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44화 (444/502)

00444  2019  =========================================================================

#444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오가는 인천공항.

하지만 오늘 지금 이 순간만큼은 평소보다 더욱 많은 인파가 인천공항을 붐비게 만들고 있었다.

[환영합니다!]

[한국에서의 즐거운 시간 - THE ONLY ONE 한국 지부]

[THE ONLY ONE 일본 지부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인천국제공항 출국 게이트 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팻말을 들고 서있었으며 이에 못지않게 백이 넘는 기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들은 며칠 전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한 사람과 관련된 이들이었다.

[혐한 시위대! 강지혁에게까지 혐오의 대상으로? 살해 및 테러 협박으로 강지혁에게 경고!]

[THE ONLY ONE 일본 지부 팬들! 혐오에 맞서 거리로 나오다!]

시작은 미미했다. 하지만 점점 세를 불려나가 결국엔 1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혐한 시위대에 대적했다.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일개 개인을 위해 그것도 타국의 팬들이 집단적인 행동을 하며 국가를 향한 혐오 시위에 맞선 것은.

하지만 그들이 놀랄 일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지금 그들을 공항까지 데려온 이유, 그 이유가 아직 남아있었으니까.

[비행기 28억 8천만 원, 숙박비 32억 8천만 원. 이것이 바로 월드스타의 역 조공 클라스! 자신을 위해 혐한 집단과 맞서준 팬들을 위한 강지혁의 역대 급 역 조공에 국내외가 들썩!]

어느 가수가 팬들을 위해, 그것도 일회성 이벤트를 위해 60억이 넘는 돈을 쏟아 부을까. 그런데 이를 강지혁은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일본에 가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어느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짜고짜 심장에 칼을 꽂는다느니, 대가리에 총을 쏴버린다느니, 공연무대에 폭탄을 설치할 것이라느니 와 같은 협박을 하는 대형 단체 그리고 이를 방관하는 현지 경찰.

서운함은 있을지언정 팬들 또한 이를 이해해줬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마냥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일본에 가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 무대의 주인공인 이들을 불러들였다. 한국으로. 그것도 사비로.

그래서 이 놀라운 상황의 반작용으로 지금의 인파가 인천공항에 몰린 것이다.

“와아아아아아!”

이내 게이트가 열렸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아!”

수많은 환영인파. 끝도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출국 게이트에 모습을 드러낸 이들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묻어날 수밖에 없었다.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환영합니다!]

[THE ONLY ONE 한국 지부]

[THE ONLY ONE 한국 지부는 일본 지부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내 그런 당혹감을 벗어던진 채, 환한 미소로 자신들을 환영하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THE ONLY ONE 일본 지부 여러분들은 THE ONLY ONE이라 써진 팻말을 든 안내자들에게 모여주세요!]

[호텔로 이동하겠습니다. THE ONLY ONE 팻말 아래로 모여주세요!]

그리고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자신들이 했던 행동이 옳은 것이라는 것을.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행동의 목적이었던, 지켜주고 싶었던 한 사람도 그런 자신들의 행동을 그렇게 생각한다는 사실이 그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대기하고 있던 안내자들을 따라 공항을 나섰다. 수많은 이들의 환호와 환영 소리를 들으면서. 하지만 그들의 기쁨과 뭉클함은 아직 끝을 본 게 아니었다. 이내 언론을 통해 발표되기 시작한 기사들이 그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그들이 기대하던 무대는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

[강지혁의 정규 5집 앨범 CHAOS! 새로운 신기원을 열다! 초동판매량 1983만 8596장으로 기록 돼! 강지혁은 단 2주일(1주 예약 판매, 1주 정식 발매 판매)만에 정규 4집 앨범 총 판매량인 1840만 9435장의 대기록을 갈아치워 버렸으며...... 단일 앨범으로는 한국은 물론 일본, 전 세계 신기록에 해당하는 엄청난 초동판매량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특히 예약판매에서 이슈를 자아냈던 일본 지역은 843만 3928장의 초동 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이러한 대기록에 큰 보탬이 되었다. 이로써 역대 최다 예약 주문량, 초동 판매량 기록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은 각 지역별 상세 초동 판매량이다. 일본 843만 3928장, 한국 393만 2319장 ,유럽 172만 7906장, 남미 210만 4354장, 북미 230만 6836장, 아시아 133만 3253장.]

두 눈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저 한류월드 백제 호텔 입구에서 팬들을 직접 맞이하는, 일종의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그런데 내게 헐레벌떡 뛰어오는 민재 삼촌 그리고 그 민재 삼촌이 건넨 스마트폰 화면이 나를 이렇게 만들어버렸다.

[휘청]

“지, 지혁아.”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손으로 두 눈을 비벼도 보았다. 그런데 화면이 바뀌지가 않았다. 아니, 숫자가 바뀌지 않았다.

“아, 괜찮아. 형. 잠깐 현기증 돌아서.”

민재 삼촌과 같이 온 석현 형이 재빨리 나를 잡아주어 볼썽사나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좀처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혁아! 대박이다! 대박! 초동이 1983만 8596장이라고! 1983만장! 이건 세계 신기록이야! 세계 신기록! 세상에! 내가 이런 대기록의 현장에!”

민재 삼촌은 이미 정신이 나가버린 듯 했다. 멍하니 하늘만 보고 악을 질러대다가도 또 어느새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듯 했으니까.

말이 안 됐다. 상식적으로 이 초동 판매량은. 이 같은 판매량은 소설 속에서나 나와야할 기록이었다. 말이 1983만 장이지. 이는 한 해 동안 한국 전체에서 판매되는 음반의 총 합계보다 거의 세배나 많은 판매고였다. 일개 개인이 세울 만한 기록이 아닌 것이다. 하물며 음반이 정식 발매된 지 단 일주일 만에 달성한 기록이었으니 오죽할까.

“하하...”

너무나도 기쁜 일이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건조한 웃음만 튀어나왔다. 약간의 어이없음이 가미된.

정규 4집 앨범의 판매량 1840만장을 넘어설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초동이 아니라 총 판매량에서.

그도 그럴 것이, 일단 앨범 트랙수가 적었다. 기본적으로 열 몇 곡씩 들어있던 이전 앨범들과 달리 이번 앨범은 준비기간도 짧았고 예상치 못한 발매였는지라, 겨우 10곡이 들어가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외국어 노래 또한 재즈 풍 노래 단 2곡뿐이었고 전부 영어 노래였다. 이전에 중국어, 일본어 노래까지 수록했던 것에 비해 내용면에서 부실한 점이 많았던 것이다.

더욱이 전체적으로 음악의 다양성이 강화된 만큼, 흥행할 만한 장르, 내가 가장 잘한다고 여겨지는 분야에 대해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초동 판매량이 선전했다고 해도 총 판매량까지 그럴 거라고는 예상치 않았다. 그런데 총 판매량이 아닌 초동판매량부터 사고를 쳐버렸다.

그것도 아주 대형사고.

[지이이잉]

[지이이잉]

민재 삼촌과 석현 형이 엄청난 소식을 몰고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핸드폰은 미친 듯이 진동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역시나였다.

“어, 삼촌.”

이번 일본 관련된 사건으로 삼촌과 조금 어색해진 감이 없지 않았다. 나 또한 삼촌의 그런 엄청난 분노를 처음 느껴봐서 조금 그랬고, 삼촌 또한 오랜만에 내게 그런 모습을, 아니 처음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큰 분노를 쏟아 부어서인지 조금 그런 듯 했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 속 삼촌의 목소리는 너무 익숙했다.

굳이 수화기 너머로 듣지 않아도 될 정도로.

민재 삼촌이고 재성 삼촌이고. 이럴 때면 판박이다. 판박이.

아니 역사의 현장이니, 대기록의 현장이니 이게 다 무슨 소리야? 도대체.

*

[어머! 어머!]

[세상에!]

공항에 도착해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은 THE ONLY ONE 일본 지부 회원들의 얼굴은 한껏 고양돼 있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얼굴은 극도의 놀람으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 강상?]

[맙소사!]

[말도 안 돼!]

한류 월드 백제 호텔 앞에 일제히 내린 2천명 조금 넘는 그들의 앞에 그들이 너무나도 좋아하는 이가 서있었다. 그것도 너무나도 편하고 친숙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반갑습니다. 여러분. 오시는 데 불편한 점은 없으셨나요?]

강지혁이 그들의 눈앞에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컸다.

그를 위해 일본 내에서도 극단적인 행동 등으로 유명한 혐한 시위대에 맞섰다. 그런데 그가 자신들을 마중 나왔다?

이것은 점잖고 조용하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일지라도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가, 강상!]

[호, 혼또니?]

물론 일본인들 특유의 점잖음이 마냥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연신 놀라움을 표현하면서도 강지혁에게 다가서지 못했다. 마치 다가서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빠진 듯 그저 멀리서 그를 동경 가득 찬 얼굴로 바라보았을 뿐.

[에에?]

[서, 설마?]

[에에?]

그래서 이내 그들의 입에서 일제히 똑같은 말이 나온 것은 당연했다.

[공연은 저녁에 하니까, 숙소에서 짐 푸시고 주변 구경하시면 될 것 같아요. 휴식을 취하셔도 되고요. 그럼... 우리 악수나 한 번씩 할까요? 사인은 시간 관계상 조금 그렇고 사진도 한 번씩 찍으면서요.]

그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와 악수를 건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일본 팬들에게 무척이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혐한 시위대와 맞설 생각까지 하게 만들었던 남자, 동경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던 남자가 그들에게 먼저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이내 백제 호텔 앞은 때 아닌 눈물바다가 되었다.

한 사람이 눈물을 글썽이자, 이내 모두가 눈시울을 붉히기 시작했다.

그들 또한 무섭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극단적인 행동을 일삼는 혐한 시위대는 일반 일본인들에게도, 특히나 이곳에 있는 여성,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무서운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오직 한 사람을 위해서 거리로 뛰쳐나갔다. 서로가 서로의 두려움을 감싸면서.

이는 개인으로서는 튀는 행동을 하지 않지만, 집단으로 뭉쳤을 때는 과감한 행동이라도 손쉽게 할 수 있는 일본인의 특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이 강지혁이라는 사람을 무척이나 좋아했기에 가능했던 점이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까지 자신들을 위한다는 점에서 공항에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슴 뭉클함과 감동을 받게 되었다. 그게 그들에게 눈물을 강요했고 말이다.

[저, 저기... 왜 우시나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그 자리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감정을 공유했다. 갑작스럽게 눈물짓는 사람들의 모습에 당황한 나머지 식은땀까지 흘리는 한사람을 제외하고는.

*

“공연해야 되는 데 도대체 어딜 갔다 와? 아니, 이게 아니지. 지혁아 삼촌이랑 사진 좀 찍자.”

“어?”

“이런 건 나중에 너 막... 역사책에 나오고 그럴 거니까. 오늘은 진짜 역사적인 날이니까.”

“아, 뭐래.”

“지금 비틀즈 같은 전설의 가수들 옛 사진들이 아직까지 회자되고 그러는데, 지금 찍은 사진들은 얼마나! 넌 지금 엄청난 기록을 세운 거라고!”

어째 민재 삼촌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보였다.

아까부터였다. 자꾸 실실 웃기나 하고 혼잣말을 했다가 또 소리를 질렀다가. 아무래도 병원을 가야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내 무대 건반을 칠 게 아니라.

“무슨 소리! 건반은 내가 쳐야지! 오늘은 완전 역사적인 날인데 삼촌이 무조건 해야지. 암 그렇고말고!”

더 이상 뒀다간 나까지 이상해질 것 같아, 사진을 후딱 같이 찍어주고 대기실에서 잠시 나왔다.

피식.

잠깐 머리를 식히기 위해 나왔는데, 아까 일본 팬들이 눈물을 흘리던 게 생각나 나도 모르게 뭉클해졌다. 나란 존재가 이렇게 사랑받는 존재였구나. 하아.

한 사람을 위해 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간과할 수 없었다. 나를 위해 눈물짓는, 내 사소한 행동에 감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절대 잊고 싶지 않았다.

오늘 공연.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적은 없다. 하지만 보다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내게 응원과 사랑을 보내준 이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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