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95화 (495/502)

00495  2020  =========================================================================

#495

[사망자 1458명, 중상자 3409명, 경상자 12930명에 이르는 피해자들을 자아낸 이번 베를린 폭탄 테러 사건에...... 난민들을 대상으로 한 보복범죄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적극적인 난민 수용 정책을 펼쳤던 독일 마이켈 총리가 곤혹스러움을......]

사망자만 해도 1458명. 부상자만 해도 16339명.

독일 역사뿐만 아니라, 근 수십 년간 발생했던 세계의 수많은 테러들 가운데 전체 피해자규모로는 가장 피해가 컸던 테러사건이 바로 이번 베를린 테러 사건이었다.

그 유명한 9. 11 테러 사건도 사망자가 2977명으로 더 많다 뿐이지, 부상자들은 겨우 6291명으로 이번 베를린 테러 사건의 절반도 되지 않은 피해를 자아냈으니 오죽할까.

따라서 그 직접적인 피해수치만큼이나 후속파장이 큰 것은 당연했다.

[베를린 최고의 번화가이자, 세계 3대 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베를린 영화제가 매년 개최되던 포츠담 광장 소니 센터 붕괴! 이번 영화제는......]

[확고한 지지층을 바탕으로 3번 연속 연임에 성공했던 독일 마이켈 총리! 급락하는 지지율...... 난민으로 부담하고 있는 경제적 비용이 엄청난 상태에서 이 같은 테러까지......]

[유럽에서 유일하게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던 독일이 이번 폭탄 테러 사건으로 인해 다른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의 정책으로 우회할 것이라는......]

애먼 난민들이 보복범죄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둘째치고서라도 확고한 지지율로 또다시 연임에 성공할 것이라 여겨졌던 마이켈 총리의 정치적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는 독일의 난민수용정책의 큰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점은 단순히 이를 독일 국내 문제로 치부할 수 없게끔 만들기에 충분한 내용은 담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들려온 어느 한 소식은 우습게도 이 모든 상황을 180도 전환하게끔 만드는 놀라운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유로잿팟이 드디어 당첨자를 맞이하다! 지난 50주 동안 당첨자가 나타나지 않았던 유로잿팟이 51주차에......]

유로잿팟은 근 10개월 동안 수많은 유럽인들 그리고 세계인들을 광분케 만들었던 복권인 만큼, 당첨자 탄생의 소식은 그리 간과할 수 없는 소식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역사상 최악의 테러로 인해 수많은 피해를 입은 독일에서만큼은 이 같은 소식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내 그 당첨자가 내보인 행보로 인해 독일 국내는 이내 그 어떤 국가들보다 뜨거운 관심을 유로잿팟에 내보이기 시작했다.

[화제의 유로잿팟 당첨자! 가수이자 배우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한국인 강지혁으로 드러나!]

그 화제의 당첨자가 독일인이 무척이나 좋아하는 한국인 강지혁이라는 점 때문이 아니었다.

[당첨금 모두를 이번 독일 베를린 테러 사건의 피해자들을 위해 써 달라! 믿을 수 없는 말을 남긴 채 떠난 강지혁!]

독일인들뿐만 아니라 해당 기사를 접한 모든 사람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강지혁이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그런 행동을, 그것도 즉석에서 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니까.

[당첨금액 23억 3693만 8493 유로에 세금을 제한 최종 당첨금액은 17억 5270만 유로! 이미 4천만 유로에 가까운 돈을 기부했던 강지혁이 또다시 엄청난 거액을...... 마이켈 총리를 믿고 기부하는 것 인만큼 이번 테러 희생자들을 위해 사용되었으면 좋겠다......]

[한국의 천사가 모든 당첨금을 기부하게끔 만든 마이켈 총리와의 약속은 과연 무엇? 관련 배경에 관심이 쏠린 가운데 강지혁은 현재 한국으로 귀국 중인 것으로......]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기부를 하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그들 중 소수는 수억 원이 넘는 기부액을 자랑했고 또 그들 중 극소수는 수조 원이 넘는 액수를 기부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가진 것들 가운데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거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에 한한 결과에 불과했다.

그 어떤 사람도 아무런 대가없이 자신이 얻은 조가 넘는 액수를 단번에 그리고 즉석에서 기부하겠다고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액수가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재산의 2배가 넘을 정도로 대단한 금액이었다면 더더욱.

[마이켈 총리를 믿고 피해자들을 위해 모두 써달라며 자신의 당첨금을 기부한...... 이 같은 소식에 독일 베를린 주와 연방 의회는 놀라움과 찬사를...... 당첨금의 사용을 위임받은 것으로 간주된 독일 연방 정부의 수반 마이켈 총리는 강지혁에게 놀라움과 고마움, 찬사 등을 보냄과 동시에, 이번 기부금은 국적 상관없이 사망자들의 위로금과 피해자들의 치료를 위해 최우선적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발표를......]

그래서 사람들은 갑작스레 들려온 이 같은 소식에 놀라워했고 또한 경이로워했다. 정작 그 소식의 주인공인 이는 비행기 안에서 또 다른 문제들로 인해 머리를 싸매고 있었지만.

*

[강지혁 정말로 갓지혁이 되다! 독일인들과 유럽인들을 감동시킨 강지혁의 선행이...... 2조가 넘는 돈을 기부한 강지혁의 선행에 사회각계계층의 기부 손길이 이어져...... 인생은 갓지혁처럼! 유행어처럼 퍼지기 시작한......]

뉴스를 통해서 살펴본, 한남동 저택의 둘레담장이 한국 및 외국 기자들로 인해 빙 둘러싸일 정도였기에 내 행동의 파장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서울에 내리자마자 헬기를 통해 바로 한남동 저택으로 가지 않고 잠실 타워로 이동한 것이 신의 한수가 된 듯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내 속내가 가뿐하다거나 후련한 것은 아니었다.

모든 당첨금을 기부하겠다고 나선 순간부터 채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아니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자마자 다시금 나를 찾아온 복잡한 심사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히고 있었으니까.

“밥은.”

눈앞에서 마주하게 된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초췌해져 있었다.

마음이 아팠다. 모든 자초지종을 들어볼 것이라는 당초 결심이 무뎌질 정도로.

고개를 가로젓는 그녀를 보면서, 고작해야 입술을 살짝 깨무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어색했다.

무슨 말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까 싶었는데, 결국엔 그 첫마디가 ‘밥은’ 이라는 점에서 한심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이 도화선이 된 것인지, 아니면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다는 마음이 커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시금 입을 여는 게 힘들지가 않았다.

“다... 설명해줬으면 좋겠어. 어떻게 된 일인지. 내가 오해할 만한 사안이 있는지.”

슬프게도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 떠나기 싫었다. 내 옆에 두고 싶었다. 하지만 모든 상황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비슷한 의지가 너무나도 강했다.

모든 것을 알아야, 내가 감내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만 했다. 그래야 그녀에 대한 마음을 비로소 다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대표님이 불러서 가게 됐어. 재연이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고 하셔서.”

메말라버린 목소리. 도대체 뭘 먹기는 한 건지. 위화감마저 느껴지는, 그녀답지 않은 목소리에 마음이 아팠지만 그녀가 하나, 둘 털어놓기 시작하는 말들에만 집중하려 애썼다.

“나도 데뷔하고 바쁠 때라서 재연이한테 신경을 많이 못 써줬어. 그때쯤에 엄마도 아빠 계시는 곳으로 가셔서 재연이를 신경 써줄 사람이 없었어. 그래서... 무슨 일이 있다길래 너무 놀라서... 스케줄 조정 겨우 해서 찾아갔었어. JS에.”

유재연이 유지연을 부모님처럼 여긴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유재연으로부터 유지연의 소개를 받았을 때 무척이나 긴장했던 것이었으니까.

생각해보면 이는 유지연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부모님 모두가 일로 인해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은 만큼 그녀 스스로가 유재연에 대한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재연으로부터 언니가 엄하다느니, 언니가 하지 말라는 게 많다느니 와 같은 말을 꽤나 자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랬던 것일까. 나와 유재연의 사이를 그렇게 만든 것이.

“재연이가 성적이 좋지 않다고... 월말평가에서 자꾸만... 그런데 그게 너 때문인 것 같다고. 너도 성적이 떨어지고 데뷔 조에서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고 그러시더라고. 그... 대표님이.”

이해되는 내가 싫었지만 이해가 되었다. 그녀 입장이.

뭔가 묘한 위화감이 들었지만, 이별에 대한 귀책사유가 유지연 그녀에게 있음에도 그녀가 이해되는 내 자신의 이율배반적인 감정들이 그만큼 강렬하다는 반증으로 여겼다.

“자기가 알아서 잘 설명했으니까, 옆에서 그 결정에 망설임 없도록... 도와달라고 하셨어. 대표님이.”

“하아...”

“거절할 수가 없었어. 동생이... 잘못되는 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동생 잘 돌봐주기로 엄마, 아빠랑 약속했었는데, 나...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재연이한테 신경을 못써줬었으니까.”

한숨이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이를 받아들여야 할지.

그녀를 사랑하기에, 떠날 수 없을 것 같기에 더더욱 머리가 아파왔다. 이내 내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만 그녀를 결국 껴안아 주는 내 자신이 이해가 되면서도 이해가 안 됐다.

하아.

*

“언니?”

갑작스럽게 자신을 찾아온 익숙한 얼굴에 컴백 곡을 연습하던 주민지의 춤사위가 일순간 멈춰버렸다.

“에?”

“무슨 일이야? 민지야.”

그 덕에 같이 안무를 맞춰보던 다른 멤버들의 동작 또한 이내 멈춰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민지의 행동에 의아함을 드러내는 것도 잠시, 이내 민지의 시선을 뒤따라가던 그녀들은 곧이어 재빨리 입구 쪽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어?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선배님.”

“안녕하세요.”

그녀들의 직속 선배라고 할 수 있는 TRENDY.

가요계 최정상의 자리에 군림했던 걸 그룹으로서 같은 소속사의 아이돌이기에 더더욱 가깝고도 또 멀 수밖에 없는 존재가 바로 TRENDY였다. 따라서 다소 경직된 그녀들의 반응은 당연했다. 이내 말을 놓으라는 체이의 말에 계속해서 머뭇거리는 것도 당연했고.

“편하게 하셔도 돼요. 제가 나이도 어린데.”

“그렇지만...”

“그치만...”

“에이. 괜찮아요. 저 지영이랑 동갑인 걸로 알고 있어요. 지영이가 빠른 년생으로 저랑......”

나이가 어리지만 거의 7년 넘는 대선배이고 또 같은 소속사 직계 선배이기에 그녀들은 말을 놓으라는 체이의 말에 좀처럼 동조하지 못했다.

결국 체이는 그녀들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민지가 차차 말을 놓자는 식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나머지 프리티 걸즈 멤버들의 태도는 확고했던 것이다.

그 덕에 분위기가 약간은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이야? 언니?”

다행인 것은, 그런 상황 속에서 체이와 같이 연습생 생활을 했던 민지가 여지없이 자신의 분위기 메이커 기질을 드러냈다는 점이었다.

“응?”

물론 민지 그녀가 오로지 분위기를 띄워보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언니 대만에서 엄청 활동하고 있잖아. 저번에 음악 프로 MC도 새로 맡았다며?”

아이 돌로서 7년차 이상의 시기는 그룹 활동 보다는 개인 활동에 집중할 때임을 모르지 않았고 이에 체이가 대만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 또한 모르지 않았기에 민지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이번에 한국에서 하고 싶은 드라마 대본이 들어와서. 그리고... 하반기쯤에 우리도 컴백하기로 해서 그 전에 언니들 얼굴 좀 볼까하고 왔어.”

“아! 그렇구나!”

나이대도 비슷하고 연습생 생활 당시, 혼혈인 그녀와 외국인인 체이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덕에 꽤나 친하게 지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들의 대화는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어때 할 만해?”

“당연하지! 솔직히 조금 힘들긴 한데, 그래도 훨씬 좋아! 그치 언니들?”

“으, 응? 응. 당연하지.”

그리고 그 분위기 덕에 경직되어 있던 다른 프리티 걸즈 멤버들의 얼굴 또한 차츰 편안함을 되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오늘 회사에 온 건 나보러 온 거?”

“아까 말했잖아. 언니들 보러 온 거야.”

“치, 뭐야.”

“뭐, 겸사겸사 너도 볼,”

“와... 겸사겸사? 이젠 그런 말도 써? 진짜 한국인 다 됐네.”

그렇게 한참동안 그녀들은 대화를 나누었다. 체이가 조금은 편해진 것인지 나머지 멤버들 또한 걸 그룹 선배인 체이에게 궁금한 점들을 하나, 둘 묻기 시작했고 이는 그녀들의 어색했던 분위기를 상당부분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슬슬 가봐야겠다. 언니랑 로비에서 보기로,”

“어? 체이야? 로비에서 보기로 해놓고 여기에 있었어?”

하지만 때마침 등장한 또 다른 대선배로 인해 연습실은 또다시 어색함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런 분위기를 인지한 민지의 입에서는 한숨이 터져 나왔고.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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