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8화 (8/139)

08. 그 황금 트랙터!

감자를 캐는 방법은 간단했다. 단계로 나눠보면 총 3가지 단계를 거친다.

1단계는, 순간 손목 스냅으로 줄기를 떼는 일이었다.

“한 번에 힘을 안 주고 천천히 하면 감자가 전부 딸려 올 러와. 그러면 일일이 다시 손으로 작업해야 하니까, 조심혀.”

김서준은 임종철의 조언을 떠올리며 감자 줄기를 움켜쥐었다. 생장의 끝에서 결실을 본 줄기는 처음과 같은 파릇파릇함을 잊었다. 이파리는 살짝 노랗게 변한 게, 임종을 맞이하는 노인과 비슷했다.

‘수고했어.’

김서준은 속으로 인사하며 그 줄기를 ‘-툭’ 떼어냈다. 김서준은 그 줄기를 바닥에 대충 던지곤 옆에 있는 감자로 이동했다.

-툭.

줄기가 끊어지는 소리에 김서준이 고개를 돌렸다. 리노가 줄기를 입으로 떼어냈다.

“안 도와줘도 되는 데. 도와주고 싶다고? 기특한 녀석. 그래. 그럼 네가 그쪽 골 맡아. 여긴 형이 할게.”

“멍!”

순식간에 모든 골에 있는 감자 줄기를 모두 떼어냈다.

이제 1단계, 사전 작업은 끝.

2단계는 간단하다.

“트랙터 소환.”

-쿵!

엄청난 박력과 함께 나타난 황금색 트랙터가 공중에서부터 나타났다.

“깨갱!”

리노가 놀라 김서준의 뒤로 숨는다.

‘역시 애야.’

김서준은 리노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정시켰다.

황금색 트랙터는 태양 빛 아래 반짝반짝 빛났다. 보기만 해도 든든하다.

“사람들은 이게 무슨 농촌에 교통수단 쯤 생각하는데, 그거 다 오해 여. 농사는 이놈만 있으면 끝이여.”

임종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처음에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러나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이 녀석 없으면 밭 만드는 건 꿈도 못 꿨겠지.’

감자 캐기 2단계이자 핵심 과정 역시 이 녀석만 있으면 끝이었다.

“위험하니까 저리 물러나 있어.”

리노를 내려놓은 김서준은 트랙터 뒤를 확인했다. 황금색 뼈대로 만들어진 밭작물 수확기가 달려 있었다.

‘여기에 다는 장치만 바꾸면 뭐든 할 수 있다니. 괜히 어르신이 그렇게 강조한 게 아니야.’

장치를 확인한 김서준은 트랙터에 올라탔다. 엔진 소리가 기분 좋게 ‘-구구구’ 소리를 내며 움직였다.

“좋다.”

쭉 펼쳐진 초록색의 풍경. 옆에서 뛰노는 리노의 귀여운 모습. 맑은 하늘. 그 안에 유유자적하게 떠다니는 구름. 이 풍경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는 트랙터의 승차감까지.

“너무 좋네.”

이 모든 것이 한가지 단어로 귀결된다.

‘여유.’

빌딩 숲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던 나날.

커피를 마시면서도 일을. 운동하면서도 다음 프로젝트를. 소설 대신 자기계발서를 읽으며 다음, 내일, 미래를 생각해야 했던 그때는 여유를 찾을 수 없었다.

‘아니 찾을 수 없던 게 아니라 찾으면 안 됐지. 여유는 죄악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여유’는 게으름이었고,

‘여유’는 태만이었으며,

‘여유’는 나태이자,

‘여유’는 실패로 가는 길을 의미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야.’

이곳에서 여유는 행복을 오롯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김서준이 이게 너무 좋았다. 매일 이런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미래를 위해 미뤄뒀던 행복을 이제야 누리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임종철에게 말했다.

“그건 좀 어려울 거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감자는 맛있었다. 비단 임종철 부부의 평가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판매한다면 잘 팔릴 법했다.

“이 맛을 다른 사람이 모르는 게 아쉽구먼.”

임종철의 그 말도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도전은 언제든 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은 이 여유를, 이 행복을 오롯이 즐기고 싶어.’

아직은 이 행복 속에서 좀 더 행복한 꿈을 꾸고 싶었다. 리노와 아버지, 세계수, 그리고 고마운 분들과 함께.

****

“다시 봐도 참 아깝구먼.”

택배용 상자에 한가득 담긴 감자를 바라보며 혀를 끌끌 찼다. 김서준이 선물해준 감자 상자에는 특상품으로 분류 받아 마땅한 감자가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좋은 감자 보는 게 참 쉽지 않은데······.”

“어쩔 수 없죠. 서준이의 생각을 존중해야죠. 싫다는데 어쩌겠어요.”

“좋은 상품을 보고 무시하려니 이기 쉽지가 않구먼. 이런 건 널리 알리고 연구도 해야 하는데···.”

“그 선구자 기질은 이제 좀 버려요. 은퇴도 했는데 이제 좀 평범한 할아버지 생활을 즐겨요.”

“명신이 엄마.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이 쉽게 안 변하더구먼.”

둘은 그렇게 농담을 나누며 애써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한참 식혜와 함께 대화를 나누던 중 김향숙이 물었다.

“그나저나, 이거 우리가 다 먹긴 힘들 거 같은 데. 여보 어디 줄 곳 있어요?”

“흠. 김 사장이나 한 상자 보내줄까. 한창 바쁠 텐디.”

“아니면 신 사장님은 어때요? 직접 가져다드리고 오랜만에 밥도 먹고 오고요.”

“그것도 좋겠구먼. 거기 안 간 지가 좀 됐지.”

그때였다.

임종철의 휴대폰에서 경쾌한 벨 소리가 울렸다. 두 사람은 액정 위에 뜬 발신자를 보고 놀랐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 친구도 양반은 아니구먼.”

임종철이 껄껄 소리를 내며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신 사장. 오랜만이여.”

[형님.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잘 지내지. 근디 무슨 일이여.”

[형님. 혹시 형님 주변에 괜찮은 감자 농가 없습니까?]

“감자 농가? 갑자기 감자 농가는 왜 찾는겨? 거래처에 문제 생겼어?”

[아닙니다. 저 때문이 아닙니다.]

“그럼 갑자기 왜?”

[아들놈이 무슨 야간 시장 푸드 트럭 한다더니, 어디서 싸구려 감자를 납품받아서 장사 시작도 전에 접게 생겼다고 전화가 왔더라고요. 저도 당장 장사할 양밖에 없고, 제 주변에서는 바로 공수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근데 형님은 다르시지 않습니까. 형님 말이면 없는 감자도 구해다 줄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형님 제가 어지간하면 이런 부탁 않는 데 아들놈 일이다 보니···. 한 번만 도와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 양반이 참···.”

상황은 이해가 됐다. 하나 내키지 않았다. 가진 힘을 휘두르고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는 게 내키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들 일이라는 데 무시할 수도 없고.’

그때, 임종철의 머리에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임종철이 김서준의 감자를 바라보며 말했다.

“좋아. 아들놈 일이라니까. 내 특별히 아주 특상품으로 보내주겠네.”

****

“하, 요즘 왜 이러지?”

나라에서 최상급 인재로 분류하는 A급 헌터이자 최연소 총괄 팀장, 거기에 수려한 미모까지 가진 노을은 당연하게도 주목받는 인재였다.

최연소 헌터관리국 입사, 최연소 팀장 달성은 물론. 초고속 승진으로도 유명했다.

‘헌터관리국의 보물이지.’

‘차기 국장 후보로 키워지는 중이라던데?’

풍문에는 그런 소문이 돌 정도.

하나, 정작 노을 본인은 그런 이야기에 관심이 없었다.

‘무슨 국장이야 귀찮게. 적게 일하고 적당히 벌면 장땡이지.’

높은 조건을 제시한 길드가 아닌 공직을 선택한 것도 그런 연유였다.

철밥통 공무원 월급에 보장되는 휴가와 정말 비상시를 제외하면 정시 퇴근에 빨간 날 휴무 보장까지.

이보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직업이 없다고 생각했다.

‘A급이라고 대우도 엄청 좋고. 이만한 직장이 없지.’

거기에 노을은 한술 더 떠 ‘충청남도’를 골랐다.

‘전국에서 가장 업무가 쉬운 곳이라고 했어.’

헌터 관리국의 주요 업무는 게이트 토벌이 아니다. 그건 길드의 일. 그들의 업무는 분쟁 조정과 헌터 관련 수사, 그리고 예외적인 사건에 대한 조치 정도였다.

전국에서 게이트 발생률이 가장 낮은 충남에는 헌터도 적었다. 자연스레 전국에서 가장 편한 지부가 되었다.

‘덕분에 진급하고는 거리가 멀어서 경쟁률도 낮았지. 아주 감사하게도.’

진급해서 중앙에 고위직으로 가면 다시 업무가 늘어난다. 휴일도 줄어든다. 그녀로서는 퇴직까지 총괄 팀장 정도가 딱 적당했다.

그런데.

그랬던 충남이 이상해졌다.

얼마 전에는 마력 감지가 안 되는 몬스터 출현으로 휴일도 없이 수색 작전을 펼쳤다. 야근에 빨간 날에 일까지.

‘근데 찾지도 못했어.’

그야말로 최악의 최악의 최악이었는데.

“이건 또 뭐야.”

이번에는 풀로 국도 3km 정도 구간이 뒤덮인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물론, 일반적인 풀이었다면 사건 수사 정도 하는 선에서 팀장에게 맡기고 넘어갔을 터였다.

그런데, 이게 그냥 풀이 아니었다.

‘마나 먹은 풀. 그것도 마나 먹고 제대로 돌아버린 풀이라니. 진짜 미친 거 아냐?’

마나 먹은 풀은 랜덤하게 특징이 나타난다. 이 돌아버린 마나 먹은 풀은 말도 안되는 내구성을 가지고 있었다.

제초기나 트랙터는 전부 무용지물 됐고. 군경에 소방서까지 합류한 화재 작전 역시 실패했다.

“그래서 헌터가 직접 제초를 한다니. 진짜 코미디가 따로 없네.”

덕분에 노을도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현장에 도착하니 사태는 더 심각하다.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헌터들이 마나를 두른 검으로 풀을 베는 장관을 보여주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평소의 정장이 아닌 편한 복장을 한 1팀장이 그녀에게 달려왔다.

“어어. 상황은?”

“지금 모든 팀이 다 참여해서 하곤 있는데, 성장 속도가 워낙 빨라서 속도가 더딘 상황입니다.”

“팀장급 스킬로도 안 돼?”

“2팀장의 불꽃은 실패했습니다. 3팀장 님도 약점 분석을 시도 해봤는데, 역시나 약점이 따로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4팀장은 보조 팀이니 말할 것도 없겠지.

“에휴.”

노을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냥 길드랑 협상하는 게 빠를 거 같은데...”

“지부장님께서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예산 초과란다. 우리 선에서 해결하자고 하시네.”

길드가 터무니없는 금액을 제시한 건 맞지만, 중요한 건 예산이 아니라 실적 문제라는 걸 노을은 알고 있었다.

관리국의 힘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그의 진급에 큰 도움이 되리라.

‘충남 지부장 됐으며 좀 포기하시지. 사실상 좌천인데. 쯧.’

속으로 혀를 차며 그녀가 말했다.

“일단 내가 해보고. 안되면 지부장님이랑 내가 다시 이야기해볼게.”

“네. 감사합니다.”

1팀장은 그녀를 현장으로 안내했다. 40명의 헌터가 땀을 뻘뻘 흘리며 풀을 베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안쓰럽기까지 하다.

“장병기가 아니면 마나를 못 머금으니 낫도 못 쓰고. 쯧쯧. 고생들 하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녀의 말을 들은 몇몇 헌터가 소리쳤다.

“괜찮기는. 팀장들 애들 데리고 다 옆으로 빠져봐.”

“네. 알겠습니다! 모두 작업 중지하고 길 옆으로 이동한다!”

“네!”

헌터들은 일사불란하게 작업을 멈추고 옆으로 물러났다. 모두의 눈이 그녀에게 모였다. 기대 어린 눈빛도 보인다.

‘하긴, A급 헌터의 기술이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팀장급이라 해도 전부 B급 헌터. A급 헌터는 그만큼 고급 인력이었다. 그녀는 자세를 잡았다.

‘넓은 범위니까 크게 베야겠지.’

그녀가 검을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가볍게 검을 휘둘렀다.

‘일도양단(一刀兩斷)’

그녀가 가진 대단위 기술 중 가장 강력한 기술이 펼쳐졌다. 순간 거센 바람이 몰아치며 정적이 감돌았다.

-촥!

뒤늦게 줄기들이 뜯겨 나갔다.

“역시 A급!”

“총괄 팀장님은 다르긴 다르구나.”

“멋지다.”

주변에 찬사와 달리 노을은 표정을 찌푸렸다.

“이거 안 되겠네.”

일도양단으로 베인 자리 아래로 아스팔트가 보이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질겼다. 거기에 일도양단은 하루에 수십번 쓸 수 있는 기술도 아니었다.

노을은 잘린 풀을 집어 들었다. 고동빛 풀이 무언가 낯이 있었다.

“이걸 내가 어디서 봤지?”

“팀장님. 괜찮...”

“쉿! 잠깐만.”

노을은 기억을 되짚다가 마침내 손가락을 튕겼다.

“아 맞아! 그 황금 트랙터!”

“네?”

“1팀장. 지난 번에 봤던 황금 트랙터. 그거 기억하지?”

“네. 기억합니다.”

“그분. 그분한테 연락 좀 해봐. 아니, 내가 직접 찾아가서 부탁드려야겠어.”

노을은 그날 트랙터가 이거랑 똑같은 풀을 거침없이 가르고 지나가던 모습을 떠올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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