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7화 (7/139)

07. 날로 먹는 농사

“대단하네. 대단혀. 정말 날로 먹는 농사가 따로 없구먼.”

임종철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격한 표현을 토해냈다. 어제만 해도 흙만 가득했던 밭 여기저기 작은 새싹들이 솟아나 있었다.

“농기구는 전부 최상급에. 땅을 되살리지를 않나. 이번에는 하루 만에 감자에서 싹이 자랐어. 뭐 약이라도 뿌린 건 아니지?”

“네. 그냥 자랐습니다.”

“내 평생 농사를 지었지만, 이런 일은 처음 보는구먼. 아니, 자네 같은 사람은 처음 보는구먼.”

‘저 역시 이런 능력을 갖춘 사람은 처음 봅니다.’

김서준은 하고 싶은 말은 속으로 삼킨 채 어색한 웃음으로 대신했다.

“멀칭(밭에 검은색 비닐을 덮는 일)은커녕, 비료도 안 뿌려도 되겠구먼.”

밭을 거닐 던 임종철이 감탄 어린 얼굴로 말했다.

“그렇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아무리 좋은 땅도 비료는 뿌려야 한다고 들었던 거 같은데···.”

“그렇긴 한디. 이렇게 성장이 빠른데 비료가 뭐 필요 하겠어. 게다가 감자는 영양이 과다하면 불량품이 뎌. 왜 그 못난이 감자라고 있잖여. 눈사람처럼 생긴 거. 그런 게 다 그래서 생기는 겨. 영양이 너무 많으니까 감자 옆에 또 감자가 자라는 거지.”

“아, 그렇군요. 저는 영양은 무조건 많으면 좋은 줄 알았습니다.”

“농사를 안 지어봐서 그렇지. 걱정 말고 이리 와보게.”

임종철이 쪼그려 앉아 바닥의 손으로 흙을 살짝 팠다. 김서준이 그 옆에 앉아 임종철이 말했다.

“흙을 쥐어보게.”

“네.”

촉촉한 흙이 손안에서 뭉쳐진다. 미술 시간에 쓰고 남은 마른 찰흙을 만지는 느낌이었다.

“그다음 눌러 부서 보게.”

“네.”

가볍게 힘을 주자 덩어리가 퍼석한 질감으로 부서졌다. 임종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그게 딱 최적의 수분이야. 이 상태를 유지해주게. 그럼 잘 자랄 거여.”

임종철을 그 외에도 감자 꽃을 따주라는 등 감자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알려줬다. 그 주옥같은 노하우를 김서준은 곧장 머릿속에 자세하게 새겨 넣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아니야. 나도 재밌어서 좋구먼. 근데 자네 감자만 키울 건가? 밭도 넓고 자라는 속도도 빠른데 뭐 하나 더 키워볼 생각은 없는가?”

“안 그래도 텃밭처럼 여러 개를 좀 키워보려고요. 혹시 추천해 주실 작물 있으실까요?”

“아무래도 이것저것 많겠지만, 젊은 사람인 만큼 토마토 어떻겠나?”

샐러드를 하거나 볶아 먹기도 좋고, 과일처럼 먹을 수 있으니 좋은 선택인 거 같았다.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내가 종자를 구해 줄 테니 내일 한번 심어보자고.”

김서준이 손사래를 쳤다.

“괜찮습니다. 어르신. 지금 도와주신 거만도 충분합니다. 번거로우실 텐데 종자는 제가 내일 시장 가서 사 오겠습니다.”

“아녀. 나도 자네 덕분에 너무 재밌는구먼.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자네는 걱정 말더라고.”

김서준은 임종철의 고집을 말릴 수 없었다. 결국, 김서준은 감사 인사를 다시 한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멍!!”

사흘 동안 가느다란 방울로 꾸준히 땅을 적신 가을비가 내렸다. 비로부터 대피해 마당도 아닌 집안에서 며칠을 보낸 리노는 비가 그치자 꼬리를 흔들며 흥을 냈다.

살짝 흥분되긴 김서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임종철의 지도를 따라 이런저런 작물도 심고. 땅도 가꾸며 이제 막 농사일에 재미를 붙인 참이었다.

‘얼른 밭에 가고 싶네.’

일하러 나가고 싶은 기분이라니. 얼마만의 느껴보는 기분이더라. 김서준은 그런 생각과 함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자!”

“멍!”

두 사람은 새벽이슬을 맞으며 곧장 밭으로 향했다.

“볼 때마다 뭔가 뿌듯하네."

죽은 나무줄기로 가득했던 땅은 이제 어엿한 밭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오와 열을 맞춰 자라는 다양한 작물의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보람찬 기분이었다.

‘이래서 다들 귀농하고 싶어하는 거구나.’

애지중지 키우는 작물의 성장은 나날이 새로운 영감을 김서준에게 주었다.

특히나, 김서준의 작물은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 터. 그 쾌감은 더더욱 컸다.

지금도 그랬다.

어제만 해도 초록 감자 이파리 사이 하얗게 고개를 내밀고 있던 꽃들이 전부 떨어져 내렸다.

‘원래라면 좀 더 시기가 지난 후 냉해를 맞을 때 그런다고 했지.’

그러나 김서준의 감자는 3개월 가까이 걸리는 성장을 일주일 만에 이루는 돌연변이(?)들.

임종철의 예상대로 비가 그치자 전부 꽃이 떨어져 있었다. 김서준은 떨어진 꽃 하나를 주웠다. 괜히 묘하게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원래 이런 거라고 했는데도 뭔가 좀 그렇네.”

김서준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시는 데, 리노가 김서준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끌었다.

“응? 왜? 미트루트 보자고?”

긍정의 감정이 느껴진다. 김서준은 미소와 함께 못 이기는 척 미트루트로 향했다.

'볼수록 참 신기하군.'

미트루트는 열매처럼 붉은색 이파리를 가지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단풍이 들었다고 오해할 수도 있을 듯했다.

“멍!”

“알겠어. 근데 이거 캐봐도 되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베테랑 농부인 임종철이라 한들 이 세계 식물까지 알 수는 없는 일. 이것만은 오롯이 김서준의 몫이었다.

“뭐 시행착오가 아예 없을 수는 없는 거니까.”

김서준이 그렇게 생각하며 호미를 소환한 순간.

-팟!

미트루트 위로 황금색 동그라미가 나타났다.

“100%?”

동그라미 안에는 숫자가 적혀있었다. 김서준은 어렵지 않게 그 숫자의 의미를 추측할 수 있었다.

“이거 설마 얼마나 익었는지를 보여주는 건가?”

김서준이 추측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밭을 가득 메운 다른 작물 위로도 원이 나타났다.

100%에 해당하는 작물은 완벽한 황금색 원을 줄기 위에 띄웠다.

반면, 99% 이하의 수치를 가진 작물은 아직 완전한 원이 되지 못한 푸른색 고리를 띄웠다.

비슷한 광경이 데자뷰처럼 머리를 스친다. 김서준은 이내 그 장면을 어디서 본지 떠올렸다.

“놀러 와요. 정령의 숲?”

‘놀러 와요. 정령의 숲.’은 재작년 게임계를 섭렵했던 게임이었다. 해본 건 아니지만, 지나가며 광고는 몇 차례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광고에 분명 이런 비슷한 시스템이 있었다.

“진짜 그 시스템이랑 똑같은건가?”

거기에 감자 중심으로 황금색이 많다는 것도 김서준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듯했다.

“확실한 건 캐보면 되겠지.”

김서준은 100%에 해당하는 미트루트 하나를 캤다. 세계수 옆에서 캤던 것처럼 새빨간 미트루트 4개가 한 번에 딸려 나왔다.

“멍!!!”

리노는 고기를 줄 때보다 더 흥분해 꼬리를 흔들며 입맛을 다셨다.

“이게 그렇게 좋나? 우리가 식성이 다르긴 한 가봐.”

김서준은 그때 먹었던 참혹한 맛을 떠올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나 리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어서 달라며 김서준을 보챘다.

“자.”

양발로 미트루트를 제압한 리노는 입 사이 삐쭉 튀어나온 송곳니를 찔러 넣었다. 김서준은 정신없이 아침 식사를 하는 리노를 쓰다듬으며 그 귀여운 장면을 감상했다.

‘역시 먹을 때가 최고야.’

귀여운 모습도 그렇지만, 먹는 게 정말 좋은지 먹을 때마다 기분 좋은 감정을 마구 쏟아내는 리노였다.

덕분에 김서준은 자꾸만 먹이를 주고 싶은 충동을 억눌러야 했다.

“그나저나 맛있게 먹는 거 보니까 다 익었나 보네.”

“멍!”

“완전 잘 익었다는 거지? 역시 내 생각이 맞았나 보네. 그럼 먹고 있어. 형은 감자 좀 캐올게.”

“멍!! 멍!!!”

맛있게 아침을 먹는 리노를 뒤로하고 김서준은 다시 감자가 있는 골로 이동했다.

‘몇 개만 캐서 어르신 댁에 가져가야겠다.’

나름대로 첫 수확물. 이 성과와 기쁨을 어서 어르신과 나누고 싶었다. 김서준은 황금 호미를 거침없이 땅에 내다 꽂았다.

****

김서준의 집안에 손님이 찾아왔다.

개량 한복을 입은 장년(長年) 여성과 농사지을 때도 입는 고급 등산복을 입은 장년(長年) 남성.

“집이 좋구먼.”

“그러게요. 우리도 이렇게 집을 지을 걸 그랬나 봐요.”

임종철과 그의 아내 김향숙 여사였다. 김서준은 두 사람을 정중히 집에 초대했다.

처음부터 빨리 초대해드리자고 계속 생각은 하고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 소중한 사람들에게 요리를 대접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니까.

‘많이 보채기도 하셨고.’

하지만 조건의 여의치 않았다. 그러나 마침 오늘. 첫 작물 수확도 있었고, 시켜놓은 식재료도 전부 배달이 끝났기에 김서준은 숙원을 풀었다.

“편하게 둘러 봐주세요. 2층에는 제 방이 있고 그 위로 옥상도 있습니다.”

“멍!”

리노는 마치 안내원이라도 된 것처럼 두 사람의 앞장을 서 걸었다.

“예쁘네.”

“이거 보니까 좀 욕심이 나네요.”

두 사람은 연신 감탄을 뱉으며 집안을 거닐었다. 대리석 바닥에 모던한 느낌의 인테리어가 맘에 든 것 같았다.

‘한옥에 사시길래 싫어하실 줄 알았는데 의외네.’

임종철의 집은 현대식 한옥이었다. 담벼락부터 마당까지 모두 그랬고 바닥도 전부 나무로 되어 있었다.

“이런 소파도 괜찮은 거 같고. 여기 장도 예쁘네. 이거 다 직접 고른 거예요?”

“네. 직접 고르고 조립도 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 많이들 그런다더니. 진짜였구나. 근데 진짜 센스가 좋으시네요. 집이랑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감사합니다.”

김서준이 고개를 숙여 대답했다. 그러자 김향숙이 씽긋 웃으며 덧붙였다.

“우리 이이도 이런 감각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으흠. 내가 뭐 어때서.”

김서준은 두 분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저 나이에도 친구처럼 지내시다니. 참 금슬이 좋으시네.’

내심 대단하게 보이기도 했다.

“인테리어도 직접 한 거죠? 진짜 대단하시다. 농부 말고 인테리어나 디자인 쪽 일을 하셔도 되겠는데요?”

“그건 안 되지. 내 제자를 뺏어가려 하는 겨?”

“농사 조금 알려줬다고 제자래. 그리고 요즘은 직업 여러 개도 가질 수 있잖아요? 안 그래요, 서준 씨?”

“하하. 과찬이십니다.”

농담을 이어가며 두 사람은 집을 천천히 살폈다.

“2층도 있고 3층은 옥상인데 경치가 꽤 좋습니다. 천천히 둘러보시는 동안 저는 점심 준비하겠습니다.”

“우리 걱정은 말어. 요 녀석이 아무래도 안내를 해주려나 보구먼.”

임종철이 하얀 백설기 같은 리노를 쓰다듬었다. 리노는 기분 좋은 감정을 뿜어내며 꼬리를 흔들었다.

‘사람을 좋아해서 다행이야.’

김향숙 여사도 마치 갓난아기 보듯 애정 어린 얼굴로 리노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요리 내가 도와줄까요?”

“괜찮습니다. 리노. 안내 잘 해드려.”

“멍!!”

구경을 마친 두 사람이 거실로 돌아와 앉았다. 김서준은 기다렸다는 듯 접시 두 개를 가져왔다. 한쪽에는 생감자가. 다른 한쪽에는 방금 쪄서 연기가 폴폴 올라오는 삶은 감자가 올려져 있었다.

“이게 이번에 수확한 거라는 거지?”

“듣기만 하다가 직접 보니까 더 신기하네요. 어떻게 감자가 일주일 만에 다 자랐을까요?”

“그것만 대단하게 아녀. 크기도 봐. 씨알이 굵은 게 3개월 동안 제대로 키운 녀석이랑 다른 게 하나 없구먼. 그리고···.”

임종철은 말하다 말고 생감자를 만지작거렸다.

“비가 좀 와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물은 안 먹었는지 딴딴하구먼. 껍질도 안 벗겨지고. 겉보기에는 최상품이구먼.”

“일주일 만에 최상품이라고요?”

“내가 그랬잖여. 말도 안 된다고. 신이 내린 농부가 따로 없어.”

김서준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능력이 적어도 농사에서만큼은 얼마나 특별한지 이미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맛도 한번 보시죠.”

“그래요. 맛은 또 아닐 수도 있으니까 맛을 볼까요?”

“그려그려.”

김서준은 잘 익은 감자를 작은 접시로 옮겨 담았다. 그리고 수저와 함께 두 사람에게 하나씩 대접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접시에도 하나를 옮겨 담았다. 그때였다.

“허허.”

임종철이 웃었다. 그 웃음이 묘했다. 김향숙도 놀랍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이거 설탕 넣고 찐 거 아니죠?”

“네. 아닙니다. 아무것도 안 넣었습니다. 왜 그러시죠?”

“아, 너무 달고 맛있어서요. 이렇게 맛있는 감자는 처음 먹어보는데요?”

“이걸 그냥 찌기만 했다는 거지? 대단 허구만. 대단해. 내 평생 이런 감자는 처음이여.”

두 사람의 놀라운 반응에 김서준도 서둘러 감자를 한 숟갈 입안에 넣었다.

“와...”

포슬포슬하게 입안에서 풀리는 감자들의 놀라운 식감. 그 뒤로 느껴지는 은은한 단맛과 감칠맛이 느껴졌다.

‘너무 맛있는데?’

임종철의 말대로 먹어본 감자 중에 가장 맛있는 듯했다.

“한평생 농사를 지었는데, 이런 감자를 먹어본 적이 없어. 게다가 이게 무슨 특별한 품종도 아니고 그냥 내가 준 그 감자 아녀.”

“직접 와서 보니 알겠네요. 왜 이이가 그렇게 입에 닳도록 칭찬했는지. 정말 맛있네요. 이거.”

칭찬을 하면서도 두 사람은 계속 감자를 입안에 넣었다. 대답하는 김서준 역시 매한가지.

순식간에 6개의 감자가 동이 났다.

“자네.”

“네. 어르신.”

“내가 진짜 많이 고민했는데 말여. 이 맛을 보니까 참 말로 안 되겠구먼. 이거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이 맛을 봐야 혀. 그 생산력에 이걸 안 파는 건 죄여. 죄.”

그렇게 말한 임종철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자네. 이걸 한번 팔아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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