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7 2020 =========================================================================
#497
[재연 언니 때문이죠? 지연 언니랑 오빠 사귀는 것 때문에.]
김다인의 추측은 내가 봐도 ‘합리적’이었다.
[재연 언니가 헤어지자고 말했던 거, 자의가 아니어서 그런 거에요?]
[내가 자꾸 언급해줬잖아요. 재연 언니 정작 이별 통보는 자기가 해놓고선 왜 자꾸 이별 통보를 받은 건 자기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고요.]
그녀 스스로가 나와 관련된 문제에 굉장한 관심을 가지고, 이에 대해서 심도 깊은 추측을 계속해왔다는 점을 고려해도 그녀의 능력은 대단했다.
[오빠 데뷔하고 나서 알았죠. 그때 PD님 신곡 오빠가 작사, 작곡? 그거 했을 때 언론에서 떠들썩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때 데뷔 앞두고 있었을 때였나? 아니, 데뷔했을 때였나? 어쨌든 그때 알았어요.]
그녀의 말마따나 연습생들은 나와 삼촌의 관계를 몰랐다. 그때의 삼촌은 맺고 끊음이 칼 같은, 조카라고 해서 봐준다거나 더한 편의를 제공한다거나와 같은 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아마 내가 그때 삼촌과의 관계를 연습생들 사이에서 떠벌리고 다녔다면 즉시 방출이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나 스스로도 이는 꺼내선 안 될 금기로 존재했다. 따라서 연습생들이 알 리가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짧게는 분기마다 대대적인 물갈이가 진행되는 연습생 사회의 특색을 고려한다면 더더욱.
어쨌든 내가 위화감을 느낀 것은 그 부분이 아니었다.
연습생들끼리 가지고 있는 암묵적인 룰은 생각이상의 구속력을 지닌 것이었다. 따라서 삼촌이 나와 유재연의 연애 사실을 미리 알아챘을 가능성은 과감히 제외시켰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유지연이 삼촌에게 나와 유재연의 사이를 알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다인 또한 마찬가지의 추측을 내놓았고.
그런데 그게 아닌 듯 했기에 위화감을 느꼈고 그것이 지금에 와서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PD님이 재연 언니한테 헤어지라고 했던 거에요? 설마? 우와... 완전 드라마잖아? 이거.]
[그치만 PD님이 어떻게? 연습생들끼리는 그런 거 무조건 숨겨주지... 에? 설마? 지연 언니? 맙소사!]
유지연의 행동이 삼촌의 행동을 유발했고 이것이 유재연의 이별통보에 지대한 역할을 미쳤다. 유지연은 그 행동의 시발점이자 그 행동이 이뤄질 수 있게끔 옆에서 보조를 해줬던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게 바로 내가 종전에 가지고 있었던 이번 사건의 개요판단이었다.
그런데 유지연의 진술과 그 판단 사이에는 어긋남이 존재했다.
[대표님이 불러서 가게 됐어. 재연이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고 하셔서.]
대표님 즉, 삼촌에게 불려갔다? 사건의 첫 시발점부터 어긋났다. 위화감은 나의 이중적인 속마음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이 어긋남 때문에 느껴진 것이었다.
[나도 데뷔하고 바쁠 때라서 재연이한테 신경을 많이 못 써줬어. 그때쯤에 엄마도 아빠 계시는 곳으로 가셔서 재연이를 신경 써줄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무슨 일이 있다길래 너무 놀라서... 스케줄 조정 겨우 해서 찾아갔었어. JS에.]
[재연이가 성적이 좋지 않다고... 월말평가에서 자꾸만... 그런데 그게 너 때문인 것 같다고. 너도 성적이 떨어지고 데뷔 조에서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고 그러시더라고. 그... 대표님이.]
[자기가 알아서 잘 설명했으니까, 옆에서 그 결정에 망설임 없도록... 도와달라고 하셨어. 대표님이.]
그녀가 내게 털어놓았던 그날의 자초지종은, 삼촌의 행동이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앞선 판단과 차원이 다른 전개로 유지연의 이별통보가 진행되었다는 점을 의미했다. 다른 말로 이는 그녀가 결정된 사안에 그저 보조해주는 역할만을 전담했다는 뜻이다.
[거절할 수가 없었어. 동생이... 잘못되는 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동생 잘 돌봐주기로 엄마, 아빠랑 약속했었는데, 나...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재연이한테 신경을 못써줬었으니까.]
무게감 자체가 달랐다. 전자와 후자에 있어서 각각이 지닌 책임의 차이가. 특히 유지연이.
무엇이 맞는 말이고 무엇이 틀린 말인지 판단이 안 섰다.
후자에 나의 마음이 쏠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유지연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싶은 게 솔직한 나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후자가 성립하려면 먼저 해결되어야 할 것이 있었다.
삼촌이 누군가로부터 나와 유재연의 열애 사실을 들었는지에 대한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다.
삼촌 스스로가 연습생들의 열애 사실을 알 가능성은 없다고 자부했다. 10년 동안 내가 지켜봐왔던 수많은 열애들은 단 한 번도 연습생 사회를 벗어나지 않았었으니까. 뭐, 관리자 입장에서는 연애로 인한 실력 하락, 연습 소홀 등을 이유로 해당 연습생 스스로가 알아서 떨어져나갈 것이기에 굳이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어쨌든 삼촌에게 나와 유재연의 열애사실을 알려줄 만한 사람이 있어야 유지연의 말이 신빙성을 얻게 되는 것인 만큼 나의 머리는 맹렬히 그럴 만한 사람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나와 유재연 사이를 아는 사람. 나와 유재연 사이로 인해 직, 간접적으로 피해를 입었을 확률이 높은 사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나와 유재연의 열애 사실은 연습생들 사이에서 꽤나 공공연한 사실이었기에 대상자 자체가 많았기도 하거니와, 열애 사실을 연습생 사회 밖으로 그것도 대표님에게 직접 알려줄 정도로 나와 유재연으로부터 피해를 받은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확신 아닌 확신이 있었기에 더더욱.
열애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그 대상자들을 뛰어넘고 데뷔를 할 가능성이 높아질 진데, 그럴 일을 할 사람이 도대체가...
머리가 아팠다. 좀처럼 떠오르지 않은 대상자로 인해서. 후우.
*
“멤버수가 적으면 각자 파트도 많아지고 그래서 사람들한테 어필할 시간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돼서 쏟아지니까, 행실을 조심히 해야 돼요. 별 거 아닌 일이, 억울한 일이 언론을 타면 순식간에 과장되어버리고 한번 손상된 이미지는 특히 아이돌에게 엄청 큰 타격이니까.”
최고의 걸 그룹으로 자리매김했던 트렌디의 리더 지수의 말은 후배 아이돌 그룹에게는 무척이나 큰 조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걸 그룹 레전드의 계보를 당당히 이었던 트렌디 인만큼 프리티 걸즈 멤버들은 그녀의 말 하나, 하나를 고스란히 담아가기 위해 노력했다.
원더우먼, 여성시대, 트렌디로 이어지는 걸 그룹 레전드 계보가 아직까지 그 후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만큼 이 자리를 꿈꾸는 것은 후배 걸그룹으로서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고 또한 당연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정규 앨범을 낸다고요?”
“네. 10곡 정도로 해서 정규 앨범 낼 테니까, 준비 열심히 하라고 그러셨어요. 기획실장님이.”
“언니, 대박이지? 아! 그리고 이번에 우리 자작곡도 하나 들어간다? 공동이긴 해도 채연 언니가 작곡에 참가했고 지영 언니가 작사에 참가했으니까. 거기다 나랑 새연 언니는 안무도 만들었어. 뭐, 아직 그게 타이틀곡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진짜라니까, 체이언니?”
이제 첫 정규 앨범을 내는 신인 걸 그룹이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거기다 안무까지 직접 만들어 낸 곡을 앨범에 수록한다? 이는 간단한 내용이 아니었다. 트렌디 조차도 해본 적이 없는, 이제야 지수가 겨우 솔로 곡으로 도전하고 있는 사안을 신인 걸 그룹인 프리티 걸즈는 벌써부터 실천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대단하네. 우리는 이제야 해보는 걸.”
그래서인지 체이와 지수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익숙한 이름으로 인해 그들은 저마다 다른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게 됐다.
“그... 지혁 오빠가 앞으로 아이돌 그룹은 자기들이 작곡, 작사, 안무에 직접 참가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이 돼야한다고 해서... 우리들 전부 작곡이랑 작사, 안무 레슨 받고 있거든.”
“지혁 오빠?”
“응. 체이 언니. 지혁 오빠가 우리한테 그렇게 해야 한다고 열심히 하라고 했어.”
민지의 이어진 말에 체이가 지혁 오빠라고 반문한 것과
“오빠...?”
“아...”
지수가 오빠라고 반문한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오빠가 용서해줬어. 그래서 다시 오빠 동생으로...”
앞선 오빠라는 반문과 더불어 민지의 입에서 흘러나온 용서라는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단 세 사람뿐이었다. 체이가 자신과 지수가 얽힌 일화에 대해서 알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민지로서는, 그녀 자신과 지수만이 이 얘기를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테지만.
어쨌든 알 수 없는 기류가 깔려버린 탓에, 연습실 분위기는 순간 가라앉고 말았다.
이를 당사자들 가운데 한명인 주민지가 눈치 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과 지수가 엮여있는 일화를 더 이상 수면 위로 떠오르게끔 하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리려 했다.
“언니 이번에 언니가 단독으로 작사, 작곡한 곡. 여기서 들려주면 안 돼?”
“어, 어?”
“여기 피아노도 있고 솔로곡이라며. 그러니까, 들려줘!”
이는 지수를 무척이나 당혹스럽게 만들었지만, 의외로 꽤나 큰 호응을 얻었다.
“들려줘! 들려줘!”
당장에 같은 그룹 멤버인 체이부터가 지수의 팔을 붙잡으며 떼를 쓰기 시작했고
“듣고 싶어요. 선배님.”
“선배님 듣고 싶어요.”
“저도...”
가만히 지켜보던 프리티 걸즈 멤버들도 이에 동참하기 시작했으니까.
이에 난감해하던 지수로서는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에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휘이이익!”
“와아아아!”
“김지수! 김지수!”
연습실 한 편에 마련된 피아노로 향하는 지수의 행동에서, 자신들의 의도가 관철되었다는 점을 알아챈 나머지 일행의 환호소리가 연습실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이내 피아노 선율과 지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직전까지 계속해서.
“나도 알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내 말 끝까지 들어요. 나도 이제 여자란 말이야.”
서정적인 멜로디와 함께 어우러지는 지수의 목소리는 이 곡이 어째서 트렌디의 앨범에 수록될 수 있었는지를 분명히 증명했다.
“이렇게 같이 있는 게 뭐가 그리 힘든 일이라고. 그러면서 그 여자는 왜 만나요. 혼자라면서, 여자 친구 없다면서.”
무엇보다도 이 노래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가사의 진실성이 확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가사 내용 자체도 좋았지만, 그 가사를 풀어 자신의 감정을 듬뿍 담아내는 지수의 목소리는 아이 돌로서의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 오로지 뮤지션만이 지닐 수 있는 그런 종류의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오빠한테 나는 아직 동생일 뿐이죠. 왜 나는 아직까지 동생이죠. 나도 잘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나를 동생으로 봐요. 내가 아직도 초등학생으로 보이나요. 나 진심이에요. 나도 이제 여자란 말이야.”
모두들 지수의 자작곡에 흠뻑 빠진 듯, 그녀의 감정에 젖어들어 있었다. 복잡한 심사를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주민지 그녀를 제외하고서.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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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플
제이툰 크 일하면서 쉬는시간마다 정주행 드뎌 다보다니 ㅎㅎㅎ 그런데 ㅠㅠ 공지사항을 왜이제본겨 ㅠ 토 일 도 올라오는지알았는데 평일에만올라오는거였다니 (2017.09.10 01:33)삭제
- 주 7일, 1일 1회 연재 총 7회 연재로 바뀌었습니다.(8월11일부터)
Dlos 무슨일이 있으신가요 이틀씩이나...? (2017.09.10 00:37)삭제
-- 주 7일, 1일 1회 연재 총 7회 연재로 바뀌었습니다.(8월11일부터)
암천회류 잘보고갑니다 (2017.09.08 10:12)삭제
- 감사합니다.
멜론쥬스 지연 쪽으로 굳어지는듯한? (2017.09.08 09:48)삭제
- 흐음?
사랑은바로 인생은 갓지혁처럼 (2017.09.08 06:42)삭제
- 갓멘..
리수진 잘읽고가여~ (2017.09.08 04:20)삭제
-감사합니다. 사신 카이스님.
빛켠 인생은 갓지혁처럼 (2017.09.08 02:36)삭제
-갓멘!
하하하오라 잘보고 갑니다 (2017.09.08 01:01)삭제
-감사합니다. 하하하오라님.
col0r 인생은 갓지혁처럼 (2017.09.08 00:24)삭제
-컬러님 오랜만이시네요. 갓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