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41화 (441/502)

00441  2019  =========================================================================

#441

“잘 모르겠어.”

“뭐, 뭐? 너 지금 일본 난리난 거 알아, 몰라! 그런데도 아직 결정을 안 했다고? 이게 진짜!”

재성 삼촌의 언성이 자연스레 높아졌다. 그리고 이는 매우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이었다.

“오빠... 앉아서 차분히 얘기해요. 예?”

“그래요. 매형. 일단 앉아봐요. 일단.”

옆에 있던 작은 엄마와 태현 형이 말려봤지만, 삼촌은 좀처럼 자리에 앉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무조건 일본 가지마! 알겠어? 대답해! 대답 안 해? 너 진짜 지금 삼촌이랑 해보겠다는 거야? 어?”

[일본 혐한, 극우 시위 단체가 강지혁에게 살해협박을? 현지 시위 단체 대표의 성명에 따르면......]

총으로 날 쏴서 죽여 버리겠다. 칼로 목을 베어버리겠다. 폭탄을 설치해 발을 내딛는 순간 이 세상과 작별인사를 하게 해주겠다.

이게 바로 지금 삼촌이 열을 내고 있는 이유 그 자체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응?”

작은엄마가 삼촌을 데리고 방을 나간 사이, 태현 형이 내게 입을 열었다.

나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준 팬들을 위해 그저 음악방송 한번 서겠다는 것이 이다지도 큰 파장을 일으킬지 몰랐다. 그것도 오랜만에 가족끼리 기분 좋게 아침의 여유를 누리던 자리가 와해될 정도로.

“으아아앙! 아빠 미워!”

“아빠 무서워! 막 소리 지르고, 막 화냈어! 막... 으아아앙!”

“아빠 형아 때찌해? 왜 때찌해?”

“때찌하지마 아빠 형아처럼 나도 때찌해? 때찌하지마. 무서워 아빠. 으아아앙!”

삼촌이 내게 이렇게 큰 소리를 낸 게 언제 적인지 기억도 안 났다. 그래서일까. 동생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재성 삼촌의 모습에 저마다 울음을 터트렸고 집안 분위기는 아작이 나버렸다.

후우. 내가 원수지. 원수.

“그러게 왜 TV를 틀어서는... 어휴, 됐다. TV 안 틀었다고 너랑 관련된 얘기를 매형이 언제까지고 모르고 있을 사람도 아니고...”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차를 마시며 디저트를 먹던 그때였다. 왜 평소에는 보지도 않은 TV를 하필 그때 틀었는지도 모르겠다. 하필 그때 나와 관련된 뉴스 영상이 나온 것에 기가 막혔고.

“뭐, 어떻게 해. 삼촌이 저렇게까지 하는데.”

“후우... 잘 생각했다. 지혁아. 지금 일본 장난 아니야. 그러니까, 이번은... 매형 말대로 하는 게 백번 옳아. 지금 일본 지부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현지 분위기는 더 험하다더라. 우리 지부 사무실에도 테러 위협 전화까지 올 정도...... 그러니까, 바로 미국으로 가. 형이 생각해도 그게 최선일 것 같다.”

뉴스영상 자료가 비춘 사람들이 태극기를 불태우고 있길래, ‘혐한 시위가 정말 심하긴 심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 사람들이 이내 내 사진을 불태우기도 하고 칼로 찢기도 하고 또 똥물을 붓기까지 하자 경악을 하게 됐고.

그래서 삼촌이 확 돌아버렸다. 지금 상황이 될 정도로.

“네, 김태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지혁이 일본 스케줄 취소한다니까, 현지 지부에 연락해서......”

여기서 일본을 가겠다고 고집을 더 부린다면, 그거야 말로 내가 인간 말종 임을 증명하는 것 같아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무대 하나 서는 게 고작이었던 일본 스케줄을.

그런데 그때였다.

“네? 그게 무슨? 지금 TV를 보라고요?”

나의 일본 일정을 취소하기 위해 회사 직원과 통화를 하고 있던 태현 형의 입에서 의아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내 방문을 열고 거실 쪽으로 나가버렸다.

뭐야? 갑자기?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어 나 또한 서둘러 거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오빠. 조금 진정하고 말로 하면 되잖아요. 이거 차 마시면서......”

아직까지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한 듯 삼촌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삼촌의 옆에서 울음을 터트리던 동생들은 어느새 소담 누나가 데리고 다른 곳에 간 건지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너 이번엔 무조건이야. 어? 알겠어?”

“오빠. 진정. 진정. 그렇게 소리 지르면 어떡해요?”

내가 모습을 보이자마자 다시금 언성을 높이려는 삼촌 때문에 애를 먹는 건 애먼 작은 엄마였다. 어휴. 내가 원수지. 원수야.

“TV를 틀어보라고요? 무슨 채널이요? KTBS?”

회사와 통화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거실로 나온 태현 형은 그런 나와 삼촌 그리고 작은 엄마 사이에 끼지 않고 연신 리모컨 조작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길래, 갑자기 TV를 트는 건지.

지금 상황에 TV를 튼다는 것 자체가 어떤 효과를 불러일으킬지 몰라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이내 TV화면이 비추는 것으로 인해 그런 감정들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특보입니다. 최근 들어 도쿄, 오사카, 나고야, 요코하마 등 일본 4대 도시 모두에서 혐한 시위대와 일단의 무리들이 충돌을 빚고 있다는 소식 방금 전 아침 9시 헤드라인에서 전달해드렸는데요.”

나를 보며 못마땅하다는 듯이 보던 삼촌 또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정도로 간과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태현 형이 틀어놓은 TV화면은.

“네. 그 일단의 무리들은 현재 자신들을 일본지역 THE ONLY ONE 팬클럽으로......”

하느님 맙소사.

*

“최원근 기자. 현지 상황 말씀해주시죠.”

무척이나 많은 사람들이 광장을 메우고 있었다.

“현재 제가 있는 이곳은 요 한 달 동안 무려 5만 명이나 되는 혐한 시위대가 매일같이 거리행진을 펼치던 시부야 거리입니다.”

혐한 시위를 위해, 그것도 매일같이 시부야 거리에 모인 이들만 해도 5만 명이나 된다는 점에서 뉴스나 각종 매체들이 어째서 사상 최악으로 경색된 한일관계라는 타이틀을 자주 썼는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한일관계는 내가 살아왔던 동안 좋았던 적이 없었으니까.

다만, 이어진 화면들이 나의 눈을 뗄레야 뗄 수 없게 만들어버렸다.

“일단의 무리들이 혐한 시위대에 맞서기 시작하면서 주위는 온통 혼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일단의 무리가 혐한 시위대에 맞서기 시작했다함은, 그 수가 꽤나 많다는 것을 말함입니까?”

“맞습니다. 도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한 시위대의 규모만으로도 경찰 측 추산 7만, 주최 측 추산 15만 명에 이를 정도로 대단한데요. 이런 혐한 시위대에 맞선 일단의 무리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세를 불려가면서 현재 혐한 시위대와 맞먹는 숫자가 모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시부야 거리에만 5만 명. 도쿄 전체적으로 봤을 때 무려 15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혐한 시위에 참석하고 있을 진데, 이를 막아서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현재 혐한 시위대에 맞서고 있는 이들의 공통점은 한 장 또는 여러 장의 앨범을 손에 들고 있었다는 점인데요. 바로 이 앨범이 이번 혐한 시위 규모를 배 이상 키웠던 강지혁씨의 정규 5집 또는 이전 앨범들인 것으로 드러나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럼 그 혐한 시위대를 막아선 것이...”

“네. 그 일단의 무리들 중 일부는 현재 자신들을 일본지역 THE ONLY ONE 팬클럽 회원으로 밝혔습니다. 이에 저희뿐만 아니라 일본 현지 언론들 또한 이들 무리에 여성과 청소년 학생들이 매우 높은 비중으로 속해 있다는 점 그리고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앨범이 강지혁 씨의 앨범들임을 고려할 때, 이는 사실이 확실하다며 판단을......”

그 무리들이 나의 팬들이라는 점에서 말문이 턱하고 막혀 버렸다. 물론 이는 내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기자에게 질문을 건네던 아나운서 또한, 나의 옆에 있던 태현 형과 재성 삼촌 그리고 작은 엄마 또한 좀처럼 입을 열지 못했으니까.

“현재 오사카, 도쿄, 나고야, 요코하마 등 4대 도시 곳곳에서 총 50만 명이 넘는 혐한 시위대가 이에 상응하는 수의 반 혐한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대치하고 있으면 혹시 모를 폭력 사태가 일어났을 수도 있다고 판단되는 데, 현지 상황은 어떻습니까?”

“말씀하신대로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하는데요. 따라서 지금까지 혐한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응했던 일본 경찰 측 또한 이례적으로 빠른 성명발표를 통해, 혼란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습할 것이라 밝혔습니다. 현재 혐한 시위대 주최 측 추산 80만 명가량이 혐한 시위대에 나선 가운데 그에 버금가는 이들이 서로를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외신들 또한 이번 사태를 집중적으로 보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란 사람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부담이 됐다. 그리고 혐한 시위대에 맞서고 있는 이들이 여성과 청소년 학생들이 많다는 점에서 걱정이 됐다.

“...... 이번 앨범 유일의 생방송 라이브 무대를 일본에서 가질 것이라 발표했던 JS ENTERTAINMENT 측에서 해당 무대 스케줄을 취소할 것이라는 추측성 언론보도가 이런 반 혐한 시위대의 결성을 촉발했다는 점에서 일본 정치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방송 말미에 갑작스럽게 보도하게 된 터라, 원래대로라면 이미 뉴스가 끝나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시간이건만, 뉴스는 계속해서 이번 사태를 집중보도 했다.

하지만 이미 상관이 없었다. 일본 정치계와 외신들이 어떻게 보도를 하고 있는지와 관련된 후속 보도와는 상관없이, 이미 내게는 나를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깊게 박혀있었으니까.

*

[강지혁 팬클럽 THE ONLY ONE이란? 공식 팬 카페 회원 수만 600만 명에 이르며 그중 유료 회원 수만 180만 명에 달하는 세계 최대 인원 팬 카페로서, 기네스북에까지 오른 강지혁의 팬클럽이다. 한해 팬 카페 관련 예산만 300억에 달하며 이는 각종 봉사활동과 앨범 구매 그리고 강지혁의 가수, 연기 활동 서포트 등에...... 현재 공식 팬 카페 총괄 최고책임자이자 한국 지역 최고책임자의 자리도 역임하고 있는 이나라씨의 발표에 따르면 THE ONLY ONE 한국 지부는 일본에서 혐한 시위대와 맞서고 있는 일본 지부 팬 카페 회원들을 위한 100억 가까운 시위물자 및 식사 추진 등을 준비하고 있으며 빠르면 내일, 늦으면 모레까지 준비를 완료할 것이라 밝혔다. 사준비 기자  [email protected]]

-미친... 100억? 아니 이거 무슨 전쟁 났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위물자 및 식사 추진 ㅋㅋㅋㅋㅋ무슨 싸움 대리전 났음? ㅋㅋㅋ이거 뭐임?

-님들 지금 난리 났음. 한국 지부가 문제가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대만이랑 필리핀에서도 수십억씩 일본 지부 지원한다고 난리임 ㅋㅋㅋㅋㅋ거기에 일본 지부 애들은 반드시 강지혁 지킬 거라고 SNS에 인증하고 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혐한 시위대 VS 강지혁 팬클럽?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일본 열도 전체가 혼란에 빠져! 주최 측 추산 혐한 시위대 100만 명, 강지혁 팬클럽 시위대 130만 명이 대치하고 있는 가운데 곳곳에서 폭력 사태가 일어나 충격을 주고 있다. 현재...... 일본 현지 언론 못지않게 주요 외신들 또한 이번 사태에 대해 긴급 보도를 시작했으며......]

-와... 이거 무슨 영화냐?

-일본 지금 적벽대전 노 CG로 찍고 있냐? 아니지. 100만대 130만 명이면 적벽대전도 아니지. 아니, 이게 지금 무슨 난리야?

-와... 강지혁 정규 5집 앨범 제목이 CHAOS인데 진짜 일본을 카오스로 만들어버렸네. 강지혁 예언가 데뷔?

-아니, 1주일 예약 판매로 3백만 장 팔렸다 길래 솔직히 그런가보다 싶었는데 이런 거 보니까... 확 실감난다. 예약판매 1주일 판매고가 3백만 장이라는 게 진짜 말도 안 되는 숫자라는 게. 이번 주 주말에 초동발표나면 도대체 몇 장 나올까? 기대되네. 와...

[특종보도! 이번 일본 열도 사태와 깊은 관련이 있는 가수 겸 배우 강지혁이 오늘 저녁 한류월드 내 백제 호텔 컨퍼런스 룸에서 이번 사태와 관련된 공식입장 발표를 하겠다는, 포이보스 측의......]

-대박! 지렸다리! 오졌다리! 이거 무조건 생방 봐야겠다. 개꿀잼.

-아니, 이 정도면 진짜 국보 아니 인간문화재로 지정해야 되는 거 아니냐? 강지혁 지금 일개 개인으로 혐한 시위 맞서고 있는 거임. 따지고 보면.

-인정 씹인정. 아니 일개 개인 팬클럽이 100만 명 넘는 혐한 시위대랑 맞서고 있다는 게 말이 됨? 이건 진짜 국보, 보물, 천연기념물, 인간문화재 될 수 있는 거 다 지정해야 되는 거임. 진심.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