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71화 (471/502)

00471  2020  =========================================================================

#471

[뭐해?]

[어, 시상식 곡 작업... 에?]

[시상식? 아! 그래미?]

언제 내 트레일러에 들어왔는지. 나 참.

갈수록 격의 없게 대하는 그녀를 보자니,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사람이 저렇게 적극적이기 힘든 데 말이야. 허허.

[오늘 뉴욕 간다고 하지 않았나?]

[응.]

[그런데?]

[작별 인사하러왔지.]

어휴. 친절하고 다정도 하셔라. 굳이 작별 인사까지.

지난 10여 일간의 촬영을 끝으로 1부 촬영이 모두 끝나, 출연진들 모두에게 잠깐의 휴식이 주어졌다. 1부 홍보 활동을 위해 20여 일 동안 전 세계를 쏘다녀야 할 배우들에게 일주일 남짓한 휴가일수는 무척이나 꿀맛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런 휴가와는 상관없이 바로 미스터 지 촬영에 복귀해야 할 테지만.

어쨌든 다른 배우들과는 아까 마지막 신을 마칠 때, 작별 인사를 건넸는지라 굳이 이곳까지 와 다시금 작별 인사를 운운하는 스테파니 팔빈 그녀의 의도가 심히 의심스러웠다.

[쪽]

그리고 그 의심은 이내 충격적인 결과로 드러나고 말았다.

순간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녀에게 인사를 건네고 다시금 악보에 집중하려던 찰나에, 기습을 당해버렸으니까.

[너, 너...]

[후훗. 다시 볼 때까지, 안녕? 바이. 바이!]

게다가 기습이 성공했다는 점에 만족한 듯, 서둘러 트레일러를 나서는 녀석 때문에 더욱 혼란스러웠다. 하아. 죽었다. 난.

“지혁아 여기 고기가 전체적으로 싸네. 오늘 소고기 배 터질 때까지... 아! 그리고 지혁아. 방금 네 트레일러에서 그 스테파니... 에? 지혁아? 너 볼에 그거?”

얼씨구?

쥐 잡아 먹었단 듯이 새빨간 립스틱을 칠한 이유가 있었다는 듯 석현 형의 놀란듯한 얼굴에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빼도 박도 못한 상황. 함정에 빠져버렸다.

You Just Activated My Trap Card.

스테파니 팔빈의 의기양양한 얼굴 표정이 절로 상상됐다. 미치겠네. 진짜.

“너... 저 여자랑?”

아니, 뭐래. 진짜. 안 그래도 머리 복잡해죽겠는데.

*

[120만 명이 넘는 시리아 난민을 받아들인 독일 사회가 좀처럼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 140억 유로에 이어 올해 180억 유로 상당의 재원이 소모...... 여타 유럽 국가들이 난민 수용에 난색을 표하면서, 난민들의 행선지는 또다시 독일로 쏠릴 것으로 예측돼, 이것은 독일 사회의 혼란을 더욱 가속화......]

[충무로 보증 수표 최주학이 한국형 블록버스터 신작 ‘4차원 세계’에 캐스팅 된 것이 뒤늦게 알려져! 300억에 달하는 제작비를 자랑하는 ‘4차원 세계’는 작년 초부터 촬영에 들어가 올해 6월에서 8월 사이, 극장가 초성수기 때 개봉할 것으로...... 최주학과 더불어 그룹 TWINKLE의 멤버인 박주현이 이번 영화에서 파격노출 연기를......]

[프리티 스타 팬들에게 최고의 연말 선물을 안겨다준 프리티 걸즈! 김새연, 윤채연, 이지영, 주민지 4인조 멤버 확정! 내년 상반기 데뷔를 목표로 멤버들 모두가......]

이곳에서의 10여 일 동안 지내면서 처음으로 제작진이 마련해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배우들과의 호흡 그리고 촬영장 분위기 적응 등을 이유로 개인 트레일러에서 거의 모든 밤을 보냈기 때문이다.

뭐, 트레일러의 시설 자체가 워낙 좋아 호텔방에서 지내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단지 트레일러가 있는 촬영장보다 공항에 가깝다는 점 뿐.

어쨌든 아침 조식을 먹으며 기사들을 슬쩍 보니, 기분 좋은 기사가 눈에 보여 하루를 제법 산뜻하게 보낼 수 있을 듯 했다.

- 핰핰핰... 프리티 걸즈 BAD MAN 지렸구여. 오졌구여. 쌌음... 하아... 미쳤다. 진짜. 프리티 걸즈가 아니라 프리D 걸즈? 핰핰핰...

- 진짜 저질이네... 프리티 스타 노래 4곡이나 무대에서 했는데, BAD MAN 무대보고 프리D 걸즈? 그런 소리가 나옴? 나옴... 무조건 나옴. 두 번 나옴. 세 번 나옴. 계속 나옴. 하앜하앜... 진짜 미드 저거 진짜... 와... 앨범 나오면 무조건 산다. 두 번 산다. 세 번 산다. 흐읔ㅋㅋㅋㅋ

- 프리D 걸즈 ㅋㅋㅋㅋㅋ미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일 윗분 최소 배우신 분 ㅋㅋ

프리티 걸즈가 생각 이상으로 사람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는 점. 그 점만으로도 기분이 좋았지만, 뭔가 댓글들이 심히 19금 이었는지라 인상이 살짝 찌푸려졌다. 하지만 이내, 기사에 첨부된 사진들을 보자마자 기분 나쁘게도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말았다.

- 여정아... 여정아... 흑흑... 미안하다. 나도 어쩔 수 없는 남자 인가봐.... 차이가 나도 너무... 어느 정도껏 차이가 나야지... 여정이 5명 모여도 주민지 한 명한테... 하앜...

- 주민지는 혼혈이어서 그렇다쳐도 진짜 나머지는 뭐임 ㅋㅋㅋㅋㅋ 저게 의젖이 아니라는 게 대박이다. 와... 키는 김새연 160초, 주민지 160 중후반, 이지영, 윤채연 160 초중반. 이렇게 있어서 솔직히 주민지 빼고는 다 큰 편은 아닌데, 다들 비율도 쩔고 미드도... ㅋㅋ 진짜 프리D 걸즈 ㅋㅋㅋㅋㅋㅋ 솔까 D는 아니고 B나 C쯤 되는 것 같은데... ㅋㅋㅋ 근데 프리D 걸즈가 입에 쫙쫙 감기네 ㅋㅋㅋㅋㅋ 미친 ㅋㅋ

축복.

축복을 받았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까. BAD MAN 안무를 하다 찍힌 사진인 듯, 사진은 무척이나 바람직했다. BAD MAN에 어울리는 가죽 재킷에 딱 달라붙는 스키니 진. 이것만으로도 프리티 걸즈가 지닌 매력이 너무나도 돋보였던 것이다.

프리D 걸즈. 크흠. 누가 지었는지는 몰라도 참. 크흠.

- 2년 동안 알바 하면서 쉬었다더니, 윤채연 실력 어디 안 갔네. 하는 것 보니까, 진짜 잘 할 듯. 채연아 응원할게. 프로젝트 데뷔 시즌 2때부터 응원했던 오빠가.

- 확실히 안정감이 있네. 김새연 댄스 실력이야 뭐 프리티 스타 원탑이었고 거기에 윤채연 보컬까지 곁들여지니까... ㅎㄷㄷ. 거기다 윤채연, 김새연 둘 다 보컬, 댄스 만능이고, 주민지도 그렇고......

- 이지영도 진짜 연습 많이 한 듯. 오늘 무대 펼친 거에서 어색한 거 솔직히 없었음.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족한 점 많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하는 거 아니까, 데뷔 앨범 진짜 기대 많이 된다. 컨셉 뭘까? 하아... 용돈 모아야 겠다. 앨범 사려면.

그래도 몸매와 관련된 댓글들만 있는 게 아니어서 그런지, 19금 댓글들을 마냥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여자 아이돌로서 남성들의 이런 관심은 피할래야 피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한동안 프리D 걸즈, 아니 프리티 걸즈와 관련된 기사를 보았다.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열심히 노력하여 또다시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시 동안의 휴식을 내게 선사했다.

“지혁아?”

“어?”

“그게 지혁아.”

이내 석현 형이 음식을 가득 담아 테이블로 도달하자, 나 또한 핸드폰을 내려놓은 채 서둘러 포크를 들었다. 어제 저녁을 많이 먹긴 했지만, 석현 형을 기다리느라 음식들을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제법 허기가 졌다.

“아, 왜. 또. 어제 진짜 오해였다니까?”

“어? 아니, 그게 아니,”

“몇 번을 말해. 또. 아 진짜 이 사람이! 아무 사이 아니라고!”

어제 하루 종일 오해를 풀기 위해 꽤나 애를 써야만 했다.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가 볼에 남아있었는지라, 석현 형은 도무지 내 말을 믿으려 하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아니, 자꾸 뭘 믿으래, 다른 사람들한테 말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사실이 아닌데. 나 원 참. 하아. 그때 생각하니까, 또 현기증 나네. 진짜.

“그게 아니라니까?”

“아무 사이 아니고 그냥... 어?”

그런데 또다시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하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잘못 집은 듯 했다.

“그... 올림픽 준비 위원회에서 너한테 홍보대사를 해달라고 요청이 왔다는데, 이거 대표님이 너한테 직접 물어보고 빨리 답변 달래. 어떻게 할래?”

에? 올림픽?

아니 뜬금없이 무슨 올림픽 타령이야, 지금 내 스케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

“그래, 나도 안 될거라 생각했는데, 일단 대표님이 너한테 직접 물어보라셔서. 그럼 안 된다는 걸로 한다?”

촬영 때문에 운명의 전쟁 홍보 활동도 같이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금의 내 처지가.

비록 3시간가량의 상영시간 가운데, 내가 등장하는 부분은 영화의 마지막 30분을 남겨둔, 꽤나 뒤쪽 부분인지라 딱히 1부의 홍보 활동을 같이 하지 않아도 상관은 없겠지만 2부의 분량을 생각한다면 상식적으로 같이 홍보 활동을 하는 게 맞았다. 그래서 그러지 못해 제작진들과 동료 배우들에게 많이 미안했고.

“한국 골든 디스크랑, HCA 그리고 일본 골든 디스크, 그래미 어워드까지... 지금 하는 것도 너무 벅차. 게다가 그래미 어워드 말고는 직접 참석도 못하잖아.”

“그래, 그래. 네가 한다고 했어도 내가 말렸을 거다. 그러다 너 죽겠더라. 죽겠어.”

“하계에 하기는 해도 그때 되면 미스터 지 홍보 활동이랑 운명의 전쟁 2부작 촬영 때문에 또 눈코 뜰 새 없이... 아니, 그냥 이번 해 자체가 바빠. 그러니까,”

“알았어. 알았어. 대표님한테 내가 강력하게 말한다. 그러니까, 너 좀 쉬고 있어. 공항까지는 그래도 시간 꽤나 걸리니까.”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올림픽 홍보대사, 그것도 한국이 아닌 일본의 올림픽을 한국인인 내가 맡는 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라 결정을 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자, 그럼 지혁아 먹어라. 네가 말한 거 대표님한테 형이 다 말할 테니까.”

뭐, 일과 관련된 것은 도쿄 올림픽 건이 유일했던 모양이다. 이내 석현 형 또한 포크로 연신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공략하기 시작했으니까.

“맛있네. 어? 근데 형은 더 안 먹어? 설마 그게 끝? 레알?”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음식들을 집어먹던 형이 채 몇 개를 입으로 넘기기도 전에 포크를 식탁으로 내려놓았다.

아니, 접시 두 개에 음식이란 음식은 가득 담아서 온 사람이, 무슨 입이 그렇게 짧아? 아니, 안 본 사이에 식욕도 바뀐 거야? 이 사람 내가 알기론 접시 열 개는 거뜬히 비울 사람인데, 뭐가 이렇게 사람이 급변해?

“어? 아... 생각해보니, 우리 기내식 먹을 거 아니었냐?”

“에?”

절로 의아함이 튀어나와버렸다.

“조식 먹는 데 또 기내식 먹게?”

“어? 어... 그게 전용기 기내식이 쉽게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냐. 뭐, 여기서 먹는 것도 그렇겠지만. 아! 혹시 여기서 조식 먹을 거여서 기내식으로 조식은 준비 안 된거냐?”

뭔가 부끄러운 듯 뒷머리를 긁는 형을 보자니, 절로 웃음이 튀어나와버렸지만 이내 속으로 삭혀버렸다. 하긴, 해외 스케줄 같이 다닐 때 아니면 형이 언제 전용기 기내식을 먹어보겠어.

“준비가 안 됐긴. 그럼 그렇게 해. 난 상관없으니까.”

“진짜?”

“어.”

기내식 주는 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별 고민 없이 알았다는 말과 함께, 형의 앞에 놓인 접시들을 내 앞으로 옮겼다. 배가 고프기도 고팠고 음식들도 맛있었는지라, 형이 남길 막대한 양의 음식들이 눈에 걸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무척이나 좋아하는 석현 형을 보자니, 승무원 분에게 말해서 기내식에 조금 더 신경을 써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뭐, 이번 해외 일정 동안 나와 함께 생활할 형한테 선물 하나 주는 셈 치지.

*

기분 좋게 배를 채운 뒤, 공항을 가는 리무진을 타려고 했다. 그런데 왠지 모를 소란스러움이 느껴져 발걸음을 자연스레 멈추게 되었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석현 형 또한 자연스레 소란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에 시선을 빼앗겼으니까.

“아니 이게 말이 돼요? 여기 올 때도 그렇고 경기장 이동할 때도 그렇고. 이게 말이 되냐고요! 통역사도 없어, 경기장 출입 카드도 부족해. 도대체가!”

그런데 단순한 소동이 아닌 듯 했다. 일단 들려오는 언어 자체가 내가 너무나도 익숙한 한국말이라는 점이 그러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길래, 저렇게 사람들이 몰려있어?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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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루님 4 장 2017.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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