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72 2020 =========================================================================
#472
“지영아 뭐해?”
“엄마야!”
연습실 바닥에 엎드려있는 지영이 화들짝 놀라자, 덩달아 질문을 던졌던 새연 또한 놀라고 말았다.
“언니, 그게 연습하다가 잠깐 쉬려고 핸드폰 꺼낸 건데... 진짜로.”
노래와 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아직까지 많은 부족함을 보이고 있는 지영이었기에, 그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 더욱이 리더로서 연일 멤버들의 연습을 감독하기까지 하는 새연의 철저함까지 더해졌는지라, 지영은 아침 일찍 연습실로 나와 저녁 늦게까지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워야만 했던 것이다.
“진짜. 방금 전까지 계속 연습했어요! 오전에 보컬 선생님이랑 연습하고 와서 춤 연습 잠깐 하다가 진짜 잠깐 쉬려고 한 거에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자신이 쉬고 있다는 것을 더욱 변명하려는 듯 했다. 그 대상이 리더이자, 메인 댄서인 새연이어서 그런 것도 있고.
“알았으니까, 편하게 쉬어.”
“진짜 잠깐 쉬... 에? 네?”
“언니는 지영이 믿으니까.”
지영이 정말 많이 노력한다는 것을 새연 그녀 또한 모르지 않았다. 애당초 지영이 노력의 아이콘으로서 대중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 프리티 스타에 합류할 수 있었던 멤버였기도 하거니와, 그녀 자신이 느끼기에도 지영의 실력은 하루, 하루 빠르게 늘어갔기 때문이다.
“헤헤... 언니. 헤헤...”
민지와 채연은 그제부터 듣기 시작한 작사와 작곡 수업 때문에, 아직 자리에 없는 듯 했는지라 새연 또한 지영의 옆에 나란히 엎드렸다. 어차피 다 같이 밥을 먹으러 가야했기도 했거니와, 지금 상황에서 다시금 춤이나 노래 연습을 하기엔 시간 자체도 애매했으니까. 뭐, 휴식 또한 연습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기도 했고.
“그런데 뭐 보고 있었던 거야?”
“아! 참! 언니 이것 좀 봐요.”
화제가 지영이 바라보고 있던 스마트 폰으로 이동한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자신이 가까이 다가와 말을 걸기 전까지, 자신의 인기척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지영을 몰두하게 만든 것에 대한 궁금증을 새연은 피해가지 못했다.
[아쉽게 최종예선에서 탈락하고 만 여자배구대표팀이 강지혁의 전용기에? 오늘 오전 인천국제공항......]
[......통역사도 없이 그리고 신장이 긴 배구 선수들에게 이코노미 석을 준비한 협회 측의 빈약한 지원 속에서 대표팀은 엔트리도 자 채우지 못한 채...... 우연히 촬영 차 뉴질랜드에 있었던 강지혁이 이 광경을 목격한 뒤, 자신은 LA행 비행기를 따로 끊고 대표팀 선수들을 자신의 전용기로 서울까지...... 이러한 선행이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의 주장이자 세계 최고의 배구 선수인 김유경 선수로 인해 밝혀져, 협회는 대대적인 비난 여론에 곤란함을......]
[그런데 강지혁이 뉴질랜드에 있었다는 사실은 JS ENTERTAINMENT가 제공하는 공식 스케줄 표에는 드러나 있지 않은 부분인지라 일각에서는 의아함이 터져 나오고......]
협회의 빈약한 지원에 여자 배구대표팀이 최종예선에서 아쉽게 탈락하고 말았다. 협회 측 인사 그리고 감독, 코치들에게는 비즈니스 비행 티켓을 마련해줬지만, 정작 경기를 뛰어야 할 선수들은 다리도 펴지 못한 채 비행기를 타야만 했다. 그런데 강지혁이 자신의 전용기를 이용해 여자 배구대표팀이 편안하게 귀국할 수 있도록 해줬다.
기사의 내용은 간단했다. 하지만 기사 내용에서 언급된 강지혁이라는 사람은 그녀에게 있어 간단할 수 없는 이였다.
“대박이죠? 역시 갓지혁! 근데 뉴질랜드에는 왜 갔을 까요?”
“으, 응? 응... 글쎄?”
지금의 프리티 걸즈가 있게 만들어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두가 다 알았다. 공식적으로 발표는 되지 않았지만,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당장 그녀가 머물고 있는 숙소 자체가 예전 프리티 스타가 사용하던 숙소였고 이는 바로 그의 것으로 알려진 집들 가운데 하나였으니까.
“언니들! 밥 먹으러 가자! 얏호!”
“오늘 식당 메뉴 불고기야! 불고기!”
때마침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채연과 민지의 힘찬 외침에 그녀는 상념에서 빠져나와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그에게 가지고 있는 고마움 그리고 열심히 해야 겠다는 의지가 무뎌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의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그리고 또한 굳게 만들었을 뿐.
*
운명의 전쟁.
판타지 영화 팬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껏 받고 있는 작품.
마법사 가르드 역을 맡은 조나나 맥컬린 그리고 두네달인 아리신 역을 맡은 소린 모르텐을 시작으로 고르단의 전사 바라밀 역을 맡은 숀 스턴과 드워프 팔만 역을 맡은 스탠리 듀크가 등장한 두 번째 예고편까지 공개되자, 네티즌들은 속칭 ‘쌌다’, ‘지렸다’, ‘팬티 갈아입자’ 등의 반응을 내보일 정도였다. 작품에 걸고 있는 기대에 어울리는 2편의 예고편 영상에 대중들의 관심이 극대화 된 것이다.
따라서 운명의 전쟁 측이, 1월 24일 개봉에 앞서 오는 1월 17일 공개하겠다고 한 마지막 3번째 예고편은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세계인들의 기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후 11시 55분.
1월 17일 자정을 앞둔 한국 사람들 또한 세계인들과 마찬가지로 기대에 찬 시선으로 운명의 전쟁 공식 사이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들이 일본과 한국에서 동시 개봉하는 것이 유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흔해졌기에, 한국 사람들 또한 한국 시간 기준으로 마지막 예고편이 공개되는 것에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오후 11시 58분.
제작진 측이 밝힌 주연 배우는 6명. 따라서 마지막 세 번째 예고편은 두 명의 주연 배우를 소개함이 분명했다.
엘라인 역을 맡은 스테파니 팔빈.
불그스름한 머리카락 누가 봐도 아름다운 몸매와 외모를 지닌 최정상급 모델 출신의 배우. 이미 익히 알려진 출연진이었기에 세 번째 예고편의 주연배우 2명 가운데 1명은 그녀임이 확실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엘프 엘라인 역을 맡은 스테파니 팔빈과 같이 소개될 마지막 주연 배우에 대해서 자연스레 보다 큰 관심을 내보였다.
오후 11시 59분.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기대 또한 엄청났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시각으로 자정이 되어 모두가 기다리던 1월 17일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기쁨과 탄성을 내뱉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 영화. 영화 스타워즈의 각본을 맡으며 세계 최고의 SF 작가로 등극한 스테인 루카스가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며 자신했던 영화 운명의 전쟁.
따라서 지금까지의 예고편을 보자면 주변 환경도 환경이거니와, 등장인물들의 복장 또한 유럽 중세의 색깔이 짙었다. 그런데 마지막 예고편은 이런 사람들의 예상을 너무나도 뛰어넘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스테파니 팔빈과 함께 등장한 이의 모든 것들이 그런 색깔과는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었다. 도저히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우리들이 모르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영원한 삶은 우리들에게 무한한 지혜와 축복을 가져다주었죠. 당신네들 같은 필멸자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뭐, 그러니 카린이니 뭐니 하는 그런 헛소리를 하는 거겠죠.]
“한(恨). 날 때부터 신의 축복을 받아 죽지 않는 영원불멸한 삶을, 그것도 어느 것 하나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당신네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알고자하는 의지만 있다면 우리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죠. 그게 필멸자들이 가질 수 없는 축복이자, 우리들이 지닌 무한한 지혜의 원천이죠.]
“만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기에 도리어 결코 깨달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내 사람들이 가슴 깊이 새겨둔 한(恨)입니다. 나는 생사고락의 (生死苦樂) 일면만을 바라 볼 수밖에 없는 당신네들의 삶이 축복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엘라인 역을 맡은 스테파니 팔빈과 번갈아가며 등장하는 두 배우의 독백. 다른 게 있다면 전자는 한글 자막이, 다른 한 쪽은 영어 자막이 깔려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지막 6번째 주연 배우의 모습이 예고편 화면상, 무척이나 멀리서 잡혀있어 자세한 얼굴은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자.
희한하게 생긴 신발과 전체적인 복장.
그리고 무엇보다 그 배역을 맡은 이가 동양인이라는 점.
등으로 인해 사람들의 놀람은 상상 그 이상에 치달았다.
아시아를 제외한 전 지역의 사람들은 마지막 예고편의 마지막 주연 배우로 등장한 이의 색다르고 낯설게 느껴지는 복장에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다. 아니,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지역 또한 마찬가지였다. 동양인이 서양 판타지 영화에 등장했다는 점과 더불어 그들에게조차 마지막으로 소개된 주연 배우의 옷차림은 낯설게 느꼈으니까.
한국 네티즌들은 다른 면에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건... 보부상? 아니, 미친 지금 운명의 전쟁 예고편 보고 있는 거 맞지? 하, 한국말이 들렸어?’
‘저거 뭐라고 했지? 아! 맞다! 패랭이!’
‘미친! 운명의 전쟁에 패랭이가? 뭐야, 저거? 이거 실화냐?’
동양인이 등장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동양인이 너무나도 익숙한 옷차림으로 한국말을 하며 등장했다는 점은 그들 모두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이내 클로즈업 된 마지막 인물의 얼굴이 배우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을 정도가 되자, 사람들은 국적을 가릴 것 없이 한 마음이 되었다. 그리고 이는 시간과는 상관없이 세계 각국의 기자들을 무척이나 분주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
[루머로 취급되었던 운명의 전쟁 동양인 배우 출연설이 사실로 드러나! 그런데 그 배우가 강지혁? 패랭이 복장에 괴나리봇짐, 짚신을 신고 등장한 강지혁의 모습에 전 세계가 깜짝 놀라!]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한 판타지영화에 동양인이? 보부상 차림으로 잘 알려져 있는 복장으로 운명의 전쟁 세 번째 예고편의 마지막 주연 배우로 등장한 강지혁에 대한......]
[전 세계를 놀람과 경악으로 가득 채워버린 운명의 전쟁 세 번째 예고편이...... JS ENTERTAINMENT 측에 따르면 강지혁은 미스터 지 후속편 촬영과 정규 앨범 발매 와중에도 영화에 꼭 출연해달라는 피터 제이크 감독의 러브콜을 거절하지 않았고 이에 살인적인 스케줄을...... 뉴질랜드에서 있었던 여자배구팀과의 일화 또한 10일 간의 운명의 전쟁 촬영을 끝마치고 미스터 지 촬영을 위해 LA로 이동......]
기사들을 보고 놀라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는 예상한 반응이었다. 운명의 전쟁이라는 영화가 대중들의 엄청난 기대를 받고 있다는 점이 예상한 선보다 조금 더 과한 반응을 자아냈으나, 영화에 대한 관심을 생각하면 그다지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 강지혁 운명의 전쟁 출연 지렸네. 지렸어.
- 강지혁 철인임? 정규 앨범 발매에 미스터 지 촬영 거기다 운명의 전쟁까지? 미쳤네. 진짜.
- 운명의 전쟁 측에서 1부 강지혁 분량 별로 없다고 하던데, 그래서 가능했을 듯.
- 가능은 무슨. 분량 별로 없어도 뉴질랜드까지 가서 찍었는데, 미스터 지 영화 촬영 생각하면 확실히 무리는 무리지. 그나저나 엘라인이라 뭔가 썸씽있는 거 아님? 독백장면 지나고 나서 엘라인이 강지혁 뒷모습 계속 막 아련하게 쳐다보고 있고.
그러게요. 그렇게 무리가 가는 걸 제가 또 해냈네요. 해냈어.
무리를 뛰어넘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내고 있었고 또한 앞으로도 소화해야했는지라 그런 내 노력을 알아주는 댓글들을 보니 절로 위안이 됐다.
- 저게 한국 전통 복장이라던데?
- 나 한국 사람인데, 저 모자는 패랭이라고 신분 낮은 사람들이 쓰는 모자에요. 그리고 신발은 볏짚으로 만든 전통 신발, 가방은 괴나리봇짐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한국 전통 가방이에요. 이것들 전부가 신분 낮은 사람들이 쓰던 거라서... 음... 그냥 한국의 수백 년 전 보따리 장사꾼 복장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 오! 땡스! 코리언!
아직 영화가 개봉되지 않았기 때문에 해외 댓글들 또한 한국 포털 사이트 댓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내 복장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놓고 있다는 점이겠지만.
- 갑자기 아시안이 왜 나와? 짜증나게. 한국 놈들한테 투자 받았나?
- 퀄리티 떨어지게 지금 무슨... 하아... 제길.
- 이런 대작을 캐스팅으로 망쳐버리다니! 제길! 이것만 기다렸는데!
물론 나의 캐스팅과 관련되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들도 꽤나 많았다. 아무래도 영화 자체가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판타지 영화를 표방했기에, 저들 또한 꽤나 곤혹스러울 것이다.
정통 중세 판타지 영화를 기대했는데, 6명의 주연 배우를 소개하는 가운데 아시안 배우가 등장해버렸으니까. 그것도 악역이 아닌 역으로 말이다.
이는 중국 자본이 할리우드에 진출하여 이뤄낸 굉장한 성과들 때문에 더욱 심해진 감도 없진 않았다.
중국 자본에게는 무척이나 미안한 말이지만, 각본 개입, 캐스팅 개입 등 중국 자본이 이뤄낸 굉장한 성과들은 할리우드 영화판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대단한 성과를, 엄청난 수의 엉터리 영화들을 양산해내는 주범으로 여겨질 정도였다. 따라서 이 같은 이유들로 인해 할리우드에 대한 중국 자본의 진출을 꺼려하는 이들이 생각보다 많을 수밖에 없었다.
뭐, 여기서는 나의 출연을 한국 자본의 진출로 이해하는 듯 했지만.
어쨌든 내가 나서서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실제로 한국 자본이 들어간 것도 아니기에, 감독을 포함한 제작진들의 역량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내 자신의 연기력도 믿어야 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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