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53 2019 =========================================================================
#453
“기존에 삼촌들이 운영하는 건 논외로 치고. 새로 숫자 채워서 일괄 개관하자. 어차피... 세금 문제도 있고.”
생각은 즉흥적이었지만, 이를 실천에 옮길만한 방안은 결코 허술하지 않았다.
“정산 들어올 때 됐잖아. 그거 꿈 재단으로 전입시킬 테니까, 부족하지는 않겠지?”
“부족은 무슨.”
“저번에 말했던 거. 그거 하면 돈이 부족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야?”
무엇보다 재원이 확보된 상태라는 게 컸다. 솔직히 사업의 가장 큰 변수가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인 만큼 나로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뭐, 전에 넌지시 언급했던 부분들 때문에 혹시나 재원이 모자랄까 싶기도 했지만. 삼촌이 아니라니까.
“전에 그럼 하다 말았던, 연극 소극장도 병행해서?”
“어. 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하는 게 낫겠지. 그게 한류월드에 지으려고 하는,”
“아무튼. 알았다. 녀석 아주 나 고생시키는 데 도가 텄네. 도가.”
지금 맡고 있는 촬영만으로도 버거운 상태에서 내가 직접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민재 삼촌에게 먼저 말한 것이고. 아무튼 삼촌과 관리사님 아니, 이제는 꿈 재단의 이사 자리를 꿰찬 두 사람이 무척이나 바빠질 것이다.
“미안. 삼촌.”
“미안은 무슨. 넌 이번 휴식 때 될 수 있으면 푹 쉬고. 영화 촬영도 잘해. 이런 거는 삼촌한테 맡기고.”
미안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삼촌은 그런 내게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눈빛을 건넸다. 흐음.
“한류월드 쪽이랑은 이미 어느 정도 의견 일치가 됐어. 그래서 올해 상반기쯤에는 무조건 착공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정식 계약은 이번 달이나 다음 달 쯤. 언론에도 그쯤 보도가 될 거고.”
그렇게 삼촌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시간이 꽤나 흘렀다. 내가 따로 부탁한 것도 많았거니와, 이번에 새롭게 준비해달라는 것도 있었는지라 이는 꽤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뭐, 자세한 사항은 조 관리사님을 만나봐야 알 수 있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차근차근 진행되어 간다는 것이 나름의 뿌듯함을 안겨다 주었으니까.
“그럼 나 이만 가 볼게. 애들 끝날 시간이라.”
“그래. 일주일 동안에는 계속 한국에 있을 거지?”
“어, 일단은. 뭐, 바뀔 수도 있고.”
“알겠다. 어디 멀리 가면 무조건 삼촌한테 말해줘야 하는 거 알지?”
그렇게 삼촌을 뒤로 한 채, 오랜만에 만난 나의 차에 올라탔다.
“형, 부탁한 건,”
“마트 들러서 6개 사놨어. 설치도 다 해놨고.”
“고마워, 형. 한국에 있을 때 한번 밥 먹자. 형 여자 친구도 같이 해서.”
“정말? 그래, 그럼 너 편한 시간대로 말해줘. 음... 아무튼 편히 쉬고.”
삼촌과 대화하는 사이, 나의 부탁을 받은 석현 형이 차를 가져와 준 덕에, 이중 일을 하지 않아도 돼 다행이었다. 솔직히 혼자 이것저것 준비하려고 했다면 굉장히 번거로운 일인지라, 시간을 많이 빼앗겼을 테니까.
“우와...”
내가 삼촌과의 대화를 마무리한 채, 서둘러 차에 올라탄 것은 마중을 나가기 위함이었다. 6개의 어린이 보조 시트를 차량에 설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고.
“키 완전 크다아!”
“나 저사람 테레비에서 봤는데!”
“엄청 커어!”
어린이 집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아이들의 시선을 마주하게 됐다. 그 덕에 절로 바보 얼굴이 되었고.
“여긴 왜 왔써여?”
“밥 머겄어여?”
귀여웠다. 어린이 집에 다닐 때의 아이들이 흔히 그렇듯,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물씬 느껴져서 더욱.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즐겁게 했던 것은 역시 내 동생들이었다.
“오빠!”
“형아!”
나를 발견한 것인지, 6명 모두가 가릴 것 없이 내게 달려드는 통에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반가움을 금할 수 없었다. 너무 오랜만에 봐서인지, 아니면 이 나이 때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크기 때문인지 키도 무척이나 큰 듯 했다.
“오빠! 보고 시퍼써!”
“그래 오빠도 우리 사랑이, 소망이, 희망이 다 보고 싶었지.”
“형아!”
“그래 우리 믿음이 용기 우정이도 다 보고 싶었어. 읏차! 언제 이렇게 많이 컸데? 우리 동생들?”
한 명, 한 명을 들어서 안아주는 게 꽤나 힘이 들 정도로 동생들은 많이 자라있었다.
하긴 여동생들도 이제는 5살이고 남동생들도 벌써 3살이 된 만큼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거겠지. 정작 오랜 시간 함께해주지 못해 동생들의 커 가는 모습을 보지 못한 나는 그저 이를 알면서도 아쉬울 뿐.
“어머!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 애들 사촌 형 강지혁입니다. 오늘은 제가 애들 데리고 집에 가려고요. 작은 엄마가 먼저 연락 주신다고 하셨는데, 혹시 못 받으셨나요?”
“네? 아! 애들 어머님이 연락 미리 주셨어요. 그... 정말 팬이에요.”
“감사합니다. 애들 잘 부탁드려요. 제가 한국에 오래 있지도 못하고 다들 바빠서... 작은 엄마 혼자서 애들 보기가 쉽지 않거든요.”
“물론이죠. 사랑이 희망이 소망이 그리고 용기, 믿음이, 우정이 포함해서 애들 전부 저희 교사들이 잘 돌보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어린이집 원장님으로 보이는 분의 등장에 새삼 오묘한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이래서 어머니, 아버지들이 자식 가르치는 선생님한테 자연스레 저자세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럼 우리 엄마, 아빠도 나 유치원 다녔을 때 이런 감정을 느꼈었을까.
복잡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털어버린 채 어린이집 원장님과 선생님들에게 사인을 일일이 해드렸다. 사진도 모두 찍어드렸고.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는 마음이 이런 행동에 듬뿍 담겼음은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사랑이는 여기 어린이집 좋아?”
“응? 응! 오빠! 선생님 좋아! 사랑이 그리고 친구들도 많아!”
사실 비싼 돈을 내야하는, 뭐 영어 유치원이나 강남의 비싼 유치원은 아니었다. 위치만 강남에 있을 뿐, 본가와 JS 사옥과 가까운 그저 평범한 어린이집이었으니까. 그런데 딱히 걱정할 필요가 없는 듯 했다.
“아니야! 내가 더 좋아!”
“형아! 우리 선생님 예뻐! 친구들이 다 좋아해!”
시설이 엄청 좋지도, 새것처럼 반짝반짝 거리지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포근한 느낌이 드는 어린이집이 동생들은 무척이나 마음에 든 듯 했으니까. 뭐, 그 시설만큼이나 따뜻한 선생님들이 큰 몫을 한 것은 당연했고 말이다.
“우리 아빠까지 데리러 갈까? 태현 삼촌도?”
“응!”
“아빠! 아빠!”
“삼촌도 보고 시퍼! 형아!”
그렇게 애들을 데리고 근처에 있는 JS 사옥으로 갔다. 어차피 본가에서 사옥은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고 태현 형과 삼촌까지 같이 동행한다면, 동생들 6명을 대동한 채 걸어서 집까지 갈 수 있을 테니까.
“자! 조심히 내려야 된다?”
“용기! 누나 손 짭아!”
“우리 사랑이 동생 챙기는 거야?”
“응! 내가 챙길 거야!”
“아냐! 나도 챙길 거야! 미듬이 누나 손!”
그렇게 주차장에서 남동생들이 차에서 내릴 수 있게 고사리 같은 손으로 남동생들을 챙기는 여동생들을 보니, 마음이 절로 흐뭇해졌다. 어쩜 행동하는 게 이렇게도 예쁜지. 그래, 이렇게 잘 커라. 앞으로도 쭈욱.
“우와! 강지혁이다!”
“대박!”
“어? 저 애들은?”
“애들 데리고 회사 왔나봐! 대박!”
“와! 진짜 귀엽다! 저거 그거지? JS 아들, 딸?”
굴비 엮듯 동생들에게 손을 잡게 시킨 뒤, 사옥 정문으로 들어서자 회사 아티스트들을 보기 위해 진을 치고 있던 이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게 되었다. 그들 중 몇몇은 기자였던 듯 연신 플래시를 터트리고 있었는지라 경비원들에게 주의를 주게끔 부탁드렸다.
나는 그렇다 쳐도 동생들 사진이 인터넷에 떠도는 것은 꺼려지는 사안이었으니까.
[똑똑똑]
“똑똑똑”
“또똑또”
삼촌 작업실 문을 두드리자, 옆에서 똑같이 이를 목소리로 흉내 내는 동생들 덕에 미소를 지울래야 지울 수가 없었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어린이집에서 배운 듯, ‘똑똑똑’이라는 의성어를 계속해서 노래하듯 꺼내는 동생들의 모습은 혼자 보기엔 너무나도 아까운 장면들이었다. 그래서 서둘러 문을 열어버렸다.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들어오... 에?”
“압빠!”
“아빠!”
문이 열리자마자, 삼촌에게 돌진하는 애들 그리고 갑작스런 애들의 방문에 놀라는 삼촌을 보니 부럽긴 부러웠다. 아까 나도 지금의 삼촌과 같은 얼굴 표정을 하고 있었을까?
삼촌의 놀란 얼굴 표정이 어느새 더 이상 밝아질 수 없을 정도로 밝아져있었는지라 잠시 이를 아무 말 없이 바라보았다.
“아빠! 오늘 나 닥죽 먹었써!”
“그래? 우리 사랑이 닭죽 맛있었어?”
“응! 근데, 근데! 용기가 마늘 안 먹어서 내가 때찌했어!”
“아빠! 아빠! 희망이가 막, 막 믿음이 먹여줬어! 믿음이 밥 안 먹는다고 해서!”
“아빠! 나 축꾸! 축꾸! 축꾸하고 시퍼!”
“나는, 나는 농구!”
저 사람을 나의 10대 때와 어찌 비교할 수 있겠는가. 아예 다른 사람일진데.
동생들이 오늘 하루 있었던 일들을 주저리주저리 보고하는 것을 일일이 대꾸해주느라, 정신이 없는 삼촌을 보자니 고개가 절로 절레절레 흔들렸다.
뭐, 사람은 변하는 거지. 아니면 저게 원래 모습이어서, 원래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던가.
[따악]
맞은 편 소파에 앉아, 옆에 있는 냉장고에서 비타민 음료를 하나 들었다. 동생들의 하루 일과 보고가 끝나려면 한동안 기다려야 될 것 같았으니까. 후우. 이럴 게 아니라 태현 형을 먼저 내가 데려오는 게 나으려나?
*
[꺼억]
좀처럼 꺼지지 않은 배가 약간의 불쾌감을 주었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온갖 음식들을 차려준 작은 엄마의 정성에, 과식을 한 것은 내 자신의 선택이기도 하였거니와 간만에 느낀 시끌벅적한 저녁 식사 분위기가 꽤나 기분 좋은 충만함을 가슴에 안긴 까닭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에 비해 지금 내가 전화를 걸려고 하는 이 순간이 주는 설렘과 기쁨이 적다는 뜻은 아니었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들리자, 입 꼬리가 절로 귀까지 올라가버렸다. 허락도 없이.
“내가 누구 게.”
이렇게 유치하게 행동하게 될지를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 내가 이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놀랄 만도 하건만, 나는 그저 들려올 목소리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몰라.]
모르긴 뭘 몰라? 나 참.
“그래? 그럼 내가 전화를 잘 못 걸었나? 흐음... 내일 드라이브 하면서 데이트하려고 했는데, 이거 어떡하지? 나 전화번호 이것밖에 몰라서 잘못 걸었으면,”
[치...]
아무래도 통화가 길어질 것 같았다. 어느새 더부룩했던 속은 어떠한 불쾌감도 주지 못했고 제법 추웠던 날씨도 훈훈한 바람으로 내게 다가왔으니까.
“내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