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4화 (4/139)

04. 재능도 대단혀.

“됐다.”

김서준이 비현실적인 광경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케레스의 농기구는 어떤 ‘농기구’로든 형태를 바꿀 수 있다고 했다. 트랙터는 범주를 넘지만 어쨌든 농기구.

‘...라고 생각하고 밑져야 본전으로 해본 건데, 대박이군.’

눈앞의 결과물은 엄청났다. 튼튼하고 거대한 덩치. 금빛 몸체 아래 거대한 바퀴는 어떤 길이든 뚫고 지나갈 듯해 보였다.

“이게 뭐시여!!!”

임종철이 놀라 금빛 트랙터를 살폈다. 임종철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는 잠시 자신의 나이도 잊은 듯 트랙터 여기저기를 면밀히 살폈다.

‘이상한 일도 아니지.’

소환한 당사자인 김서준 역시, 새로운 장난감이라도 선물 받은 것처럼 설레고 있었다.

“이것도 스킬인가 뭔가 그런 건가!”

“네. 어르신.”

“대단해. 정말 대단하구먼!!!”

임종철은 아까 홍삼을 드렸을 때보다도 더 흥분한 듯 보였다.

“자, 자네 트랙터 몰 줄은 아는가? 역시 모르지?”

임종철이 말까지 더듬는다. 김서준은 빙그레 웃었다. 저 물음의 의미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소환하는 순간, 방법을 알게되긴 했지.’

아마도 신의 농기구답게 메뉴얼은 서비스로 머리에 담아 주는 듯했다. 100%. 자신은 저 트랙터를 능숙하게 몰 수 있으리라.

하나, 그런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네. 어르신이 가르쳐 주시죠.”

저 열망 어린 시선의 어린 욕구를 먼저 채워드리고 싶었다. 김서준이 손을 자신의 트랙터 쪽으로 가볍게 내밀었다.

“고맙네.”

“아닙니다. 가르쳐 주시니 제가 고맙죠.”

“그, 그렇지. 말이 헛 나왔구먼.”

임종철은 군침을 흘리며 트랙터에 탔다.

“내부도 엄청 좋구먼.”

디자인도 세련되었지만, 어지간한 부분은 금으로 되어 있는 게 생소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 운전석 시트는 또, 아주 푹신한 소재인지 임종철은 신기하다는 듯 만지작거렸다.

“이런 트랙터는 돈 주고도 못 만들겠구먼.”

이런저런 부분을 만져보던 임종철이 혀를 내둘렀다. 한동안 감격에 허우적거리던 임종철이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는 헛기침한 뒤, 마침내 설명을 시작했다.

“일단은 처음 타면 전부 모드 기어가 중립에 맞춰져 있는지 확인부터 혀. 안 그러면 시동이 안 걸리거든.”

시동부터 운전, 농기구 조작까지.

임종철은 성의껏 하나하나 세세하게 설명했다. 시동하는 법부터 운행하는 방법 등. 김서준이 생각한 그대로였다.

조작 설명 다음으로는 임종철이 주는 개인적인 팁.

“뒤에 있는 농기구는 트랙터의 RPM(엔진 회전수)과 관련이 있으니까 여기서는 540 정도로 맞추고···.”

‘진짜 대단하시네···.’

김서준이 내심 놀랐다. 스킬 덕인지 본능적으로 ‘이래야 하지 않을까?’라고 떠오던 부분들이 있었다.

임종철은 그런 부분들이 Tip이라며 더 자세하게 설명했다.

‘스킬도 스킬이지만. 할아버지 진짜 대단하다.’

임종철은 원래 마을에서 가장 크게 농사를 지었던 사람이었다. 한창때는 거의 사업체 수준으로 여기저기 농사를 지었다고 했다.

이런 강의는 돈 주고도 못들을 터.

‘역시 어쩔 수 없었나.’

간단하게라도 보답은 해드려야겠으니.

김서준이 말했다.

“이제 어느 정도 알 거 같은데, 시연 운전 한번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임종철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당연하고말고!!!”

****

“기가 막히는구먼.”

임종철은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죽은 나무줄기로 가득한 밭 위를 거침없이 가르는 황금빛 트랙터의 모습은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장관이 따로 없었다.

“영상으로 찍고 싶을 정도구먼.”

생긴 것도 휘황찬란하지만, 성능은 더 대단하다. 저렇게 힘이 좋으면서도 탑승감은 고급 세단 마냥 편안했다.

“어디 가서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없었는디···.”

임종철은 농업으로 잘나가던 시절, 트랙터를 수집했던 트랙터 광이었다.

지금은, 나이도 먹었고, 사업도 접으면서 모든 트랙터를 어쩔 수 없이 처분하긴 했지만.

그런데 그때 단 한대만은 처분하지 못했다.

‘바로 이 녀석이었지.’

무광의 검은색 크롬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자태. 국내에 단 1대 밖에 없는 림보르기니 사에서 만든 최고급 형 트랙터였다.

그런데.

‘오늘따라 초라해 보이는구먼.’

성능도 자태도. 오늘은 이 대단한 녀석이 한 수 접어줘야 할 듯했다.

‘부럽구먼. 부러워.’

저런 대단한 트랙터를 스킬로 막 소환할 수 있다니. 임종철은 속으로 주책이라며 자책하면서도 샘솟는 부러움을 막을 수 없었다.

“어르신, 지금 잘 맞게 되고 있나요?”

트랙터를 잠시 멈춘 김서준이 물었다. 임종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려. 그렇게만 혀. 시동 안 꺼지게 조심하고.”

“네. 감사합니다.”

김서준은 환한 미소로 다시 트랙터를 몰기 시작했다.

‘전직을 농부로 했다더니. 재능도 대단혀.’

트랙터가 좋아도 주인이 멍청하다면 말짱 꽝. 그러나, 주인도 잘 만났다. 김서준은 트랙터를 정확히 이해하고 운전했다.

‘저게 무면허라는 걸 누가 믿겠어.’

저 실력이면 집에 면허증 놓고 왔다 해도 누구나 믿어줄 정도였다.

‘거기에 저 즐기는 모습이라니, 천생 농부가 따로 없네.’

트랙터로 밭을 갈며 좋아하는 모습까지.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이었다. 임종철은 내심 김서준을 좋은 농부로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저기요.”

임종철이 놀라 뒤를 돌았다. 밭 옆길에 시골에는 어울리지 않을 법한 양복을 입은 남녀 한 쌍이 서 있었다.

“뉘슈?”

임종철이 묻자 흑발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자가 나섰다.

“저희는 헌터관리국 충남지부에서 나왔습니다.”

“헌터 관리국? 거기서 이 촌 동네까지 무슨 일이랴. 호, 혹시 몬스터라도 나온 겨?”

“아, 아닙니다. 할아버지.”

“그럼 뭔 일이여.”

“저희는 주변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근데 하늘에서 거대한 빛이 보여서요.”

“혹시 근처에 무슨 일이 있나 해서 들렀습니다.”

두 사람의 대답에 임종철은 좀 전의 상황을 곧장 떠올렸다.

“그건 저거 소환하느라 그런 겨.”

임종철이 밭을 해치고 달리는 황금빛 트랙터를 가리켰다. 두 사람이 의아한 얼굴로 그의 손가락 끝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트랙터?’

‘엄청 화려하네.’

그 안에서 연습용 헌터 슈트를 입은 남자가 내렸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를 은은하게 드러낸 남자가 밀짚모자를 쓰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무슨 일입니까?”

김서준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복장으로 그는 두 사람이 헌터관리국에서 나왔다는 걸 대번에 눈치챘다.

‘몬스터나 게이트라도 나타난 건가?’

헌터 관리국의 주요 업무는 그것들의 토벌. 만약에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주저 없이 대피부터 해야 했다.

“아 그게···.”

두 사람은 다시 한번 자신들이 찾아온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김서준은 그제야 안도하며 표정을 풀었다.

“아. 그러셨군요.”

“네. 근데 할아버지 말씀으로는 그 빛이 저걸 소환한 거라고 하시던데···.”

“네. 맞습니다. 제가 소환했습니다.”

두 사람의 얼굴이 놀라움에 물들었다.

‘소환 스킬로 저런 대형 트랙터를 소환하는 헌터는 본 적이 없어. 게다가 저 트랙터, 골칫거리인 저 마나 먹은 풀을 저렇게 쉽게 제거하고 있잖아? 저 정도면 최소 A급일 텐데···. 혹시?’

여자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은퇴한 선배님을 몰라뵙습니다.”

“은퇴는 했지만, 선배 소리 들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닙니다. D급이거든요.”

‘신농으로 전직했습니다. 다시 등급을 측정해야 합니다.’

김서준은 이런 이야기는 넣어두기로 했다. 괜히 등급 측정 다시 하고 이 특이한 직업에 대해 조사를 받는 번거로운 일은 만들지 않을 셈이었다.

“D급이요?”

여자가 의심의 눈초리로 다시 한번 트랙터를 바라봤다. 휘황찬란한 트랙터의 모습. 게다가 아까 봤던 거대한 빛과 폭발음까지.

고작 D급이라기엔 역시 가진 능력이 지나치다.

‘정체를 숨기시려는 건가.’

“네. 직업이 농부다 보니 저런 특별한 트랙터를 소환할 수 있지만, 그게 전부입니다.”

농부라니.

여자는 자기 생각이 맞았음을 확신했다. 헌터 생활 10년 차, 농부라는 직업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다.

‘저 정도 트랙터면, 최소 A급 소환 술사겠지. 아니면 A급 장인이시거나.’

그렇다면 속아드리고 좋은 관계를 맺자. 대신 이곳에서 일이 터지면 은근히 도움을 요청하자.

“아, 그러셨군요.”

계산이 선 여자가 완벽히 수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힐끔 눈치를 본 남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괜한 염려로 시간을 뺏어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이렇게 작은 일에도 순찰까지 해주시니 저희야말로 든든하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거···.”

여자가 슬쩍 명함을 건넸다.

[헌터 관리국 충남지부 총괄 팀장. 노을]

‘처음 듣는 이름이군.’

서울 경기권이었다면, 알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활동권이 아니었던 충남권의 총괄 팀장의 이름은 생소했다.

“근데 총괄 팀장님이 직접 오신 겁니까?”

“아, 실은 저 뒷산에 지금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제보가 있어서 조사하고 있었습니다.”

“뒷산이요?”

뒷산이면 김서준의 아버지 묘가 있는 곳. 설마 묘가 훼손된 건 아닐까. 그런 걱정에 김서준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 그 날카로운 기세에 사람들이 흠칫했다.

“어떤 몬스터입니까?”

“아직 정체는 못 밝혔습니다. 다만 대단한 녀석은 아닌 거 같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거 같습니다.”

“대단하지 않다?”

어중간한 대답이 거슬렸던 김서준의 말투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아, 그, 그게, 뒷마을에서 녀석은 닭이나 돼지 같은 가축들을 사냥하고 마을 기물을 파손하긴 했는데, 사람만 보면 도망간다더군요.”

“몬스터가 사람을 보면 도망간다고요?”

“그런 몬스터가 있는겨?”

“그래서 아마도 굉장히 약한 녀석이 아닐까.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근데 그런 몬스터를 찾는데 왜 총괄 팀장님까지 오신 겁니까?”

“위험해서는 아닙니다. 다만 시일이 급한 사항이라 인력 차원에서 나온 겁니다.”

‘거짓말이군.’

몬스터나 게이트는 모두 특유의 마나 파장을 뿜어낸다. 세상이 다시 안정권에 집어 들 게 된 것도 이를 이용한 레이더가 개발되었기 때문이었다.

갑작스러운 팝업(Pop-up) 현상으로 몬스터가 등장해봤자 금방 잡을 수 있다는 의미.

‘그런데 그걸 잡겠다고 총괄 팀장까지 출동했다? 위험한 몬스터도 아닌데?’

결론은 간단했다.

“감지가 안 되는 겁니까?”

두 사람의 동공이 커졌다. 당황하는 순간 거짓말은 모두 탄로 난 거나 마찬가지.

“사유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 노을은 대답을 돌렸다. 마나 감지가 안 되는 몬스터가 나타났다는 건 세상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터.

대안이 마련되기 전에 혼란의 빌미를 만들 수는 없었다.

‘대답하지 않으면 사유만은 숨길 수 있을 테니까.’

협조를 부탁할까도 고민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그만큼 사안이 위중했다.

“어쨌든 정말 위험한 녀석은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노을은 답변과 함께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화면에는 뾰족한 송곳니가 입 밖으로 튀어나온 하얀 늑대 사진이 떠올랐다.

“저희가 CCTV로 포착한 녀석의 모습입니다. ”

“생긴 건 살벌하구먼.”

“생긴 것만 그런 거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할아버님. 그냥 보면 자극하지 마시고 바로 연락만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실례했습니다.”

두 사람은 정중히 인사하며 자리를 떴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김서준이 중얼거렸다.

“늑대라···.”

“왜 뭐 아는 게 있는겨?”

“아닙니다. 그냥 뒷산에 있다고 하니 아버지 묘가 걱정돼서요.”

“설마 몬스터가 묘를 파헤칠까. 너무 걱정 말라고. 아까 헌터 관리국도 그랬고.”

임종철의 말대로였다.

‘위험한 녀석이었으면 아마 대피령을 내렸을 거야.’

거기에 몬스터가 굳이 애먼 묘를 파헤칠 이유가 없었다. 식성도 육식인 듯하니, 마을에 내려와 세계수를 뜯어먹을 일도 없을 터.

‘근데 왜 이렇게 신경 쓰이지.’

김서준은 일을 마치는 대로 아버지의 묘와 세계수를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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