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85화 (485/502)

00485  2020  =========================================================================

#485

[중국 중화통신의 왕자평입니다. 92공식(九二共識)이후 타이완은 중국에 속해 있는 지역일 뿐입니다. 타이완은 지금 중국의 기자로서 이 자리에 있는 만큼 방금 전 별개의 나라라는 뉘앙스를 풍긴 매일 연예 기자의 ‘본국’이라는 단어는 수정......]

질문을 하지 못한 기자들의 불만 섞인 웅성거림이 들려오긴 했어도, 비교적 순조롭게 막을 내리려던 기자회견이 일순간 싸늘해져 버렸다.

자기가 속해있는 언론사, 방송사들에 전화를 하거나, 타이핑한 기자회견 내용들을 서둘러 확인하던 기자들 모두가 일제히 자신이 하던 행동들을 멈추며 다시금 시선을 원래자리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영화에 관련된 질문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중국은 세계영화시장 규모 2위에 해당하는 국가입니다. 따라서 미스터 지 1편도 그렇고 이번 2편에서도 중국 내에 프로모션 행사 일정이 없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중국의 모든 팬들은 이에 대해 아쉬움과 불만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하등 상관없는, 굉장히 복잡해질 수 있는 사안을 언급한 중국 기자에게 경고 섞인 안내를 건네자, 이제는 그 문제를 영화와 결부시키는 바람에 사태는 더욱 커지고 말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지.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앞서 질문을 건넸던 대만 기자 또한 안색이 굉장히 굳어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냥 내 마음대로 대응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중국은 세계 제 2의 영화시장. 세계를 목표로 흥행을 노리는 할리우드 영화의 주연으로서 제작진 측과 투자자들의 이익을 고려해야만 했다.

어떻게 보면 또 다른 특종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는지라 주변 기자들의 이목이 더욱 뜨겁게 내 얼굴로 쏟아졌다. 옆을 슬쩍 살펴보니, 다이그 감독의 얼굴 또한 무척이나 어두워져 있었다.

반면에 내게 질문 아닌 질문을 건넸던 중국 기자의 얼굴은 무척이나 의기양양해진 상태였다.

이에 순간 복잡해졌던 머리가 말끔히 비워져버렸다. 그러자 기적과도 같이 기가 막힌 미끼가 순간 머리에 떠올랐다.

[대만에서 2박 3일간의 프로모션 행사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대만에서의 프로모션이지 않습니까.]

이 새끼. 잘 걸렸다.

[앞서 기자분이 말씀하셨지 않습니다. 대만은 중국으로 칭해야한다고. 그럼 대만에서 프로모션 행사를 하는 것은 중국에서 프로모션 행사를 하는 것이라는 말일 텐데, 왜 이런 질문을 하셨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그건!]

오늘 이 자리를 작정하고 망치려는지 아니면 자기가 중국의 이목을 끌고 싶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갑작스러운 나의 반격에 중국 기자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나의 반격은 중국 기자의 논리를 차용한 것이기에 더더욱 큰 효과를 발휘한 듯 했다.

[혹시 중국과 대만을 다른 나라라고 생각하시고 있으셔서 그런 질문을 하신 거라면,]

[그게 무, 무슨!]

의기양양했던 얼굴은 어디 갔는지, 거의 사색이 되다시피 하얗게 질려버린 중국 기자의 얼굴에 분위기는 순식간에 역전되고 말았다. 주변 기자들의 타이핑하는 소리가 커지고 카메라는 나와 해당 중국기자의 얼굴을 집중적으로 담기 시작했다.

[중국 기자분이 대만이 독립적인 자주권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에, 대만에서 하는 프로모션이 중국에서 하는 프로모션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 아닙니까? 아니, 중국 분들은 다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신 겁니까? 그래서 대만에서의 프로모션에,]

[그, 그만! 지금 그 발언은,]

[제가 무슨 말을 했다고요?]

[지금 하나의 중국을 무시하는,]

[저는 기자님의 질문 의도를 합리적인 추측으로 말한 것뿐인데요? 하나의 중국이면 사실 그 불만이 의미 없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기자님은 중국의 모든 팬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며 저한테 ‘대만’에서만 프로모션을 하고 ‘중국’에서는 프로모션을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셨지 않습니까?]

우리나라 사람 못지않게 국가주의, 국수주의에 매료되어 있는 중국 사람들이기에 대만과 관련된 문제는 무척이나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저 기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중국 내에 전달될 수만 있다면 무척이나 큰 곤혹을 치를게 분명했다.

저 기자는 제 딴에는, 중국을 위한답시고 저런 질문들을 건넨 것일 테지만, 도리어 그것이 그에게 화를 불러들인 것이다.

감독님을 슬쩍 보니, 내 답변이 최선은 아닐지언정 차선은 된다고 생각하신 듯 했다.

당연했다. 겉으로 보기엔 나의 답변은 중국 측의 편에 속해 있었지만,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는 대만 측의 편을 들어준 것과 같아 양국 모두를 만족시키지는 못할지라도, 양국 모두에게 비난을 받지는 않을, 나름 절묘한 묘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을 하면 할수록 불안함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 잘나가는 할리우드도 중국 자본에 조금씩 침식되고 있는 것이 현실일진데, 일개 개인으로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게 내게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에 대한 불안함은 사실 당연했다.

후우.

[사실 중국을 방문하지 않은 것은 제 개인적으로 중국 방문이... 꺼려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꺼내고 말았다. 이기적이게도 내 일신의 안전과 앞날을 위해서 이 얘기를 꺼내버렸다. 그동안 숨겨왔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려던 중국 기자가 다시금 자리에 앉아 나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다른 기자들 또한 방금 전 있었던 중국 기자와 나의 대화를 제각각 기록, 전달하던 행동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제 부모님이 중국 상하이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중국 팬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제가 이와 관련된 기억들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장담을 못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상하이에서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고 본국의 수많은 팬들을 외면하신단 말입니까?]

굉장히 어렵게 꺼낸 말이건만, 중국 기자의 말은 굉장히 날이 서 있었다. 하지만 이해했다. 굳이 내가 여기서 뭐를 더 얹지 않아도 그는 중국 사회에서 매장당할 확률이 높을 테니까.

[겨우 부모님과 관련된 것 때문에? 그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변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이는 전부 머릿속의 생각일 뿐인 듯 했다. 막상 이를 곱씹게 되자, 참을 수 없는 감정의 격랑을 경험하게 됐다. 그동안 묵혀놨던 부모님 얘기이기에, 내 스스로의 안위를 위해 이 얘기를 꺼내야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참담함’까지 더해졌는지라 더더욱.

[기자님은 부모님의 죽음이 ‘겨우’라는 말로 꾸며질 수 있는 사건이라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제가 무슨 변명을 해야 하죠? 제가 무슨 죄라도 지었습니까?]

너무나도 날선 나의 대꾸에 중국 기자는 입을 굳게 닫은 채 나를 노려볼 뿐이었다.

중국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기에 다른 외국인 기자들은 미리 준비되어 있던 통역사로부터 이를 전해 듣고 나서야 저마다 놀람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나의 발언에 그리고 중국기자의 어이없고 무례한 대꾸 모두에.

[기자님은 부모님이 모두 살아 계신가... 봅니다. 부디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저한테 말씀해주십쇼. 직접 찾아가서 겨우 그딴 걸로 우냐고 말씀드릴 테니. 아! 지금까지 하신 말씀을 들어보건대, 굳이 그런 말 할 필요도 없겠군요. 부모님의 죽음을 ‘겨우’라고 표현할 정도신데, 눈물은커녕 장례식을 치르거나 애도의 시간을 갖지도 않으실 테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댁이 한 말을 그대로 돌려드렸을 뿐인데, 역지사지도 모릅니까? 부모님이 돌아가신 것을 ‘겨우’라고 표현한 것은 댁입니다. 내가 아니라.]

기자가 부들부들 거리는 게 두 눈으로 확인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그동안 꾹꾹 눌러 묵혀놨기에, 한번 터져 나오기 시작한 감정들은 굉장한 위력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동안 가족 얘기를 꺼내지 않은 것은, 이로 인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싶지 않았고 또한 부모님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을 제 스스로가 추스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고작해야 만두를 빚어먹게 되거나, 아니면 부모님 기일이자 내 생일인 그 날을, 마치 없는 날처럼 여기고 지낼 때의 간단한 대화 또는 삼촌을 타박할 때를 통해서나 입 밖으로 꺼낸 부모님과의 추억.

삼촌에게도 지난 20년 동안 부모님 얘기를 한 것을 평균내보자면 일 년에 한두 번에 불과할 정도였다. 그것도 아주 어렸을 때와 군대를 다녀온 뒤 한 게 대부분일 정도로 부모님과 관련된 얘기를 아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부모님과,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형제 다섯 분 그리고 증조할아버지와 증조할아버지 형제 여덟 분 또한 모두 중국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그게 무슨.]

[그 덕에 조부께서도 그리고 아버지도 홀어머니의 손에 자라셨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부모님 모두를... 중국에서 잃어 삼촌의 손에 자랐고요. 무슨 그런 것에 의미를 두냐고 여기실 수 있겠지만, 저에게는 큰 의미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가족사에 대해서 말을 하는 게 무척이나 슬펐다. 하필 오늘, 그것도 이런 식으로 얘기를 꺼내게 되어서 더더욱.

[어느 인간에게나 정신적으로 힘든 기억과 상처는 존재합니다. 괜찮은 척 묻어둘 수는 있지만 언제나 드러날 수 있는 그런 상처 말입니다. 중국과 대만을 별개의 나라로 생각하시는 왕자평 기자님께서는,]

[그게 무, 무슨!]

[부모님의 죽음도 ‘겨우’라고 여기실테니, 그런 기억이 없을 실테고, 앞으로도 없으실 테지만 저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단 한 번도 생일을 기뻐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이를 슬퍼하고 또 아파하고 있습니다.]

아까 똑똑이 회장님과의 만남 이후, 한동안 느낄 수 있었던 감정의 홍수가 내 예상보다 굉장히 격하다고 느꼈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 가요 시상식 그리고 드라마 행사로 홍콩, 마카오 등은 방문한 적이 있는 만큼 다음 작품에서는 중국을 방문해 팬 여러분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이제는 의식하지 않으려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다른 평범한 날처럼 인지할 정도가 되어버린 6월 2일.

[부모님이 정말 자랑스럽게 여기실 겁니다.]

[네?]

[정말 그러실까요?]

[나이가 들어도 세상 소식이 궁금해 신문은 매일 봅니다. 거기서 지혁군이 그동안 해왔던 일들을 종종 볼 수 있었죠.]

[아...]

[어린 나이인데도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니, 부모님께서도 하늘에서 엄청 자랑스러워하실 겁니다.]

따뜻하고 포근함, 그런 묘한 울림을 느낄 수 있었던 똑똑이 회장님과의 대화가 내 가슴속 깊이 숨겨져 있던 어떤 방아쇠를 잡아당긴 듯 했다. 그리고 그 결과 6월 2일이라는 ‘평범했던, 평범해야 할 만한 날이’ 방금 전 폭풍같이 중국 기자를 몰아세우던 나의 행동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중화통신 왕자평 기자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6월 2일. 제 생일이자, 부모님 기일에 이런 얘기를 제 입으로 하게 만들어주셔서. 부모님께 자랑스러운 행동이 아닌 부끄러운 행동을 하게끔 해주셔서... 이게 바로 중국 기자 분들의 배려라면 배려겠네요. 정말 죽을 때까지, 절대, 절대 잊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눈앞의 사람들이, 심지어 나를 노려보고 있다, 이제는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나를 바라보고 있는 중국 기자까지 흐릿해져 있음에 이미 늦었음을 모르지 않았다.

[지... 괜찮나?]

옆에서 들려오는 다이그 감독의 말에 살짝 고개를 숙인 뒤, 그대로 기자회견 장을 빠져나갔다. 그 자리에서는 도저히 감정을 추스를 자신이 내게는 없었다.

============================ 작품 후기 ============================

선작, 추천, 코멘트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원고료 쿠폰 주신분들 감사합니다

천공의성 감사합니다 저도 감동받아서 울컥하네요 (2017.08.31 14:53)삭제

- 솔직히 해당편을 마감시간을 앞두고 40분 정도만에 써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혹평을 받을 줄 알았거든요. 독자분들이 원하는 바를 더욱 잘 파악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라이몬드 잘보고 갑니다! (2017.08.31 13:20)삭제

-감사합니다.

Kalon 할아버지뻘 어른들깨 부모님 칭찬받으면 기분이 아주... 마약은 안하지만 그게 마약하는것보다 좋다고.... (2017.08.31 09:13)삭제

-그런가요? 할아버지 두 분다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예쁜이아빠 더는 옛 여자들에게 휘둘리지 마시길................. (2017.08.31 09:06)삭제

-코멘트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하하오라 잘보고 갑니다 저도 이번편은 정말로 작가분이 엄청 공을 들이셨다고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7.08.31 09:03)삭제

-죄송합니다. 마감 시간을 지키기 위해 40분만에 날치기로 쓴 건데, 아직 멀었나봅니다. 열심히 쓴 편은 비교적 좋지 않은 반응이, 검토 조차 별로 못한 연재분은 비교적 좋은 반응이 있는 것을 보면 제가 트렌드와 독자분이 원하는 것을 읽는 능력이 떨어지나봅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리수진 잘보고갑니다 (2017.08.31 02:59)삭제

-감사합니다. 사신 카이스님.

지나가는행인C 이번편쓰시는데 들이신 공이 어느정도 일지 지혁이의 감정과 똑똑이 회장님의 감정 묘사 장면에서 느낄 수 있네요 천재였지 이후로 가장 좋은 장면 같습니다 (2017.08.31 02:45)삭제

- 먼저 죄송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는 노력한 연재분도 칭찬해주신... 급하게 마감 시간을 맞추느라 제대로 검토조차 못한 편보다 좋은 평가를 들을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아직 제가 독자분들이 뭘 원하는 지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Dlos 포풍연참 ㄸ (2017.08.31 00:24)삭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두편씩 연재하고 있습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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