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8 2020 =========================================================================
#488
중국.
13억이 넘는 인구를 자랑하는 나라이다.
많은 인구와 넓은 영토 그리고 가까운 지리적 위치 덕에 한국의 수많은 연예인들이 일본의 뒤를 이어 주도적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음악 시장이기도 하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로 활동에 장애가 생기는 경우가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다면 중국이 한국 연예인들이 활동하기에는 무척이나 좋은 지역임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국 또한 아시아 지역에서 가히 신과 같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강지혁에게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곳이었다.
[강지혁 앨범들과 포토카드, 화보집들을 모두 모으기 위해 수십억을 쓴 중국의 한 갑부가......]
[중국인들이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곳 톱 5를 뽑았는데, 그 중 1위가 강지혁의 한남동 저택? 중국인 1만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설문조사에서, 중국인들의 43.5%가 한국에 갔을 시 강지혁의 한남동 저택을 꼭 가봐야 한다는 응답을 해 중국 당국은 물론이고 한국에서조차 큰 화제가 되고 있다...... 1위 강지혁 한남동 저택(43.5%), 2위 제주도(14.3%), 3위 고양시 한류월드(10.9%)......]
[강지혁이 오기만 한다면 백만금을 줘도 아깝지 않다! 원하는 금액이 있으면 말만하면......]
[강지혁의 초호화 저택인 한남동 저택 주변이 강남과 성북구 등을 뛰어넘는 부촌으로...... 강지혁의 저택을 중심으로 중국인들의 집중적인 토지 매입이 이뤄져, 해당 지역은 할리우드 비버리힐스를 연상케 할 정도로......]
흔히들 ‘대륙의 스케일’이라고 불리는 중국인들의 팬 활동은 한국뿐만 아닌 다른 나라 팬들에게조차도 무척이나 잘 알려져 있을 정도로 화제가 되곤 했다. 그리고 이 같은 활동 가운데 강지혁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의 행보가 가장 독보적이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 지혁 오빠는 도대체 왜 우리나라는 안 오는 거?
- 우리가 앨범 판매량은 딸려도 스트리밍 수익은 1위인 걸로 아는데... 조금 섭섭하네.
- 스트리밍 뿐만 아님. 미스터 지 1편도 우리가 전 세계 흥행 2위임. 미국 놈들이랑 근소한 차이로.
- 아 짜증나네. 이번에도 대만에 가네. 아 짜증.
팬들의 서운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인구가 많은 만큼, 타국에 비해 훨씬 많은 팬 카페 회원들이 존재하고 있을 진데 강지혁은 지금껏 중국 팬들과의 소통에 관심이 없는 듯한 행보를 내보였으니까.
그러나 대략 10일 전 발생한 사태로 인해 중국 팬들의 이 같은 마음은 일대의 전환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강지혁의 미스터 지 한국 프로모션 행사가 생중계되었다. 중국을 위한 프로모션 행사가 기획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강지혁의 팬을 자처하는 수많은 중국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을 수밖에 없었다.
[강지혁이 중국에 오지 않은 이유!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오지 못한 것이었다! 가족뿐만 아니라 지난 100년간 집안의 남자란 남자들은 모조리 중국에서 사망! 항일운동가 집안의......]
그리고 이는 이내 벌어진 대참사를 중국 국민들 스스로가 목격하게 만든 원인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기자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중화통신 왕자평! 국가의 수치! 부모의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왕자평으로 인해......]
자가당착(自家撞着). 자기(自己)의 언행(言行)이 전후(前後) 모순(矛盾)되어 일치(一致)하지 않음.
전형적인 자가당착의 모습에 빠져버린 기자가 자국 출신의 기자라는 점에서 중국인들은 끝없는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처음 해당 기자가 대만을 언급함과 동시에 중국 내 프로모션 행사의 부재를 입 밖으로 꺼냈을 때 수많은 중국 시청자들은 내심 환호하고 있었다.
이 같은 기자의 발언은 그들 자신이 그동안 수없이 느껴왔던 서운함과 섭섭함을 풀어줄 만한 내용을 담고 있었고 또한 그들이 좋아하는 강지혁이 대만이 아닌 자신들의 편을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 또한 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중화통신 왕자평으로 인해 강지혁이 의식을 찾지 못하다! 그동안 쌓아왔던 정신적 트라우마를 자극한 일개 기자의 무례함이 하늘이 내린 천재를 의식불명의 상태로 만들다!]
그러나 상황은 그들이 원하는 답변도, 그들이 원하지 않던 답변도 선택하질 않았다.
누구의 편을 든 것인지 모를 애매한 답변. 문맥상으로 보면 대만의 편을, 말 자체를 살펴보면 중국의 편을 들어줬다는 점은 이내 보도되기 시작한 기사에 의해 모조리 논외사항이 되고 말았다.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상황.
[베이징에 본사를 둔 중화통신의 본사에 40만 명에 가까운 시민들이 모여 시위를! 천안문 사태 이후 처음으로 발생한 대규모 시위에 중국 정부는 공안을 급히 현장으로......]
공산국가인 중국에서 대규모의 시위가 그것도 40만 명이라는 숫자가 기사가 보도된 당일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벌어졌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상황임이 분명했다.
[일부 강지혁의 열혈 팬이 베이징에 위치한 중화통신 왕자평 기자의 집을 방화하여 현재 공안에게 체포된......]
더욱이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범에 대해서도 대중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는지라 상황은 점점 악화되어만 갔다.
[강지혁이 의식을 잃은 지 벌써 10일째! 시위대의 규모는 150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이들 모두가 지난해 일본에서 있었던...... 강지혁의 앨범 또는 화보집을 들며 중화통신 본사 앞에서...... 200만 명에 달하던 시위대를 무참히 진압하던 과거 천안문 사태 때와는 달리 중국 공산당은 아직까지 군대의 투입을 머뭇거리고 있으며 베이징과 인근 시들로부터 소집된 공안 경찰들이...... 전 세계가 이번 베이징 시위에 주목하여 대규모 특파원을......]
강지혁이 정신을 잃은 것으로 알려진 날 6월 2일. 그 날로부터 10일째가 되는 날이 되자, 베이징은 150만 명이라는 숫자로 성장해버린 시위대의 규모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공안 당국의 관리 하에 보호되고 있던 왕자평이, 담당 경찰들 가운데 한명에게 갑작스런 구타를...... 밝혀진 바에 따르면 왕자평을 구타하여 전치 16주에 달하는 중상을 입힌 경찰은 강지혁의 열혈 팬으로 알려진......]
심지어 이번 사태의 주범인 왕자평이 공안경찰에게 습격을 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는지라, 중국 당국의 고심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정치적인 주장을 하기 위해 벌어진 시위였다면 이다지도 고심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일개 가수의 안위와 관련된 문제 때문에 벌어진 시위였고 전 세계의 이목은 올림픽 때를 방불케 할 정도로 집중된 상태였다,
따라서 중국 당국은 고작해야 관련 사실에 대한 정보접근 제한과 같은 의미 없는 방안만 강구한 채 늘어나는 시위대의 숫자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 듣기로는 중국 주석 부인이랑 딸이 강지혁 완전 팬이라서 지원핑이 군대 투입 못하게 막고 있다는 루머도 있음.
- 아니, 와... 일본도 그렇고 중국도... 진짜 뭐냐? 실화냐? 무슨 강지혁 하나 가지고 심심하면 백만 명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지니 원...
- 예전에 손중근이 후손들은 강지혁이랑 같은 시대에 사는 우리들을 굉장한 행운아라고 여길 거라고 했었을 때 솔직히 존나 오버라고 생각했었는데... 와... 지렸네. 이거 역사책 아니 세계사에 나올 만한 그런 사건 아니냐?
백만 명이 넘는 인원으로 구성된, 그것도 굉장한 행동력을 보이고 있는 시위대였기에 중국정부가 군대를 투입하게 될 시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이는 자칫 잘못하면 참혹했던 천안문 사태가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했다.
따라서 한국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나라들이 중국의 이번 사태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중국의 상황은 각국의 메인 뉴스로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보도되는 단골 뉴스가 된 지 오래였다.
그렇게 강지혁 그가 쓰러진 지 10일 째 되는 날은 폭풍전야와도 같은 분위기를 가득 내뿜으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는 13일 째가 되는 날 어느덧 240만 명으로 불어난 베이징 시위대에 40만 명의 새로운 중국인들로 이뤄진 시위가 상해에서도 벌어지게 되면서 또다시 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베이징의 40만 시위대가 240만 명으로 불어날 때까지 걸린 시간 단 13일. 이제는 중국의 또 다른 대도시 상해에서 이 같은 전철을 그대로 밟아갈 것이 너무나도 자명했던 바, 세계의 모든 언론들은 중국이 이제는 군대의 투입하는 데 있어서 더 이상 망설임을 내보이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그러나 이 같은 언론들의 반응은 명백히 섣부른 판단의 결과일 뿐이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일어났던 상식 밖의 사태처럼, 전 세계는 전혀 뜻밖의 사태들을 마주하게 되었고. 상황은 또다시 급변하게 되었다.
*
“하늘은 편해?”
아빠 무릎에 앉아서 바라보는 부모님의 얼굴은 무척이나 강렬한 기분을 선사했다. 포근함은 둘째치더라도 그동안 잊고 살았던, 아니 삼촌을 비롯한 가족들로부터 충분히 느끼고 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보다 짙고 깊게 느껴져 좀처럼 부모님에게서 시선을 떼고 싶지 않을 정도였다.
“삼촌이랑 그리고 작은 엄마가 너무 잘해줘서... 그래서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래도 엄마랑 아빠랑 다 같이 있는 것보다는 못하네. 치... 이거 작은 엄마랑 삼촌이 알면 엄청 서운하겠다. 그치? 아, 몰라.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그동안 못 부린 투정과 어리광을 실컷 부려보겠다는 듯한 나의 행동에 엄마, 아빠는 마냥 밝은 얼굴로 나를 바라봐주었다. 하지만 겉모습이 어려지고 부모님 앞에서 어리광을 부린다고 해서, 부모님의 겉모습에 취해 눈빛 속에 담긴 일련의 걱정들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자꾸만 등 뒤를 쳐다 보는 것 같은 엄마, 아빠의 시선을 따라 나 또한 이상하게 보였던 부분을 다시금 눈여겨보게 됐다.
흐음.
흐릿한 형체들은 꽤나 많이 줄어들어있었고 회색의 공간들은 어느새 저택을 모두 집어삼킨 오래였다.
저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신기하게도 나는 알고 있었다. 구체적인 것은 아니었다. 단지, 회색이 아닌 공간이 나와 부모님간의 단란한 시간을 허락해주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네 이놈들! 절대로...... 손자......”
“안 된다!”
무서웠다. 순간 회색지역에서 들려오는 알 수 없는 고함들에 절로 몸이 움츠려들었다. 흐릿한 형체들이 눈에 띄게 사라져가고 있어 왠지 모를 두려움이 나로 하여금 더욱더 아빠 품에 파고들게끔 만들었다.
“나 이제 가야되는... 어?”
이제는 돌아가야 하나 싶었을 때쯤, 나를 안고 있던 아빠가 순간적으로 나를 무릎에서 내려놓았다.
“아빠? 엄마?”
부모님의 눈빛은 어느새 걱정 따위는 없는 포근함 그 자체로 물들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에 비해 행동 자체에서는 굉장한 다급함이 느껴졌는지라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가야한다고? 지금?”
꿈에서 깨려는 나를 붙잡았던 부모님의 태도변화는 적지 않은 서운함과 아쉬움으로 다가왔으나, 나를 다시금 껴안은 채 이동하는 아빠의 행동에 그리고 이내 들려온 너무나도 그리웠던 목소리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또 도와주면서 살아가는 우리 아들. 엄마가 옆에서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너무 훌륭하게 자라서... 엄마는 우리 아들이 너무 자랑스러워.”
“엄마?”
잊고 있었던 목소리가 들려옴에 따라, 절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아빠의 얼굴이 흐릿해져, 서둘러 소매로 이를 닦아냈지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생일 때 미역국도 못 끓여주고... 학교 다닐 때 소풍 도시락도 싸주지 못하고 학교 행사 때도, 아들 가수로 데뷔했을 때도 슬플 때, 힘들 때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입대할 때, 휴가 나왔을 때... 많이 속상했지? 엄마, 아빠가 많이 미웠지?”
멍해져버렸다. 머리가 하얗게 변해버렸다. 급속도로 빠르게 나와 엄마, 아빠의 공간을 잠식해 들어오는 회색의 공간들 때문인지, 내가 작별인사를 건네는 엄마, 아빠의 말에는 다급함과 간절함이 서려있었지만 지금의 내게는 오로지 눈물을 흘리며 내 얼굴을 쓰다듬는 엄마와 이를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빠의 붉어진 눈시울만이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엄마... 엄마!”
“함께 해주지 못해서 엄마가 미안해. 아들한테 너무 미안해. 좋은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해서 미안해.”
조급한 마음이, 얼굴을 뒤덮어버린 눈물이 내 목을 쥐어짠 듯 목소리가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아들.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고 아빠가 하늘에서 항상 지켜보고 있을게. 사랑한다. 아들. 다시 볼 때까지 건강하길. 엄마는 아빠가 지키고 있을게. 알겠지?”
“건강하고 나중에 먼 훗날에... 먼 훗날에 다시보자. 우리 아들. 사랑해! 엄마가 항상 지켜보고 있을게. 그러니까, 외로워하지......”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겠다.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꿈에서 자주 만났으면 좋겠다. 너무 보고 싶으면 그땐 어떡하나. 엄마, 아빠가 내 부모님이라서 너무 좋다. 미안할 필요 없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해나가겠다. 사랑한다.
수많은 말들이 목구멍을 맴돌았으나, 결국 내가 두 눈을 감기 직전까지 내뱉을 수 있는 말은 내 생각들을 모두 담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짧은 단어뿐이었다.
“사... 사랑해!”
속상한 마음. 다급한 마음. 내 스스로를 자책하는 마음.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사랑한다는 말이면 충분하다는 듯 두 눈을 감기 직전의 엄마, 아빠는 그런 나의 짧은 말 한마디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어주었다. 나를 믿는다는 듯, 보이진 않지만 항상 내 곁에 있을 것이라는 굳은 다짐을 보여주는 듯 무척이나 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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