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60화 (460/502)

00460  2019  =========================================================================

#460

[복권 당첨 금액이 3천 6백억 원? 유럽 17개국이 참여해 발행하는 연합 복권 유로잭팟이 5달(23주) 연속 당첨자가 나오지 않아 4000만 달러(약 480억 원)으로 시작한 1등 당첨금이 3억 달러(약 3600억 원)까지 치솟았다. 독일 대중지 빌트에 따르면 이번 해 마지막 달인 12월마저도 당첨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복권 당첨 금액이 4천억 원을 넘을 수도 있다는...... 저번 주까지 총 5억 2392만장이 판매된 이번 복권에...... 지금 유럽은 유로잭팟 복권의 광풍에 휩쓸리고 있다.]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 우리들에게 MIT로 잘 알려진 세계최고의 공과대학교에 우리나라 학생이 수석으로 입학해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다. 올해 9월 MIT School of Engineering 단과 대학의 신입생으로 입학한 A 학생은......]

[월드스타의 외유는 홍대에서? 홍대 길거리 공연에서 포착된 월드스타의 휴가! 현재 크리스마스 휴가를 위해 한국을 찾은 것으로 알려진 강지혁이 홍대 길거리에서......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강지혁은 편안한 옷차림으로 길거리 공연을 둘러보았으며 한 길거리 가수에게 2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한편 강지혁은 저번 해 여름에 발매된 정규 5집 이후, 배우로서 올 여름에 개봉할 것으로 알려진 미스터 지 촬영에 열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사들을 훑어보며 소파에 드러누워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올 때까지.

“강지혁!”

예상했었고 기다리고 있기까지 했지만, 움찔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어, 어? 어. 삼촌.”

“이게! 삼촌이 어디 갈 거면 경호원들 데리고!”

이번 휴가에는 마음 편히 있고 싶어서, 그리고 할 일도 많아서 별다른 방송 일정을 잡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기사들이 굉장했다. 음반을 발매한 후 이렇다 할 인터뷰도 하지 않은 채, 미국으로 출국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주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내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실어놓았다.

아니, 내가 홍대 간 게 뭐 대수라고 연예면 뿐만 아니라, 전체 포털 사이트 메인에까지 나의 기사가 난건지. 나 원 참.

“삼촌 미안. 미안. 근데 진짜 안 들킬 수 있었어. 이게 진짜 말이 안 되는,”

[딱]

“아!”

진짜 영화나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자꾸만 내게 일어나서 기가 막혔다. 내가 소설의 주인공이 된 듯, 다른 연예인들은 잘만 싸돌아다니는데, 자꾸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지니 말이다.

“아니,”

[딱]

“아!”

억울하기 그지없었지만, 자꾸 대꾸하면 머리가 고생할 것 같아 그저 한껏 죄송하다는 뜻을 얼굴에 담아내는 수밖에 없었다.

“너 그러다 잘못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렇게 돌아다니고 싶으면 석현이라든지, 응? 승현이라든지, 같이 데리고 다니면 될 것을 굳이 혼자서......”

날이 가면 갈수록 재성 삼촌과 닮아가는 민재 삼촌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속으로 애써 이를 삭혀냈다. 사실 민재 삼촌의 말이 틀리 것 하나 없는, 순수 옳은 말이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겨우겨우 싹싹 빌어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었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네가 20만원이나 줬다는 애는 뭔데?”

“어?”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들어 내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뭐가 마음에 들었으니까, 네가 그랬던 거 아니야. 아니야?”

“뭐, 뭐가.”

“크흠. 그래, 뭐가 마음에......”

아니, 이 사람이. 처음부터 이런 목적? 나 참.

*

민재 삼촌의 비즈니스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예정된 스케줄 덕분에.

“관리사님 이쪽인가요?”

“예. 지혁씨. 이번에 연말 맞이해서 다들 모여 있을 겁니다.”

이제는 300명가량으로 늘어난 후원 아이들 가운데 몇몇을 오늘 보기로 했었기에 마음이 조금은 설렜다.

“이번에 S대에 5명이나 들어갔다면서요?”

“하하. 그렇습니다.”

대충 보고를 받긴 했었는데, 관리사님의 입을 통해 다시금 전해 듣자 실감이 확 됐다. 애들이 정말 열심히 하고 있음을 그리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척이나 보람찬 일이라는 것을.

“교대랑 경찰대도 있고 의대도 제법 있습니다. 그리고 육군 사관학교와 공군 사관학교도......”

그렇지 않다면 이런 결과가 나올 수가 없었다. 이제 막 성인이 될 애들이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대학에 입학하여 꿈을 펼치려 한다는 점은, 다른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도 굉장한 일임은 틀림없었다.

뭐, 방금 관리사님이 말한 대학들이 가고 싶다고 쉽게 갈 수 있는 그런 대학이 아님을, 대학 문턱도 밝아보지 못한 나조차도 알 수 있었으니까.

“스무 명이었죠? 이제 스무 살 될 애들.”

“예. 그렇습니다.”

“다들 이 악물고 열심히 공부했나보네요. 초창기만 하더라도 대학 간 애들이 별로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물론 처음엔 대학에 입학하는 애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바로 공무원시험 또는 학점은행을 통해 취득한 학점을 통해 회계사나, 세무사 직종의 공부를 하는 애들이 많았다. 그런데 나의 지원을 받는 애들의 연수가 길어질수록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아졌다.

이번 해 또한 작년 그리고 제 작년과 마찬가지로 아이들 전원이 대학에 입학한 것만 봐도 말이다.

“앞선 애들이 바빠도 주에 한 번씩은 찾아와서 공부도 가르쳐주고 진로도 상담해주는 게 큰 역할을 한 듯싶습니다. 특히 건준이나 15년도에 경찰대에 입학한 지석이가 애들을 많이 신경써줘서 인지는 몰라도,”

“그래서 애들이 관심을 많이 갖는가보네요. 올해도 의대에 2명, 경찰대에 3명이나 입학한 걸 보면요.”

“그렇습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른 애들이 소홀한 건 아닙니다. 교대 같은 경우도,”

“태현... 이었나요?”

“기억하시는 군요.”

“이번에 사관학교 들어간 애들은 처음입니다만, 나머지 애들도 내로라하는 대학에 경영, 미술, 음악 쪽으로 해서 들어갔습니다. 하하.”

어쨌든 이만큼의 성과를 거둬들인 데에는 해당학생들 뿐만 아니라, 앞서 그 길을 걸어봤던 아이들 그리고 이를 총괄적으로 관리해주신 관리사님의 덕이 큼을 모르지 않았다.

꿈을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아이들.

소녀, 소년 가장, 고아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원해주는 것이 아닌, 자기 꿈을 이루는 데에 대한 확고한 의지와 열정, 꿈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꿈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가 바로 꿈 재단에서 후원하는 아이들인 만큼 이런 결과는 처음부터 예견된 사안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모임이 이뤄진 곳이, 통째로 빌린 어느 한 패밀리 레스토랑인 만큼 나 또한 관리사님과의 대화를 끝맺은 뒤 음식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애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이 자리를 찾아온 이유이기도 했지만 일단 배를 채우는 게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에게도 보다 나은 선택인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형!”

맛있게 구워진 등갈비를 담으려던 찰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 잠시 그 행동을 멈추게 되었다.

아니, 저 녀석 내년에 의사 시험인가 그거 보느라 엄청 바쁘다더니, 여기서 뭐하는 거야?

“어? 내년에 시험 있다고 들어서 못 볼 줄 알았더니, 자신은 있는 거야?”

“오랜만에 애들 보는 거라서, 오늘 할 거 미리, 미리 해줬죠.”

“그래. 건준이 너는 잘하니까.”

내가 후원하는 아이들 가운데 가장 먼저 대학에 입학한, 그것도 무려 의대를 수능 만점으로 입학한 녀석이기에 걱정은 하지 않았다. 진짜다.

크흠. 내가 누굴 걱정하니. 쟤 수능 만점이라고. 만점.

“그럼요. 그리고 오늘 저희 의대 합격한 애들이 2명 있어서요. 걔들 얼굴도 보고 미리 알아야 될 거 말해주고 싶어서.”

“아! 이번에 합격한 애들이 너랑 같은 의대야?”

“네. 그렇더라고요. 이번에도 2명이나 들어왔으니까, 벌써 저희 의대에만 10명이에요. 10명.”

“진짜?”

이번에 의대에 입학한 애들 전부가 건준이의 후배로 들어갔다는 점 그리고 지금껏 8명이나 건준이의 후배로서 같은 의대에 입학했다는 점은 사뭇 색다르게 다가왔는지라 나를 더욱 흐뭇하게 만들었다.

심심치 않게 의대에 입학한 애들이 나왔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벌써 10명이나 되는 애들이 대한민국 최고 의대에 입학했다는 사실까지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와. 애들 진짜 공부에 미친 건가? 아니면 의대에 들어가는 게 굉장히 쉽다던가. 그럼 어디 나도 한번? 하아. 아니 뭐래. 대학 문턱도 못 밟아본 놈이. 너 인수분해는 할 줄 아냐? 미친.

*

[최수덕이라고 했지?]

[네, 네? 네!]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많이 먹어.]

며칠 되면 성인이 되는 애들과 이미 성인인 애들까지 거의 모두 자리에 모인만큼, 화제의 주인공을 만나는 것은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나서였었다.

내가 후원하는 아이들 가운데 최초로 외국 대학교에 그것도 세계 최고의 대학에 입학한 것이기에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학교생활은 어렵지 않고? 듣기로는 전액 장학금에 기숙사 비도 무료라고 하던데 부족한 점은 없어?]

[네. 학비랑 기숙사비 그리고 용돈도 학교에서 줘서요. 그리고]

세계 최고 대학교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학교에서 용돈이랑 기숙사비까지 준다고 하니, 대단한 성과를 거뒀음에도 내가 해줄 게 없었다. 다른 애들처럼 학비의 어느 정도 그리고 일정량의 용돈을 후원받는 게 아닌,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대학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해결해버렸으니 말이다.

[공부가 너무 재밌어서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공부하고 있어요.]

하긴, 그렇게 공부 얘기를 하면서 눈을 초롱초롱 빛내기가 쉽지는 않지. 암, 그렇고말고. 저렇게 공부를 좋아하는 애가 대학을 가야지. 크흠.

[언론에서 너 관련해서 신상이 공개된다거나, 그렇게 되진,]

수덕이와의 대화는 짧았지만 내게 지금까지의 후원 행위가 정말 잘한 일이였다는 것을 잔뜩 느끼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공개하셔도 돼요. 아니, 공개해주세요. 엄청 노골적으로 공개하셔도 돼요.]

[응?]

[다른 형들이나 누나처럼 저도 저처럼 어려웠던 애들한테 큰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고 싶어요. 열심히 노력만 하면 뭐든 꿈을 이룰 수 있는. 그런 롤 모델이라고나 할까... 저는 다른 형, 누나들처럼 애들을 자주 찾아가는 걸 못하니까... 그렇게라도 하고 싶어요.]

수덕이의 학교생활에 지장을 줄까봐, 안 그래도 동양인이라고 막 놀리고 그럴 텐데 고아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퍼지면 이에 더욱 안 좋은 영향을 줄까봐 언론에 수덕이를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했는데 수덕이의 생각은 달랐다.

[감사합니다.]

[어?]

[물심양면으로 신경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나중에 형처럼 어려운 사람들, 그리고 저처럼 부모님이 없는 애들을 도우면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훌륭하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 되겠습니다. 공부도 정말 열심히 할 거고요.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수덕이의 말 하나, 하나가 내 감정을 자극시켰는지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아니, 얘 공대 갈 게 아니라, 인문학 했어야 되는 거 아니야?

“관리사님?”

“아, 예. 지혁씨.”

“어? 관리사님 지금 스위스 온천 언제쯤 갈까 그거 생각하고 계셨죠?”

“예, 예? 하하. 그게. 가족들이 너무 좋아해서 저도 덩달아.”

관리사님이 가족들과 톡을 나누고 있는 걸 보며, 장난 끼 섞인 말을 건넨 것도 잠시. 이내 본론을 꺼냈다.

“가시기 전에 뭐 하나 부탁드리는 게 실례일까요?”

“아! 아닙니다. 지혁씨. 뭐든 말씀하시면 됩니다.”

“수덕이 있잖아요.”

“예. 말씀하시죠.”

“미드 보면 미국에서는 뭐든 거리가 멀어서, 차가 필수던데. 이번에 수덕이가 대학 등록금이랑 기숙사비, 용돈까지 전부 학교에서 받아서 제가 뭘 해줄 수가 없었는데 차를 해주고 싶어요.”

“차 말씀이십니까?”

갑작스런 내 얘기가 그만큼 뜻밖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일까. 관리사님이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미드 보니까, 미국은 차 없으면 어디 가기도 힘들다고 하던데요?”

“예?”

“그리고 막 어중간한 차 안에 좋은 거 있으면 막 유리창 부셔서 가져가 버리고,”

“예? 지혁씨 그건 드라마,”

“또, 미드 보면 동양인이라고 무시하고 예쁜 백인 애들이 막, 데이트도 같이 안 해주고,”

“그러니까, 지혁씨 그게,”

“그러니까, 튼튼하고 좋은 차로 하나 사다 주세요. 앞으로도 정말 열심히 하라고, 아니 그건 제가 말 안 해도 그럴 것 같으니까,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데이트도 하고 드라이브도 하고 미국 여러 군데 여행도 다니고 그러라고요.”

아니, 관리사님은 미드도 안 보셨나? 이 정도는 미드 보면 상식인데. 뭔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관리사님에게 친절히 다시금 부탁 사항을 읊어드리는 것으로 내 가슴 속에 있던 뿌듯함을 유지시켰다.

녀석. 좋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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