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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로 꿀 빠는 헌터-6화 (6/139)

06. 요 귀여운 것은 누구여?

“잘 먹네.”

김서준은 녀석을 데리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무엇을 줘야 할지 몰라 일단 집에 있던 고기란 고기는 전부 꺼내 줬다.

녀석은 허겁지겁 고기를 집어 먹었다. 심지어 냉동 고기마저 어그적 소리를 내며 씹어 삼켰다.

“많이 배고팠구나?”

“컹!”

덩치는 산만한데 하는 짓이 꽤 귀엽다. 지금도 저렇게 고기를 먹으며 꼬리를 팔랑팔랑 흔드는 게 영락없는 강아지 같다.

“역시 댕댕이가 딱인데.”

김서준은 이름을 정하던 좀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늑댕이?”

“킁···.”

“산돌이?”

“컹···.”

“두부?”

“낑···.”

그래도 이름인데. 취향에 맞는 이름 좀 정해주려 했는데 생각보다 취향이 까다로웠다.

“그럼 좀 서양풍으로 모리? 댄디? 실버?”

“컹.”

아까보단 낫지만, 여전히 애매한 반응이다. 답답함에 김서준이 말했다.

“혹시 니노 막시무스 카이저 쏘제 쏘냐도르 앤 스파르타. 뭐 이런 이름을 좋아하는 거니?”

“컹!”

“응?”

그냥 해본 말에 강한 긍정의 감정이 느껴진다. 김서준은 그제야 깨달았다.

‘얘 진짜 애구나. 덩치만 큰 애.’

연예인(?)의 이름을 그대로 쓸 수 없으니 리노 쥴리어스 펜릴 2세로 합의를 봤다.

참고로 2세는 그냥 장식이다. 숫자를 붙여줬더니 더 좋아했고 3세보다는 2세를 좋아했다. 중이병 취향에도 디테일이 있다는 듯.

“컹! 컹!”

“알겠어. 댕댕이 말고 리노라는 거지. 리노.”

“컹!!”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인 녀석이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김서준은 그런 녀석을 귀엽다는 듯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자, 그럼 이제 배도 채웠고. 한번 해볼래?”

“컹!”

식사를 마친 리노가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리노의 몸에서 빛이 일었다. 하얀빛 덩이가 된 리노의 몸이 점점 작아졌다.

“멍!”

마침내 빛이 사라지고 리노의 몸이 다시 드러났다. 리노는 새끼 늑대인지 새끼 진돗개인지 분간하기 힘든 귀여운 외모로 변모해있었다.

“이게 폼 체인지구나.”

충성을 맹세했던 순간. 김서준은 리노가 가진 능력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감정을 주고받는 정도의 ’교감‘ 스킬과 낮은 레벨의 ’사냥‘ 스킬. 그리고 지금 사용한 폼 체인지(Form Change).’

리노가 생각한 해답이 바로 이거였다.

폼 체인지 상태에서는 능력을 모두 봉인하고 몸집마저 줄어들지만, 대신 아주 소량의 에너지만으로도 생활하는 게 가능했다.

‘의지할 주인이 생기면 얻을 수 있는 스킬이라고 했지.’

리노는 자신을 완전히 주인으로 인정한 셈이었다. 고맙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

‘아마 많이 힘들었겠지. 그랬으니 이렇게 쉽게 내게 마음을 준거겠지.’

김서준은 하얀 백설기처럼 작아진 리노를 양손으로 안아 들었다. 입에 삐죽 튀어나오면 하얀 송곳니 덕에 원래도 귀여운 몸이 더 귀여워 보였다.

“앞으로 잘 부탁해. 행복하게 잘 지내보자.”

“멍!”

****

사람의 습관이란 무서운 법이다. 한번 가진 습관을 깨는 건 쉽지 않다. 몸에 밴 루틴에 따라 김서준은 이른 아침에 눈을 뜨고 말았다.

“후···. 늦잠 자기도 쉽지 않네.”

불과 5일 만에 의도치 않게 새 나라에 어린이로 돌아와 버렸다.

“어쩔 수 없지.”

김서준은 가볍게 옷을 챙겨입었다.

원래 아침에 일어나면 휴대폰을 확인한 후 신문을 읽고, 헬스장으로 향하는 게 아침 일정이었다.

“신문도 없고, 헬스장도 없고. 휴대폰은 뭐 이제 연락 올 곳도 없으니까···.”

김서준은 곧장 집 밖으로 나왔다. 가벼운 고민 끝에 아침 일정은 조깅으로 결정했다.

“나오길 잘했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면 상쾌한 공기가 들이닥친다. 그런데 밖에 나와 온몸으로 호흡하고 느끼고 있자니, 몸 전체가 신선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른 아침의 시골 냄새와 풀 냄새도 그윽하니 맘에 들었다. 살짝 맺힌 이슬의 촉촉함 마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멍멍!!”

기척에 잠을 깬 리노가 다가왔다. 짧아진 다리로 달려오는 모습이 눈덩이가 굴러오는 거 같다.

“잘 잤어?”

김서준은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털이 촉촉하다. 새벽이슬로 샤워를 한 듯했다.

“그러니까 집에서 자자니까.”

‘집을 얼른 만들어 줘야지.’

사실 집안으로 들이려 했다. 그러나 리노가 싫어했다. 김서준은 풀밭을 좋아하나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슬까지는 생각을 못 했다.

‘오늘 바로 사 와야지.’

머릿속 리스트에 할 일을 하나 추가한 김서준이 물었다.

“조깅 나갈 건데. 같이 갈래?”

“멍!”

긍정의 감정이 듬뿍 느껴진다.

“빨리 뛰어야 해. 형이 생각보다 빠르거든.”

“멍!”

김서준은 리노와 함께 문밖으로 나왔다. 가볍게 준비운동을 한 후 김서준이 달리기 시작했다. 숨이 점점 가빠질수록 몸에 활력이 돋는다.

‘트레드밀 위를 뛰는 거보다 훨씬 좋네.’

눈 앞에 펼쳐지는 한적한 풍경은 기계 위에 달린 TV 속 영상과는 비교가 불허했다. 몸 안을 오가는 상쾌한 공기 역시 공기 청정기로는 따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좋다.’

달릴수록 마치 명상하듯 마음이 느끼는 충만함이 더 커졌다.

“멍!”

김서준의 감정을 느꼈는지, 리노 역시 한껏 흥을 내고 있었다. 김서준이 흐뭇한 얼굴로 그 작은 새끼 늑대를 바라봤다.

짧은 다리로 부지런히 뛰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 늑대의 포스는 전부 사라지고 영락없는 강아지의 면모만 남아있다.

‘역시 댕댕이가 어울려.’

김서준은 아쉬움을 속으로 삼켰다.

“리노! 더 빨리 갈 거야. 잘 따라와!”

“멍!”

마을 한 바퀴를 돈 김서준은 아버지의 묘로 향했다. 새로운 가족이 생겼으니 소개를 드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잘했어.”

김서준은 자신이 절할 때 옆에서 같이 엎드려 절하는 시늉을 하는 리노를 쓰다듬어 줬다.

이후,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그곳에서 잠깐의 휴식을 마친 후 세계수에 들렀다. 밤사이 별다른 탈은 없었는지 설치한 장비는 전부 그대로였다.

“이건 다시 챙겨야지.”

홀로그램은 회수했다. 리노가 잡혔으니 굳이 세워둘 이유는 없었다. 임시방편으로 만들어 놓은 담은 주말에 고칠 생각이었다.

“음?”

그때 리노가 세계수를 보며 짖기 시작했다.

“왜 그래?”

리노에게서 들뜬 감정이 느껴졌다. 김서준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무런 이상도 없는데?”

김서준은 다시 세계수를 확인했다. 나무가 좀 더 자랐다는 걸 빼면 특이한 점은 없어 보였다.

“어?”

그때, 뒤늦게 붉은색 무언가가 바닥에 움튼 게 눈에 들어왔다.

“저거야?”

“멍!!!”

확실했다. 리노의 눈은 세계수가 아닌 그 붉은색 열매에 고정되어 있었다. 김서준은 조심스럽게 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붉은 식물을 뽑아 들었다.

“뭐야 이게?”

마치 고구마처럼 생긴 무언가는 여러 개가 한 번에 뽑혀 올라왔다.

[미트루트]

가지과 덩이줄기. 모든 영양소를 갖춘 채소로 특히 단백질은 고기보다 풍부하다. 다만, 맛과 식감이 좋지 않아 모크 족은 굳이 먹지 않는다. 대신 아랑족은 매우 좋아해서 주로 사료로 사용된다.

<용도>

- 사료.

- 체력 회복.

<재배 방법>

- 줄기를 잘라 땅에 심는다.

“미트루트라고?”

생김새나 이름이나 처음 듣는 작물. 모크 족 이야기가 나오는 거로 보아 아무래도 이 세계의 작물인 듯했다.

김서준이 리노를 바라봤다.

높은 담을 넘지 못해 밖에 있는 녀석의 눈이 미트 루트에 고정되어 있었다. 입에 고인 침이 곧 땅에 쏟아질 기세였다.

“이걸 아랑족이 좋아한다는 거지.”

김서준이 줄기에서 하나를 떼내 던졌다.

-착!

펄쩍 뛴 리노는 단숨에 하나를 잡아챘다. 리노는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그 미트루트 한 개를 해치웠다.

“저렇게 잘 먹는데 맛이 없다고?”

김서준은 호기심에 한 개를 더 줄기에서 떼어냈다. 그리고는 흙을 훌훌 털어 거침없이 입으로 베어 문 순간.

“읍!”

그는 베어 문 조각을 곧장 토해냈다. 피 색깔의 즙이 침과 함께 바닥으로 죽 늘어졌다.

“캑! 캑!”

입안에 퍼지는 비릿한 맛과 기분 나쁜 물컹한 식감. 거기에 덜 익은 감을 먹을 때 와 같은 텁텁함까지.

‘최악이네···.’

“퉤!”

김서준은 고개를 저으며 먹던 조각도 리노에게 던져줬다. 리노는 하얀 주둥이에 그 붉은 즙을 잔뜩 묻혀가며 맛있게 받아먹었다.

‘그나저나 이제 사료 걱정은 없겠네.’

그래도 늑대 아니던가. 고기와 미트루트 두가지면 충분해 보였다.

‘그나저나 이 세계의 작물이라.’

세계수가 피고. 리노가 나타났다. 여기까지는 둘 사이 아무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미트루트라고?’

세계수 옆에서 이 세계의 식물이 자라났다? 거기에 마치 이계의 존재를 맞이하라는 듯 자꾸만 주는 정보까지.

자연스레 세계수가 이 일의 근원인가 하는 의심이 피어올랐다.

‘근데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예전엔 안 이랬는데?’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도 세계수는 있었다. 그때는 이런 현상이 전혀 없었다. 그랬기에 리노가 나타났을 때도 전혀 세계수와 이 일을 연관 짓지 않았다.

잠깐의 고민.

역시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기에는 개운치가 않다.

‘혹시 모르니까 조치해놓자.’

확신은 없었지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었다.

****

“요 귀여운 것은 누구여.”

김서준과 함께 밭에 나온 리노를 보고 임종철이 반색을 했다. 아마 리노의 귀여운 외모 때문이리라.

“어디서 이런 귀여운 애를 구했어.”

리노는 거침없이 다가오는 임종철의 손을 피하지 않고 애교로 반겼다.

“아유. 착하구먼. 착해”

“어제 산책하다 주웠습니다. 다리를 다쳐서 고쳐줬더니 계속 따라오더라고요. 그래서 키우려고요.”

“그랬구먼. 아이고 어린 것이 어쩌다 어미를 잃고 다쳤을까나.”

임종철은 안타까운 목소리로 리노를 한 것 더 쓰다듬었다. 다행히 의심의 기색은 없었다.

‘하긴 의심할 것도 없지. 거짓말은 전혀 없었으니까.’

사실은 개가 아니라 늑대고. 헌터 관리국이 찾고 있는 녀석이라는 사실만 빼고 말했을 뿐. 나머지는 전부 사실이었다.

“이름은 뭐여?”

“리노...입니다.”

차마 뒤까지는 말할 수 없었다. 쥴리어스 펜릴 2세라니. 말할 생각만 했는데도 볼이 화끈거린다.

“이름을 특이하게 지었구먼. 백구 같은 거로 허지.”

“...그 이름을 좋아하더라고요.”

“끌끌. 그려그려.”

임종철은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이내 본론을 이야기했다.

“오늘은 땅을 갈아야 하는디. 그 전에 흙 상태 먼저 보자고.”

김서준은 리노에게 주변에서 놀고 있으라고 한 뒤 임종철과 함께 밭으로 들어갔다.

“쯧쯧.”

“왜 그러십니까.”

“겉흙이 엄청 말랐어. 지력을 그 잡초에 다 빨렸나 벼. 자네 혹시 호미 있는가?”

“아, 네.”

김서준은 케레스의 농기구를 호미의 형태로 소환했다.

“자, 요기 한번 파보게.”

“네.”

황금색 호미는 가볍게 툭 치자 땅속을 깊게 파고들었다. 힘을 줄 것도 빠져나오는 호미를 따라 땅이 뒤집어진다.

‘호미가 엄청 잘 드네. 저것도 스킬인가! 참말로 대단하구먼.’

감탄과 함께 임종철이 뒤집힌 흙을 집어 들었다.

“킁킁.”

살짝 냄새를 맡은 후, 흙을 혀로 가져다 댔다.

“어, 어르신.”

“퉤! 괜찮여. 그나저나 큰일이구먼. 이거 땅이 심각혀.”

“역시 그렇습니까?”

“좋은 흙은 낙엽 냄새나 살짝 단맛이 나는디 이 흙은 전부 역 혀. 거기에 꽤 깊이 팠는디 땅이 전부 마른 것도 그렇고.”

“흠···.”

잠깐 뜸을 들인 김서준이 말했다.

“어르신 잠시 저쪽 땅 좀 봐주시겠습니까?”

김서준이 임종철을 데려간 땅은 맨 첫날, 신농의 힘으로 되살렸던 땅이었다.

“여긴 딱 봐도 좀 낫구먼.”

임종철이 이번에도 흙을 입으로 가져갔다.

“여기는 상태가 아주 좋네. 향도 좋고. 맛도 좋고. 그나마 한 곳은 건졌네.”

“역시 그렇군요.”

“다행이여. 여기부터 밭 갈자고. 내가 자네 주려고 비료는 좀 챙겨왔으니까.”

“잠시만요. 어르신. 그러면 제가 다른 땅도 다 이렇게 만들게요.”

“뭐여? 그게 가능한겨?”

“네. 아마도 가능할 거 같습니다.”

김서준은 곧장 다시 처음의 밭으로 달려갔다. 손바닥을 가볍게 흙바닥에 댔다.

[땅을 회복시키시겠습니까?]

“물론.”

[신농의 힘으로 땅을 회복시킵니다.]

밭 전체가 초록색 빛에 휘감겼다. 이내 빛이 점점 사라지며 메마른 노랗다 못해 회색빛이 돌던 흙이 점점 짙은 갈색으로 변모했다.

“이, 이럴 수가.”

임종철이 입을 떡 벌렸다. 죽은 땅을 비료 한 점 없이 즉시 살려낸다니. 이건 농업계의 혁명이었다.

“됐습니다.”

금세 2000평의 땅을 돈 김서준이 말했다. 임종철은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했다. 혀로 맛보고 코로 냄새를 맡아도 결과는 똑같았다.

‘완벽히 살아났어.’

임종철은 충격에 허덕였다. 반면, 김서준은 별일 아니라는 듯 이야기했다.

“한꺼번에 하려니 좀 힘드네요. 하하하.”

“땅의 질이 너무 좋아져서 비료는 나중에 처도 되겠구먼. 멀칭(밭에 비닐을 씌우는 일)도 천천히 해도 되겠고. 정말 믿기 지가 않는 구먼.”

덕분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밭을 갈고 그중 500평에 가까운 땅에 감자도 심었다. 며칠 걸릴 일이 하루 만에 마무리됐다.

“진짜 농사를 날로 먹는구먼. 자네같이 농사지을 수 있으면 세상 사람 다 농부 되겠네.”

임종철은 그런 감탄 어린 농담을 뱉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여지없이 조깅을 나온 김서준이 밭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파릇파릇한 새싹이 밭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싹이 하루 만에 날 수가 있나···?”

김서준은 말하면서 느꼈다. 자신이 아무래도 정말 날로 먹는 농부가 되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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