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5 2020 =========================================================================
#475
[프리티 걸즈! 프리티 스타의 정통 후예가 화려하게 비상하다! 미니 앨범 NICE OR BAD로 단숨에 방송 4사 1위를 차지하다!]
프리티 걸즈는 그 누구라도 부러워할 만한 결과를 자아냈다.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성공적인 데뷔를 이뤄낸 것이다.
그 덕에 그녀들은 데뷔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파리에서 열릴 K FESTIVAL의 초청가수로서 섭외될 수 있었다. 명실상부 월드스타로서의 발판을 단단하게 다질 기회를 얻은 터라, 프리티 걸즈의 앞길은 그 누가 보더라도 창창하길 의심하지 않았다.
“지영아? 그게 뭐야?”
“어? 언니. 잘 갔다 왔어요?”
공연은 며칠 뒤로 예정되어 있기에, 그녀들은 간만에 휴식시간을 맞이할 수 있었다. 매니저를 대동해야 했지만 그래도 파리를 둘러볼 수 있다는 점은 데뷔한 이래 계속해서 강행군을 펼쳤던 그녀들에게는 무척이나 반가운 꿀물과도 같았다.
“응. 그냥 에펠탑 근처 보다가 왔어. 그리고 이거.”
“어? 이건?”
“그... 강지혁 선배님이 우리한테 선물해주신 거 마카롱. 그 집도 잠깐 들렀어.”
“우와! 대박!”
“그런데 그건 뭐야?”
“이거 진짜 맛있... 어? 아! 언니. 이거 복권이요. 복권.”
“복권?”
확실히 뜬금없었다. 복권의 존재는.
몸이 조금 좋지 않아 호텔방에 남아있었던 지영의 손에 들린 것이 복권이라는 사실에 새연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 담겼다.
“이거 여기 호텔 매점? 거기서도 팔더라고요. 잠깐 우유 먹고 싶어서 갔는데, 거기서 막 엄청 유명하다고 해서 네 장 샀어요!”
“아. 혹시 유로잭팟?”
“어? 언니도 알고 있네요? 우와. 이거 진짜 유명한 복권인가보다.”
하지만 이내 지영의 손에 들린 복권이, 요즘 한창 붐을 일으키고 있는 복권 유로잭팟임을 알게 된 후로 그녀의 그러한 의아함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유럽 17개국이 참여해 발행하는 연합 복권 유로잭팟이 9개월(43주) 연속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4000만 유로(한화 약 480억 원)으로 시작한 1등 당첨금이 14억 4천만 유로(한화 약 1조 7300억 원)까지 치솟았다. 역대 2위에 달하는 (1위는 미국 파워 볼 누적 당첨금 1조 9800억 원) 누적 당첨금에 1주마다 800억 가량의 복권 당첨금이 쌓일 정도로 사람들의 유로잭팟 복권 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5월의 끝까지 복권 당첨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누적 당첨금은 2조를 넘어설 것으로......]
2조에 가까워진 복권 당첨금.
요즘 인터넷에서도 그리고 뉴스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소식 중의 하나로서, 유로잭팟은 유럽뿐만 아닌 전 세계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이슈로 자리 잡았다.
계속해서 등장하지 않은 당첨자로 인해 당첨금은 계속해서 쌓여갔고 이로 인해 더욱더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구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거 당첨되면 대박이겠죠?”
“그래. 진짜 대박이긴 대박이지.”
“여기 언니도 한 장!”
“응?”
“대신 번호 찍긴 했어도 언니들이랑 민지랑 해서 1장씩 주려고 4장 샀어요. 헤헤.”
유럽, 비유럽을 가리지 않고 관광객들은 관광 기념품으로 한, 두 장 가량을 그리고 현지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기적으로 복권 구매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빈번하게 보도된 만큼 그녀 또한 지영이 건넨 복권 한 장을 절로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에이. 언니도 멤버들 먹으라고 마카롱 사왔잖아요. 얼른 받아요!”
“어. 어? 응. 그래. 고마워. 지영아.”
“헤헤...”
서로가 서로를 위한 마음. 마카롱과 복권 한 장 정도야 대수롭지 않은 물건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멤버들을 위해서 각자가 무엇인가를 준비했다는 점에서 어째서 그녀들이 프리티 걸즈라는 울타리 안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는지가 드러났다.
그렇게 지영과 새연은 한동안 침대에 나란히 누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지영의 눈에 보지 못했던 비닐 백이 들어온 것은.
“응? 언니 근데 이건 또 뭐에요?”
“뭐가? 에, 에? 지영아 그건...”
비닐 백에 손이 가자마자, 당황하는 새연의 모습에 지영의 행동이 보다 과감하고 또한 재빨라졌다.
“우와. 언니 운명의 전쟁 기념품점 갔다 왔어요? 대박!”
운명의 전쟁.
스톡홀름, 코펜하겐, 헬싱키 그리고 파리, 런던.
5개 지역에만 존재하는 운명의 전쟁 공식스토어는 운명의 전쟁 팬들이라면 꼭 한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선정된 기념품 가게였다.
“나도 진짜 가보고 싶었는데!”
운명의 전쟁과 관련된 각종 기념품들은 영화가 거둔 성공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는데, 그런 공식 스토어를 새연이 다녀왔다는 사실에 지영의 입에서 부러움의 목소리가 나온 것은 결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근데 언니 기념품이 다...”
하지만 그녀의 기념품들이 무척이나 ‘어느 한 인물과 관련된 것들’ 뿐이라는 게 새연을 당혹케 한 이유가 되고 말았다.
“강지혁 엽서에 강지혁 열쇠고리 그리고 강지혁 피규어... 강지혁 포토카드에... 언니?”
“으, 응?”
“강지혁 굿즈 밖에 없네요? 히히.”
새연이 가수이자 배우인 강지혁의 엄청난 열혈 팬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아니, 프리티 걸즈 멤버들 전부가 강지혁의 열혈 팬인 만큼 오히려 모르는 게 이상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지영의 얼굴엔 부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만큼 새연이 사온 기념품들은 그녀가 보기에도 무척이나 갖고 싶은 것들뿐이었으니까.
“6월에 영화 개봉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때 한국에도 올 거니까... 혹시 알아요? 강지혁 선배님이 우리 시사회 초대해주실지?”
“그, 그럴까?”
“그럼요. 그나저나, 나도 운명의 전쟁 스토어 가고 싶었는데! 언니 혼자만 가고! 치...”
자신을 흘겨보는 지영에게, 내일도 시간되면 같이 들르자는 말을 건네는 것으로 새연은 위기 상황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지영 또한 장난으로 건넨 원망스러운 눈빛이었기에, 그런 새연의 의도를 못이기는 척 넘어가 주었다. 이내 생각보다 늦는 다른 두 멤버들의 말을 꺼내면서.
“그나저나 민지랑 채연 언니는 늦네요?”
“채연이는 곧 올 거야. 방금 전에 전화했을 때, 엽서 보낸다고 우체국이라고 했거든. 그리고 민지는.”
“...... 선배님이랑 같이 있는 거 봤어. 여기 호텔 카페에서. 그래서 언제 올지는 모르겠네?”
“아, 그래요? 그럼 걱정 없겠다. 히히. 그럼 내일 가서 나는 뭘 살까나.”
“가보니까, 피규어도 엄청 많고 운명의 전쟁 지도랑......”
그렇게 그녀들은 다시금 운명의 전쟁과 관련된 얘기를 주고받는데 열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의 대화에 강지혁이 맡은 배역 ‘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척이나 컸음은 무척이나 당연한 일이었다.
*
“오랜만이네.”
한동안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은 테이블의 고요를 깨뜨린 것은 유재연이었다.
파리의 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도시의 야경이 호텔 카페 너머로 펼쳐졌지만, 그들이 머문 자리만큼은 유난히도 삭막함이 느껴졌다.
“그러게.”
레전드 걸 그룹 멤버에서 이제는 연기자로서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고 있는 유재연은 이번 K FESTIVAL 진행을 맡아 파리로 오게 됐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할까?]
그리고 주최 측에서 배정해준 호텔에 들어가려던 그녀의 두 눈에 익숙한 이가 들어왔다는 점이 지금의 자리를 만든 계기이자 모든 원인이었다.
“노래 잘 듣고 있어. 대단하더라.”
“응. 고마워.”
JS ENTERTAINMENT 소속으로서 적지 않은 기간 동안 연습생 생활을 공유했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 두 사람의 사이는 좋다고 보기 애매했다.
“무슨 일이야?”
“응?”
“할 말 있어서 부른 거 아니었어?”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거쳐야만 했던 연습생 생활을 잠시 쉬어야만 했던, 그 근본 원인 자체가 유재연 그녀였기에 주민지의 얼굴엔 의아함이 가득했다. 같은 회사임에도 서로가 서로를 피해왔던 둘 사이에서 확실히 자신을 붙잡은 유재연의 행동은 의외였으니까.
“오빠가 잘 챙겨줬다고 들었어.”
“오빠?”
“오빠가 프리티 걸즈 숙소부터,”
“설마... 지혁 오빠 말하는 거야?”
두 사람 사이의 공통분모가 등장하자, 주민지의 얼굴이 자연스레 찌푸려졌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이기도 하거니와, 주변의 시선도 있어 되도록 거리낌을 참으려 했던 주민지의 인내심이 바닥나버린 것은 바로 그때부터였다.
“언니 진짜 대박이다. 하하... 진짜. 양심 있으면 지혁 오빠 얘길 꺼내지 말아야지. 그것도 내 앞에서.”
“민지야...”
“나한테서 오빠 뺏어가 놓고 결국엔 오빠 차버렸잖아.”
“민지야. 그건!”
“나랑 오빠사이 돌이킬 수 없게 만들어 놓았으면 잘했어야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일 어이없고 짜증나는 일이 바로 그거야. 오빠 뺏어놓고 결국엔 차버린 언니의 그 행동.”
꿈을 이루기 위해서 거쳐야만 했던 고된 연습생 생활. 그 생활의 유일한 낙을 뺏어간 주제에,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을 박살내버린 주제에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아픔을 줬다는 것이 주민지 그녀가 유재연 그녀를 향해 가지는 적대감의 근본 원인 그 자체였다.
“대표님한테 가서도 난 언니랑 오빠가 사귄다는... 말 안 했어. 언니 때문에? 아니, 오빠 위해서. 그런데 언닌! 후우... 됐어. 지금 와서 이런 얘길,”
“민지야.”
“연습생끼리 연애하거나 싸움 일어나면 회사 나가야 될 수 있다는 거 알면서도 나 혼자 덤텅이 썼어. 오빠 그때 데뷔 팀에 막 들어갔던 때였으니까.”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사안이, 회사 차원의 일로 커져 결국엔 그녀 자신이 휴식을 종용받기까지 했었기에 주민지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갓 데뷔한 신인 그룹으로서 파리에서 열릴 K FESTIVAL에 참가하게 됐다는 사실로 너무나도 기분이 좋았던지라, 이 기분을 그녀는 더 이상 망치고 싶지 않았다.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혁 오빠가... 다시 오빠라고 부르라고 해서 너무 좋아. 연락 주고받을 수 있어서도 너무 좋고. 그러니까, 나한테 오늘처럼 이렇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지나가다 마주치면 소속사 선배, 후배 그 정도로 인사 주고받자.”
“어? 언니? 응? 민지?”
“다인 언니 왔네. 선배님 그럼 저 먼저 가 볼게요. 수고하세요.”
때마침 유재연과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다인을 보았는지라, 주민지 그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니, 안녕하세요.”
“민지야 반가워. 어? 근데 가려고?”
“네. 언니. 멤버들이랑 맞춰볼 게 있어서요.”
“혹시 나 와서 그런 건 아니지?”
“아니에요. 언니. 그럼 다음에 봐요. 언니.”
“그래. 잘 가!”
뭔가 의뭉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다인을 유재연은 바라보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정면만을 바라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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