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78화 (478/502)

00478  2020  =========================================================================

#478

“하늘은 정(精)을 내리시고 땅은 영(靈)을 도우시니 해와 달이 모양을 갖추고 산천이 형태를 이루며 번개가 몰아치는 도다.”

한글로 하는 대사이지만, 지금껏 해왔던 영어대사보다 훨씬 더 까다로웠고 또한 감정을 싣는 게 쉽지 않았다.

마법사 가르드나 두네달인 아리신, 인간 바라밀 등이 들고 있는 검들에 비하면 꽤나 작은, 그래서인지 영화상에서 내가 차려입은 복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것이었다. 바로 내가 들고 있는 검, 사인참사검(四寅斬邪劒)이라는 것은.

[장난감 검이나 들고 있다니, 참. 전투가 벌어지면 뒤로 물러나있게나. 길잡이 인만큼 어떻게든 지켜줄 테니.]

[흥! 대륙을 구하겠다고 나선 일행에 저런 비렁뱅이가 껴야 한다니, 이래서 필멸자들은... 쯧.]

[리, 그것으로 되겠나? 원한다면 내가 쓸 만한 검을 구해줄 수는 있네만...]

장난감 칼이라고 은연중에 이 검을 무시했던 이들과 더불어 일행 모두가 내 검에서 쏟아진 빛에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물론 CG처리를 할 거라, 지금으로서는 그저 일반 검과 다를 바 없는 검이었지만.)

동굴 속 은밀한 루트를 통해 목적지로 이동하던 중 만나게 된 고대 악신의 수하 둠 가드로 인해 방금 전까지 그리고 지금까지도 생명의 위험을 받고 있는 상황일 진데 말이다.

[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저 검은 뭐고?]

[리!]

[어서 가시오!]

일행 모두가 절벽의 건너편으로 건너간 상황. 이 상황에서 홀로 둠 가드와 같은 공간에 남아있는 나는, 도망칠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했다.

[리!]

[닥치고 가! 멍청이들아! 이번엔 네놈들 손으로 직접 지키란 말이야!]

[뭐?]

무엇을 지키라는 것인지. ‘리’의 진실된 정체를 아는 마법사 가르드와 얼마 전 ‘리’의 범상치 않음을 느낄 수 있었던 두네달인 아리신 만이 ‘리’의 말을 이해할 따름인지라 일행은 계속해서 머뭇거릴 뿐이었다.

[가세. 서둘러!]

[하지만, 리는.]

[어서!]

하지만 이내 일행의 또 다른 길잡이인 가르드가 그들을 이끌었다.

“현좌(玄坐)를 움직여 산천(山川)의 악한 것을 물리치고 현묘(玄妙)한 도리로서 베어 바르게 하라.”

거칠게 저항하고 있지만 둠 가드로 인한 어둠 앞에서는 무척이나 초라한, 그런 빛에 둘러싸인 ‘리’를 남겨둔 채.

*

[자! 이제 당분간 얼굴 보기 힘들 ‘리’를 위해 박수한번 쳐줍시다!]

[짝짝짝!]

[잘하고 오라고!]

내가 미스터 지 프로모션 행사를 위해 한 달 가량 촬영장을 벗어나도 문제가 없는 이유.

그것은 바로 내가 방금 전 신에서와 같이 대표단 일행에서 빠진다는 점 덕분이었다.

물론 내가 이 장면이 나의 마지막 장면은 아닐 것이다. 방금 전 감독님의 말도 있거니와, 아직 나오지 않은 3부의 대본에 분명 나의 재등장 신이 포함되어 있을 것일 테니까.

[그럼 7월? 8월? 언제쯤 다시 촬영장에 복귀하지?]

[아, 소린?]

이제는 같이 호흡을 맞추고 있는 여섯 주연들과 꽤나 친해진 상태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가까워진 것은 소린 모르텐, 아리신 역을 맡은 동네 삼촌 같은 배우였다.

[대부분 나라들이 6월 말에서 7월 초 개봉이라, 프로모션 행사는 6월까지이긴 한데, 아무래도 바로는 복귀 못할 것 같아요. 아마 8월쯤 보지 않을 까요? 보니까, 감독님이랑 작가님도 늦어도 8월 말까지는 복귀해달라고 하셨으니 까요.]

[하하! 이거 꽤 아쉬운 걸? 이제 겨우 술잔 정도 나눌 사이가 됐는데, 다시 석 달 가량 못 본다는 게?]

[그것보다 제가 가지고 있는 술이 아까워서 그런 건 아니고요?]

[뭐? 하하! 이거 들켰군 그래. 하하!]

무척이나 익숙하게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밀하게 다가오는 소린을 보면서 나 또한 아쉬웠다. 다소 버거운 스케줄 속에서 버거움을 느끼던 나였지만, 그 문제가 해결된 상태에서 이 같은 사람들과의 연기는 내 스스로의 욕심과 무엇보다 연기 그 자체의 재미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것들이었으니까.

[뭐가 그리 재밌나? 그렇게 웃을 정도면 나한테도 공유하지?]

[아! 조나나 왔군요. 글쎄 이 친구가,]

[제가 가지고 있는 술 소린한테 주고 갈게요. 몇 병 안 되지만 그래도 그걸로 만족하라고요?]

대화는 길지 못했다. 방금 전 신이 마지막이었던 나와는 달리, 저들은 이내 다른 촬영을 위해 분장과 의상 점검을 해야만 했다. 그런데 항상 예외는 존재했다.

[끝내 술 한 잔 못 먹었네요?]

장난 끼 어린 얼굴로 다가와 말을 건네는 스테파니 팔빈으로 인해 웃지도, 울지도 못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물론 동료 배우로서 이 정도 말을 주고받는 것은 그리 이상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때 그 여자는 아직도?]

주변 사람들이 많음을 인지한 까닭인지, 비교적 작은 목소리로 말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그런 주변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으려는 듯 일부러 귓속말로 민감한 사안을 건네는 것에 화를 내야하나?

말괄량이 삐삐가 생각나는 그녀의 행동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 참! 비밀이었지?]

그것도 연기라고 하냐? 누가 봐도 발 연기잖아. 그건.

[베드신 때 엄청 능숙하더니, 혹시 그 여자랑 밤새 연습한 건 아니겠죠?]

며칠 전 소수의 스태프들을 앞에 두고, 물론 그 스태프들 가운데 나머지 주연 배우 4명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은 이해가 안 가지만, 어쨌든 그때 DVD용 베드신을 찍었다.

보다 사실적이고 잔인한 전투 신 그리고 나와 엘라인간의 베드신, 아리신과 아르센의 베드신 등이 담길 예정인 만큼 제작진 측은 오히려 영화보다 DVD에 더욱 공을 들이는 듯 했는지라 결코 허투루 이에 임할 수는 없었다.

후우. 그때 생각만 하면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베드신을 찍기 일주일 전부터 유지연과 그 장면을 수십 번 반복했는지라, 연기 자체는 내 스스로가 만족할 정도였다. 다만, 노골적으로 필요 이상의 동작을 취하는 스테파니 팔빈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을 뿐.

그때 그녀가 예기치 않게 목과 가슴에 새겨버린 키스 마크 때문에 동료 배우들의 놀림과 더불어, 유지연의 엄청나게 차가운 눈빛을 마주해야 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더 이상 이를 상상하기가 싫었다.

[아직 기회는 많으니까. 그럼 잘 다녀와요? 왕자님? 후훗.]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는 그녀의 얄미운 목소리를 뒤로 한 채 촬영장을 빠져나왔다. 어휴, 역시 서양 여자들은 무서워. 너무, 너무.

*

[이... 이게?]

프로모션 행사를 위해 가장 먼저 들른 곳은 다름 아닌 한국이었다. 뭐, 당연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6월 31일 날 개봉하는 국가였으니까.

오랜만에 배우들과 더불어 다이그 감독을 마주하게 돼 무척이나 반가웠다. 그래서 그들 모두가 한국에서 지낼 동안 우리 집에서 숙식을 해결 할 수 있게 조취를 취한 게 ‘꽤나 잘한 선택 이었구나’를 느꼈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다이그 감독에게서 무척이나 뜻밖의 말과 또한 눈앞에서 왠지 모르게 엄청난 포스를 뿜어내고 있는 것을 마주하게 되었는지라 당황하고 말았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번에 우리 영화에 포르쉐가 협찬을 해줬지 않은가.]

2편에는 자동차 추격신이 굉장히 많았다. 그래서인지 꽤나 고급의 승용차가, 물론 내가 아닌 나를 쫒아오는 이들에게 필요했는데 다행히 협찬사가 쉽게 잡힌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도 엄청나게 유명한 회사 포르쉐로.

[계약서에 보면 이번 프로모션 행사일정동안 자네가 포르쉐 측에서 제공하는 차를 이용해야한다는 게 있을 텐데. 자네가 기억할 테지?]

암요. 기억하고말고요.

계약할 당시, 나와도 연관된 조항이 있어 감독님과 더불어 현지 변호사로부터 전달받았던 기억이 있다. 그쪽에서 제공한 차를 프로모션 행사 때 무조건 사용하라는 내용을 말이다.

그런데 이건 내가 상상하는 그런 차가 아니었는지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신차라고 하던데 이름이... 2020 포르쉐 스파이더라고 하더군. 아! 참고로 전 세계에 5대 밖에 없는 한정판이라고......]

[하, 한정판이요?]

[제로백이 2.1초에 최고속도가 430KM 그리고...... 가격은 58억 정도 한다더군.]

제, 제로백이 뭐? 최고속도가 뭐?

아스라다 부스터가 몇 킬로였지? 아스라다?

순간 들려오는 숫자라는 게 너무나도 엄청나 어안이 벙벙했다.

[계약 조건을 이행하는 데 위반 사항이 없으면 프로모션 행사 후에는 이 차가 자네 것이 된다니, 너무 부럽네. 하하. 이거 남자로서 이런 고급 컨버터블은 로망 아닌가! 하하!]

하하. 로망? 미친.

[포르쉐 측에서 자네가 프로모션을 위해 국가를 이동할 때마다 이 자동차를 같이 운반할 수 있는 전용기를 보내준다고 하니, 얼마나 좋은가? 걱정하지 말고 타게. 아! 계약기간은 물론 6월 1일 부터네. 한국 프로모션 행사 때부터.]

나보고 지금 이걸 타고 다니라고? 경차를 타고 다녀도 들킬까 말까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게 이곳 한국인데, 이런 차를? 뭐 제로백이 2.1초? 58억?

[너무 좋아서 말이 안 나오는 모양이군. 하하! 그럴 만하네. 자동차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이번 포르쉐 한정판은 엄청나게 화제가 되고 있으니 말이네. 아마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걸세. 뭐 모르더라도 일단 포스 자체가 절로 드러나지 않은 가. 최고의 컨버터블이라는 게.]

뭐?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아? 참나. 누가 이런 차를 알아봐. 지붕 뚜껑 열리면 비싼 거니까, 다 똑같은 거지.

*

“대박. 저거 포르쉐 스파이더잖아. 올해 한정판!”

“뭐, 뭐? 미친. 저게 한국에 있다고? 전 세계 5대 한정판에 58억 하는데?”

“와... 때깔 봐라. 지린다. 지려.”

“미친. 저거 58억 줘도 못 사 인마. 얼마 전에 영국 후작인가 공작인가? 여튼 그 사람이 70억 까지 딜 했는데도 못 샀다고 기사난 거 봤......”

생각보다 우리나라사람들의 차에 대한 관심이 굉장함을 느꼈다.

“저거 제로백이 2.1초에 최고속도가 430KM......”

“풀 옵션까지 장착하면 공식 판매가만 해도 육식 몇 억 할 걸? 거기다 한정판 프리미엄까지 하면......”

이 정도 되면 내가 상식 이외의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이 차를 보는 순간, 그리 실제로 이 차를 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이 차의 진가를 잘 파악하고 있지 못했으니까.

[부우웅]

포르쉐 쪽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준 덕에, 값비싼 컨버터블, 스포츠카 등을 추격 신에 이용할 수 있었다. 웬만한 제작비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신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계약 조건을 어기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차를 몰고 나오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미친 듯이 쏟아지는 것을 느끼자, 이 생각이 조금은 퇴색되는 게 느껴졌다.

“오빠 저 차 예쁘다. 오빠도 저 차 사면 안 돼?”

“뭐, 뭐라고?”

“왜? 오빠도 외제차잖아. 같은 외제차인데 담에 차 바꿀 때 저런 거 사도 상관없지 않아?”

“이거랑 저거랑 같... 하아...”

“오빠 지금 나한테 신경질 낸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고 해인아. 해인아?”

뭔가 가만히 있다가는 횡단보도 옆에 서있는 커플에게 더욱 안 좋은 영향을 끼칠 것 같아 서둘러 액셀을 밝았다.

[부르릉]

“어, 어? 후우...”

아니 무슨 액셀 조금 밝았다고 속도 계기판이 백을. 하아. 됐다. 말을 말아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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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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