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56화 (456/502)

00456  2019  =========================================================================

#456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네 눈빛이 나를 사로잡아. 알고 있어 그리 착한 눈빛은 아니야. 위험하지만 흔들려볼까.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혼자 쓰기에는 비교적 큰 공간.

하지만 흘러나오는 음악만큼이나, 그녀의 춤사위는 그 공간들을 가득 메우기에 충분했다.

161CM.

평균 키라고 할 수 있겠으나, 걸 그룹 멤버로서는 비교적 작은 체구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녀의 작은 체구는 파워풀한 댄스를 소화하는 데 무리감이 없었다.

“그래 나 지금 널 보고 있는 거야. 네가 친 그물에 걸려들고 있는 거야. 위험한 줄 알면서 네게 잡히고 있는 거야. 조금 더, 조금 더 다가와.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한차례의 광풍이 휩쓸고 간 자리의 여운은 그다지 오래가질 못했다. 고요함 속에서 그녀는 또다시 왠지 모를 공허함을 느껴야만 했다.

자신이 직접 만든 안무.

마음이 복잡할 때면 그리고 지금 느끼고 있는 공허함이 극에 달할 때면, 그녀는 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었다. 과거 화려한 무대에서 펼쳤던, 그러나 지금은 고작 연습실에서 홀로 출 수밖에 없는 안무지만 그래도 안 추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만큼 이 안무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그 애착이 무대를 향한 갈증을 잠시나마 멎게 해주었으니까.

“후우...”

프리티 스타가 해체된 뒤, 그녀는 이렇다 할 데뷔 무대를 갖지 못했다. 그저 단발성으로 예능 프로그램과 라디오 프로그램만 전전하고 있을 뿐.

물론 그녀 자신이 소속된 회사가 놀고만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는 나름 최선을 다해 그녀를 서포트 하려고 했다. 다만, 그들의 최선이 데뷔가 아닌 단발성 예능 프로, 라디오 출연이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좋아해. 널 좋아해. 뀨우뀨우.”

어느새 들여다보고 있는 핸드폰 화면에는 얼마 전 새롭게 데뷔한 걸 그룹의 무대가 맺혀있었다.

“뀨우뀨우. 귀여운 내 얼굴이 뀨우.”

함께 무대에 섰고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응원을 받았던,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하나, 둘 각자의 길을 나설 때마다 그녀는 진심을 다해 응원했다. 하지만, 점점 자신과 그들을 비교하게 만드는 주변 환경이 그녀를 너무나도 힘들게 만들었다.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으나, 여전히 데뷔와는 거리가 먼 지금 자신의 처지와 이미 또 다른 곳에서 또다시 무대 위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을 받고 있는 프리티 스타 멤버들의 처지가 달라도 너무나도 달라, 이는 피할 수 없는 고통과도 같았다.

“후우...”

자신은 언제쯤 다시금 무대에 설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계속해서 그녀 자신을 괴롭혔고 이는 조금씩, 조금씩 그녀를 갉아먹었다.

[하나둘 여름을 바랄 때면 네 마음을 여름 바다가 빼앗아갈까 걱정 돼. 순간 지나가버릴 너와 나의 봄이 영원할 순 없는 걸까. 봄비가 내릴 때면 우리 사랑은 새싹처럼 언제나 푸르러 질 수 있나요. 우리의 사랑이 포근했다면 이제는 더욱 뜨겁게 날 사랑해줘요. 해바라기도 마냥 해만을 보진 않죠. 그래서 걱정돼요. 그대가 나를 잊을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선명해지는 노래 가사는 그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를 몰입시켰고 이는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자꾸만 그녀 자신이 느끼도록 강요하였다.

[그저 금방 그칠 여우비니까. 날 향한 그대의 마음도 이럴까요. 그대가 내 곁에 다가왔을 때부터 수많은 기억들을 함께했어요. 그 순간들을 붙잡고 있을게요. 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이 비가 그칠 때, 내 눈가에 빗물이 흐르지 않을 때,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수많은 기억들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을까요.]

화무십일홍. 열흘 붉은 꽃이 없다

팬들의 열화와도 같은 호응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그렇지만 대신 그 기간이 너무나도 짧은.

그것이 아이 돌 그룹의 숙명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그조차도 감지덕지였다. 7년차 징크스도, 중간, 중간 일어날 수 있는 멤버들 간의 불화도 현재 그녀로서는 넘보기 힘든, 그런 상황이었으니까.

“새연아? 얘는 도대체 어딜 간 거야? 잠깐만 기다리랬더니, 새연아! 여기 있니?”

울적하고 복잡한 마음을 달래보려, 무작정 안무 실에 와버렸던지라 그녀를 찾는 매니저의 목소리는 일견 듣기에도 짜증과 약간의 분노가 담겨 있었다.

얼마 없는 스케줄이지만, 자신을 위해 노력해주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따라서 갑작스럽게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인 것은 전적으로 그녀 자신의 잘못인 것 또한 모르지 않았다.

“예! 저 여기 있어요! 매니저 오빠!”

그래서 그녀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입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는 익숙하지만 낯선 곳을 앞두게 되었다.

*

“밥은 먹었니?”

지금은 꿈 기획으로 이름을 바꾼 회사. 바로 그녀 자신이 몸담고 있는 소속사이다.

그저 가수가 되고 싶다는 일념 하에 대책 없이 서울로 왔던 자신. 그런 자신에게 춤과 노래를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가르쳐준 그런 소속사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에게 제대로 된 날개를 달아주지 못하는 현 소속사의 역량을 아쉬워했을지언정 원망하지는 않았다.

“아... 네. 아까 매니저 오빠랑 코디 언니랑 같이 먹었어요.”

“흐음... 그렇구나. 커피? 아니면 녹차?”

어쨌든 별다른 스케줄이 없어 집에서 쉬고 있어야 했던 그녀에게 매니저 오빠가 찾아온 것은, 갑작스러운 방송 스케줄 때문이 아닌 듯 했다.

“괜찮아요. 대표님.”

“그래?”

“네.”

솔직히 꿈 기획의 대표인 최건영과 그녀는 그다지 마주칠 일이 없었다. 물론 그녀 자신을 캐스팅 해준 사람은 눈앞 최건영 대표였지만, 그녀가 방송 스케줄을 소화함에 있어 직접적으로 마주하는 회사 사람은 매니저, 코디, 기획실장. 이 세 사람이 전부라고 해도 무방했으니까.

따라서 오늘 이 자리를 최건영 대표가 만들었다는 점은 그녀에게 있어 확실히 뜻밖의 상황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이는 잠시 뒤 이어진 최건영 대표의 말로 인해 더욱 확실해졌다.

“그동안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 고정 프로그램 하나 못 꽂아줘서 많이 섭섭했지? 데뷔도 계속 미뤄지고.”

“네?”

최건영 대표의 말에 순간 그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마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최건영 대표는 얻은 듯 했다.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처음 새연이 널 이 회사에 데려온 게 진짜 엊그제 같은데, 벌써 꽤나 지난 것 같아 난 기분이 조금 이상하네. 하하.”

커피 잔을 탁자 위에 내려놓은 그의 얼굴이 현재가 아닌 때로 돌아간 듯 했다.

“다짜고짜 서울로 올라와서 가수하겠다고 했던 널 왜 이곳에 데려왔는지 아니?”

새연으로서는 어째서 최건영 대표가 자신을 이곳에 불렀는지 그리고 어째서 예전 과거 얘기를 건네는지 알지 못했다. 방금 전에 자신에게 섭섭하다느니 와 같이 데뷔가 늦어졌음을 언급한 것도 이해가 안 됐고.

“그냥 직감. 직감적으로 널 데려와서 가르쳐보고 싶어서, 그게 그 이유의 전부였어.”

“아. 네...”

“하하... 데뷔도 그렇고 방송 스케줄도 그렇고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네? 하하...”

“네?”

뭔가 묘한 뉘앙스가 담겨있는 최건영 대표의 말에 자연스레 반문이 나왔다. 현재 자신이 겪고 있는 갈증과 복잡한 감정들의 원인과 관련된 말이라 더욱 그러했다.

“데뷔할 그룹에서 지금처럼, 지금처럼만 하면 새연이 너는 꼭 성공할 수 있을 거다. 난 그럴 거라고 확신해.”

도대체 뭐가 아니라는 것인지. 그리고 데뷔할 그룹이라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에는 온통 의아함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이내 들려온 최건영 대표의 말이 들려올 때까지 줄곧.

*

“뭐야, 이건?”

복장들을 점검하고 있는 와중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일어났어?”

드라이브를 제외한, 영화를 본다거나, 산책을 한다거나와 같은 행동들이 모두 집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어제는 꽤나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물론 밤까지 포함한다면 오늘 새벽 동이 틀 때까지라고 해야 될 테지만.

“응... 그런데 이건... 갓이잖아?”

“갓이긴 갓인데. 패랭이. 사극에서 많이 봤을 거야. 보부상들이 쓰고 다니던 갓으로.”

[쪽]

등에 고스란히 느껴지는 체온과 감촉에 가볍게 입을 맞춘 뒤, 하던 일을 다시금 이어나갔다.

“짚신에 가방?”

“괴나리봇짐.”

“운명의 전쟁 그거, 그거 촬영 할 때 입을 옷들이야?”

패랭이, 짚신, 괴나리봇짐, 활, 화살, 옷 등 역사의 향기가 묻어나는 옛 물품들.

잠시 준비한 물품들을 점검하려 했던 것인데, 일이 생각보다 커져버렸다. 대본을 보며 내가 해야 할 짤막한 신들을 되새겨보다 보니 말이다.

“뭐가 이리 많아?”

“한동안은 내내 이것만 입어야하니까. 그래서 많이 준비했어. 제작진 측에서 따로 마련해준 게 있긴 한데, 그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 같아서 의상 같은 경우는 내가 따로 준비해 가기로 했거든.”

꽤나 널찍한 방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물건들이 일개 개인이 쓰기엔 너무나도 많아 보이는 수량이었는지라, 그녀의 이러한 의문은 당연했다.

다만, 나로서도 피치 못 할 사정이 있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게 말이 돼?”

“나 이 옷 밖에 안 입거든.”

“에? 진짜?”

“응. 1편에서는 확실히. 뭐, 2편에서도 달라질 건 없을 것 같지만, 아직 대본이 나온 게 아니니까, 한동안 이 옷만 입는 건 고정사실이지. 길잡이 역할이 내 주 역할이니까. 하하...”

출연하는 작품에, 그것도 영화 작품의 의상소품을 배우가 직접 준비한다? 일견 듣기엔 말이 안 되어 보일 테지만, 이 모든 게 내가 자청한 것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뭐, 지금 생각해도 후회는 안하고 있으니 잘한 선택인 건 확실했다.

“푸훗...”

패랭이를 내 머리에 씌운 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많이 웃긴가?”

“응. 아주 많이.”

사실 이미지 보다는, 이 작품의 캐릭터를 잘 살리는 쪽으로 모든 물품들을 준비했기에 내 꼴이 지금까지 맡아왔던 캐릭터들과는 꽤나 어울리지 않음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막상 웃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이 모든 의상을 입고 촬영에 나설 내 자신과 그런 나를 보고 연기에 임할 동료 배우들 전부가.

뭐, 감독님도 그렇고 작가들도 이런 내 소품들이 작품에 무척이나 어울릴 것이라며,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건넬 정도였던 만큼 걱정을 떨쳐버렸다.

“배 안고파?”

“배? 음... 아니, 별로.”

내게 조심스럽게 안겨오는 그녀 덕에, 물품들을 캐리어에 싣지 못한 채 다시금 침대로 향해야만 했다.

“아무것도 안 입고 막, 이렇게 안겨오고? 아주 응큼해? 응?”

“뭐래.”

언제 봐도 감탄이 나올 만한 몸매에 걷기가 조금 불편해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그녀를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짐승.”

누가 누구보고 짐승이라고 하는 건지.

“애당초 날 이렇게 만든 게 누구인데?”

“몰라.”

하아. 안 되겠다. 참으려고 했는데, 너무 못되게 구네. 벌 줘야겠다. 혼을 내야겠어. 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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