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네 이름은...
하늘이 주황빛으로 물든 태양. 그 태양만큼이나 반짝거리던 트랙터가 멈춰 섰다.
“해제.”
짧은 한마디에 황금빛 트랙터는 햇빛처럼 부서지며 사라졌다. 하루에는 힘들어 보였던 2000평의 땅이 해가 지기도 전에 마무리되었다.
“이걸 해 떨어지기 전에 다 끝났구먼.”
“어르신 덕분입니다.”
“자네 그 트랙터랑 재능 덕분이지. 대단혀.”
“아닙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덕담을 주고받으며 두 사람은 호쾌하게 웃었다. 임종철은 저녁 식사를 제안했지만, 김서준은 거절했다.
‘아무래도 신경 쓰여.’
묘하게 자꾸 아버지의 묘와 세계수가 걱정되었다. 저녁을 거르더라도 일단 그곳에 이런저런 대비를 해 둘 심산이었다.
“오늘 위에 지저분한 거 다 걷어냈으니까. 내일은 땅을 좀 갈아 엎어보자고.”
“알겠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려. 내일 봐.”
힘이 넘치는 검은색 트랙터로 흙길을 가르며 임종철이 떠나자, 김서준은 집에 잠시 들른 후 곧장 아버지의 묘로 향했다.
“아직은 별 탈 없네.”
푸른 묘가 봉긋하게 솟아 있고. 잘 만들어진 비석 역시 아직은 멀쩡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짐승이 다녀간 흔적은 없었다.
김서준은 비석 옆에 마정석으로 만든 기계 장치를 내려놓았다. 동그란 기계에 렌즈가 박힌 모양이 마치 눈처럼 생긴 장치였다.
김서준은 장치의 렌즈를 눌렀다. 딸깍 소리와 함께, 렌즈에 푸른 빛이 들어왔다.
-팟!
순간 기계로부터 마나 파장이 퍼져 나왔다. 이내 반투명한 막이 무덤 일대를 뒤엎었다.
“이거면 되겠지.”
C급 쉴드 발생기. C급이라는 이야기만 들으면 싸구려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청룡 길드에 있을 때 선물 받은 초고가의 장비였다.
‘그것도 장인섭 장인님이 만들어준 최상급 장비지.’
장인은 제작 직업을 가진 이가 S급 능력을 갖출 때 받는 일종의 칭호였다. 그런 장인들이 만드는 최고 수준의 장비는 대부분 C ~ B급 정도의 수준을 발휘했다.
혹자는 그 수준에 실망하지만, 대다수의 길드는 장인을 모시느라 혈안이 되어 있었다.
‘만들고 싶은 장비를 바로 만든다는 건 대단하니까.’
게이트를 백날 돌아도 이런 쉴드 발생기를 얻을 확률은 0.1%도 안 된다. 김서준 역시 장인섭을 포섭하느라 한참을 애를 먹어야 했다.
‘형님은 잘 계시려나.’
자신이 귀농한다고 하자 함께 가자며 너스레를 떨었던 그를 떠올렸다.
‘아마 오늘도 술 드시고 계시겠지.’
김서준이 피식 웃으며 기계의 작동 여부를 확인했다. 쉴드도 제대로 발동되었고 앱과도 제대로 연결되었다.
이곳으로 이것으로 안심이었다.
“아버지 오늘은 잠깐 인사만 드리고 갈게요. 아버지가 말씀해주신 나무도 지켜야 하거든요. 대신 이거 받으세요.”
김서준은 아버지의 묘에 사 온 술을 부어드렸다.
‘지금우린’. 충남 대표 소주로 아버지가 가장 좋아했던 소주였다.
“지금은 가봐야 해서 다음에는 같이 한잔해요. 아버지.”
김서준은 죄송한 마음을 담아 꾸벅 절을 2번 올렸다.
“정말 세계수의 힘인가?”
세계수가 자라는 터는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있었다. 김서준이 한 건 잔뜩 쌓인 낙엽을 치운 것뿐.
그런데, 척박했던 땅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잔디와 새싹이 자라나고, 앙상한 가지에는 새순이 자라나고 있었다.
마치 이곳만 가을이 아니라 봄을 겪는 거 같았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건 역시 ‘세계수’의 성장이었다.
“오늘도 많이 자라났네.”
이파리 두 개로 첫인사를 나눴던 녀석이 이틀 만에 가지를 뻗었다. 가지에 달린 몇 안 되는 이파리는 초록이 진하다 못해 바닥에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다.
“참 신기해.”
넘치는 생명력을 보고 있으니 김서준 자신도 몸에 활기가 도는 기분이었다.
“다행히 어디 꺾인 흔적은 없네.”
김서준은 면밀히 세계수의 상태를 살폈다. 4개 밖에 없는 가지와 이파리 모두 멀쩡했다.
“울타리를 당장 고칠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지.”
아버지가 정성스레 세운 울타리는 여기저기 그을리고 파손돼서 그 틀만 남은 상태. 주문한 자재가 오지 않아 수리는 어려웠다.
‘쉴드 발생기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쉴드 발생기는 한 개뿐이었다. 능력과 효용 가치를 생각하면 이곳에 설치해야 했지만, 김서준은 살아생전 못한 자식 노릇에 투자했다.
김서준은 가져온 특제 와이어로 울타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그 끝에 작은 장치를 달고 스위치를 켰다.
-파직.
순간 전류가 와이어를 타고 흘렀다.
‘임시방편이지만, 이거라면 한 두 번은 막을 수 있겠지.’
망가진 울타리는 몬스터 사냥용 덫을 응용해 전기 울타리로 개조했다. 그러나 이걸로는 부족했다.
김서준은 배낭에서 작은 상자 1개를 꺼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상자를 적당한 곳에 윗면이 드러날 정도로 묻었다.
-지잉.
바닥에 묻힌 상자 위로 홀로그램이 나타난다. 김서준과 똑같이 생긴 홀로그램은 제자리에서 스트레칭을 한다.
“멀쩡히 작동하네.”
상자는 몬스터들의 이목을 끌 때 사용하는 홀로그램 더미였다.
게이트에서 사용하면 눈이 좋은 몬스터들은 이게 진짜 인간인 줄 알고 달려든다. 그러면 헌터는 함정을 이용하거나 대기하고 있다가 손쉽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일종의 보조 도구였다.
‘원래는 허수아비처럼 쓰려고 가져온 거지.’
근데 늑대도 사람을 보면 도망간다 했으니, 충분히 효과가 있을 듯했다.
‘앱을 통해 무언가 접근하면 알람도 받을 수 있으니까. 이 정도 하면 되겠지.’
신농으로 전직하면서 육체 능력도 조금이지만 더 강해졌다. 알람 받고 바로 뛰면 1분 안에 이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김서준은 마지막으로 설치해놓은 장비를 확인했다. 이상은 없어. 충분해.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그르르···.”
낮게 우는 짐승의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젠장.’
소리와 함께 김서준이 속으로 욕을 뱉었다. 털이 곤두서는 짐승의 소리. 돌아보지 않아도 상대가 누군지 느낌이 왔다.
‘어쩐지 촉이 이상하더라니.’
김서준이 조심스레 몸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흰털 사이 푸른 눈과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낸 늑대가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르르···.”
어지가한 호랑이보다도 큰 녀석이 낮게 그르렁거린다. 온몸에 털이 삐쭉 서고, 등골에 식은땀이 맺힌다.
‘역시나 처음 보는 녀석이야.’
늑대를 닮은 몬스터는 꽤 많았다. 그러나 저렇게 하얀 털에, 푸른 눈. 그리고 비이상적으로 긴 어금니를 가진 몬스터는 김서준이 아는 한 없었다.
‘싸워야 하나?’
의지할 건, 헌터 슈트. 그리고 지금 당장 소환할 수 있는 케레스의 낫 정도.
반면, 상대는 정체불명. 거기에 노을 총괄 팀장이 말했던 것과는 달리 덩치와 느껴지는 박력이 상당했다.
저 정도면 최소 C급. 그럼 반반.
B급 이상이면? 필패.
‘싸움은 안 돼. 어차피 사람을 보면 도망간다고 했지.’
김서준 외에 홀로그램도 있다. 사람이 둘이나 있는 셈. 침착하게 보고 있으면 도망가지 않을까.
김서준은 그렇게 생각하며 침착하게 대치하고 섰다. 그때였다.
“컹...”
가볍게 녀석이 짖는다. 그런데 그 소리가 묘하다. 어딘가 힘아리가 없다. 경계보다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뭐지...?”
푸른 눈이 김서준을 바라본다. 그 눈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눈빛이다. 동시에 애처롭다.
“컹..”
한 번 더 우는 녀석. 그런 녀석의 울음소리가 마치 도움을 요청하는 아이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뭐지? 왜 이런 느낌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 자꾸만 안쓰러운 감정이 치솟는다. 김서준은 조심스레 물었다.
“할 말이 있는 거니?”
김서준의 말에 녀석의 눈이 커졌다. 이내 눈이 촉촉하게 젖어 들어갔다. 동시에 녀석의 감정이 머리로 물밀 듯이 밀려들어 왔다.
“이게 무슨...”
심경이 복잡했다. 안쓰럽지만 경계를 풀 수는 없었다. 몬스터 중에는 환각이나 감정을 조절해 함정으로 이용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만약 이게 함정이라면...’
아마 김서준은 저항할 틈도 없이 한입에 잡아 먹히리라.
그렇다고 무시하자니, 엄마 잃은 아이를 마주한 것만 같은 기분이 발목을 잡는다.
“어떻게 해야...”
고민의 순간 안내창이 나타났다.
[신농이 이계의 존재와 교류합니다.]
[‘세계수’가 이계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동시에 늑대의 옆으로 작은 상태창이 나타났다.
[종족 : 아랑족]
사냥을 주로 하는 부족인 모크 족과 교감하며 함께 살아가는 늑대종족. 인간을 잘 따르고 한번 충성을 맹세한 주인과 평생을 함께한다.
<능력>
- 교감 : 인간과 텔레파시로 감정을 교류한다.
김서준은 상태창을 빠르게 훑었다.
‘이계의 종족? 몬스터와는 다른 건가? 그래서 마나가 감지가 안 된 거구나!’
상황이 하나씩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다.
‘아마 무슨 이유인가로 녀석은 이계에서 이리로 넘어왔어. 당황한 녀석은 모크 족처럼 일단 의지할 인간을 찾았겠지.’
하지만 여기는 지구.
늑대, 그것도 몬스터에 가까운 거대한 늑대와 교감을 시도하려는 사람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사람을 보고 도망간 건, 사람의 공포에 반응했을 테고.’
가축을 공격한 건 먹이가 없어 민가를 습격하는 족제비나, 멧돼지와 같은 야생동물과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현상은 텔레파시로 인해 벌어진 거겠지.’
머릿속에서 상황이 정리됐다. 이제 더는 녀석의 속셈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김서준은 경계를 풀고 녀석의 감정에 집중했다.
‘힘들어. 지쳤어. 배고파. 사람들은 왜 나를 공격하지? 무서워.’
그런 감정들 사이.
‘제발 제 말을 들어주세요. 공격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희망을 품은 간절한 메시지가 들리는 듯했다. 김서준이 표정을 풀고 자상하게 말했다.
“괜찮아. 힘들었지?”
순간 녀석의 푸른 눈망울에서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동시에 녀석이 그 자리에 ‘-쿵’하고 주저앉았다.
“그래. 그래. 고생했어.”
전달되는 안심의 감정을 느끼며 김서준이 늑대에게 다가갔다. 김서준은 조심스레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푹신한 털의 감촉이 느껴졌다.
늑대는 긴 혀를 내밀어 김서준의 얼굴을 핥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힘도 없고 묘하게 숨소리가 묘하게 가빴다.
“음?”
그러고 보니 다리에 붉은 얼룩이 있었다.
“다쳤어?”
“낑...”
김서준은 그 털을 비집었다. 다리에 보이는 선명한 상처. 그뿐만이 아니었다. 앞과는 달리 뒤에는 여기저기 상처가 많았다.
“도망칠 때 공격을 받았구나.”
헌터들을 나무랄 수는 없었다. 테이밍 되지 않은 몬스터가 사람을 먼저 따른다니. 아마 상상도 못 해봤을 테니까.
“잠깐 기다려.”
김서준은 들고 온 배낭에서 포션을 꺼냈다.
“소독작용 때문에 잠깐 따끔할 거야. 그래도 움직이면 안 돼.”
“컹!”
붉은색 액체가 상처에 닿자 녀석이 움찔한다. 그러나 김서준의 말대로 녀석은 기를 쓰고 움직이지 않고 참았다. 김서준은 그런 녀석이 기특해, 쓰다듬으며 칭찬했다.
“잘했어.”
“컹!”
액체에서 초록빛이 일었다. 동시에 상처들이 빠르게 아물었다. 다행히 상처는 대부분 포션으로 치료가 가능한 찰과상뿐이었다.
“컹!”
치료가 끝나자 좋다는 든 김서준 주변을 도는 녀석의 다리에는 아무 이상도 없어 보였다.
“이제 괜찮지?”
녀석은 대답 대신 김서준의 얼굴을 핥았다.
“그나저나 이 녀석을 어쩐다?”
헌터 관리국에 넘겨야 하나.
그러려니 찝찝하다.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 몬스터. 이 한 가지 특성만으로도 녀석이 실험 대상으로 전락할 건 자명해 보였다.
‘왜 여기로 왔는지도 모르는 불쌍한 녀석을 그렇게 만들 수는 없지.’
그렇다고 키우자니 덩치가 너무 크다. 너무 커서 눈에 너무 띈다. 아마 숨기려 해도 금방 들키리라. 장소도 마땅치 않고.
그때였다.
“컹!”
녀석이 크게 울부짖으며 머리를 김서준에게 들이밀었다.
“왜 이래?”
김서준이 놀라 머리를 손으로 막았다. 그때였다.
[아랑족이 당신에게 충성을 맹세하려 합니다.]
[아랑족을 받아들이길 원하신다면 이름을 정해주세요.]
‘충성을 맹세한다고?’
김서준은 아까의 상태창을 떠올렸다. 충성을 맹세하면 평생 함께한다고 하지 않았나.
“컹!”
김서준이 머뭇거리자 다그치는 녀석. 그 안에 느껴지는 감정을 김서준이 되물었다.
“괜찮다고? 네가 알아서 해결하겠다고? 널 믿어 보라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컹!”
잠깐의 고민. 결국 김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믿어 볼게. 그럼 이제 네 이름은...”
달빛에 어금니를 빛내며 녀석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김서준을 바라봤다. 김서준이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네 이름은 댕댕이야!”
순간 진지했던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