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84 2020 =========================================================================
#484
“예정보다 6시간 늦은 시간대로 변경된 기자회견에 참석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잠시 후, 미스터 지 SUPREME POWER 관련 기자회견이 진행될 예정이니만큼, 기자 분들과 방송 관계자분들께서는 자리해주시기 바랍니다.”
감독님과 나 그리고 2편에서도 출연하게 된 파밀라 스티키까지.
기자회견을 위해 준비된 테이블을 앞에 둘 사람은 오직 세 명뿐이었지만, 이를 찍기 위해 그리고 질문을 던지기 위해 모인 사람은 족히 100명이 넘어보였다.
그래서인지 파밀라 같은 경우 꽤나 긴장을 한 듯 했다.
[긴장 안 해도 돼.]
[어, 어?]
[긴장 풀게. 한국에서 ‘지’는 신이니까 말이네.]
사실 기자회견과 시사회 그리고 팬 미팅으로 구성된 한국 프로모션 일정에서 파밀라가 동행하는 것은 확실히 의외의 상황이었다.
“약 1시간 동안 진행될 이번 기자회견에서 질문은 저의 진행 하에, 한 분당 일개 질문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영화 자체가 주인공 역인 ‘지’에 초점이 맞춰진 만큼 다른 배우들의 분량은 극히 적었다. 이는 안 그래도 1편에서 5분 남짓한 시간만 스크린에 비춰졌던 파밀라가 이번 2편에서도 내게 중요한 정보를 살짝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지 차지한 분량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정 불편하면 지금이라도,]
[아니에요. 그래도 도와주기로 하고서 왔는데, 밥값은 해야죠. 그리고 ‘지’도 어제 그러려고 파티 열어준 것 아니겠어요?]
나와 감독님을 배려해서 이 자리에 온 만큼, 배려를 해주고 싶었다.
나와 감독님 단 둘이서 전 세계 곳곳의 기자들을 모두 상대하기란 꽤나 부담되는 일일 수밖에 없었는지라, 이런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자리에 함께한 그녀의 긴장하는 모습을 간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번 기회에 인지도도 높이고 기자회견 경험도 쌓는다고 생각해. 그리고 고마워.]
[고맙긴. 이 영화에 나도 출연하거든?]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다른 조연급 배우들도 함께 초대해 오랜만에 회포를 나눴기에 그들 중 유일하게 자리에 함께해준 파밀라에게 더욱 큰 고마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나한테 질문이 많이 올 거야. 그러니까, 너무 긴장하지 말고.]
[오케이.]
“자! 그럼 한국 프로모션 행사를 위해 방한해주신 배우 두 분과 감독님을 단상으로 모시겠습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시기 바랍니다.”
진행자의 외침과 더불어 꽤나 크게 들려오는 박수 소리에 그녀의 긴장을 풀어주는 행위 또한 마무리를 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와 감독님 그리고 파밀라는 수많은 카메라들과 눈들이 지켜보는 곳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기 시작했다.
*
[같이 연기를 했던 배우로서, ‘지’는 굉장히 열심히 해요. 이렇게 자신을 몰아붙여도 되나 싶을 정도로요. 심지어 운명의 전쟁 촬영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텐데, 자기 관리를 그렇게 철저하게 할 수 있다는 게 경이로울 지경이었어요. 액션 영화를 찍다, 판타지 영화를 찍고 또 액션 영화를 찍는 게 말이 쉽지, 연기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어렵고 힘든 일정이거든요.]
걱정한 내가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로 파밀라의 인터뷰 모습은 자연스럽다 못해 완벽했다. 기자들이 원하는 답변을 꽤나 잘 파악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답변 속에 이를 잘 녹여 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더욱이 그런 와중에 영화의 홍보에 도움이 될 만한 스토리까지 집어넣었으니 오죽할까.
[이번에는 자동차 추격신이 굉장히 많은 데요. 그 중 한 신에는 저도 같이 등장해야만 했는지라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저희 영화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정말 위험하거든요. 기존의 촬영 기법처럼 편집을 이용해서 쉽게, 쉽게 넘어가는 게 아닌...... 그런데 지는 그걸 다 해내더라고요. 그래서 연기자로서 정말 존경할 만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또 같은 작품에서 연기 호흡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얼굴에 금칠까지 잔뜩 해줬는지라, 절로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버렸다. 아니, 비행기 좀 그만 태우라고! 현기증 나려고 하니까!
[한국에서 개봉도 하게 되고 이렇게 프로모션 행사도 하게 되다니, 감회가 새롭군요. 아시다시피 저번에는... 크흠.]
[‘리’가 아닌 ‘지’로서 사람들에게 더욱 기억되길 바랍니다. 왜냐고요? 저는 미스터 지 각본과 감독을 맡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하하!]
[감독으로서 정말 작품을 같이 하고 싶어지는 배우입니다. 이번 SUPREME POWER가 잘 되어서 후속편이 제작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요.]
다이그 감독님마저도 내 칭찬을 카메라와 기자들을 향해 수없이 건넸는지라, 나를 향해 본격적으로 기자들이 질문을 던질 때가 되어서의 나는 이미 얼굴이 익다 못해 탈 지경이었다.
그래도 실수를 한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수많은 조명을 방패삼아, 나 또한 그동안의 경험을 십분 발휘해 기자들의 질문세례를 차분히 해쳐나갔다.
“이번 작품의 자동차 추격 신에서 포르쉐 측이 전적으로 후원을 해주어 굉장히 좋은 환경에서 촬영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당초 계약사항 중에 포르쉐 측이 제공한 자동차를 제가 프로모션 행사 중 사용해야 한다는 비밀 조항이 있었으나, 어제 사고를 통해 이미 상세내역이 포르쉐 본사 측을 통해 공개된 만큼 지금 발언이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어제 있었던 포르쉐 사건에 대한 질문들이 굉장히 많았다. 하긴, 이번 기자회견 자리가 6시간이나 늦춰진 이유도 혹시 모를 나의 건강상의 문제를 체크하기 위해서라는 게 공식적인 이유였으니 그럴 만도 하지.
“선처는 없는 겁니까?”
“미스터 지 작품의 협찬 사항 중 하나로 제게 자동차를 제공했던 회사 측의 홍보 활동에 차질이 빚어진 만큼 선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더욱이 가해자 분께서 운전 중에 방송 활동을 그리고 핸드폰 사용을 하고 계셨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제 개인적인 생각도 해당 회사 측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어쨌든 내 최종 입장을 밝히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렇게 수많은 카메라들 앞에서 이를 밝힌다면, 두 번 다시 이와 관련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점이 큰 이유였다.
서너 명의 기자들이 어제 교통사고 관련 질문들을 건네는 것으로, 이와 관련된 주제는 막을 내릴 수 있었다.
그 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영화 기자회견다운 질문들이 내게 건네졌다.
“이번 작품을 촬영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신은 무엇입니까?”
“아까 파밀라 양이 말했던 것처럼 이번 작품에는 자동차 추격신이 있습니다. 그 신이 촬영할 때 굉장히 고생을 했었기에 개인적으로 결과물에 대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에서도 1편의 볼펜으로 칼 든 이를 상대하기와 유사한, 신문지로 칼을 든 상대와 대적하는 신 그리고 총격 액션신 등이 산재해 있었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이번 영화의 핵심 파트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자동차 추격 신이었기에 이를 부각시키고 싶었다.
[정말 기대하셔도 좋아요. 자동차 추격신의 몇, 몇 신에 동참한 것이 전부이긴 하지만, 제가 지금껏 보고 들었던 자동차 신들 중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니까요.]
파밀라 또한 앞선 발언에 이어 옆에서 나를 도와 또다시 자동차 추격 신을 언급한 것을 보아하니, 역시나 나와 비슷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 듯 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지금껏 나왔던 자동차 추격신들 가운데 최고라고, 제 이름을 걸고 자부합니다.]
더불어 다이그 감독님 또한 지원사격을 적절히, 아니 자기 이름까지 걸 정도로 확실히 해주었는지라 이를 노트북에 입력하는 기자들의 타자 소리는 굉장히 거칠어 질 수밖에 없었다.
이거, 이거 이 정도면 홍보 대박인데? 흐음.
*
“미스터 지에 4일 앞서 300억이 넘는, 거의 400억에 가까운 제작비가 들어간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 4차원의 세계가 개봉할 예정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출연하시는 배우 분들이 연기도 잘하시고 티켓 파워도 굉장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인 배우로서 외화의 주연을 맡아 한국 시장에 도전하는 만큼 좋은 승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간 관계상 국내 기자 분들의 질문은 여기까지만 받고 이제부터는 해외에서 오신 기자 분들의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는 게 어디 있습니까! 바로 제 앞 차례에서 이러는 게! 저까지만 이라도...”
“한국 프로모션 이지 않습니까! 팬들을 위해......”
“한국 내에서 진행되는 프로모션이지만, 타국 팬들을 위해 정해진 시간의 3분지 1을 배정했음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기 저까지만......”
[자! 그럼 지금부터 해외 기자 분들은 손을 들어 발언권을 먼저 제게 얻으신 뒤 질문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백여 명이 넘는 기자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해외에서 온 기자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한국 기자들의 질문이 십여 차례 이어지자, 하나, 둘 해외 기자들이 발언권을 받아 질문을 건네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일본 도쿄 통신에서 나왔습니다.]
그 첫 번째 질문 기자의 국적은 일본이었다.
조금은 의아했다. 이제 이틀만 지나면 일본 프로모션이 진행될 예정인데, 얼핏 봐도 일본에서 온 기자들이 한 둘이 아닌 듯 했으니까.
[어제 있었던 사고로 인해 오늘 기자회견이 6시간가량 늦춰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 상황으로 인해 일본 내의 일정이 차질을 빚게 되는 것은 아닌지 답변해주십시오.]
아아.
이어진 일본 기자의 말에 수많은 일본 기자들이 이곳을 찾은 이유를 절로 알게 됐다.
이번 일본 프로모션 행사 일정을 발표하자마자, 일본에 있는 팬들이 무척이나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저번에 일본의 혐한 시위대로 인해 일본을 방문하지 못한 데서 비롯되었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이번에는 거의 수십만 명의 팬들이 공항에 운집할 것이라는 기사들을 심심치 않게 살펴봤었기에 더더욱.
따라서 갑작스러운 나의 교통사고로 인해 한국 내 프로모션 행사가 지연되어버리자, 일본 팬들이 굉장히 걱정했을 것이다. 나의 건강 상태 뿐만 아니라, 일본 내 프로모션 행사가 혹시나 연기되거나 최악의 경우 취소까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수많은 팬들이 강지혁 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혹시...]
다른 일본 기자들 또한 나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이 무척이나 긴장이 되는 듯, 입술을 깨물고 있는 것을 보니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일본에서는 이와 관련된 걱정이 횡횡한 듯 했다.
그래서 서둘러 그들이 만족할 만한 답변을 건넸다.
[일본은 예정대로 4일 저녁 도착할 예정이며, 3박 동안 프로모션 행사를 진행한 뒤 8일 대만으로 출국할 예정입니다. 일본 팬 분들이 저를 많이 기다려주신 것 알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あ..... よかった.”
일본 기자들이 그런 내 답변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얼굴을 밝히자, 미리 발언권을 얻은 다른 외국인 기자들이 앞을 다투며 내게 질문을 건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비슷한 내용의 것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베트남 팬들을 위해......]
[필리핀의 수많은 팬들이 이번 프로모션 행사에 필리핀이 포함되지 않아......]
[태국 팬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시기......]
[이번 프로모션 일정에 호주가 포함되지 않아......]
“이번 프로모션 행사들을 통해 직접 방문하지 못한 국가의 팬 분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프로모션 행사라는 게 지극히 영화 흥행을 위한 일정이다 보니, 아무래도 영화 시장의 규모에 따라 그 행선지가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없을 수가 없었다. 영화 시장이 작다고 해서 내 팬이 없을 리 만무했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외국 기자들에게 동조해, 해당 국가의 팬들을 위해서 영상 편지 형식으로 아쉬움과 미안함을 전달했다. 몸이 12개 정도라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일정을 소화해낼 수 있겠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한 것이 현실이기에 이것이 내가 팬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타이완 매일 연예의 주류안입니다. 이번에 본국의 수많은 팬들이 지혁 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외국인 기자들이 자국 팬들을 위한 영상 편지를 부탁해서일까. 바로 며칠 뒤, 프로모션 행사가 잡혀있는 대만 기자 또한 자국 팬들을 위한 영상을 부탁해왔다.
딱히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예정되어 있던 기자회견 시간 또한 거의 끝나갔기에 이를 들어주려 했다. 어차피 시간을 고려한 진행자가 더 이상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것 같지 않았기도 했고 말이다.
[며칠 뒤에 만날 타이완 팬들에게도 인사를,]
그런데 대만에서 온 기자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새로운 사람이 나와 대만 기자의 사이에 마음대로 껴버렸다. 발언권을 얻은 것도 아닌 말 그대로 무단으로.
[중국 중화통신의 왕자평입니다.]
왠지 모르게 골치 아파질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나의 예상은 잠시 후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함을 통해 현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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