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49화 (449/502)

00449  2019  =========================================================================

#449

다른 여타의 문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망설이고 있었다. 누가 봐도 분명히.

“민지야?”

따라서 그녀가 지나가던 나정과 마주친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 나정언니.”

연습생 생활을 함께했었기에 나정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어색함이 없었다.

“여기서 뭐해? 대표님. 아니 PD님 만나 뵈러 온 거야?”

이내 들려온 나정의 목소리마저 주민지 그녀의 굳어있던 얼굴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녀는 오늘 자신의 향후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사람을 만나러왔다.

그는 회사 내에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 알아주는 연예계 대표 가수 겸 프로듀서로서 한 마디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는 그가 그동안 데뷔시킨 수많은 레전드 아이돌 그룹들만 살펴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 응. 언니.”

“이번에 회사에서 새로 걸 그룹 론칭한다던데, 그것 때문이야?”

“자세한 건 잘 모르겠어.”

프리티 스타가 해체되고 그녀는 소속사의 든든한 지원 하에 활발한 연예계 활동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는 다른 프리티 스타 멤버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돋보이는 활약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 목말랐다. 아이돌 가수로서 무대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들었을 때, 바로 그때가.

“에이. 다 잘 될 거야. 내가 매니저 오빠랑 실장님한테 물어보니까, 걸 그룹 새로 론칭하는 거, 거의 확실하더라고. 그러니까, 지금처럼만 해.”

“고마워 언니.”

“아! 맞다! 언니 스케줄 가던 중이었는데! 깜빡했네. 민지야 나중에 시간되면 밥 먹자. 언니가 맛있는 거 사줄게! 그럼!”

그렇게 잠시나마 그녀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었던 나정은 떠났다. 그리고 그녀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문 앞에서 망설이고 있었다.

“후우...”

더 이상 미룰 수는 없었다. 오후에도 스케줄이 있음을 모르지 않았기에 그녀는 크게 한숨을 내쉰 뒤,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그리고 잠시 뒤, 방문 안에서는 무척이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그래. 요즘 활동을 어떻니?”

연습생 생활을 오래한 만큼 박재성과 그녀는 초면이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를 대하는 박재성의 태도는 꽤나 다정했고 친절했다. 그 반대의 경우와는 꽤나 상반될 정도로.

“회사 사정으로 올해 안에 걸 그룹을 새로 론칭시키는 건 조금 힘들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나 회사 차원에서나 무척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대화 내용 자체도 그런 그녀의 마음을 반영하듯,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 연습생들도 그렇고 아직까지 데뷔할 만큼의 수준이 되지 않아. 그래서 내년 쯤 새롭게 걸 그룹 론칭 계획을 시행하게끔 이사회에서 결정이 났어.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민지 네가 마냥 쉬고 있으라는 건 아니야. 매니저나 기획실장 통해서 전달 받았겠지만, 이미지 소모를 최소한으로 하면서 네 인지도를 유지 또는 상승시키기 위해서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서포트 해줄 테니까. 그러니까, 너무 낙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도 그녀는 일과 관련된 걱정을 하지 않았다. 국내 최고의 기획사들 가운데 하나인 JS에서 자신을 확실히 서포트 해주겠다는 의지를 그동안 여러 명을 통해 전달받았었고 그녀와 그녀의 부모님은 이를 신임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내 그녀가 꺼려할 만한 얘기를 건네는 박재성으로 인해, 그녀가 진짜 걱정하던 부분이 현실이 되어버려 그녀의 얼굴을 더욱 굳게 만들어버렸다.

“민지 네가 그때 연습생 생활을...”

안 그래도 말이 없던 그녀였지만, 그 순간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렸다.

그녀가 문 앞에서 망설였던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잠시 중단했을 때. 개인적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서 이렇게 대중들한테 사랑받는 사람이 돼서 대견스럽기도 하고.”

이전에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 그녀의 뇌리 속에 박혀 있었는지라,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일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때의 기억이 아직까지 선명했기에 그녀는 서둘러 대화를 마무리하고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후우... 후우...”

그리고 사무실을 빠져나온 그녀의 입에서는 안도의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

[유지연씨 되십니까?]

모르는 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순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그의 전화인 줄 알고, 누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전화를 받았던 터라 더더욱.

[그런데요? 실례지만 누구시죠?]

하지만 이내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내용은 그녀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소식들을 담고 있었다.

[미스터 강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으십니까?]

[네?]

[미스터 강께서 지금 유지연씨를 찾고 계십니다.]

왠지 모르게 익숙한 ‘미스터 강’이라는 단어에 미간을 살짝 찌푸린 것도 잠시, 그녀는 서둘러 캐리어를 이끌고 카페를 나섰다.

[고열로 인한 감기로 현재 치료 중에 있으십니다. 의식을 잃으신 상태인데, 직원에게 마지막으로 건네신 말이, 유지연씨를 데려와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현재 계신 곳을 말씀해주시면 저희 직원이 유지연씨를......]

그리고 그녀는 이내 볼 수 있었다. 어제 부모님과 함께 마주했던, 왕자의 신하라고 칭하던 이가 서너 명의 사내를 대동한 채 자신을 데리러온 것을.

약간의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자신을 낚으려는 어떤 불법적인 범죄행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 하는 게 이상했다. 하지만 그를 보자마자 그녀는 망설이지 않고 그가 타고 온 세단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이내 안내되어졌다.

“흐음... 유지연...”

자신의 이름을 부른 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그가 있는 방으로.

[열이 한때 39도까지 올라갔지만, 현재는 37도 선까지 내려간 상태입니다. 약을 복용하시고 휴식까지 취하신다면 이삼일내로는 쾌차하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만.]

유지연 그녀가 마치 보호자라는 듯, 의사의 환자 경과보고를 끝으로 대기하고 있는 십여 명 가량 되는 이들이 모두 방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녀와 그만을 남겨둔 채.

차라리 먼저 연락을 할 것을.

먼저 연락을 했더라면 조금 더 빨리 그를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이렇게 아픈 그를 조금 더 ᄈᆞᆯ리 간호해줄 수 있었다는 생각에 그녀의 얼굴이 어두워져갔다.

의식을 잃기 전 자신을 불러달라고 했다는 안내인의 말을 떠올리며 그녀는 그의 뜨거운 머리를 자신의 무릎위에 올렸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쓸어 올렸다.

그렇게 그녀는 한동안 그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너무나도 그리웠던 얼굴이지만, 아픈 그를 보고 있자니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그때였다.

그의 두 눈이 떠진 것은. 그리고 그의 손이 자신의 특정부위를 주물럭거리기 시작한 것은.

[물컹물컹]

놀란 나머지 그녀는 말문을 열지 못했다. 그저 그래왔던 것처럼 그를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었을 뿐.

[물컹물컹]

아팠다는 것이 마치 거짓말인 것처럼 그의 손길은 대담하고 또 자연스럽게 그녀의 주물럭거렸다. 그래서 좀처럼 상황파악이 되질 않았다. 아파서 의사까지 왔을 진데, 갑작스럽게 눈을 뜬 그의 행동이 이와는 무척이나 매칭이 되지 않은 행동들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마냥 그를 당혹스럽게만 만들지는 않았다.

“흐음... 코는 확실히 안했고.”

순간 자신이 잘못들은 것일까. 아무리 되새겨 봐도 확실히 잘못들은 것은 아니었다.

이내 그의 손이 볼 쪽으로 갔고 그의 입이 열린 순간, 그녀의 혼란스러웠던 정신이 다시금 정상으로 돌아왔다.

“역시 꿈이라서 그런지 볼 살이 확실히 더 많네. 살찐 유지연이 이정도일까?”

살이 쪘다?

살이 쪘다는 말에 그녀의 미간이 미약하게나마 찌푸려졌다. 더불어, 지금을 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의 행동이 지닌 어처구니없음에 한숨이 나왔고.

꿈이라고 여겨서 이런 행동들을 했던 것일까.

눈을 뜨자마자 자신의 몸 곳곳을, 대담하게 주물럭거리던 그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도 꽤나 합당해 보이는 이유가.

그래서 어이없음이 지나쳐 피식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볼 살이 쪘다는 말이 조금 신경 쓰였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그의 행동이 귀엽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이어진 그의 말에 그녀의 앞선 생각들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순식간에.

“역시나 꿈에서나 현실에서나 여기는 똑같네. 살이 찐 것 같은데, 왜 여긴 똑같지? 여자들은 살찌면 여기부터 찐다는 데. 흐음... 유지연은 살이 찌면 볼 살이랑 뱃살부터 찌는 걸까? 아닌데, 유재연은 안 그러던데... 이건 유지연만 그러는 걸까?”

가슴과 배를 만지는 그의 행동이 참사를 불러일으켰다. 알게 모르게 꽤나 신경이 쓰였던 점을 모두 건드린 그의 말에 그녀는 표정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유재연보다 언니인데 왜 여긴 더 작지? 그러고 보니, 키도 약간이나마 더 작은 것 같고... 흐음...”

[움찔]

“어? 꿈인데, 움찔하네? 와... 진짜 같다. 하하. 대박.”

화가 났다. 하지만 그녀를 이내 지배한 것은 시무룩함이었다. 괜찮다고 했으면서 여전히 ‘가슴’에 신경을 쓰고 있었다는 점이 그녀의 가슴을 후볐다. 더불어 자신이 오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동생 유재연과의 비교에서 상대적으로 뒤쳐진다는, 그녀의 은밀한 열등감을 무척이나 자극시키는 그의 말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놀라고 말았다.

지금까지처럼 그의 태도 때문이 아니었다.

“걱정 마. 내가 많이 만져주면 커질 거야. 그리고 난 지금 유지연의 모습이 제일 좋으니까. 뭐, 애교가 없는 게 조금 아쉽지만?”

그가 자신에게 건넨 또 다른 말에 일순간 복잡했던 감정들이 몽땅 사라져버렸다는 점. 그 점이 그녀를 놀람을 넘어선, 경악까지 하게 만들었다.

어째서 자신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린 것일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그녀 자신이 낯설게 느껴졌다. 자신에게 살이 쪘다느니, 살이 쪄야 될 곳이 안 쪘다느니 와 같은 말보다는 지금의 자신이 가장 좋다는 그의 말 한마디가 그녀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안 좋았던 기분이 순식간에 달아나버릴 정도로.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어느새 환하게 밝아져 있을 정도로.

“하아... 유지연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했는데... 감기에 걸려버렸네? 쩝. 안 되겠다. 나 이만 잘래. 꿈속 유지연 안녕. 다음에 또 다시 보자. 안녕!”

그 사이 그는 다시금 눈을 감고 잠에 빠진 듯 했다. 복잡해져버린 생각에 빠진 그녀 자신을 두고서.

*

“이번 이해영 고양시장의 출마선언으로 대통령 후보자는 총 24명으로 늘어나, 헌정 역사상 최다 대통령 후보자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요즘같이 뉴스의 시청률이 높았던 때가 있을까.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

뉴스에서 보도하는 사실이 워낙 흥미로운 소식들뿐이었는지라, 대중들의 뉴스에 대한 관심을 역대 최고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끓어올라 있는 상태였다.

“그렇군요. 자! 다음 소식입니다. 요즘 이분 덕에 굉장히 시끌벅적하죠. 그런데, 최근 가수 겸 강지혁 씨가 주도적으로 추진한 꿈 기숙사와 관련해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는 데, 이게 무슨 소리죠? 조준우 기자?”

이런 현상의 일등 공신이라고 봐도 무방할 이가 바로 강지혁이었다. 그는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얻고 있는 굵직한 사건들에 모조리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의아할만한 사안이 아니었다. 그와 관련된 뉴스 소식이 보도된다는 사실은.

“먼저 꿈 기숙사 측에서 공개한 꿈 기숙사의 조감도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오늘도 그는 대중들이 큰 관심을 가질만한 보도 뉴스와 연관되면서, 뉴스 시청률 상승에 높은 기여를 할 수 있었다. 정작 그 자신은 뉴스를 본 지 꽤나 오래된, 지금은 그저 침대에 누워 꿈속을 해매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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