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43화 (443/502)

00443  2019  =========================================================================

#443

“너 진짜... 어휴... 너를 어떻게 말리니? 응?”

재성 삼촌이 드러눕는 걸 말렸더니, 그 대신 또 다른 사람이 드러누워 버렸다.

9대의 비행기를 렌트하고 수많은 호텔들을 섭외하고 버스도 대절하고. 단순히 사고 차원이 아니었다. 9600명에 달하는 팬들을 위한 것치고는 그 비용 면에서 그리고 사회적인 파장 측면에서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대형 이벤트였으니까.

“그럼 어떻게 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데.”

“그냥 다음에 공연하겠다고 하면 되지, 너도,”

“다음에도 이러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잖아. 그리고 내가 내 돈 쓰겠다는 데 삼촌이 왜 그래? 그냥 대관 업무랑 뭐... 잡다한 거 조금 해주면 되겠구만.”

“뭐? 이게!”

[콩!]

“내가 아주 너 때문에 못 산다. 못 살아! 어휴!”

삼촌에게 한 3시간 정도는 잔소리를 먹을 줄 알았는데, 딱 밤 한 대를 맞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어 나름 안도할 수 있었다. 뭐, 그게 온전히 삼촌의 의지가 아닌, 쉴 새 없이 울어대는 삼촌의 전화 때문이라는 점에서 추후 지금 비켜간 잔소리를 다시금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번 주 주말에 삼촌들이랑 만나기로 한 거 그거 취소해야 될 것 같아. 삼촌이 동혁 삼촌한테 대신 전해 줘. 나는 죄송스러워서 말 못할 것 같아. 아! 그 대신 추후에 LA로 직접 초대할 거라고도 말해주고!”

“저기 잠시만... 야! 강지혁! 너 자꾸!”

민재 삼촌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머지 일을 삼촌에게 떠 넘겨버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이제는 잡다한 공연 지원 업무가 아닌, 내 본연의 업무에 전념하기에 시간이 촉박했으니까.

[지이이잉]

뭐, 그 전에 원기 충전부터 받아야 될 것 같지만.

“응.”

그녀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절로 얼굴이 밝아졌다. 복잡함과 민재 삼촌에 대한 미안함 등은 이내 사라지고 없어진 지 오래였다.

[너...]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절로 상상됐다.

“나 보고 싶었어?”

[너 위험하게 자꾸... 뭐?]

“나, 안보고 싶었냐고.”

일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서도 이번 사태가 비중 있고 심도 깊게 조명되고 있어서인지 그녀 또한 나와 관련된 소식을 들은 것 같았다. 차갑게 쏘아대는 말투임에도 목소리 자체에서 나에 대한 걱정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화제를 돌려버렸다. 나에 대한 걱정을 해주는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또한 사랑스러움을 느꼈지만, 그녀가 너무 많은 심력을 내 걱정하는 데 쏟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나 보고 싶었어. 안 보고 싶었어.”

[너 지금 그런 말 할 때야? 말 돌리지 말고. 너 자꾸 왜,]

이거, 이거 걱정만 한 게 아니라 화까지 단단히 난 듯 했다. 이쯤 했으면 화제가 넘어갈 법도 한데 여전히 그녀의 화제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다른 누군가와 무척이나 비슷했는지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와버렸다.

[너! 지금 웃음이 나와? 웃음이 나오냐고!]

그런 나의 웃음소리에 그녀가 이제는 대놓고 언성을 높였는지라 아차 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정도로 수화기에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너 그러니까, 내가 아는 사람이랑 엄청 닮았다. 진짜.”

[뭐, 뭐? 나 진짜 지금 진지하거든? 왜 자꾸 그러는 건데? 응? 일본이 그 난리인데, 굳이 가서,]

재성 삼촌을 절로 연상시켰다. 소름 돋을 정도로.

흐음. 이거 뭔가 싸늘한데? 흐음.

“일본 안 가.”

[일본을 대체 왜 간... 뭐?]

“일본 안 간다고 바보야.”

아직 한 시간 전쯤 했던 기자회견과 관련된 기사를 보지는 못한 듯 했다. 뭐, 그래서 일본에 가겠다는 내게 노발대발 화를 내고 있는 것일 테고.

어쨌든 내가 일본에 안 간다고 하자, 그녀의 수화기 속 목소리가 급격히 기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우쭈쭈. 내가 일본 가서 잘못될까봐. 그게 그렇게 걱정됐어? 막 잠도 못자고 밥도 못 먹겠고. 막 그랬어?”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었거든?]

“그래서 나 보고 싶었냐고 묻잖아. 지금.”

[아, 됐어. 끊어.]

어이쿠 단호하셔라. 유지연은 정말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장난인 줄 알았건만 핸드폰 화면은 통화가 끝났음을 내게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진짜 혼나야겠네. 유지연. 두고 봐.

*

- 강지혁 지리네. 지려. 백만 팬클럽 ㅎㄷㄷ. 아니 무슨 율곡의 10만 양병설도 아니고 팬클럽 회원 백만 명으로 혐한 시위대 박살내버리네.

-ㅋㅋㅋㅋ따지고 보면 100만도 아님 ㅋㅋㅋㅋㅋ한국이랑 다른 나라들에서 수십억씩 시위 물자 보급하려고 했으니까, 이것까지 따져야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금 전 통화로 얼굴이 한껏 뜨거워진 그녀는, 이내 가슴이 진정되자마자 서둘러 인터넷 기사들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가족끼리 사막 투어를 다녀오느라 뒤늦게 강지혁과 관련된 소식을 들었던 그녀로서는 마지막에 그가 건넸던 말에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라는 게 무척이나 협소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와... 근데 진짜 역대 급 역 조공 아니냐? 팬들한테 미안하다고 비행기 렌트에 호텔 예약해줘, 버스 대절해줘... 60억을 아주 그냥 단번에 써버리네. 클라스에 아주 지려버렸다. 지려버렸어.

-난 일본 안 간다고 하길래, 아... 그럼 그렇지 했는데 여윽시 클라스가... ㅎㄷㄷ

-근데 강지혁이 혐한 놈들 디스한 거 봤음? 아주 래퍼라서 그런지 촌철살인 지렸음. 후안무치에 염치를 모르고, 거기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폭력적이고 위험한 사람들 ㅋㅋㅋㅋ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닌, 더러워서 피하는 겈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녀의 얼굴은 이내 밝아져 있었다. 그가 일본 현지의 혐한 시위대로부터 살해협박을 받고 있으면서도 일본 스케줄을 강행할 것 같다는 기사를 접한 이래 사막 투어에서 돌아온 어제 자정부터 지금 저녁 식사 전까지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걱정했던 탓에, 새롭게 게재된 기사들이 주는 위안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미친 강지혁 빠는 새끼들 왜 이렇게 많음? 미친 진짜로 60억 썼겠냐? 다 협찬 받고 후원받고 그랬겠지. 병신들.

-응 아니야. ㅋㅋㅋㅋㅋ 다 자비로 부담했다고 기사떴어.

-미친놈 누가 비행기 8대를 협찬해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못배운 티 내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원래 핸드폰을 잘 보지 않는 그녀였지만, 이는 오래전 얘기가 되고 말았다. 그녀는 정신없이 기사들과 관련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이것이 주는 안도감과 더불어 묘하게 다가오는 뿌듯함이 그만큼 중독적이었던 것이다.

“유지연! 너 또 밥 안 먹을래! 자꾸 그러면 엄마 화낸다!”

그렇게 그녀는 이내 그녀의 엄마가 자신을 부를 때까지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제법 풍족하게 얻은 안도감 덕에 그동안 미뤄왔던 허기짐이 그녀에게 해일처럼 다가왔으니까.

“맛있네요.”

“그러게 왜 굶고 난리야? 너네 아빠 걱정하게.”

집안에는 그녀의 엄마와 그녀만이 있었다. 몇 시간쯤 전에 그녀에게 같이 쇼핑을 가자고 졸랐던 만큼 동생 유재연은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은 듯 했다.

“엄마뿐이에요?”

“어.”

하지만 아빠인 유승재가 집에 없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는지라, 그녀의 얼굴에 의아함이 묻어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 엄마의 성정 상, 아빠가 혼자서 어딘가에 갔다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하물며 그녀의 엄마가 바쁘다거나 아빠인 유승재가 출장을 간 것도 아닐 것이기에 그녀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엄마에게 질문을 건넸다.

“아빠는요?”

“그게... 회사 일 하는 데 문제가 생겼나봐. 그래서 급하게 회사로 갔어.”

“무슨 문제요?”

오늘까지는 집에서 쉴 거라는 말을 들었기에 그녀의 아빠가 갑작스럽게 회사에 나갈 정도면 간단치 않은 문제가 회사에 생긴 것이 분명했다.

“신경 쓰지 말고 밥이나 먹어. 나 바쁘니까.”

하지만 그녀는 그 문제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낼 수 없었다. 아빠라면 모를까, 그녀의 엄마는 한번 안 된다고 하면 끝까지 안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어차피 정말 심각한 일이었다면 엄마 또한 그녀의 아빠와 같이 회사에 갔을 것이기에 그녀는 이내 이에 신경을 꺼버렸다. 아니 분주하게 밥과 반찬들을 도시락에 넣는 엄마의 모습에 집중했다.

자신이 먹고 있는, 묘하게 못생긴 전들 그리고 변두리 살밖에 없는 돼지고기 볶음과 갈비찜 등이 엄마가 싸고 있는 도시락 속 음식들과는 사뭇 달라보였지만 그녀는 그저 입가에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엄마 회사 가볼 테니까. 알아서 쉬고 있어라. 하여튼 네 아빠는 나 없으면 안 된다니까. 사람을 왜 이렇게 귀찮게 하는 거야. 도대체. 그냥 사먹으면 되지.”

귀찮은 것 치고는 무척이나 정성스럽게 도시락을 싸던 그녀의 엄마였다.

그녀의 아빠는 분명 밖에서 사먹겠다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엄마가 저렇게 말하는 것은 순전히 딸인 자신의 눈치 때문일 것이다. 그녀의 엄마는 아빠와 관련된 일에 종종 저렇게 소녀 같은 감성을 보여주곤 했는데, 이를 딸들이 볼 때마다 무척이나 부끄러워했으니까.

어쨌든 그런 엄마의 속내를 잘 알고 있는 유지연은 그런 엄마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더.

*

[하하. 자네 덕에 아주 난리가 났더군.]

오랜만에 다이그 리넨만 감독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리고 그의 첫마디는 다름 아닌 이번 일본에서 벌어진 사태와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 주연배우가 다치게 할 수는 없지. 일본에 가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선택이네.]

그도 그럴 만 했다. 영화감독으로서 촬영을 얼마 안 앞둔 자기 작품의 주연 배우가 살해협박을 받고 있다는 점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일 테니까.

[모든 준비가 완료되었네. 자네만 오면 촬영은 본격적으로 시작될 걸세.]

어쨌든 그의 말을 듣고 보니, 미스터 지 후속촬영을 앞두고 있다는 게 확 실감이 됐다. 그동안 꾸준히 준비해왔지만, 실전과 준비는 확실히 달랐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려요.]

[하하! 그 말은 내가 해야지. 잘 부탁하네. 이번에도. 하하!]

그래도 자신은 있었다. 익숙한 촬영 팀과 작업을 같이 한다는 것 그리고 이미 녹아들어 본 적 있는 캐릭터의 뒷얘기를 다룬 다는 점은 ‘지’라는 역할에 다른 누구보다 내가 적합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끔 했던 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얘기를 나누었다. 로케 일정이 확정되었다는 점 그리고 상대 배우로 누가 확정되었다는 점 그리고 몇몇 배역 같은 경우 아직까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 등 촬영과 관련된 얘기들을.

그런데 그때였다.

이만 통화를 끝내려던 찰나에 다이그 리넨만 감독으로부터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운명의 전쟁 측에서 촬영일자를 조율해야 될 것 같다더군. 혹시 들은 바 있나?]

[예? 그게 무슨?]

들어본 적 없는 소식이었기에 그 반응 또한 남달랐다.

[이런 아직 자네에게는 전달되지 않은 모양이군.]

그런 내 모습에, 내가 이와 관련된 소식을 접하지 못했음을 짐작한 것인지 다이그 리넨만 감독이 이와 관련된 정보들을 내게 상세히 건네기 시작했다.

[당초 내년 2월쯤으로 예정됐던 운명의 전쟁 촬영이 이번 해 말쯤으로 앞당겨질 수도 있다고, 혹시 미스터 지 촬영에 지장이 없는 지 물어오더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자네에게 제안하기위해 사전에 우리들에게 촬영 스케줄에 관해서 물어본 것이겠구만.]

운명의 전쟁 관련된 촬영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점에 머리가 일순간 복잡해졌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나와 논의하기 전 미스터 지 제작진과 논의를 해본 것은 절차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사안이었으니까.

하지만 괜히 나 때문에 미스터 지 촬영에 지장을 줄까봐, 그것이 걱정되었다. 더불어 운명의 전쟁에도 피해를 줄 수 있었으니 오죽할까.

[하하하! 걱정 말게. 다행히 스케줄을 조정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으니. 다만 강의 겨울 휴가 기간이 조금 깎일 수도 있는데... 괜찮겠지?]

[물론이죠. 다행이네요. 괜히 피해를 줄까봐 걱정했는데.]

[하하! 피해는 무슨! 알겠네. 내가 제이크에게 가능하다고 일러두겠네. 그러면 자네에게도 곧 연락이 갈 걸세. 하하!]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의 겨울 휴가기간이 조금 짤린다는 점, 그 점만 감안하면 촬영에 크게 지장을 안 준다는 점이었다. 후우.

물론 크게 지장을 안 준다는 점은 지장을 아예 안준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다이그 리넨만 감독과 다른 미스터 지 촬영 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다른 곳도 아니고 할리우드에서 촬영 팀으로부터 이런 배려를 받는 다는 것은 꽤나 이례적인 일이고 그만큼 해당 배우가 제작진들의 호감을 받고 있다는 반증과도 같았으니까.

후우.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을 더욱 조이게 되었다. 알게 모르게 안일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는 지 다시금 점검하게 되었다. 저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그리고 내가 무척이나 하고 싶었던 배역에 대한 배우로서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그리고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나를 향한 팬들의 응원이 굉장함을 깨달았기에 이런 마음은 더욱 커졌다. 그리고 이내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굉장히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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