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79화 (479/502)

00479  2020  =========================================================================

#479

“애들은 마음에 든데?”

“그럼요. 예전 집보단 훨씬 낫잖아요. 거리가 좀 있어도 그 정도면 최고죠.”

삐까뻔쩍한 컨버터블을 타고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신촌 부근의 자취 촌이었다.

“합격했다며. 장하다. 엄청 어렵다던데.”

“뭘요. 다들 하는 건데요. 뭘.”

꿈 기숙사 입주를 앞두고 있는 애들의 숙소를 찾았다. 미리 연락을 했었기에 숙소에는 건준이가 미리 와있었다. 다만, 나머지 애들은 수업 때문에 집에 없어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 이제 진짜 의사선생님이네.”

“에이. 이제 인턴인데요. 아직 선생님이라고 불릴 정도는 아니에요.”

나의 후원으로 처음 대학에 보냈던 애가 벌써 의사선생님이라 불려도 무방할 이가 됐다는 점에 무척이나 뿌듯했다. 뭐,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열심히 한 건준이의 노력이 이뤄낸 성과일 테지만, 그래도 나 또한 그 결과에 어느 정도의 지분은 있을 테지.

“조금 불편해도 참아.”

“불편하긴요. 요즘엔 이정도도 엄청 과분해요. 그때 말씀드렸다시피.”

낡고 좁은, 닭 사육장 같은 이곳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꿈 기숙사로 이동할 것이니 만큼 이런 뿌듯함은 더욱 커져만 갔다.

“각자 2인실을 쓰게 될 거니까, 룸메이트 미리 정해놓으라고 해줘.”

“네. 그럴게요.”

“너는 1인실이야.”

“네?”

조금은 놀라하는 녀석을 보며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그러실 필요는...”

“인턴이어도 네 짐 놔두고 생활할 곳 필요할 거 아니야. 아직 돈도 못 버는 데.”

나이만 많을 뿐이지, 아직 학생 신분인 녀석이기도 하거니와, 어차피 개인 후원 TO이기에 상관없었다. 내가 후원할 이들을 위해 마련한 게 개인 TO인만큼, 녀석의 입소 자격은 충분했다.

그러고 보니, 학교를 참 오래 다니네, 의대생들은. 청춘을 전부 병원에서 보내야 하는 구나.

“감사해요. 형.”

“전문의 자격증 취득할 때까지는 그렇게 하도록 해. 그 후로는 방 빼줘야 한다? 뒤에 애들도 있으니까.”

“당연하죠. 형.”

“그리고 그... 과 생각한 건 변함없는 거야?”

“네. 외과 아니면 흉부외과 갈 거에요. 응급 쪽도 관심은 있는데, 그쪽은 다른 쪽을 알아야 가능한 거라서, 일단은 외과, 흉부외과로 마음 굳혔어요.”

“드라마 보면 거기 엄청 힘들다던데.”

“편하게 의사하려고 의대 간 거 아니니까요.”

“흐음... 그래. 열심히 해. 형이 도움 될 일 있으면 도와줄 테니까.”

한동안 얘기를 나누다보니, 배가 꽤나 고팠다. 잠시 애들 숙소도 확인하고 건준이 시험 합격 축하 및 격려도 할 겸해서 나온 것이라 점심을 먹는 걸 깜빡했던 것이다.

“배고픈데. 밥 먹었어?”

“아직요. 그럼 나가서 드실래요? 여기 순두부백반 맛있는 데 있는데.”

바깥으로 나가려면 또 그 삐꺼뻔쩍한 차를 타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이동해야 했는지라 밖에서 먹는 게 그리 끌리지 않았다.

“뭐 라면 같은 거 없나? 여기에?”

어차피 저녁에 한남동 저택에서 파티를 하기로 한 만큼 굳이 배를 꾹꾹 채울 필요가 없겠다 싶었다. 오랜만에 라면을 생각하니, 군침이 돌기도 했고.

“라면 드셔도 되겠어요?”

이거 눈빛이 왜 그래? 설마 내가 라면을 안 먹고 살 것 같아서 그런 건 아니겠지?

“그게...”

“됐으니까, 라면 좀 맛있게 끓여봐. 계란은 휘저으면 안 되는 거 알지? 국물 탁해진다. 오케이? 아니다. 일단 라면이 있는 지부터 봐야겠네. 몇 개 정도는 먹어도 되겠지?”

“당연하죠.”

살면서 한국사람 중에 라면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몸 관리를 해야 하는 나로서도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뭔가 한국적인 음식을 먹고 싶을 때면 간단하게 만들어먹을 수 있는 라면부터 찾곤 했으니까.

그나저나 라면이... 에?

“그런데 라면이 왜 다 똑똑이 것뿐이야?”

“아!”

뭔가 온통 노란색 봉지만 가득한 선반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 똑똑이 회사 직원의 집인가 싶었다. 이게 세일해서 많이 사놓은 건가? 아니, 그런 것 치고는 너무하잖아? 똑똑이 라면은 맛없다던데.

“그거 지수가 사놓은 걸 거에요.”

“응?”

“지수가 총무 역할인데, 그... 똑똑이 라면 밖에 안 먹거든요.”

“똑똑이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똑똑이 라면은 내가 알기로 업계 1위도 아닐뿐더러, 우리나라라면의 최고봉은 낭심 회사 것이었으니까.

“어렸을 때 심장이 안 좋았는데, 그때 똑똑이 회장이라는 분이 후원해주셔서 수술 받았었데요. 고아라서 그냥 죽는 거였는데.”

“그래? 난 몰랐네?”

오호. 예상한 대로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도 무척이나 관심이 갈 만한.

“사람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근데 저도 지수 통해서 알게 되고 조금 찾아보니까, 30년 넘게 아동 심장병 후원하고 계셨더라고요. 후원받는 애들도 4천명 넘게 되고.”

말이 30년이고, 4천명이지. 그야말로 엄청난 숫자다. 그것도 일개개인이 하기에는.

그래서 저절로 그 꾸준함에 눈길이 갔다. 흐음.

*

[하하... 내가 태워줄까?]

[서, 설마 이 차 타고... 오신 거에요?]

역시나 내가 비정상은 아니었다.

[학교랑 가까워서요. 운동하는 셈 치고 걸어갈게요. 그럼 다음에 봬요. 형.]

태워준다는 말에 서둘러 발을 놀려 사라진 건준이를 보자니, 뭔가 이해가 갔다. 그 행동의 의미가.

“아, 네. 알아봐주세요. 네? 아... 그냥 관심이 좀 가서요. 시급한 건 아니고요. 그냥 쉬엄쉬엄... 네. 그렇게 해주세요. 네, 그럼 조만간 봬요. 한국에는 4일 정도 있을 테니까요. 네, 네. 그럼 들어가세요.”

관리사님과의 대화를 끝마친 뒤, 다시금 운전대를 잡아보니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이 차의 매력 때문이 아니라, 그냥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집에만 있는 게 조금은 그랬다.

그래, 어차피 뚜껑만 안 열면 나인지도 모르잖아. 물론 포르쉐쪽에서는 내가 최대한 이 차를 타고 언론에 노출되길 바라겠지만, 적어도 한국에선 무리라고. 무리. 후우.

조금만 둘러볼까나.

얼굴에 철면피를 깐 채,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다.

유난히도 커 보이는 옆의 자리가 내 옆구리를 시리게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두바이에서 장인, 장모님. 크흠. 그 분들과 함께 있을 테니까.

자, 그럼 출발을,

[부우우우웅!]

후우. 진짜 미치겠네. 뭘 밟기만 하면 계기판이 미친 듯이 올라가네. 이거 이러다가 사고 나는 거 아냐?

*

“안녕하세요. 형님들.”

사바나 TV에서 최근 들어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는 BJ 간지. 흔히 ‘남캠’으로 불리는, 훈훈한 외모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콘텐츠를 통한 토크쇼 방송을 진행하는 BJ로서 그는 오늘 강남 야외 방송을 진행 중이었다.

“이 차요? 2억 밖에 안 해요. 하하. 에이. 왜들 그러시나. 이게 전부다 형님, 누님들이 저 예뻐라 해주셔서 그런 거죠. 에? 제 연봉이 5억이라고? 에이... 10억입니다. 10억. 형님들. 폭로를 해도 팩트를 폭로합시다. 인정? 어 인정.”

“아! 그리고 10억은 세후 연봉입니다. 형님들? 하하! 이 차 2억 주고 일시불로 샀는데, 이번해만 타고 다음해엔 차 바꿀라고요. 차는 너무 오래타면 쉰내 나니까. 하하!”

“솔직히 차는 넓은 게 좋죠. 형님들 인정? 왜 넓은 게 좋냐고요? 에이. 아시면서. 크크”

“차에서 하더라도 한 자세로만 하면 재미없습니다. 형님들? 그리고 썬팅은 짙어야 하는 거 아시져? 아! 물론 스릴을 위해서는 살짝 옅게... 아! 운영자님 들어오셨다고요? 크흠... 형님들 안전운전 하셔야 됩니다. 인정? 어 인정.”

BJ이름과 마찬가지로 그는 특유의 허세 섞인 진행으로 시청자들의 엄청난 원성과 부러움을 받곤 했는데, 오늘은 특히나 그런 그의 허세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구치는 날이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학생?”

“저는 유련여대 다니고 있어요.”

컨버터블 차량을 이끌고 강남을 돌아다니며, 여러 여성들을 꿰어내는 그의 자연스럽고 능숙한 진행에 시청자들은 무척이나 뜨거운 호응을 보내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대리만족이 그들의 허전함을 충족시킨 것이었다.

“나 같은 남자친구 어때요?”

“네, 네?”

“에이 얼굴 빨개지긴. 형님들 이거 주작 아닙니다? 레알 처음 보는 사이에요.”

그가 한국의 유명 여대에 재학 중인 학생을 꿰어냈을 때, 이런 시청자들의 반응은 극에 달해있었다. 예쁘장한 얼굴 그리고 볼륨감이 살아있는 몸매 그리고 무엇보다 저녁의 강남 거리에 어울리는, 몸매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원피스까지.

강남 야외 방송의 꽃이라 부를 수 있는 상황이 드디어 성립되었다는 점에서 BJ 간지 또한 속으로 생각했다.

‘됐다. 오늘은 얘다.’

“몇 살이에요?”

“20살이요.”

“와! 형님들! 20살이면 새내기 아닙니까? 영계? 아 죄송. 하하!”

몸매와는 상관없이 청순하기까지 한 얼굴에 BJ 간지는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교적 이른 시기이기는 하지만, 다른 여자들을 더 물색한다고 해서 지금의 여자보다 나은 이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술 한 잔 할래요? 오빠가 맛있는 걸로다가 사줄게.”

“음...”

“에이 왜 그래? 오빠 매너 완전 쩔어서, 거절하면 후회할걸?”

오히려 단번에 승낙의 뜻을 밝히지 않아서인지, BJ 간지와 더불어 시청자들 또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싸 보이지 않은 행동, 강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산형 성형 미인들이 아닌,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그것도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여대에 다니는 미인과의 술 방송은 그들 모두가 원하는 콘텐츠임이 분명했다.

“그럼 뭐 좋아해요?”

“저요? 저는 그냥... 술 먹어본 적이 학교 행사에서 먹어본 두 번 뿐이라.”

“뭐야. 이거 너무 순진한데? 오빠 완전 나쁜 남자인데, 괜찮겠어?”

“네, 네?”

왠지 모르게 때 묻지 않은 듯한 여대생의 등장.

“오늘은 그럼?”

“그게... 서울에 오면 강남에서 걸어보는 게 꼭 해보고 싶은 그런 거라서... 그리고 운전면허도 합격해서...”

‘오늘 대박이다. 5만 명은 찍겠는 걸?’

BJ 간지는 오늘도 자신의 방송의 재미를 자신했다. 아니, 역대 급 방송을 자신했다. 더불어 방송 후의 상황에 대한 묘한 기대감마저 그의 가슴속에서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남자친구는 사귀어봤어?”

“그게... 소개팅은 많이 들어왔는데, 아직...”

“뭐야 그럼 설마 모솔?”

그렇게 그는 그녀의 동의를 어렵사리 얻어낸 뒤, 꽤나 들뜬 마음으로 액셀을 밟아나갔다. 거리에 있는 대부분의 차들이 그런 그의 컨버터블 차량을 의식한 듯 일제히 거리를 두기 시작했고 이는 그를 더욱 우쭐하게 만들었다.

“형님, 누님들 그럼 강남에서 제일 좋은 레스토랑으로 지금 갑니다. 에이 형님들. 일단 분위기 좋은 데서 배부터 채워야져. 형님들. 아, 아! 카메라 끄지 말라고요? 에이, 형님들 그건 좀... 말로만? 아! 형님들 감사합니다. 떡집 형님 별 풍선 천개 감사합니다. 야놀자 형님 별 풍선 3천개 감사합니다. 그리고 오늘 모텔각 형님 1만개! 별 풍선 1만 개 감사합니다..... 형님들 그럼 방송 키고 갈 게요. 후우...”

참으로 운수 좋은 날이라는 생각이 그의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꽤나 짧은 원피스로 인해 연신 손으로 이를 부여잡고 있는 옆자리 여대생의 모습 또한 계속해서 그의 눈을 흐렸다.

‘후후’

방송을 시작한 지 1시간 만에 벌써 5만개나 터진 별 풍선이 그의 마음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와 여대생을 태운 컨버터블이 이동하는 동안, 별 풍선 세례는 끝을 보이지 않고 이어졌다. 그때마다 BJ 간지의 리액션은 더욱 적극적으로 이루어졌고.

============================ 작품 후기 ============================

맘따스하게 3 장 2017.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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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월광ㅣ 중간에 유재연인데 유지연이라 되있는거 같네요 (2017.08.28 01:37)

- 감사합니다. 월광님. 자체적으로 체크하려고는 하는데, 두세번씩 검토를 해도 이렇게 실수를 하곤 하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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