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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노래로-502화 (외전2) (5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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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2 멋진 가수

1999년 6월 2일. 그는 그날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에게 부모님이 되어주었던 누나 박현애의 죽음.

누나 박현애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가수의 꿈을 응원해주었던, 아버지이자 형처럼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었던 매형 강한석의 죽음.

여느 때처럼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던 그에게 찾아온 믿을 수 없는 소식에 그는 그대로 무너져버렸다.

[임무 중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두 사람 다... 순직하였습니다.]

[뭐, 뭐라고요?]

[여기... 유서입니다. 수신인이 박재성씨. 박재성씨로 되어있습니다.]

일가친척이라고는 자신뿐인 누나와 매형. 유서 또한 한 장 뿐이었다. 그의 누나가 쓴 유서.

대한민국 최고 대학의 법대에 입학했을 때 그 누구보다 기뻐했던 누나. 그런 누나에게 자퇴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은 그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그의 누나가 이 모든 자신의 선택을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다.

자신을 위해 살아왔다고 봐도 무방할 누나, 자신 때문에 언제나 희생을 강요받았고 또한 이를 당연하게 생각했던 누나였기에 더더욱.

하지만 그의 누나는 그의 자퇴를 반대했다. 지금껏 본적 없는, 강경하고 격렬한 태도로.

그는 정말 못된 놈이었다. 그런 누나에게, 도리어 자신의 꿈을, 마음을 이해해주지 않는다며 서운함을 토로했고 그대로 독립을 선언해버렸으니까.

[멋진 가수, 내 동생 재성이에게.]

그래서 그는 유서의 첫마디를 보자마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가슴을 옥죄는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누나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일순간 넘어버렸다.

[...... 한창 때 친구들 다 가지고 있다던 MP3 못 사줘서 누나가 미안해...... 못된 말 하면서 반대해서 미안해. 누나는 재성이 네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가면 그걸로 됐어. 누나가 너무 욕심 부려서 미안해...... 재성이 네가 멋진 가수가 되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 앞으로도... 사람들이 네 노래에 신이 나서 기뻐할 수 있도록 더욱 멋진 가수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동생. 사랑해. 누나 동생으로 태어나줘서 고마워. 이번에 귀국하면 같이 제주도로 여행......]

무엇이 자꾸 미안하다는 것인지.

미안해야할 사람은 정작 자신일진데, 유서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누나의 자신에 대한 사과에 그는 스스로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일주일 후에 외교부에서 공식발표가 있습니다. 강한석 요원과 박현애 요원의 죽음은 졸음운전을 한 트럭운전사의 과실로 인한 일개 관광객의 교통사고로 마무리됩니다. 보안규정상 기밀 유지서약서에 사인을 해주셔야합니다. 협조 부탁 으윽!]

[이런 씨발! 지금 장난해! 장난 하냐고 이 새끼야!]

너무나도 덤덤히 그의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을 읊는 이의 멱살을 잡아도 보고,

[특종! 떠오르는 신예 가수 박재성이 강남 모 클럽에서 폭행 시비로 경찰......]

[단독보도! 방송가의 이단아 박재성? 무단으로 스케줄을 펑크......]

정신없이 술에 취해 길바닥에서 쓰러져도 보고 또 애먼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어보기도 하고.

평소 때의 그라면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을 해봤지만 그를 덮친 현실은 꿈이 되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더 적나라하게 그에게 다가왔다.

“지혁아...”

그가 그렇게 현실을 계속해서 외면하는 사이 누군가는 방치되어 있었다. 이를 깨닫는 순간 그는 슬픔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해야만 했다.

“지혁아...?”

밥은 챙겨먹은 것인지.

장례식장에서 마주한 조카의 모습은 덤덤함 그 자체였다. 심지어 눈물조차 없이 그저 멍하니 부모의 사진을 쳐다보는 조카의 모습은 지금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조카가 새벽 녘 텅 빈 장례식장 구석에서, 누군가에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수건으로 입을 막은 채 오열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 순간 그는 그를 둘러싼 현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가 없었다.

[지혁이를 잘 부탁해. 우리 동생. 사랑하는 내 동생. 미안해. 누나가.]

어쩌면 누나가, 아니 매형과 누나 둘 다 자신에게 가장 건네고 싶었을 말. 하지만 고작 유서의 말미에나마 살짝 표현할 수밖에 없었을 바로 그 말. 그 부탁.

그는 그때부터 자신을 쳐다보는 조카의 모습에서 매형을 그리고 조카의 눈동자에서 누나를 그렸다.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이 세상에 남긴 유일한 혈육. 그 후, 그의 삶은 오로지 조카를 위한 삶일 뿐이었다.

연애도 결혼도 그의 관심 밖이었다. 멋진 가수가 되기 위해 그리고 유일한 보호자로서 조카를 지키기 위해 하루, 하루를 살아갈 뿐이었다.

[삼촌처럼 멋있는 가수가 될 거야!]

조카가 자신을 모델로 삼아 멋진 가수가 될 거라는 말에 더욱더 미친 듯이 춤을 췄고 노래를 불렀다. 누나의 말처럼 멋진 가수가 되기 위해, 조카에게 부끄럽지 않은 멋진 가수가 되기 위해서.

[내 머리 하얗게, 눈앞은 까맣게......]

조카의 목소리가 하늘이 내린 재능을 지니고 있음에 감탄하고 감사하며 눈물을 흘렸던 다음날에도 그는 무대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선사했다. 조카가 꿈꿀 수 있는 멋진 가수가 되기 위해서.

[지혁이가 아직 디테일한 부분이 부족하지만 남들이 생각하지 않는 부분에 강해요. 뭐, 재성씨가 더 잘 알겠지만 노래만큼 춤에 아니, 그보다 못해도 지금보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흥미를 가지게 된다면... 정말 대단해질 거라고 자신해요. 뭐, 재성씨도 그렇게 생각하죠?]

[감정을 담는 게 너무 좋아요. 노래할 때부터 알아봤는데, 직접 노래를 만드니까 이게 아예... 후우... 말을 말아요. 말을. 아예 물건이에요. 물건. 근데 진짜 재성씨 조카 맞아요? 생긴 것도 그렇고 성대부터 다른 것 같은데, 솔직히 재성씨 작사, 작곡도 인정하지만 저 나이 때 재성씨도 저 정도는 아니었을 거에요. 맞죠?]

조카가 노래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들에서도 주변 사람들의 극찬을 받을 정도의 재능을 지니고 있음에 우쭐해한 것도 잠시, 그는 계속해서 무대 위를 떠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최고 가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이번에... 학부모 참관... 아, 죄송합니다. 원래 참석 안하신다는 알고는 있지만 혹시나 해서... 죄송합니다. 스케줄 픽스 시키겠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그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질 않았다. 최고의 댄스 가수로서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인정할 정도로 멋진 가수가 되었지만 어느새 그의 옆엔 아무도 없었다.

[지혁이가 조금 힘들어하는 데 가서 같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를 돌이켜 생각해봤을 때는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뒤였다.

[다른 애들이랑 나이차이도 있고... 무엇보다 팀으로서 하나가 되기엔 지혁이가 너무 튑니다. 그래서 이번 데뷔에는...]

그는 조카를 외롭게 하는 것 그리고 조카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것에 무척이나 익숙한 이가 되어있었다. 본인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이번에 TS에서 대형 신인이 데뷔한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1천억 가까운 투자를 받은 만큼 바로 중국 진출을 시도할 것 같고 멤버가 11명에 이르는 만큼...... 아무래도 저희 회사 이번 데뷔 건은 연기하심이... 저희 쪽이 밀린다는 보장은 없지만 굳이 대형 기획사끼리 데뷔가 겹쳤을 때... 그리고 그 경쟁에서 뒤로 밀리면 그 틀을 벗어나기가 무척 어렵다는 거.. 대표님이 가장 잘.....]

[회사 사정상 이번에 중국 자본이...... 스노우도 독립하고 원더우먼도 미국 진출이 실패한 마당에 이대로 가다가는...... 대표님 마음은 잘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쪽 제안이 사실상 나쁜 게 아닙니다. 거액을 투자한 것 치고 이 정도의 요구는 정말 약과라는 거 대표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삶의 이유라고 봐도 무방할 이와 멀어진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점점 고려해야하는 사안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는 그 이유와 점점 멀어져갔다. 살아가는 이유라고 봐도 무방할 이를 위해 했던 모든 노력들이 도리어 그를 그 이유로부터 벗어나게끔 만들었다.

[이번에는 타격이 좀... 큰 것 같은데요? 벌써 일주일 째 레슨에 안 나오는...... 하긴 데뷔만 해도 이번에는 3번째 엎어졌으니...]

[월평에도 안 나왔습니다. 이렇게 되면 연습생들 사이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 수도 있습니다. 얘들이 대표님과 지혁 군 사이를 아직까지 모르고 있어서 덜한 감이 없진 않지만...... 지금쯤은 복귀해야 할 듯 싶은데...]

점점 어긋나기 시작한 조카. 그 시작부터 자신이 직접 다가갔다면 그런 결과는 초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원해지기 시작한 자신과 조카사이의 관계가 그를 머뭇거리게 만들었고 이는 원치 않은 최악의 상황을 그에게 선사했었다.

괜한 대상을 향해 화살을 겨눈다. 그게 그의 머뭇거림이 도출한 선택이었다. 때마침 그에게 들려온 조카의 연애사실이 이를 더욱 부채질했다.

[재연이 네가... 알아서 멀어져 줬으면 좋겠다.]

[요즘... 재연이 너도 성적이 좋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 맞지?]

[내 말은 지혁이 뿐만 아니라, 너도. 너도 지금 위태롭다는 거 알고 있냐는 말이야.]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답지 않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이내 금세 마음을 되잡고 꿈을 향해 질주할 줄 알았던 조카가 더한 방황으로 실망시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그의 생각은 확고했다.

[데뷔 조에 들지 못한 애들 사이에서 형평성 문제가... 이번에 엎어진 보이 그룹 론칭이 지혁이 때문이라는 루머도 돌고 있습니다.]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조카는 누군가를 가슴속 깊이 새겨두고 있었다는 것을, 그의 행동으로 인한 결과는 노골적으로 드러내주었다.

[쨍그랑]

소주병이 가득 놓인 방안. 덥수룩한 머리와 창백한 안색. 뒤룩뒤룩 불어난 몸.

조카는 그 모든 시련들을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는 듯 했었다. 그동안의 좌절이 조카에게 숱한 고통을 선사했다지만, 도리어 조카의 정신력을 키워준 면도 없진 않다는 점을 알았기에 더욱 충격이었다.

그 모든 시련들로부터 단련된 정신력도 이겨내지 못할 정도로 그 아이를 사랑했던 것일까.

아차 싶었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도 보다 분명히 그리고 또렷이 바라볼 수 잇게 되었다. 이미 늦어도 한참 늦은 때가 되어서야.

최악의 상황.

아이러니하게도 조카를 다시금 일으켜 세운 것은 그가 자초한 상황과 음악 그 자체였다.

조카는 자신의 슬픔을 딛고 일어나 화려하게 비상했으며, 그 스스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그의 뇌리 속에 그때의 실수는 점점 사라져만 갔다. 비록 중간, 중간 조카로 인해 마음 쓸 일이 많았을지언정 그때를 떠올릴 일은 없었다. 모든 게 다 잘되어갔다고 그는 생각했었고 또한 믿었었다.

그것이 시한폭탄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지혁아...”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 식음을 전폐한 채, 한 달 조금 넘는 동안 예순 곡이 넘는 곡을 써내려갔을 정도로 음악에 몰두했다는 정황.

그리고 조카의 소식을 듣고 미국으로 날아온 이의, 눈물을 멈추지 못해 실신하다시피 한 끝에 결국 나란히 병실에 드러누워 버린 이의 입에서 듣게 된 충격적인 사실.

그때의 실수가, 그때 자신이 했던 행동이 지금의 결과를 자아냈다는 점에 그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누나와 매형이 교통사고로 떠난 이래, 그는 조카를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그 최선이라는 것이 조카를 이다지도 힘들게 했다는 점이 그의 가슴을 슬픔으로 미어지게끔 만들었다.

“지혁아...”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차라리 자신을 마음껏 원망이라도 했다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어긋나기 시작한 조카의 모습.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 수척해진 조카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때의 행동이 뼈저리게 후회되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누나... 내가...”

오늘따라 먼저 떠나보낸 이들이 유난히도 보고 싶었다. 그들이 지금의 자신에게 혼이라도 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그의 머리를 감싸 돌았다.

멋진 가수.

멋진 가수가 되기 위해서, 하나 뿐인 조카를 위해 달려왔던 지난 삶이 가을을 맞아 일순간 시들어버린 꽃잎이 되어버린 듯 했다.

마치 그의 눈앞에서 미동조차하지 않는 조카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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