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68화 (468/502)

00468  2019  =========================================================================

#468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언제 날을 잡아 대표란 사람 아니, 대표님과 밥이라도 한 끼 해야 될 것 같았다.

“이건... 어떤데?”

정열의 레드. 다소 노출이 심하다는 점이 긍정, 부정 모든 부분에서 내게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게 만들어준 대표님의 배려에 눈물까지 날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드레스는 앞선 드레스와 달리 노출이 확실히 적어 그래도 나았다.

[오늘이랑 내일 시상식 당일까지, 협찬 의상 맞춰볼 건데 어차피 가져온 의상들 스타일리스트들이랑 만 같이 맞춰볼 거라 함께 있어도 상관은 없을 겁니다... 괜찮으시다면 함께하시죠.]

그 제안을 듣는 순간 확신했다. 이수덕 대표님은 굉장히 훌륭한 인품을 지닌 사람이라는 것을.

“마음에 안 들어?”

아차. 딴 생각을 하다가, 황홀할 정도로 예쁜 그녀의 드레스 입은 모습을 간과하고 말았다. 내가 미쳤지.

“예뻐.”

“어머, 어머. 예쁘데.”

“지연이 좋겠네? 서방님이 입고 나오는 것마다 저렇게 예쁘다고 해주고?”

예쁘다는 나의 말에 도리어 주변에서 더 난리가 났지만 마냥 좋았다. 크흠. 스타일리스트 분들이 배우신 분들이네. 서방님? 크흠.

[그래서 베드신 하겠다고?]

[그게... 감독님한테 말해볼게. 지, 진짜로! 진짜 진지하게 말해볼게. 진짜. 근데... 안 되면...]

[그땐 그때 가서 말해.]

아까 전 꽤나 진땀을 빼면서까지 자리를 도피하지 않은 대가가 너무나도 대단해, 역시 사람은 끈기와 인내를 가져야한다는 생각까지 가지게 되었다.

예쁜 옷 입은 모습도 보고 무엇보다 함께 있을 수도 있고. 뭐, 주변에서 지켜보는 눈들이 있다는 점이 조금 그랬지만, 방금 전처럼 흐뭇한 단어까지 써가며 나와 유지연 사이를 바라봐주니 그것도 충분히 감안할 만 했다.

“뭐야. 그게. 성의 없어.”

“에?”

아니, 진짜로 입고 나온 것들 전부가 예쁜데 더 이상 뭘 어쩌란 건지. 나 원 참.

“다 예뻐. 진짜.”

노출이 있어서 짜증난 것만 빼면.

“이걸로 해 아까 그것들 말고.”

“에?”

“이게 그나마 노출이 적으니까,”

“어머. 어머. 대박.”

“지연이 얼굴 빨개진 것 봐. 봐봐. 어머, 어머 쟤가 저런 면도 있었네?”

뭔가 당사자보다 주변에서 더 호들갑을 떨어대는 게 이상하긴 했지만, 고개를 미약하게나마 끄덕이는 유지연을 보자니,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 앞에 있는 드레스들은 나 있는데서만 입고 흠... 그거 얼마짜리야? 저기 스타일리스트 분들 그거 드레스 어디가면 살 수...”

“뭐?”

크흠. 어디 딴 놈들한테 가슴골을... 앞에 있는 드레스들은 나만 봐야 돼. 나만.

*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완전체 멤버로 공식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는 네 명의 소녀들은 차가운 날씨에 어울리지 않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네 눈빛이 나를 사로잡아. 알고 있어 그리 착한 눈빛은 아니야. 위험하지만 흔들려볼까.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프리티 스타의 정통 후예임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발표했던 김태현 이사였지만, 그녀들은 프리티 스타의 명곡들을 연습하고 있었다. 공식 기자회견에서 깜짝 공연을 통해 프리티 스타의 팬들을 프리티 걸즈의 팬으로 확실히 흡수하겠다는 회사의 방침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래 나 지금 널 보고 있는 거야. 네가 친 그물에 걸려들고 있는 거야. 위험한 줄 알면서 네게 잡히고 있는 거야.”

개별 활동을 하지 않았던 새연과 민지 그리고 지영이 4인용 안무에 적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새연의 춤 솜씨가 워낙 대단했기도 대단했거니와, 특히 BAD MAN 같은 경우 안무를 창작한 이가 새연인만큼 새롭게 안무를 수정하는 것도 멤버들에게 이를 알려주는 것도 무척이나 순조로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이점들을 고려하더라도 채연이 BAD MAN 안무를 포함한 나머지 프리티 스타의 곡에 적응하는 것은 무척이나 빠른 감이 없지 않았다.

“조금 더, 조금 더 다가와.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후우...”

“하아...”

“10분간 휴식!”

오랜 시간동안 연습생으로 춤과 노래를 익혀서인지, 채연의 습득속도는 무척이나 빨랐다. 연습을 시작한 지 겨우 이틀이 됐을 진데, 지금에 와서는 프리티 걸즈의 메인보컬로서 프리티 스타의 명곡들 대부분을 소화해낼 수 있을 정도였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모두가 프리티 걸즈로서 무척이나 빠른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마냥 겉으로만 보이는 현상일 수도 있었다.

“채연아?”

“아... 언니?”

“많이 힘들지?”

“아니에요. 언니. 언니가 저 가르쳐 주시느라 더 힘들 텐데요. 뭘.”

특히 채연의 행동은 무엇인가 쫒기는 듯한 인상을 주변사람들에게 전달했다.

“많이 부담되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며 땀을 닦아내던 채연에게 새연이 다가왔다. 그리고 이내 그녀를 데리고 JS ENTERTAINMENT의 옥상으로 데려갔다.

“너무 부담 안 가져도 돼. 채연아.”

채연이 이를 악물고, 심지어 쉬는 시간까지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새연은 채연의 속내를 익히 짐작하고 있는 듯 했다.

“BAD MAN도 그렇고 유닛 활동 곡들은 프리티 스타 멤버들 절반만 무대에서 소화했던 곡이야. 너도 알겠지만, 개별 활동한 멤버들은 이곡... 무대에서 함께 부르는 거 금지였거든.”

“아...”

“내 말은 그러니까... 사람들이 프리티 스타 곡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 절반 이상이 사실은 프리티 스타 멤버들 절반 가까이가 무대에서 부르지 못했던 곡이라는 뜻이야.”

프리티 걸즈에 합류하기로 한 결정. 그 결정에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수많은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이를 바라봐주었다. 하지만 열에 하나 꼴로 존재하는 악의적인 댓글들은 그녀가 가지고 있던, 어떻게 보면 열등감이라고 봐도 좋을 만한 감정들을 되살리는 효과를 자아냈다.

9개의 긍정적인 댓글보다 1개의 악의적인 댓글이 사람의 가슴에 더욱 남아버린 것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콘서트 때는 다 같이 이곡들 불렀어. 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언론에서 떠드는 프리티 스타니 후예니, 정통성이니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된다는 얘기야.”

“네? 그치만...”

“우린 이제 프리티 걸즈잖아?”

그런 마음들이 채연으로 하여금 ‘흠을 잡히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마치 누가 쫒아오는 듯이 연습을 하게끔’ 하였다. 그래서 새연은 채연이 안쓰럽기도 하고, 앞으로 함께 할 날이 많은 채연의 그런 상태가 걱정되기도 하여 따로 말을 나누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뭐, 본인이 리더라는 자리를 맡고 있기도 하고 가장 연장자이기도 했으니까.

“나를 잊었더라도, 내 노래가 들릴 때면.”

새연의 입장에서 채연의 이런 행동은 확실히 과민반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하지만 그녀의 심정을 이해했기에 그녀는 채연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 곡도 사실 걸리시 팝 팀 노래였는데, 프리티 스타 결성되고 나서는 프리티 스타가 불렀잖아. 사실 우리 곡이 아닌데.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앞일만 생각하자.”

채연 또한 그런 새연의 의도를 모르지 않은 듯 했다. 누구에게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고는 싶은데, 털어놓을 상대가 없는. 그런 상태에서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알고, 자신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점은 그녀에게는 무척이나 큰 힘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었다.

“앞으로 함께 무대에 서는 날이 훨씬 많을 거야. 그러니까, 혼자서 너무 고민하지 말고 무슨 일 있으면 나나 다른 멤버들한테 말해줬으면 좋겠어.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지만, 고민은 나누면 나눈 만큼 가벼워지니까. 알겠지?”

“네! 언니!”

“그럼 우리 음료수나 먹으러 갈까? 애들 것까지 사서?”

“네!”

“오늘 저녁은 뭐해먹을까? 어제 매니저 언니가 우리 생활비 주셨는데, 그걸로......”

그렇게 옥상을 나서는 채연의 얼굴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올라올 때와는 달리, 새연과 채연은 서로의 손을 마주잡은 상태였다. 또한 수심에 가득 찼던 그녀의 얼굴 또한 무척이나 밝아져 있었다. 그녀들을 지켜보고 있던 맑은 하늘처럼.

*

“시상식 끝나면 자정쯤 되겠네?”

“응. 아마도.”

하루 종일 드레스를 갈아입느라 고생했을 텐데도 그녀의 눈은 무척이나 초롱초롱했다. 보는 사람 설레서 죽을 정도로.

“그럼 우리 지연이 못보고 가겠네. 어쩔 수 없이.”

“응...”

모레 새벽에 뉴질랜드로 떠나기에, 그녀와의 만남은 오늘 시상식 전 헤어숍을 가기 전까지만 이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수덕 대표님의 배려 덕에 얻을 수 있는 시간 인만큼 여기서 더한 욕심을 내는 것은 말 그대로 욕심일 뿐이었다.

“숍에는 몇 시에 가?”

“점심 먹고... 1시쯤?”

지금 시각 자정.

고작해야 13시간이지만 그래도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만은 따뜻했다. 뭐, 몸도 따뜻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한국이나 일본에 있는 음악 시상식에는 참가하기 힘들 것 같아. 미국에서 왔다갔다하기가 조금...”

“그럼... 상반기에는 아예 못 보겠네.”

빨리 영화를 끝내든가 해야지, 얼굴 보기가 너무 힘들어 짜증도 났다. 호주머니 속에 매일 집어넣고 다니고 싶을 정도로 그녀를 향한 마음은 강렬했다. 그런데 자꾸만 그와는 반대가 되는 상황에 놓였는지라 야속했다. 내 주변 상황이.

“베드신 해도 돼.”

“어?”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아서 일까. 아니면 그런 내 속내가 표정으로 드러나서일까. 그녀가 침묵을 깨고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무척 의외의 것이었는지라, 자연스레 반문하고 말았다.

“뭐?”

“베드신 해도 된다고.”

베드신 얘기가 나왔을 때 그녀가 나를 쳐다보던 싸늘한 눈빛을 잊지 않았다. 아니 잊을 수 없었다. 그 정도로 차가운, 차갑다 못해 따갑기까지 한 눈빛은 지금껏 본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갑자기 그것도 다짜고짜 베드신을 해도 된다는 그녀의 말이 들려왔는지라, 의심부터 들었다.

“왜? 설마... 너도 베드신 찍게?”

어? 뭔가 이상했다. 이거 설마.

“작품 들어왔어? 베.... 베드신 있는 거?”

이 모든 게 정해진 수순이었다면, 유지연은 배우가 아닌 화가임이 틀림없었다. 큰 그림이 아주 그냥. 하아.

“절대 안 돼. 베드신은 절대.”

전형적인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태도였지만, 그래도 베드신은 내가 허용할 수 있는 선이 아니었다. 이기적이라고 해도 좋았다. 베드신은 절대 안 됐다. 아니, 키스신도 지금 열 불나는 판국에 베드신? 안 돼. 배 째.

“들어왔어. 아니 예전부터 많이 들어왔었어. 국제영화제 밥 먹듯이 가는 감독님들한테도 오고, 흥행 잘 되는 감독님들한테도 오고.”

이런 씨.

불안한 예상이 현실이 되어가는 듯 해 머리가 멍해졌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그녀의 말이 나를 다시금 정신 차리게 만들어줬다.

“안 찍어. 걱정 마.”

“절대 안... 응?”

“베드신 절대 안 찍을 테니까. 걱정 하지 마.”

쉽게 믿기 힘들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내가 베드신을 찍으면 자기도 찍어버리겠다는 듯 으르렁 거리던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여자였으니까. 흐음. 이거 혹시,

“간보는 거 아니니까. 그냥 쫌 받아들여.”

“악...”

민감한 부위를 꼬집혀서인지 정신이 번뜩 들었다.

“지... 진짜?”

“그 대신...”

“응?”

“나랑 먼저 해야 돼. 그리고 하고 나서도 나랑 바로 해야 돼.”

“어?”

“예, 아니오. 그걸로만 답해.”

“아니, 그게...”

“쓰읍... 대답.”

“응...”

뭔가, 이렇게 결과가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결론이 나버려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응. 꿈 아니야.”

내 속내까지 다 들여다보고 있는 듯한 유지연의 모습에 두려움이 살짝 들었지만, 이내 꼬집었던 부분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그녀로 인해 모두 날려버렸다.

“그냥 잘 거야?”

이내 나를 내려다보며 도발적인 말을 건네는 그녀로 인해 이성을 날려버렸다.

밤은 길었다. 하지만 짧기도 했다. 무엇인가를 하기에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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