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40 2019 =========================================================================
#440
“저도 10년 정도 했어요.”
“에?”
“그럼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혹시 나 회사에서 본 적 있어요?”
“네.”
“연습생인 나를?”
“네.”
머리는 맹렬히 지난날을 되새기고 있었다.
전체 연습생 규모는 대략 3, 40명. 매 반기마다 십 분지 일에 해당하는 연습생들이 JS에 들어왔고 또한 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연습생일 시절의 다른 연습생들을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매달 시행되는 월말평가만 하더라도 모든 연습생들이 한데 모여 진행되었으니까.
하지만 도저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주민지라는 이름을 가진 연습생에 대한 기억이.
내가 알고 있는 ‘주’씨 성의 연습생이라면, 에?
“개명했어요. 원래 이름은.”
“주... 소현?”
“주소현이에요.”
말도 안 될 거라 생각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내뱉었던 이름일진데, 설마가 사실이 되어버렸다.
주소현.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이름이었다.
*
연습생 시절. 지수와 함께 나를 따라다니던 동생이 있었다.
[잡종이 어디서!]
[더러운 피가 어디 가겠어? 짜증나.]
또다시 데뷔가 지연되었을 때. 그때 당시의 복잡한 마음을 털어버리기 위해 근처 공원을 산책했었을 때였다.
[네가 뭔데 연예인을 하겠다고 지랄이야?]
[잡종이면서! 하려면 너네 나라가서 하던가!]
누가 봐도 상황 자체가 명확했었다. 여자애들 서너 명의 사이에 둘러싸여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아이.
오지랖이 넓은 걸 떠나서 가만히 볼 수 없을 정도로 서너 명의 아이들의 행동과 말들은, 그 나이 때의 소녀들이 내뱉기엔 지나치게 날카로웠고 폭력적이었다.
그때 그 상황을 가만히 두고 보지 못했던 게, 그게 나와 소현이의 첫 만남이자 인연을 맺은 계기가 되었다.
[어, 너는?]
[아, 안녕하세요. 이번에 새로 JS 연습생이 된 주소현입니다!]
그 후로 그 소녀가 JS의 연습생이 되면서 친분을 쌓게 되었다. 단순히 연습생 대 연습생이 아니라 친오빠, 친동생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친해졌었다. 지수라는 여동생과 더불어 더 어린 여동생이 생겼다는 점은 삭막했던 그때 당시의 내게 꽤나 큰 정신적인 안정감을 가져다주었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는 나와 유재연의 사이가 가까워지고 연인이 되어감에 파탄이 나고 말았다.
[나 진짜 싫어! 유재연 진짜 싫어!]
[나도 오빠 좋아하는데 네가 뭔데 꼬리를 쳐!]
마냥 어리게만 보았던 녀석이 유재연에게 소리치던 그 때, 그때를 목격하게 된 순간 나 또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지금에야 저 정도 선에서 기억이 미화되었지만, 소현인 그때 당시 차마 언급하기 싫을 정도의 욕설을, 이런 욕설을 알고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정도의 욕설을 유재연에게 쏟아내었었다.
마치 처음 그녀를 보게 되었을 때, 그때 자신들을 괴롭히던 가해자들에 빙의한 듯이.
“오랜만이네. 내 이름 불러주는 거... 오빠.”
화가 머리끝까지 난 나머지, 소현을 멀리했고 소현 또한 잠시 연습생 생활을 쉬었었다. 그래서 그 후로 처음이었다. 이렇게 소현을 마주하는 게.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소현임을 알고 마주하는 게.
한때나마 가까이 지냈던 녀석이기에 이름을 개명했다고는 해도 못 알아보는 게 이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녀석의 바뀐 외형을 보자면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같이 나눈 추억 속 소현은 작은 키에 꽤나 통통한 소녀였었다. 그리고 녀석이 초등학교 고학년이었을 때부터 봐왔던 터라 과거의 내가 소현을 마냥 어린애로 봐왔었던 것도 큰 몫을 했다.
“많이... 변했네.”
지금에 와서 그때 그 시절의, 그녀를 멀리 했었던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외형이 너무나도 바뀐 소현을 보자니, 말문이 턱하고 막혀 버렸다.
이는 성형을 했네, 안 했네의 문제가 아니었다.
170CM 정도 되어 보이는 키. 성인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젖살이 사라져버려 혼혈 티가 확 나는 이목구비 뚜렷한 외모. 그리고 소현의 양 옆에 앉아있는, 앞뒤가 똑같은 여정과 우희를 압살하고도 남을만한 볼륨감.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미지와는 너무나도 상반된 소현의 이미지는 나로 하여금 일종의 혼란을 느끼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빠는 여전히 멋있네. 아니 그때보다 더.”
녀석이 그 큰 눈에 눈물을 글썽이기 시작하자, 주변 프리티 스타 멤버들의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나와 소현의 사이를 알지 못하는 저들로서는, 나와 소현이 이미 알고 있는 사이임을 그것도 꽤나 가까웠던 사이임을 암시하는 지금 상황이, 이에 눈물까지 흘리려 하는 소현의 행동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울 수밖에.
“흑흑... 으앙! 흑흑.”
이내 내게 달려와 안기는 녀석을 보자니, 마냥 떨쳐내기가 힘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자면, 나 또한 녀석과 다르지 않게 어렸었기에, 그때 당시의 내가 너무나도 단호했음을 인정한 것은 꽤나 오래전 일이었으니까.
나도 참 잔인한 놈이었구나. 그렇게 가수가 되고 싶어 하던 애가, 연습생 생활까지 쉴 정도였는데 한번, 단 한번 찾아가볼 생각도 안했으니. 후우.
“흐응! 흐응! 흑흑...”
그렇게 주변 프리티 스타 멤버들의 시선을 한데 받으며, 나는 소현의 울음이 그칠 때까지 계속해서 녀석을 다독여주었다. 그때 당시 녀석에게 상처 줄 말을 했던 것과 끝까지 무심했던 것에 대해 조금이라도 속죄하는 마음으로.
*
“소현아 잘 가고. 그래.”
소현을 JS에서 나온 매니저의 차에 실어 보내는 것으로 프리티 스타 멤버들 모두를 떠나보냈다.
내게 콧물이며 눈물 모두를 쏟아내던 녀석의 얼굴이 퉁퉁 부어있자, 매니저가 꽤나 놀란 듯 했지만 뭐, 녀석이 알아서 잘 설명해주겠지.
“후우...”
소녀들 10명이 쏟아내던 왁자지껄함이 사라져서인지 저택 내부가 한결 허전해보였다. 덕분에 내가 느끼는 외로움도 배가 되었고.
그러다보니 보고 싶어졌다.
소현과 관련된 생각을 하다가 정말 뜬금없이.
‘지금쯤 저녁 먹기 직전일 테니 전화나 한번 걸어볼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가족들과 함께 자리하고 있을 것이기에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하아. 모르겠다. 오늘은 여기서 자면 안 되겠다.
이내 나 또한 저택을 나서기 시작했다. 오늘은 이곳보다는 본가에 가서 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뭐, 삼촌도 하루가 멀다 하고 본가에 오라고, 이제는 동생들까지 끌어들여 반 협박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었으니까.
“어, 어. 지금 간다니까? 아니, 애들은 왜 깨워? 됐어. 애들은 내일 보면 되잖아. 어, 어. 택시 타고 갈 거니까, 알아서......”
그렇게 4일 뒤 출국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그 중 하룻밤이 지나갔다. 소현의 존재와 프리티 스타 멤버들과의 공식적인 만남 같은 일들을 남긴 채.
*
“오빠!”
“우와! 오빠다!”
“형아!”
동생들이 내 방으로 들어와 나를 깨우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떠들썩하게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랜만에 동생들 얼굴을 보아서 더욱.
“오빠 이리와 봐! 내가 보여줄 거 있어!”
“안 돼! 오빠 나 엄마랑 같이 요리했어! 이리로! 이리로!”
“형아! 나랑 저거 하자! 저거!”
6명이나 되는 동생들이 저마다 나의 팔과 다리, 몸을 붙잡고 보채는 바람에 조금 당황스럽긴 했으나, 이내 도와주러 온 태현 형과 소담 누나 덕에 한시름 덜 수 있었다.
“얼른 밥 먹어라.”
대단했다. 6명이 뿜어내는 에너지가.
조용하고 삭막하기 그지없던 집은, 이제는 활기차고 떠들썩한 공간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감성이 폭발해서, 그래서 그런 것일까.
예전 나와 삼촌이 같이 지냈던 흔적들이 이제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는 점이 날 그렇게 만든 듯 했다. 그 삭막하고 고요했던 집이 뭐가 좋다고 이러는 건지 참. 너도 주책이다. 주책이야.
삼촌이 볼까봐 얼른 된장국에 코를 박으며 식사를 시작했다.
“얼씨구? 된장국이 그렇게 먹고 싶었어? 이 녀석이, 그러니까 오라고 할 때 진즉 왔으면!”
“오빠. 그만해요. 밥 먹고 있는데, 왜 그래요?”
“어, 어? 어, 그래 지혜야. 오빠 밥 먹을게.”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작은 엄마에게 옴짝달싹 못하는 삼촌의 모습에 굳이 눈물이 핑 돈 모습을 숨길 필요가 없어졌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웃음이 터져버렸으니까.
“너, 너! 왜 웃어? 이게! 나이 좀 먹었다고 내 말은 죽어라 안 듣고? 응? 이제는 삼촌보고 웃어? 웃어?”
그래, 옛날의 모습은 옛날의 모습이고 지금은 이게 집의 모습이지. 이게 삼촌의 모습이고.
*
“...... 이미지 소모가 너무 되면 향후 아이 돌 그룹 결성되어서 활동할 때 지장이 생길 테니까, 광고랑 화보 그리고 음악 관련 프로그램에 중점을 두었어요. 뭐, 그렇다고 해서 지금 가진 인지도를 마냥 묵혀둘 수 없으니까, 예능 프로그램도 하나......”
프리티 스타가 해체된 뒤 민지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물론 이는 그녀가 프리티 스타 일부 멤버들처럼 회사의 케어를 받지 못한다거나와 같은 얘기는 아니었다. 대한민국 최고 기획사들 가운데 하나인 JS ENTERTAINMENT답게 그녀는 그녀의 현 상황에 맞는 케어를 회사로부터 받고 있었다. 다만, 아이 돌 그룹으로서의 활동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그동안 회사에서 그녀를 필두로 한 아이 돌 그룹을 론칭 할 것이라는 매니저의 얘기가 있어왔고 오늘 마주한 기획실장 또한 이를 다시금 언급했지만 이는 그녀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녀는 지금 당장 무대에 목말라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자신의 춤과 노래를 선보일 수 있다는 매력에 어느새 중독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그녀의 기분은 무척이나 좋아보였다. 요즘 들어 이로 인해 무기력했던 것이 마치 신기루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 그리고 오늘 사장님과 아니, 박재성 PD님이랑 면담이 있을 거니까, 잠시 대기해주세요. 오늘 스케줄 없죠?”
“예?”
그러나 이내 들려온 기획실장의 말에 주민지 그녀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신기루처럼 느껴졌던 것은 요즘 들어 무기력했던 그녀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다. 방금 전 기분 좋아보이던 그녀의 얼굴 표정과 행동이 신기루였을 뿐.
*
[강지혁과 프리티 스타가 정식으로 만난다! JJ E&M 특별 프로그램 ‘소녀, 그를 만나다’ 이번 주 주말 방영 확정! JJ E&M 측의 발표에 따르면, “프로젝트 데뷔 시즌 2 제작진이 프리티 스타 멤버들과 강지혁이 만나 그동안의 소회를 푸는 자리를 만들었고 이를 카메라에 담아......” ...... 대중들의 반응은 기대에 찼으며......]
[강지혁 살해 협박? 열도의 혐한 시위 단체! 이번 주 일요일 생방송 무대를 위해 일본을 방문할 예정인 강지혁에게 살해협박 경고를 보내! “강지혁 입국하는 즉시 살해할 것! 공항에 운집해 강지혁의 본국 진입을 결사적으로 막아낼 것!” 이에 강지혁의 해외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JS ENTERTAINMENT 측은 “일본 현지 경찰에게 협조를 요청하였으나, 이에 대한 답변이 아직까지 오지 않고 있다.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현재 다방면으로 방안을 알아보고 있으며 아티스트 본인의 의지가 굳건한 만큼 되도록 현지 음악 생방송 스케줄은 취소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라며......]
[피터 제이크 감독의 영화 운명의 전쟁! 역대 급 촬영 현장에 네티즌들의 반응 폭발적! 북유럽 신화를 기반으로 한 운명의 전쟁은 현재 수많은 유명 배우들이 출연을...... 동양인 배우가 출연한다는 폭로성 기사는 루머에 불과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북유럽 신화를 기반하고 있는 만큼 동양인 배우가 등장할 플롯이 없을뿐더러 현장에서도 동양인 배우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 운명의 전쟁은 뉴질랜드에서 대형 세트장을 마련했으며 오는 7월부터는 뉴질랜드 정부의 지원 하에 일반인 통제 구역으로 해당 지역이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