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77화 (477/502)

00477  2020  =========================================================================

#477

[호오... 이건 무슨 상황?]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이 여잔 누구야?]

누가 누구한테 할 말을 지금 하고 있는 건지.

[똑똑똑]

유지연에게 한참 마사지를 해주고 있을 때였다. 굉장히 실례가 될 타이밍에 들려온 문 두드리는 소리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래서 그냥 무시하려했다. 이내 이불로 몸을 가려버린 유지연이 아니었다면.

제길.

누군지는 몰라도 가만 안두겠다는 생각을 가득 담은 채 문을 열었고 그 결과 맞이한 상황이 바로 지금이었다.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절로 들릴 정도로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무엇보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나와 스테파니를 바라보기만 하는 유지연의 눈빛은 너무나도 싸늘했다.

[조나나가 그러던데? ‘리’가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인다고? 그래서 같이 술이나 한잔 하려고 왔더니...]

조나나 당신이 이 상황을 만든 근본 원인이란 말입니까.

고마움을 느꼈던 내 자신의 기억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싶었다. 후우.

[그 복장으로?]

[복장이 어때서? 술 마시다보면 ‘뭘 할지’ 어떻게 알고?]

[콜록 콜록]

이 년이 지금 누굴 죽이려고.

당황한 나머지 기침이 절로 나와 버렸다.

겉모습부터가 이상했다. 무슨 파티에 갈 것처럼 드레스를 입고 온 것도 모자라, 화장 또한 무척이나 진했으니까. 이건 누가 봐도, 술만 마시러 온 게 아니잖아. 제길.

*

“저기...”

원자폭탄이 투하되어도 이 정도의 분위기는 아닐 듯 했다.

[오늘은 선객이 있는 것 같네. 그럼 조만간 다시 올게. 뭐, 아님 네가 시간 될 때 언제든 와도 되고. 내 방 어딘지는 알지?]

조용히 닥치고 가도 수습 안 될 상황이건만, 묘한 여운을 남기는 멘트를 던진 뒤 사라져버린 스테파니 때문에 지금의 나는 살얼음을 걷고 있는 듯 했다.

“진짜 오해야. 아까 그랬잖아. 기분 좋아진 것 같아서 찾아왔다고. 사실 그동안 내가 조금 힘들었었거든. 그래서 동료 배우들이랑 촬영 외 시간에 술을 마신다거나... 후우 미안.”

테일러와의 대화도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정도인 만큼 유지연 그녀가 나와 스테파니의 대화를 알아듣지 못할 리 만무했다.

아니, 애당초 알아듣든 말든 그건 중요한 건 아니지. 그녀가 나를 찾아왔을 때의 복장과 와인, 와인 잔 2개를 들고 온 것만 봐도 상황을 모르는 게 이상했다.

“키가 꽤 크네.”

한참동안의 숨막힐듯했던 고요가 깨트린 것은 유지연의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키... 키? 으, 응. 키는 170 중반인 걸로...”

갑자기 스테파니의 키에 대해 언급하는 유지연의 말에 의아한 것도 잠시, 그 말이 담고 있는 무엇인가를 유추하느라 머리는 김이 날 지경이었다.

“가슴도 크고.”

“가, 가슴?”

“크네. 네가 좋아하는 가슴으로 할 수 있을 정도로.”

[콜록 콜록]

잊을만하면 나오는 가슴 타령에 정신이 몽해졌다.

“좋겠네요. 강지혁씨가 좋아하는 이상형이 제 발로 호텔 방까지 와서 유혹해주니까.”

하아. 세상은 썩었어.

*

“...... 코룬 섬에서 만났는데 여기서도... 진짜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진짜야. 성준이한테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어. 난 번호 받았는데, 바로 성준이한테 바로 넘겼다니까?”

그냥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정면 돌파. 그것 말고는 의미가 없을 듯 했다. 어중간하게 넘어갔다간, 그녀의 마음속에 털끝만큼의 불신이 자리 잡을 것만 같았으니까.

“근데... 자꾸 추파를 던지더라고. 난 유지연 밖에 없는데 말이야. 진짜야? 그러니까, 쟤가 막 갑자기...”

다소 진땀을 흘렸으나, 내 품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 효과는 있는 듯 했다.

그 다음부터는 비교적 쉬웠다.

다시금 그녀의 몸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지며 분위기를 회복시키는 것은 나의 전문이었으니까.

후우. 언제부터 이런 게 전문이 된 거냐. 참 나.

어쨌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몸에 내 체온을 더한 상태로 있다 보니, 어느새 내게 등을 돌렸던 그녀는 나를 마주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짜증나.”

호텔 룸이 얼어붙은 이래로 처음 건넨 단어가 ‘짜증나’라는 점에서 움찔하게 됐다. 설마 다시?

“저 여자지?”

“어? 어... 응.”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미 허락을 받았던 베드신의 상대방이 스테파니라는 점을 짐작한 듯, 유지연의 얼굴은 무척이나 어두워져있었고 또한 굳어져 있었다.

“베드신 대역 쓰라고 해.”

“어?”

이제와 바꿀 수 없는, 내 능력 밖의 사안에 대한 선택을 종용하는 유지연을 보며 미안함을 금치 못했다.

“바보야. 대역 쓰라고 하란 말이야.”

“미...안...”

내가 유지연이었더라도 이런 반응을, 아니 더한 반응을 내보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기적이게도 유지연에게 베드신을 하지 말라며 강요했으니까.

마음이 아팠다. 나 때문에 저렇게 아파하는 유지연을 보니까 더더욱.

그녀 또한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와 베드신 사안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떼를 쓰듯 대역을 요구하는 그녀의 모습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행동일 수밖에 없었다.

“대본 가져와.”

“응?”

“그 DVD용인지 뭔지 하는 대본 가져오라고!”

내게 불호령을 내리는 그녀의 날카로운 눈빛에 다시금 분위기가 싸늘해질까, 서둘러 아쉬움을 뒤로한 채 대본을 가지러 침대를 벗어났다.

하지만 그런 나의 아쉬움은 이내 예상치 못한 당혹감이 되어 나를 기쁘게 했다. 그것도 무척이나.

*

무엇인가 생각에 잠겨있는 듯한 유재연을 보는 그녀의 눈빛은 무척이나 흥미진진해보였다.

파리에서 개최될 K FESTIVAL의 공동 진행을 맡게 된 김다인 그녀로서는 파리에서 보낼 자유시간들보다 지금의 상황 자체가 더욱 재밌게 느껴졌다.

그런 그녀의 눈빛을 그리고 속내를 알기는 아는 걸까.

유재연 그녀는 방금 전 카페에서 주민지와 나눴던 대화를 계속해서 되뇌고 있었다.

[언니 진짜 대박이다. 하하... 진짜. 양심 있으면 지혁 오빠 얘길 꺼내지 말아야지. 그것도 내 앞에서. 나한테서 오빠 뺏어가 놓고 결국엔 오빠 차버렸잖아.]

[나랑 오빠사이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 놓았으면 잘했어야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어이없고 짜증나는 일이 바로 그거야. 오빠 뺏어놓고 결국엔 차버린 언니의 그 행동.]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혁 오빠가... 다시 오빠라고 부르라고 해서 너무 좋아. 연락 주고받을 수 있어서도 너무 좋고. 그러니까, 나한테 오늘처럼 이렇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지나가다 마주치면 소속사 선배, 후배 그 정도로 인사 주고받자.]

무엇이 그리 잘못된 일일까.

자신에게 고백하던 연습생 오빠의 고백을 받아버린 것이?

그게 잘못되었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로 인해 주민지 그녀가 연습생 생활을 쉬어야만 했다는 점은 미안했으나, 고백을 받아버린 행위 자체를 후회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행위 결과가 자신의 이별 통보로 귀결됐음이 후회됐다. 그때의 자신은 너무나도 어렸다고 그리고 그 선택으로 인해 지금까지 후회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지금에 와서 자신이 아직까지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할 수 있을까.

수백 번, 수천 번 생각했던 화제이기에 이런 고민이 의미 없음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녀는 수천 번에 또다시 하나의 생각을 더했다.

다른 사람을 만나보려고도 해봤다.

자신에게 다가온 잘생긴 보이 그룹 멤버,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예능계에서 날고 긴다는 최고의 개그맨.

자랑은 아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접근을 했고 사랑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사람들과의 관계를 오래 지속시킬 수가 없었다.

고백을 아예 받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고백을 받았음에도 그에게서 느꼈던 떨림과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는 게 문제였을 뿐.

한 달. 한 달도 못 되어서 그녀가 받아들였던 고백으로 이뤄진 관계는 모조리 무산되어야만 했다.

그녀가 그들에게서 느낀 것은 그저 친한 오빠, 동생 사이에서나 느낄 법한 감정들뿐임을 뒤늦게 서야 깨달았던 것이다.

“후우...”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간다면 그날 ‘대표실’을 찾았던 날. 그 선택을 하게 했던 그날의 기억이 다시금 떠오를 것 같아 두려웠다.

주민지 그녀가 했던 말.

[대표님한테 가서도 난 언니랑 오빠가 사귄다는... 말 안 했어. 언니 때문에? 아니, 오빠 위해서. 그런데 언닌! 후우... 됐어. 지금 와서 이런 얘길,]

[연습생끼리 연애하거나 싸움 일어나면 회사 나가야 될 수 있다는 거 알면서도 나 혼자 덤텅이 썼어. 오빠 그때 데뷔 팀에 막 들어갔던 때였으니까.]

그 말이 가슴에 깊이 박혔다. 주민지 그녀는 자신이 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할 거라 생각할 테지만, 이는 단지 주민지의 생각일 뿐이었다.

[이쯤에서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서로 이뤄야할 꿈을 이룬 뒤라면 상관......]

그녀 또한 똑같은 전철을 밟았었다는 것을 주민지 그녀가 안다면 조금은 그녀가 날 대하는 시선이 달라질까.

그날의 유난히도 무서웠고 또한 매서웠던 눈빛이 다시금 생각나 그녀는 자리에 앉아있질 못했다.

“다인아 언니 잠깐만 요 앞에서 바람 쐬고 올게. 멀리 안 나갈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그리고 그녀를 바라보는 다인의 눈빛은 더욱 빛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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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Groover 10 장 2017.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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