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46화 (446/502)

00446  2019  =========================================================================

#446

자신을 ‘몰고르’라고 소개한 이와 다른 몇 명의 왕자 측 인사가 나를 안내한 곳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국의 자랑 버즈 두바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직 완공되지 않은 곳으로 알려진 호텔로 나를 이끌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것 치고 그들의 행동은 자연스러웠다.

[정식 개장은 올해 말로 계획되어 있으며 현재는 스위트룸을 대상으로 한정적 운영 중입니다. 따라서 불편하신 점은 장담하건대 없으실 거라...... 물론 이곳 스위트룸에 묵으신 분들 가운데 왕가의 혈통을 잇지 않은 분은 없습니다. 미스터 강을 제외하고는.]

역시나 믿는 구석이 있었다.

[162개 층, 828m의 높이로, 현재 전 세계 최고층 빌딩으로 등극되었으며 이는 왕국의 자랑거리이자, 주군의 위명에......]

엘리베이터가 어찌나 빨리 올라가던지, 남산타워나 63빌딩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허허. 162개 층이라. 1층에서 볼 때 꼭대기를 쳐다봤는데 목이 빠지는 줄 알았다. 그 정도였다. 이 건물의 위용은.

벌써 이렇게 지어진 것일까.

하긴 비슷한 시기에 착공한 꿈 아레나가 완공된 지 오래이니만큼, 버즈 두바이라 명명된 이 건물이 이런 위용을 갖게 된 것도 이상한 게 아닐 테지.

그나저나 역시 두바이 왕자는 왕자다.

매번 볼 때마다 본인이 지닌 스케일을 몸소 느끼게 해준다는 점에서 놀란 것도 있지만, 내가 무엇보다 놀란 것은 그 스케일 자체가 아니었다. 매번 업그레이드되어 나를 놀라게 만드는 데 성공하는 그 변화가 중요했다.

이러다가 몇 번 더 만나면 날 어떻게 놀래킬지, 궁금하기도 하면서 부담이 왕창되었으니까.

[162개 층 가운데 157층부터 161층은 스위트룸 전용 층이며 오늘 미스터 강께서 묵으실 곳은 160층의 ‘GREAT ARTIST KANG’룸입니다.]

[콜록콜록. 뭐, 뭐라고요?]

[이 룸은 한정적 운영 기간 동안 ‘GREAT KING SEJONG’룸과 더불어 단 한 명의 손님도 들이지 않은 상태입니다. 왕자님께서 직접 국왕폐하께 주청을 드려, ‘GREAT ARTIST KANG’룸과 ‘GREAT KING SEJONG’룸은 미스터 강께서 처음 개시를 하실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내셨습니다. 따라서......]

기사를 본적 있었지만, 워낙 오래전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렇다. 이 건물에는 내 이름을 딴 방이 있었다. 그것도 이 높은 건물에 딱 10개만이 존재하는 스위트룸에.

사실 내 영향 때문에 명명되었다 봐도 무방할 ‘GREAT KING SEJONG’룸까지 고려한다면 무려 2개나 한국과 관련된 이름이었다.

의도치 않게 애국한 게 바로 이런 것일까.

후우. 기분이 오묘했다. 좋기도 했지만 솔직히 부담도 됐다. 이거, 정식으로 개장되면 언론에서 또 얼마나 떠들지. 에휴.

[버즈 두바이의 정식 개장 전에 ‘GREAT KING SEJONG’룸이 개시될 수 있도록 꼭 들러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10개의 스위트룸 가운데 2개의 방을 내가 가장 먼저 쓸 수 있게 두바이의 국왕이자, 아버지에게 직접 주청까지 드렸다니.

어떻게 보면 진짜 대단했다.

한 사람을 사랑이 아닌, 팬으로서 이렇게나 좋아할 수 있을까 싶었으니까.

고개가 절로 좌우로 흔들렸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GREAT ARTIST KANG’이라는 조금 낯부끄러운 이름의 스위트룸에 들어섰을 때 그런 감정들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

“아빠?”

“우리 딸! 아빠 많이 기다렸지?”

분주하게 제갈 길을 가는 수많은 사람들.

두바이 국제공항은 어느 때처럼 사람들로 붐볐다.

“아빠 못 온다고 그러던데 엄마가!”

“아니, 그럴 수가 있나! 우리 작은 딸이 한국에 간다는데, 아빠가 무조건 와야지!”

새로운 도전을 위해 한창 바쁠 작은 딸이, 한국에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그는 배웅을 나갈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벌어진 사태. 그 사태로 인해 그가 평생을 거쳐 가꿔온 회사가 휘청거린다는 사실은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여보? 회사일... 여기와도 돼요?”

“아빠. 괜찮은 거에요? 꽤 중요한 일이라고 하던데.”

하지만 그는 작은 딸이 한국으로 떠나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공항으로 왔다.

“에이, 큰일은 무슨. 걱정하지 말고 우리 작은 딸! 밥 먹었어? 아빠랑 같이 밥 먹을까?”

“치... 비행기 시간 얼마 안 남았거든요?”

“에에? 이걸 어쩌나? 우리 작은 딸?”

“치... 아빠 얼굴 봤으니까. 괜찮아.”

그의 얼굴에는 회사일과 관련된 근심과 걱정이 사라져있었다. 오로지 작은 딸을 또다시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아쉬움과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을 뿐.

“그래? 우리 딸이 언제 이렇게 컸을까나? 아빠가 우리 작은 딸이랑 계속 같이 못 있어서줘서 미안해. 아빠가 다음에 한국 가면 우리 작은 딸이랑 계속 붙어있을게. 알겠지?”

“진짜지?”

그렇게 그는 작은 딸이 비행기 탑승수속을 하기 위해 떠나는 그 순간까지 딸에게서 시선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눈에 작은 딸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의 눈에는 눈물이 살짝 맺혀 있었다.

“아빠. 여기요.”

“응?”

그런 자신에게 손수건을 내미는 큰 딸 유지연을 보며 아차 싶었는지, 그는 이미 환한 미소로 딸 유지연을 바라보았다.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자꾸 눈물이 나네? 하하! 우리 큰 딸 아빠랑 단둘이 맛있는 거...”

그렇다. 아직 모든 딸이 떠난 건 아니었다. 그래서 눈물을 애써 변명한 그의 머리에는 큰딸 유지연과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물론 옆에 있던 또 다른 이는 이를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지 않았지만.

“여보. 잠깐 나 좀 봐요.”

“응?”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모르지 않았다. 그의 아내는.

회사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의 아내는 그의 태도에 어느새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회사는 어떻게 하고요?”

“괜찮아.”

“예?”

“괜찮아졌어.”

질문에 대한 답이 너무나도 간단해서인지, 그의 아내의 의문스러운 얼굴 표정은 여전히 존재감을 감추지 않고 있었다. 아니 더욱더 짙어졌다. 현 상황의 해명을 요구하는 그녀의 바람은.

“정말이야.”

“그러니까. 어떻게요?”

그리 간단히 끝낼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회사라는 것이 어느 한 부분에서 자금이 돌지 않으면, 건실한 회사라고 할지라도 휘청거릴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회사가 맞이한 위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가 근 몇 년 동안 가장 큰 규모로 주도한 사업이 이번 화장품 수입 건일 진데, 물품이 통관절차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은 최종 매입자에게로의 물품인계에 크나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고 이는 회사가 망할 수도 있는 무척 큰 사안이었으니까.

“나도 몰라.”

“네? 여보. 그게 무슨...”

하지만 그의 대답은 정말이지 사실에 너무나도 충실한 대답이었다. 그는 아직까지 사건을 해결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물론 어떤 낯선 사람이 다가와 몇 마디 쭉 내뱉자, 통관 업무를 담당하던 직원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버렸다는 점 그리고 이내 자신들의 물건이 순간 통관 절차에서 해방되었다는 점 등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 자체를 몰랐다. 홀연히 나타나 문제를 해결한 남자의 정체 또한 알지 못했고.

그러나 그는 이내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를 포함한 가족들 모두가 알 수 있었다.

공항에서 사먹는 음식들 또한 맛이 있었다.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었으나, 회사가 위기를 벗어났다는 점 그리고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는 다는 점 때문에 그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등장한 사내와 그가 소개한 자신의 정체로 인해 그의 얼굴은 경악에 가까운 놀람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다. 왕가의 빛을 모시고 있는 하무르라고 합니다.]

일단의 무리들과 함께 등장한 그의 복장은 공항 내에서도 무척이나 눈에 띄는 편이었다. 무엇보다 허리에 칼을 차고 있음에도 공항 경비대의 어떠한 제지도 받지 않았다는 점이 그러했다.

[주군의 지시로 미스터 강을 호텔로 모셔다드리는 과정에서, 미스터 강이, 그쪽의 일에 관심을 보이셔서 제가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왕가의 빛이라는 호칭에 놀라고 말았다. 그가 알기로 이곳 두바이에서 왕가의 빛이라는 호칭을 달 수 있는 것은 단 한 가문의 사람들뿐이었으니까.

[그렇습니다. 저는 왕가의 빛을 직접적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입니다.]

[헉.]

“여, 여보. 지금 이 사람이 하는 말...”

“아빠 뭔데 그래요? 이 사람들은 다 뭐고요?”

그와 마찬가지로 아랍어를 할 수 있는 아내의 얼굴은 어느새 그와 닮아 있었다. 다만 이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큰딸만이 얼굴에 걱정을 담고 있었을 뿐.

[...... 그들은 정밀한 수사를 통해 충분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는 제 이름과 왕국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립니다.]

[그, 그런...]

[결과적으로 왕국의 수치로 인해 그쪽이 불합리한 처분과 대우를 받으셨다는 점에서 대표로 사과드리겠습니다. 향후 이러한 불합리함과 범법은! 다시는 없도록 하겠습니다. 용서해주시겠습니까?]

두바이 현지 국영기업과 통관 담당 직원 그리고 경쟁 업체들 간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즉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꼴로 자신들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접하면서도 그는 얼떨떨했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왕가의 사람.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찾아와 문제가 제발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확언한 왕가의 사람.

용서를 빌며, 꼭 용서를 해줘야 한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왕가의 사람.

이 상황 자체가 두바이에서 짧지 않은 세월동안 살아왔던 그조차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종의 영화와도 같은 상황 그 자체였다. 그만큼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제가 미스터 강에게 부끄럽지 않게 됐군요. 그럼 저는 이만. 신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홀연히 나타났다, 다시금 홀연히 사라지려는 사내를 보며 유승재 그가, 재빨리 사내를 붙잡았다.

[저, 저기...]

[무슨 일이십니까. 또 무슨 불합리한 대우를 받고 계신 겁니까?]

[그건 아닙니다.]

이대로 사내를 보낼 수는 없었다. 방금 전 사내가 떠나기 전 건넸던 말을 듣고 나서는 더더욱.

[혹시 저를 도와주신 게... 그 미스터 강이라는 분 때문입니까?]

[흐음... 그렇습니다. 그분이 지나가시던 중, 고국의 사람들이 곤경에 처한 듯하자 제게 손수 부탁을 하셨습니다. 억울한 일로 곤경에 빠진 것이라면 살펴봐달라고.]

[아!]

[아...]

유승재와 그의 아내 입에서 일제히 탄성 소리가 흘러나왔다. 회사를 덮쳤던 크나큰 위기가 한 사람의 관심으로 인해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저절로.

[혹시 그 미스터 강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아마, 한국 사람인 듯 한데.]

그래서 그는 가만히 그를 보낼 수가 없었다. 은인의 이름이라도 알고 싶다는 마음이 그의 가슴속에 한 가득이었고 이는 그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분에 관해서는 자세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그분은 한국분이시며 극비리에 두바이에 들르신 것이라.]

[아...]

하지만 왕가의 사람이라는 이는 그의 바람을 이번에는 들어주지 않았다. 아주 귀한 사람이라는 듯, 하긴 왕가의 왕자들을 직접 모신다는 사람이 수행한다는 점에서 범상치 않은 사람인 건 당연하겠지만, 어쨌든 그의 정보를 쉽게 말할 수 없다는 말을 유승재 그에게 건넸던 것이다.

[그렇다면 감사하다고 꼭 좀 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분께서도 무척이나 좋아하실 겁니다.]

그렇게 모든 상황의 전말을 대략적으로나마 알게 된 그와 그의 아내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다. 다만 아직까지 그들을 제외한 한 사람이 의아함과 불안함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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