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로 꿀 빠는 헌터-1화 (1/139)

01. 귀농

“이번에 MP사의 후원을 받으면서 길드를 개편하기로 했어.”

김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이야기였다. 대기업의 자본으로 확장을 위해는 확실히 필요한 단계였다.

“길드를 체계화하고 엘리트화해서 10위 권 안으로 진입할 생각이야. 규모도 키우고.”

“좋은 생각이네.”

“역시 그렇지?”

함께 청룡 길드를 창단한 친구이자 길드 마스터, 전소민은 말과는 달리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그게···.”

전소민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MP사 측에서 엘리트화를 위해 길드 입단 조건을 B급 헌터 이상으로 하자고 요구했어."

B급이라.

김서준은 그제야 이게 무슨 상황인지 눈치챘다.

함께 헌터가 되기로 했을 때 두 사람은 같이 D급이었다. 하나, 가진 포텐이 달랐다.

결국,

한 사람은 S급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헌터.

한 사람은 각성만 했을 뿐 전직도 못 한 사냥보다 사무직을 잘하는 D급, 무늬만 헌터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너를 부 길드 장으로 연임하는 건 어려울 거 같아.”

전소민은 어렵게 본론을 입 밖으로 꺼냈다.

‘아마 팀장들이 이야기했겠지. 이 기회에 나를 내려보내자고.’

호시탐탐 자신의 자리를 넘보던 팀장들에게 아마 이건 천재일우의 기회였으리라.

‘그런 씁쓸한 얼굴은 안 해도 되는데.’

녀석이 끝까지 자신의 자리를 보전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지 김서준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친구, 전소민은 그런 사람이었다.

“대신 너를 새롭게 여는 서포터 팀의 팀장으로 임명하기로 했어.”

“서포터 팀? 사체와 현장 수습을 하는 팀을 말하는 거야?”

“어. 이번에 확장하면서 자체적으로 팀을 만들기로 했거든. 거기라면 네가···.”

“아냐. 괜찮아.”

김서준은 웃으며 말했다.

“그냥 이쯤에서 은퇴할게.”

진심이었다.

전소민과의 격차는 아득했다. 혼자 몰래 사냥도 나가보고, 밤낮으로 수련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전직이 이뤄지지 않았다.

헌터의 능력은 직업에 기반을 둔다.

전직이 없다면, 스킬도 없었다. 고작해야 비싼 돈 들여서 스크롤로 배울 수 있는 스킬들이 전부였다.

열등감?

어느 순간 그럼 감정이 무색할 정도로 둘의 차이는 아득해졌다.

‘그렇다면 부끄럼 없는 친구라도 되어보자.’

김서준은 빠르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길드 창단 이후,

김서준은 현장과 사무실을 오가며 밤낮없이 일했다. 하루가 멀다 하며 코피를 흘리며 내실을 다지고 업무에 열과 성을 다했다. 각성한 육체가 지칠 정도로 치열한 나날이었다.

내부적으로 그는 명실상부한 길드 성장의 1등 공신이 되었다.

하나.

“그래 봤자 D급이잖아?”

“내무 잘해봐야 밖에서 하는 게 없는데. 헌터 길드에서 저런 사람이 부 길드 장은 좀 너무 했지.”

“전소민 님 친구 아니었으면 아무리 잘했어도 저자리 못 갔지. 진짜 나도 저런 친구 하나 뒀으면 좋겠다.”

그런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치열한 삶에 김서준은 지쳐가고 있었다.

어쩌면 마음 한편에는 이런 날을 기다리고 있었던 거 같기도 했다.

‘은퇴할 계기 말이지.’

“서준아! 은퇴라니! 너 없으면 나 혼자 길드를 어떻게 이끌라고!”

“좋은 인재는 또 영입하면 되지. 네 이름값이면 아마 여기저기서 좋은 사람이 몰려들걸?”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그리고 좀 쉬다가 또 일하고 싶으면 다시 찾아올 테니까.”

김서준은 그렇게 자신의 친구를 말렸다. 전소민이 눈물을 글썽였다.

“...고마워.”

“됐다. 퇴직금이나 두둑하게 챙겨줘.”

****

시골이 싫었다.

산과 들, 나무만 가득하고 같이 놀 친구도 즐길 것도 없는 시골이 어렸을 땐 너무나도 싫었다.

“가업을 이어 농부가 될 생각은 없니?”

아버지의 물음에 언제나 당당하게 대답했다.

“네 없어요.”

이 뻔하고 지루한 공간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영화나 책에서 본 것처럼 큰물에서 치열하고 재밌게 살고 싶었다.

“그때는 그랬는데, 살아보니 여기가 그립더라고요.”

남의 눈치를 보고, 경쟁에서 이기고, 치열하다 못해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만큼 굴렀다.

그랬더니, 그토록 지루하던 이곳이 평화롭게 느껴졌다.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의 정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품처럼 포근하기까지 했다. 이 여유롭고도 한가로운 풍경에 마음이 치유되는 느낌이었다.

“그냥 진작에 아버지 말처럼 농부나 할 걸 그랬나 봐요.”

김서준이 볼록하게 솟은 묘를 보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버지라면 그렇게 이야기했을까. 피식 웃은 김서준이 소주잔을 털어 넘겼다. 아버지를 위한 잔에 채워놨던 소주도 묘 위에 흩뿌렸다.

“술맛은 맘에 드세요?”

정말 마주 앉아 술이라도 마시듯 이야기하며 김서준이 자리에 앉았다. 챙겨온 나무젓가락 두 개 중 하나를 집었다.

“안주도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거로 챙겨왔어요.”

하얀 일회용 접시 위 정갈하게 놓인 광어 회.

고기 파인 김서준과 달리 아버지는 회를 좋아했다.

“좋은 데서 사 왔으니까 많이 드세요.”

김서준은 회 한 점을 입에 집어넣었다. 간장의 짭조름함과 고추냉이의 알싸함 뒤로 회의 쫀득한 식감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그 맛이었다.

“오랜만에 아버지랑 회를 먹으니까 맛있네요. 진작 찾아올 걸 그랬어요.”

그 말을 하니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초기에 게이트는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어디서 일어날지 예측도 안 되고 대응도 어려웠다.

김서준의 아버지는 그 자연재해에 휩쓸려 죽었다.

“고작 고블린이었어! 나도 죽일 수 있는 D급 몬스터였어! 내가 집에 있었다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네 잘못이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절규하는 김서준을 동료들은 그렇게 위로했지만,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았다.

하나뿐인 가족이 죽는 것도 모르고 그는 서울에서 친구들과 몬스터를 사냥하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단 사실이 가슴을 옥죄었다.

‘죄송해요. 너무 죄송해요.’

성심껏 장례를 치르고 아버지가 좋아하던 마을이 한눈에 보이던 자리에 묘를 만들었다.

그러나, 돌아가신 후에 하는 효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오히려 날이 갈수록 죄책감만 커졌다.

결국, 그 괴로움에 이날까지 이 자리에 다시 서지 못했다.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해요. 아버지.”

‘괜찮다. 지금이라도 얼굴을 보니 좋구나.’

취기 때문일까.

마치 아버지가 그렇게 대답해주시는 거 같았다. 김서준은 그 취기에서 애써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전하고 싶었던 한마디를 푸른 풀이 자라있는 묘소에 대고 말했다.

“감사해요. 그리고 죄송해요.”

‘괜찮아. 그게 네 잘못도 아니고.’

취기와 망상이 만든 환청이건만. 무거운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진다. 김서준은 이 취기가 이어지길 바라며 소주를 입으로 연달아 털어 넣었다.

“...소민이는 이제 10위 안에 드는 헌터가 됐어요. 그 울보가 그렇게 된 게 믿기세요?”

‘그래? 참 대단하구나. 그 여린 녀석이 그렇게나 강해지다니.’

“길드 마스터에 S급 헌터에 녀석이 여리다고 이야기하면 이제 다 비웃을걸요?”

술에 취해.

그리움에 취해.

마치 아버지의 묘가 정말 아버지인 것처럼, 김서준은 못했던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놓았다.

어느새 넉넉하게 챙겨온 소주 3병이 동이 났다. 안주로 가져온 회도 이제 거의 사라졌다.

“아, 벌써 다 먹었네요.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저 여기 살 거니까요. 자주 찾아뵐게요.”

‘알겠다. 종종 놀러 오거라.’

아버지의 그리운 미소가 보였다. 결국, 뺨에 한 방울의 눈물이 흘렀다.

‘근데 정말 괜찮겠니? 도시에서 살다 여기서 사는 게 쉽지 않을 텐데.’

“크···.”

쓴 한잔을 한 번 더 마신 김서준이 비어버린 아버지의 잔을 채우며 대답했다.

“그럼요. 진짜 죽을만큼 열심히 했어요. 이제 미련 없습니다.”

김서준이 자리에 앉아 회를 한 점 씹었다. 홀가분한 얼굴로 아버지의 묘를 바라봤다.

‘정말이냐.’

“물론이죠. 이제 여기서 정말 가업이나 이어보려고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꿈속에 아른거리던 기억이 있었다. 학교를 다녀올 때마다 봤던 한가롭게 논 밭을 가꾸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은퇴 직후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에 도전한 건 비단 죄책감 때문만이 아니었다.

“진심인가 보구나.”

그때였다. 자신의 착각과 그리움이 만들어냈을 터인 환영이 너무나도 생생해졌다.

“그럼 집 뒤에 있던 나무를 찾아보아라.”

목소리마저 저 멀리서 들리는 게 아니라 바로 코앞에서 들리듯 생생했다.

“아, 아버지?”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온다? 미친 소리다. 그 아무리 대단한 힐러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었다.

‘근데 왜 이렇게 아버지 같지?’

너무나 생생하다. 당장에라도 저 작지만 듬직했던 어깨를 안아 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억지로 가업을 받을 필요는 없어. 아들.”

환상인지 진짜인지 모를 아버지는 대답 대신 말했다.

“네가 행복한게 제일 중요하니까.”

김서준의 어깨가 들썩였다. 뺨에서는 자기도 모르는 세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아빠는 네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해. 그러니까 자유롭게 살아. 종종 보러올게. 아들.”

“아버지!”

김서준이 소리치며 손을 뻗었다. 그사이 옅어진 환상은 이내 사라졌다. 김서준의 손은 허공을 휘저었다.

****

마력을 운용하니 취기가 가셨다. 그러자 벗어나기 힘들었던 환상의 여운도 조금은 가시는 듯 했다.

‘환각, 아니면 착각이겠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정말 아버지와 대화를 한 것처럼.

그래서일까. 산에서 내려오는 내내 김서준은 그 말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무를 찾으라고?’

집 뒤에 있던 나무라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집 뒤에 있던 거대한 물푸레나무를 말씀하신 거겠지?’

워낙 크다 보니 동네의 상징이라고 불렸던 나무였다.

신기한 건 아버지가 마을에 온 후 자라기 시작했는데, 불과 1년 만에 그렇게 커졌다는 점이었다.

그 소문을 듣고 여기저기서 찾아왔던 걸 김서준은 선명하게 기억했다.

‘문제는 그 나무가 이제 사라졌다는 거지.’

그 특별한 물푸레나무는 고블린의 습격으로 집이 쑥대밭이 된 날 정체불명의 화재로 타버렸다. 나무뿐 아니라 그 일대가 전부 타버렸다. 김서준이 수습을 위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잿가루를 휘날리며 검게 변해버린 나무의 흔적뿐이었다.

‘죽은 나무를 찾으라니, 역시 환청이었던 걸까?’

그렇게 무시하고 넘어가고 싶지만. 자꾸만 그 말이 마음을 맴돌았다.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가는 길이니까. 들러 볼까.’

집 뒤 몇 분만 가면 나무가 있던 자리다. 가는 길이 어려운 것도 아닌데 한 번 가보는 게 힘들까.

김서준은 께름칙한 기분을 해소할 생각으로 길을 틀었다.

“여기도 많이 회복됐네.”

일대가 다 불타 거뭇한 재만 가득했던 곳에 새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낙엽 위로 곧게 자란 몇몇 어린나무들이 수줍게 이파리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신경 써 만든 울타리의 잔해 안쪽에는 낙엽만이 가득했다. 근데 그게 이상했다.

주변은 다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데 왜 저기만 비어있을까.

‘원래 큰 나무가 있었던 자리여서인가? 아니면 정말 뭐가 있는 건가···?’

의구심에 김서준이 울타리를 넘었다.

마력을 눈으로 몰았다. 낙엽 사이를 기어가는 개미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사륵.

발로 조심스레 낙엽을 쓸어내며 나무의 흔적을 찾았다. 그때였다.

“저건?”

갈색 낙엽 사이 아주 작은 초록빛이 보였다. 살며시 낙엽을 들어 올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 올린 낙엽 아래, 초록빛 이파리 두 장을 활짝 펼친 작은 새싹이 눈에 들어왔다.

“와···.”

김서준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했다. 선명한 초록빛이 뿜어대는 생명력이 엄청났다. 모두가 가을인데 마치 이 작은 이파리만 봄을 누리는 거 같았다.

‘이거 설마 예전 그 물푸레나무 새싹인가?’

기묘할 정도로 빠르고 거대하게 자란 그 나무의 싹이라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아버지가 말한 건 이 녀석이 아닐까.

김서준은 그런 짐작과 함께 작지만 강한 그 새싹에 손을 갔다 댔다.

그때였다.

[세계수가 선택받은 이를 반가워합니다.]

[여신 ‘데메테르’의 축복이 내려집니다.]

[플레이어가 전직 조건을 달성했습니다.]

[플레이어가 전직합니다.]

[플레이어는 신이 선택한 농부, 신농(神農)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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