙인 채, 즐거운 기분을 뿜어내는 녀석. 순간 김서준이 무슨 행동인지 눈치챘다.
“너 뭐 먹어!”
김서준이 황급히 달려갔다. 산에는 독성이 있는 풀도 있을 터. 함부로 아무거나 먹어서는 안 됐다.
“뱉어!”
리노가 놀라 김서준의 말대로 먹던 걸 뱉어냈다. 하얀색 무언가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이게 뭐야?”
김서준이 리노가 고개를 묻었던 나무를 바라봤다.
“버섯?”
나무 밑에 하얀 기둥을 가진 도톰한 버섯이 잔뜩 했다.
“꿍···.”
리노가 앓는 소리를 냈다. 먹고 싶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김서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잠깐만. 형이 먹어도 되는지 확인만 하고 줄게.”
[축복받은 송이버섯]
송이과 송이 속의 식용 버섯. 향이 매우 좋아 요리에 사용하기 좋은 버섯. 희소가치가 높아 가격이 비싸다.
* 세계수의 축복을 받아 품종이 강화되어 특별한 효과를 얻었습니다.
<효과>
- 정력 : 체력과 근력이 대폭 강화됩니다. 남자에게 매우 탁월한 효과를 줍니다.
“...효과가 굉장하네.”
“멍!”
“그래. 하나는 먹고···.”
축복받은 송이버섯은 총 6개가 자라고 있었다.
‘역시 3개는 어르신 가져다드리는 게 좋겠지?’
꾸준히 반찬이며 김치 등을 챙겨주시는 어르신 일가를 챙겨드리는 건 당연했다. 하나는 리노가 먹었으니 이제 남은 건 두 개.
“두 개는 역시 내가···. 흠흠.”
뻘쭘한 모습으로 버섯을 채취하던 김서준은 뭔가 아쉬웠다.
“이것도 키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송이버섯은 양식 재배가 안 된다. 그래서 가격이 비싸고 귀하다는 건 김서준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재배할 수 있다면 여러모로 참 도움이 많이 될 텐데···. 신농의 힘으로 어떻게 안 되나?’
그때였다.
[케레스의 손길로 이 나무를 ‘축복받은 송이버섯’의 터전으로 만드시겠습니까?]
“케레스의 손길? 터전으로 만든다고?”
‘설마 재배할 수 있다는 건가!’
김서준은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만약 가능하다면 이거야말로 인류 최초의 업적이 되리라.
김서준은 군말 없이 ‘만들기’를 선택했다. 동시에 손에서 뻗어 나간 황금색 기운이 앞에 보이는 쭉 뻗은 소나무 3그루를 휘어 감았다.
[3그루의 나무에게 축복을 내렸습니다.]
[세 그루에서는 ‘축복받은 송이버섯’이 자랍니다.]
[신농(神農)의 숙련도가 부족해 더이상의 나무를 지정할 수 없습니다.]
[신농(神農)의 숙련도가 부족하여 송이버섯에는 급속성장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숙련도가 부족하다. 그럴만하지.’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능력을 쓰고 농사에 더 익숙해지면 능력도 강해진다는 이야기. 이미 예상하던 바였다.
‘사실 어느 정도 느끼고 있기도 했고.’
그랬기에 아쉬움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무려 자연산 송이버섯을 3개의 나무에서 매번 구할 수 있게 되었지 않았나!
“대박이야.”
김서준은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는 송이버섯을 고이 잘 챙겨 하산했다.
****
“어, 어르신!”
가벼운 발걸음으로 임종철의 집을 찾은 김서준이 놀라 임종철에게 달려왔다.
“이, 이게 무슨 일이십니까!”
임종철이 다리에 큰 상처를 드러낸 채 마루에 누워 있었다. 옆에는 김향숙 여사가 조심스레 연고를 바르고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멍!”
함께 온 리노도 걱정되는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아휴. 괜찮여. 그냥 좀 긁힌 거여.”
임종철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웃었다.
“아무 일도 아니긴요. 여기다 긁히고 멍들었는데!”
그러자 김향숙이 답답하다는 듯 그를 다그쳤다.
“아유. 이게 뭐 별거라고. 메이드카솔 좀 바르면 금방 다 치료될 텐디.”
“이 양반이 정신 못 차리고. 서준 씨가 좀 말려봐요. 이 양반 이거 자전거 타고 싶어서 그래요.”
자초지종은 이랬다.
임종철의 취미 중 하나는 자전거 타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마을의 도로였다. 마을의 도로가 전형적인 시골길에 울퉁불퉁하고 포장도 되어 있지 않다 보니, 노인이 자전거를 타기에는 꽤 위험했던 것이었다.
“확실히 좀 많이 다치긴 하셨네요.”
“그렇다니까요. 이거 봐요. 내가 언제 한번 이렇게 다칠 날이 있을 줄 알았다니까!”
“아유. 호들갑들 떨지 말어. 이거 그냥 겉에만 까진 겨. 별거 아녀.”
‘바이크 타는 남편과 아내 같네.’
김서준이 피식 웃었다. 예전 밑에 있던 부하직원 중 하나가 하소연하던 그 상황과 너무나 비슷했다.
‘그때는 나도 아내 편을 들었지.’
김서준도 바이크는 너무 위험하다고 생각했기에. 그러나, 이번에는 좀 애매했다. 자전거 타는 게 위험한 일도 아니고. 어차피 도로에 차도 없지 않은가?
‘문제는 도로가 저런 상태니···. 흠 누구 편을 들어야 한다···?’
고민하는 내내 두 사람이 실랑이를 버렸다. 금술 좋은 노부부의 실랑이가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귀엽게 느껴졌다.
김서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일단 치료부터 하시죠. 어르신.”
김서준은 아공간에서 비상용 포션 한 개를 소환했다.
“그것도 스킬인가? 대단하구먼!”
“이건 마도구입니다. 꽤 고급 장비인데, 작은 포션 3개 정도는 들고 다닐 수 있죠.”
안타깝게도 이걸로 남은 포션은 1개가 되었다. 지난번 리노를 치료할 때 배낭에 있던 것으로 모자라, 비상용 포션 한 개까지 쓴 탓이었다.
‘이제 게이트 들어갈 일은 없을 거니까 상관없겠지.’
김서준은 붉은 약병을 들고 임종철에게 다가갔다.
“그게 그 헌터만 쓴다는 힐링 포션인가 보고만.”
힐링 포션도 만든 연금술사에 따라 그 종류가 다양했다. 그중에도 이건 장인급 숙련도를 가진 연금술사가 만든 최상품이었다.
“네. 조금 쓰라릴 수도 있으세요.”
붉은 포션이 살에 닿자 빛이 일었다. 동시에 환부 주변부터 살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신기하구먼.”
“처음에는 다들 그렇죠. 하하.”
“대단하네요. 감사해요. 서준 씨.”
“아닙니다. 두 분이 주시는 거에 비하면 이건 별거 아니죠.”
불과 몇 분 사이 상처는 모두 사라졌다. 핏자국을 물티슈로 닦아낸 임종철이 다리를 움직였다.
“하나도 안 아프구먼. 신기하네.”
“다행입니다.”
“고맙네. 근데 어쩌나. 이 비싼 걸 이런 일에 쓰다니 말일세.”
포션은 효과가 빠른 만큼 매우 비쌌다. 일반인이라면 의사에게 천천히 치료받는 게 백번 나았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이제 전투에 들어갈 일도 없을 텐데요.”
귀중품 모시듯 모셔두느니, 필요할 때 쓰는 게 훨씬 나았다.
‘아마 병원 가자고 하셔도 절대 안 가셨을 거고.’
“하여간 고맙네. 내 꼭 답례하지.”
“지금도 충분합니다. 매번 좋은 지식을 전수해주시잖아요. 그리고 이번에 엄청 좋은 종자도 주셨고요.”
김서준의 능력에 감탄한 임종철은 이번에는 엄선한 종자를 가져 다 줬다. 좋은 종자로 농사를 지으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기대였다.
덕분에 까막눈인 김서준이 봐도 좋은 종자들을 공짜로 받았다.
“대신 당분간 자전거는 좀 자제하세요.”
“흠흠. 알겠네. 그나저나 ”
김서준이 김향숙을 보며 눈을 찡끗했다. 그녀는 화사한 웃음으로 답했다.
“근디 그건 뭔가?”
“아, 이거 선물입니다.”
김서준이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내용물을 확인한 임종철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이, 이건···. 자연산 송이 아녀! 이걸 어디서 구한 겨?!”
임종철이 호들갑을 떨었다. 농산물 전문가 답 게 그는 이 송이버섯이 특상품이라는 건 대번에 알아챘다.
‘좋아하셔서 다행이네.’
김서준은 흐뭇하게 웃었다.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아까의 일이 걱정되었다.
‘여기가 시내에서 너무 멀긴 하지.’
혹시라도 크게 다쳤을 경우. 마을에 의사도 없고. 큰일이 나지 않을까. 그런 염려가 생겼다.
“멍!”
불안한 감정을 느꼈는지 리노가 김서준을 바라봤다. 김서준은 그런 리노를 한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너라도 타고 병원에 가야 할까? 흠···.”
걱정은 그뿐만 아니었다.
시골은 한적하고 여유롭다. 다만 그만큼 심심하기도 했다. 취미가 없었다면, 아마 지겨운 생활에 금방 지치는 게 당연할 정도였다.
그런데, 임종철의 취미 중 하나가 자전거 타기가 아니던가.
‘아마 아주 심심해지시겠지?’
안전은 중요하지만, 어르신의 서운함 또한 마음이 쓰였다.
‘도로포장을 해드려야 하나? 비용이 좀 들긴 할 텐데···.’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집 앞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집 앞에서 서 있는 게 보였다.
“어?”
김서준을 발견한 단발머리의 여자가 손을 흔들었다.
“서준 씨!”
“저 사람은···.”
김서준은 한 번에 그녀를 알아봤다. 지금 하늘의 모습과 같은 이름을 한 여자. 충남지부 총괄 팀장, 노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