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45화 (445/502)

00445  2019  =========================================================================

#445

[모하메드씨 물품 통관 절차가 아직까지 안 끝났단 말입니까? 그리고 검역 절차는 또 무슨 소리입니까?]

가족들과의 소중한 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가, 그리고 그 내용이 그를 이곳까지 오게 만들었다.

[이번에 들어오기로 한 물품에 마약류가...]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마약류라니?]

홍콩, 싱가포르, 도쿄, 서울. 지난 세월동안 그가 자신의 사업을 위해 거점으로 삼았던 곳들이다.

사업이라는 게 본디 깨끗한 일만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물품 자체가 달이 넘도록 통관을 통과하지 못하고 또한 전혀 모를 일이 그 과정에서 발생한 적은 무척이나 드물었다.

[관계자와 얘기를 직접 나눠봐야 될 것 같습니다. 앞장서시죠.]

그래서 그 또한 회사의 대표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직감했다. 가족들과의 달콤한 휴가는 조기에 끝나버렸다는 것을.

*

[10만 명을 울고 또한 웃게 만들었던 강지혁의 정규 5집 발매 기념 무대가 성황리에 마쳐! 강지혁 초청 9600명의 일본 팬들과 자비로 한국까지 온 3만 명의 일본 팬들 그리고 아시아 지역에서 온 3만 명의 팬들까지. 7만 명의 외국인 팬들과 3만 명의 국내 팬들이 어우러져...... 한편 이번 전체적인 사태를 전문가들 중 일부가 강지혁 신드롬이라고 칭하면서, 일본지역에서의 혐한시위, 이에 맞선 THE ONLY ONE, 강지혁의 대처 등의 현상에 사회 현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가들과 학계에서...... 한편 강지혁의 정규 5집 앨범은 초동 판매 1983만 8596장을 기록하며 전 세계 최다 초동 판매 기록을 세웠으며 한해 동안 가장 많이 팔린 앨범 1위에도 등극하여, 한국 가요사의 쾌거에......]

“식사 준비해드릴까요?”

“예. 아! 간단히 먹을 수 있게 준비해주세요.”

기내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고 안락했지만, 아직까지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무대를 치른 지, 서너 시간 지난 지금까지 그때의 열기가 온 몸에서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그만큼 최선을 다했고 뿌듯한 시간이었다.

단 10곡뿐이고 정해진 스케줄과 개인 스케줄까지 겹쳐 무대를 연장하지는 못했지만, 이는 이것 나름대로의 여운으로 내게 깊은 뿌리를 내린 듯 했다.

“사과브리치즈 샐러드와 갈릭 브레드입니다. 음료는,”

“그냥 생수로 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약간의 암모니아 향이 사과의 상큼함과 어우러져 꽤나 괜찮은 맛이 느껴졌다. 뭐, 말이 암모니아 향이지, 이건 어느 치즈나 가지고 있는 특색일 뿐이니까.

“두바이까지는,”

“9시간 조금 넘게 걸립니다.”

“시차가 5시간 정도니까...”

“현지 시간으로 오전 5시에서 6시쯤에 도착하게 될 겁니다.”

커피 생각이 절로 나는 음식이었다. 사과브리치즈 샐러드는.

그래서 커피를 마셔볼까 싶었는데, 아무래도 생각에서 그쳐야 될 것 같았다.

두바이에서의 삼사일정도 보낼 생각인 만큼 굳이 커피를 마시면서까지, 현지 시간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고 싶지 않았다. 뭐, 흥분 때문에 지금 당장은 잠이 오지 않았지만, 지금 내 상태가 분명 피곤함에 푹 빠져있음을 모르지 않았고 무엇보다 커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이 두바이에 존재했으니까.

“저 이만 잘 테니까. 이것 좀 치워주세요.”

“네.”

“아! 두바이에서는 삼사일정도 있을 거니까. 그것도 참고해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깊은 치즈향이 입안에 감도는 것을 느끼며, 담요를 목 아래까지 끌어올렸다. 다시 일어났을 땐 두바이의 아침을 맞이하길 바라면서.

*

“어?”

[안녕하십니까. 미스터 강. 저는 저의 주군 세이크 함단빈 모하메드 랄 막툼 왕자님의 충직한 수하이자, 여분의 생명, 믿을 수 있는 방패 하무르입니다.]

두바이에 도착하여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뜻밖의 사람이었다.

[아, 예...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왕자님께서는 미스터 강께서 이번에 두바이를 방문하신다는 사실을 아시고서 저를 직접 보내셨습니다. 지금 현재 왕자님께서는 유럽지역 국빈방문을 통해 왕국의 외교업무를 보고 계신지......]

오른팔이라고 하던가, 왼팔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왕자의 충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던 사람을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다. 그런데 그 이유를 듣자니, 참... 이해되는 내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왕자는 두바이에 없는 듯 했다. 그런데 내가 두바이에 온다는 소식을 용케 접했는지, 외국에서도 나를 챙기기 위해 부하를 보낸 듯 했다. 참, 나의 열혈 팬인지라 고맙기도 하고 기분도 좋았지만 그의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사랑 표현이 일반 팬들과는 스케일부터 달랐는지라 걱정부터 되었다.

또 어떤 걸로 날 놀래킬지. 나 원 참.

[호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아! 저는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정말.]

너무 과한 대접을 올 때마다 받는 것 같아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었다. 이런 왕자의 행동이 정말 순수하게 나를 위한 것임을, 나의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임을 모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를 찾아온 하무르라는 사람의 안내를 조심스럽게 거부했다. 왕자가 직접 나를 찾아온 게 아닌 이상, 어떻게 말을 잘하면 이런 과한 대접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이 사람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나보다.

[털썩]

갑자기 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이 사람의 행동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주군의 명을 이행하지 못한 저의 선택은 단 하나뿐입니다. 제가 미천하고 미진하여...... 죽음으로써 이를]

이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 자신 목 바로 위를 겨누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해 경악을 하게 되었고.

[가, 갈게요. 갈게요.]

그를 뒤따라 뒤에 기립해있던 네다섯 명의 사람들도 일제히 칼을 꺼내 하무르라는 사람들과 동일한 행동을 하자, 재고 말고 할 게 없었다.

부담스러운 일 좀 피해보자고 사람을 죽게 내려둘 수는 없었다. 이건 상식이다.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미는 저 사람들이 비상식이고.

[감사합니다. 미스터 강. 주군의 뜻을 받을 수 있게 해주신 은혜, 하해와 같습니다.]

그래, 그래. 좋은 데 가서 룸서비스도 팍팍 시키고 시설도 마구, 마구 쓸 테니까, 칼부터 넣으시죠. 충신 중에 충신 아저씨. 나 원 참.

[근처에 헬기를 대기시켜 두었습니다. 이동하시죠.]

아예. 예. 그렇습죠. 네, 암 그렇고말고요.

*

뭔가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졌다.

승무원분들과 조종사분들과 이르게 작별 인사를 한 뒤, 헬기를 준비해놨다는 곳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길 5분.

무슨 물류창고인 듯 한 곳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헬기로부터 나의 시선을 빼앗은 곳은 꽤나 여러 사람들이 몰려있는 사무실 부근 쪽이었다.

[죄송합니다. 미스터 강. 흐음...]

단순히 사람들끼리의 대화소리로 보기 힘든 시끄러움이 느껴졌고 이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한 하무르의 태도를 보며, 오히려 인간적인 면모를 봤다는 점에서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 제가 상황을... 이런 실수를... 일단 헬기에 오르시죠.]

그래도 겉으로 이런 속내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까딱했다, 자신의 칼을 들고 자해를 할지 모르는 사람을 괜히 자극할만한 심보와 배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사장님 어떡합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 아니 화장품에서 갑자기 마약이 나올 리가 없지 않습니까?”

“하아...”

뜻밖의 목소리가 나의 발걸음을 사로잡아버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미스터 강?]

“그리고 여기 사람들도 이상합니다. 여기서 몇 년 동안 매주 얼굴 마주한 사람들이 이제는 낯빛을 싹 바꾸고......”

“맞습니다. 사장님. 솔직히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저희 쪽에 그런 물건이 들어있는 것도 때맞춰 저희 물품만 전수 조사를... 말이 전수조사지... 지금껏 그런 적이 한번도......”

“사장님 물품 대금이 납부 안 되면... 물건이 여기서 막혀있으면 저희 쪽 자금 사정이......”

오지랖이 넓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바이 그것도 공항의 꽤나 특정한 지역인 듯한 곳에서 들려오는 한국말 그리고 그 한국말이 내 주의를 끌만큼의 내용을 담고 있었는지라, 마냥 외면하기가 힘들었다.

[하무르님.]

[예?]

이곳은 두바이,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뭐, 이런 종류의 일은 한국이라고 해서 다를 건 없겠지만.

하지만 내 옆에 있는 이는 달랐다.

내가 힘이 없지, 하무르라는 무사에게 힘이 없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왕자의 부하인 만큼 그가 개인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영향력 또한 적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그에게 부탁했다.

[저기 저쪽에 한국분이 뭔가 억울한 사연 때문에 힘들어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하무르님이 가서 무슨 상황인지 봐주시면 안 될까요?]

[하지만 저는 미스터 강을 호위하여 호텔까지 무사히...]

하지만 그는 나의 부탁을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했다. 흐음. 난감한데. 이거.

[저기 한국 분들이 잘못한 점이면 그냥 상황에 개입하지 않으셔도 돼요. 다만, 억울한 점이 있고 부당한 점이 있으면 바로잡아 주시는 게 왕자님의 위명과 왕국의 찬란한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게 만드는 것 아닐까요?]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난처한 상황에 빠진 듯한 한국인들을 무작정 도와주라는, 상황 자체가 한국인에게 귀책 사유가 있는데 이를 도와달라는 일종의 부정청탁과는 거리가 멀었다.

단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억울한 점이나 부당한 점이 있으면 이를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에휴. 어쩔 수 없지.

[이런... 왕자님께서 하무르님을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고 신하라면서, 자신과 왕국을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을 왕국의 검이자 자신의 방패라고 하셨는데... 그게 샤티르님이셨나?]

[몰고르!]

샤티르라는 사람과 하무르라는 사람 둘 다 왕자의 오른팔이니, 왼팔이니 하면서 왕자의 최측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 했다. 그래서 순간 떠오른 기지로, 미안하게도 하무르를 살짝 자극해봤는데, 역시나였다.

[미스터 강의 안전에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예!]

효과는 뛰어났다. 내가 바보인 것인지 아니면 저 하무르라는 사람이 바보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통할 것만 같았다. 이런 방식의 꼬임이.

[미스터 강. 미스터 강을 호텔까지 모셔다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저는 할 일이 갑자기 생겨서.]

하무르는 내가 말한 사안을 들어주겠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갑자기 할 일이 생겨 나를 호텔까지 모시지 못하겠다는 말을 했을 뿐.

어쨌든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흘러가, 망설임 없이 헬기에 올라섰다.

나의 쓸데없는 오지랖이 한국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도움이 되기를.

이내 이와 관련된 생각을 머릿속에서 치워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으니까.

흐음. 그나저나, 어디 호텔로 날 데려가려나? 아! 기존에 했던 예약 취소해야겠네. 쩝. 내 정신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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