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63 2019 =========================================================================
#463
“언니?”
“대박!”
대표이사실로 들어선 인물에 대한 그녀들의 반응은 저마다 개성이 있었다. 하지만 공통된 부분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들 모두가 놀람을 금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들은 또 다른 공통된 감정으로 인해 놀람의 상당부분을 떨쳐내야만 했다.
“흑흑...”
“어, 언니?”
“언니?”
“채연아?”
그런 그들의 반가운 인사를 받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윤채연의 행동에 모두들 당황하고 만 것이다.
“채연 양? 진정하시고 여기 앉으시죠.”
이는 당연하게도 김태현 이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럽게 눈물을 보이는 윤채연의 모습에서, 그녀를 이곳까지 데려온 직원에게 영문을 묻는 눈빛을 보내면서도 그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질 못했으니까.
“언니 왜 그래? 갑자기?”
“채연아 무슨 일 있어?”
한동안 윤채연의 울음은 계속되었다. 이내 직원이 따뜻한 차를 가져오고 이를 한 모금 머금으며 그녀가 감정을 다스리기 전까지.
“그게... 다들 싫어할 줄...”
“에?”
그녀가 갑작스럽게 울음을 터트린 것은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좀처럼 이해가질 않은 이유에 의한 행동이었다.
자신들이 왜 윤채연을 싫어한다는 말인가?
일견 듣기에도 이해가 되질 않았는지라, 모두들 말문이 턱하니 막힌 듯 했지만 대표이사 김태현 만큼은 윤채연 그녀의 심정을 이해한 것인지 그저 말없이 그녀의 등을 두드려줄 뿐이었다.
부담감. 자신의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
이 모든 것들과 더불어 자신의 합류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것이라는, 이를 알고 있음에도 다가온 기회를 거부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알 수 없는 감정들.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을 반갑게 맞이해주는 다른 세 명의 소녀들을 만나 눈물이라는 결과물을 초래한 것이었다.
어쨌든 세 명의 아니, 이제는 네 명이 된 소녀들이 하나의 그룹으로서 무대에 서기 위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해 말에 다시 공식 기자회견이 있을 테니까, 알아두고.”
“네.”
“네!”
“네...”
“그리고 채연아.”
“네?”
“JS ENTERTAINMENT에 온 걸 환영한다.”
그런 그녀들을 보는 김태현 이사의 얼굴은 밝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이내 소녀들의 얼굴도 그런 그와 마찬가지가 됐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
“안녕하세요. 저, 민지 엄마에요. 우리 정말 오랜만이죠?”
“어머! 민지 어머니! 정말 오랜만이네요.”
“어머, 어머! 그... 채연이 어머님이시죠? 소식 들었어요. 채연이가 우리 민지랑 같이 데뷔한다면서요?”
“안녕하세요. 채연이 엄마에요. 다들 구면이신데, 제가 소개가 늦었네요.”
“어머, 무슨 소리세요. 호호. 저는 지영이 엄마에요.”
모든 멤버들이 확정이 된 순간, JS ENTERTAINMENT가 보여준 행보는 놀라우리만치 빨랐고 또한 자연스러웠다.
“새연이가 잘 챙겨줬다고 그러더라고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새연 어머니.”
“에이. 아니에요. 우리 애가 알게 모르게 맹한 구석이 있어서...”
프리티 걸즈로서 활동하게 될 그녀들조차 알지 못한 사이, 어느새 그녀의 부모들은 회사에 도착해 그녀들과 회사 관계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들은 엄마들 나름대로,
“저는 새연이 아빠되는 사람입니다. 하하! 반갑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저는 채연이 아비되는 사람입니다.”
아빠들은 아빠들 나름대로 서로 얼굴을 익히고 또한 수다를 떨면서 말이다.
“오늘 이렇게 부모님들을 오시라고 한 것은 앞으로 프리티 걸즈가 사용하게 될 숙소와 또 프리티 걸즈를 케어할 저희 회사 직원들 그리고 활동 계획들에 대해서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JS ENTERTAINMENT의 기획실장이라고 소개한 사내와 함께 프리티 스타 멤버들과 멤버들의 부모는 준비된 차량을 통해 이동을 시작했다.
“멤버들은 다음 주내로 본격적인 데뷔 준비에 들어갈 것이고 현재 애들 데뷔 앨범을 맡을 작곡가와 작사가 그리고 안무가를 섭외하고 있는 만큼 일정에는 차질이 없을 것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동하는 동안 기획실장으로부터 앞서 언급했던, 프리티 걸즈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전달받게 되자, 부모들은 실감하게 되었다. 그들의 딸이 새로운 그룹으로 데뷔하게 되었다는 것을.
“어? 여기는?”
“설마...”
그들은 이내 도착할 수 있었다. 멤버들 가운데 윤채연과 그녀의 가족들을 제외한 다른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바로 그곳에.
“멤버들은 이곳에서 전담 매니저와 같이 생활하게 될 겁니다. 바쁜 활동을 하게 될 것인 만큼 숙소만큼은 최상의 것으로 준비하라는 회사 방침에 따라서 말이죠. 어떻게... 마음에 드십니까?”
“프리티 스타 때도 여기서 묵었던 것 같은데... 맞죠?”
“예. 맞습니다. 새연이 어머님.”
이곳이 마음에 들고 안 들고는 굳이 답변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뻔한 질문이었다. 질문을 건넨 기획실장 또한 굳이 대답을 들으려고 이를 물은 것이 아니었다. 이는 그저 회사가 프리티 걸즈에게 막대한 지원을 하겠다는, 계약서상의 그리고 구두상의 말 들이 결코 형식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하기 위한 목적 때문에 흘러나온 질문일 뿐이었던 것이다.
“애들은 개인 방을 사용하는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개인 방을 마련해주고 싶고 충분히 그럴 능력이 되는 숙소이지만, 데뷔 후 3년까지는 4인 1개방에서 지내게 될 겁니다.”
“그럼 나머지 방들은...”
“일단 애들 무대 의상들을 놓아둘 공간 그리고 1차 메이크업을 여기서 하게 될 수도 있는 만큼 그와 관련된 공간으로 마련할 예정입니다. 또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매니저들 가운데 여자 매니저를 프리티 걸즈에게 전담시켜 이곳에서 같이 생활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같이 생활한다고 하심은?”
“말씀드렸다시피 아직 확정된 사안은 아닙니다. 애들이 다소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회사 내부에서 조금 더 얘기를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 이곳 시설 그러니까, 스파 풀이나 그런 건,”
“멤버들이 쉴 때는 편하게 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별다른 제안을 걸지는 않을 겁니다. 여기는 어디까지나, 멤버들 숙소이고 저희로서는 멤버들이 피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을 만큼 편안한 공간으로 이곳을 사용해줬으면 하니까요. 아! 물론 앞서 언급했던 4인 1개 방 사용은 철저하게 지켜질 예정입니다.”
이미 이곳은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한 번씩 사용했던 숙소이기에 세 명의 멤버들과 그 가족들은 비교적 익숙할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과정을 이미 한차례 겪어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 멤버들 부모들의 질문은 굉장히 많았다.
그러니, 이곳에 처음 오게 된 채연의 부모는 오죽할까.
“그게... 그러니까, 우리 채연이랑 여기 친구들이 여기서 생활한다는 거죠?”
“예. 그렇습니다. 채연 어머님. 채연이랑 채연이 부모님 같은 경우 여기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실 수 있으시겠지만. 프리티 걸즈 멤버들이랑 같이 생활하다보면 채연이도 금세 잘 적응하게 될 겁니다.”
“그럼 밥 같은 거는 어떻게 하나요?”
모든 걸 잃은 듯이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리던 딸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또 다른 길을 찾아 나서려는 듯한 모습을 보였을 때, 그녀를 지켜보던 부모의 마음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딸이 거의 10년 가까이 꿔왔던 꿈을 단념하고 현실에 체념했다는 사실은 부모 입장에서 억장이 무너질만한 사안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꿈같은 것은 윤채연 뿐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부모 또한 마찬가지로 꿈과 현실을 혼동할 만큼 지금 순간을 믿지 못하고 있었고 또한 지금이라도 딸을 말려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머릿속에 가득했다. 기껏 마음을 다잡은 딸을 다시금 이쪽 세계에 발을 디디게끔 해야 되는 것인지가 부모 된 입장에서 무척이나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활동 중이거나 데뷔 및 컴백 준비 기간에는 아무래도 식단 조절을 해야 해서 회사 측에서 균형 있게 식단을 따로 맞춰서 제공할 예정입니다. 물론 비 활동기간 그러니까, 휴식기에는 정산 전까지는 회사에서 별도로 지급하는 용돈에 맞춰서 자체적으로 생활하게 될 겁니다.”
“그럼 반찬이나 그런 거는...”
“휴식기에는 챙겨주셔도 무방, 아니 오히려 저희가 채연이 어머님뿐만 아니라 다른 어머님들에게도 조금은 부탁드리고 싶은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저희가 나름 잘 챙긴다고 하더라도 아이 돌 그룹 특성상 사먹는 경우가 굉장히 많은 만큼, 애들이 집 밥을 굉장히 그리워하거든요.”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딸의 꿈을, 다시금 가수의 길을 향해 걷고자 하는 딸의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저 응원해줄 뿐.
이는 다른 멤버들의 부모 또한 마찬가지였다.
가수로서 다시는 무대에 서지 못할 것으로 예상했던 아이와 그녀의 부모.
지지부진한 회사의 지원 하에 아이돌 가수로서 무대를 밟는 것이 현실상 어려웠던 아이와 그녀의 부모.
빵빵한 기획사에 소속되었지만 함께 데뷔할 이들을 찾지 못해 무대에서 멀어져만 가던 아이와 그녀의 부모.
모두가 윤채연의 부모와 비슷한 처지에서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던 것이다.
“조금 있다가 애들 전담할 매니저들이 올 겁니다. 인사 나누시고 애들 알레르기 같은 주의해야 될 점들 있으면 모두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여기 잠실 호텔 스위트룸을 잡아놨으니, 애들이랑 가족 분들이 같이 하룻밤 보내시면서 다른 가족 분들끼리 친분도 쌓으시고 하시면 됩니다. 식사나 시설 이용비용은 회사에서 모두 부담할 테니, 마음 놓고 이용하시라는 말씀입니다. 아! 그리고 이번 주 내로 애들 필요한 짐들 싸서 이곳으로 오시면 됩니다. 오실 때 저희 쪽에 연락 주시면 매니저가 도와드릴 겁니다.”
그런 그들에게 기획실장이라는 사내의 말이 건넨 마지막 말은 굉장한 선물임이 틀림없었다. 그 선물을 위해 쓴 돈 때문이 아닌, 이제는 한 식구로서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자신의 딸이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축복일 테니까.
*
“응?”
귀를 의심했다. 아니, 내가 지금 꿈을 그것도 악몽을 꾸고 있는 것인지 볼을 꼬집어 확인해야만 했다. 그 정도로 지금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담고 있어서는 안 될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볼을 꼬집었을 때, 아프지 않아야 지금 이 상황이 그나마 가장 최선이 될 수가 있을 진데, 아프기까지 했는데 고통 섞인 신음이 아닌 한숨이 흘러나와버렸다. 그 정도로 최악이었다. 지금 상황 자체가.
[미안...]
수화기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에 아차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안하다는 소리에도 아쉬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티를 내지 않은 채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머릿속에 머무는 생각일 뿐이었다.
그 정도로 아쉬웠고 지금 상황을 믿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 신경 쓰지 말고. 촬영 열심히 해.”
크리스마스이브 그리고 크리스마스 당일에도 촬영을 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유지연의 말에 나는 결국 전혀 괜찮지 않은 목소리로 괜찮다는 말을 건네야만 했다.
“그 대신 시상식 때 진짜 예쁘게 하고 나와야 돼. 꼭 볼 테니까. 알겠지?”
그녀 또한 속상할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서둘러 마음을 추스르고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려보려 했지만, 수화기를 사이에 둔 우리들의 분위기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럼 27일에 시상식하고 28일 날도... 새벽부터 촬영하는 거야?”
[응...]
운명의 전쟁 촬영을 위해 뉴질랜드로 떠나는 날 조차 만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막막하게 다가왔다. 그때 봤던 것이 이번 한국 일정에서 그녀를 볼 수 있었던 마지막 날이었다는 게 어이가 없었고 또한 안타까웠다.
“촬영 열심히 하고. 통화는 할 수 있지?”
[응...]
“그럼 우리 지연이 목소리라도 자주 들어야겠네?”
[저기 지연씨! 슛 들어간다고 감독님이 지금......]
수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지금 이 순간의 통화마저도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마음이 허전했지만, 이를 애써 속으로 삼킨 채 밝은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지금... 촬영 들어가야 해... 미안.]
“촬영 열심히 하고. 내 생각 많이 해. 시간 날 때면 톡해도 되고. 아! 물론 피곤하면 쉬어도,”
[안 피곤해. 전화 할 거야. 쉬는 시간마다.]
“풋... 그래. 그럼 지연이가 전화할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촬영 열심히 해.”
이놈의 영화 잘 안 되기만 해라. 진짜 가만 안 둔다.
하아. 속상하다. 정말.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면서 또한 허전했는지라 바람이 제법 차갑고 매서웠음에도 밖으로 나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차가운 바람을 맞음에도 복잡한 머릿속과 가슴이 좀처럼 진정되지가 않았다.
하아. 안 되겠다. 이러다가 얼굴 까먹겠어.
몇 개월 동안 잘 참아왔지만, 한번 보기 시작하니 좀처럼 인내심을 발휘하기가 어려웠다.
“민재 삼촌?”
그렇게 추위에 떨려오는 손을 부여잡은 채 서둘러 실내로 들어가는, 핸드폰을 귀에 댄 채 건너편으로 보내는 그런 나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큰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