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39 2019 =========================================================================
#439
“우와, 한강이랑 전부 보여!”
옷을 갈아입게 만들었던 영상시청 시간이 끝나고 프리티 스타 멤버들은 자유시간 아닌 자유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제작진들이 특집으로 방영하겠다는 나와 프리티 스타 멤버들의 만남과 관련된 프로그램의 영상을 찍기 위해서.
“진짜 멋있다. 정원도 그렇고.”
분수대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진짜 경회루 같다. 대박.”
누각에 앉아 한강과 못을 보며 감탄을 터트리기도 했으며,
“경치 너무 좋다.”
“여기서 커피 마시고 있으니까, 외국에 온 것 같아. 히히.”
루프 톱처럼 꾸며진 본채 옥상에 올라가 다과를 즐기기도 했다.
비록 카메라가 그녀들을 상시 따라다녔는지라 그녀들만의 자유시간을 누릴 수 없는, 자연스럽게 주변의 시선을 신경 써야 했지만 프리티 스타 멤버들은 그것만으로도 좋은 듯 했다.
“점심쯤에 일본 갔다가 저녁쯤에 LA로 갈 것 같아. 어, 어. 한국에서 음악 방송 나가기엔 조금 그렇지. 한 곳 나가면 죄다 나가야 될 테니까.”
내방 창가에서 그런 소녀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게 되었다. 통화하고 있던 민재 삼촌이야 그런 내 모습과는 달리, 꽤나 울상인 듯 했지만.
“미안, 미안.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 응. 방송사들 섭외 전화나 뭐 그런 것들은 삼촌이 커트 해줘. 미안... 응? 그 대신 이번 주말에 삼촌들끼리만 오면 안 되냐고? 뭔 소리야? 가족들끼리 다 데려오라고 했잖아? 어? 아, 뭐래. 됐어. 끊어. 자꾸 외박에 미련 가지면 사모님한테 연락한다?”
각 방송사들 마다 포이보스 뮤직으로 섭외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바람에 죽어나가는 건 포이보스 뮤직 직원들과 민재 삼촌이었다. 직원들이 공식적인 채널로 접근하는 섭외 요청을 담당했다면 민재 삼촌은 비공식적인 채널로, 인맥을 가장한 섭외 요청을 담당해야 했으니까.
어쨌든 자꾸만 이상한 소리를 해대는 삼촌과의 통화를 뒤로한 채 나 또한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방에 마련된 테라스 흔들의자에 앉았다. 괜히 촬영을 하고 있는 그녀들에게 다가가 카메라 마사지를 받을 생각도 없었을 뿐더러, 그녀들에게 가봤자 서로 어색해할 것이고 또한 혹시나 모를 불상사를 또 겪을 수도 있었으니까. 나 원 참. 옷을 도대체 몇 번 갈아입는 거야?
[똑똑똑]
“네?”
“지혁씨. 저 안석준입니다. 잠시 시간되실까요?”
“아! 들어오세요. CP님.”
그렇게 어이없음에 허탈해 하기도 하다가도, 피식 웃으며 관련된 장면들을 떠올렸다. 이내 안석준 CP가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스태프들 식사까지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뭐... 음식을 많이 준비해서요.”
나와 관련된 영상의 시청을 마치고 스태프들 또한 같은 장소에서 식사를 하게끔 준비했다. 어차피 음식을 많이 준비하기도 했거니와, 저들 또한 지금의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있게 만든 공신이었으니까.
어쨌든, 식사를 다 마친 듯한 안석준 CP의 등장에, 또다시 무엇인가를 찍어야 되는 건가 싶었다. 이 사람들이 말은 내 마음대로 하라했지, 사실은 그게 아님을, 그냥 해본 말이었음을 아까의 경우로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저희 스태프들은 이제 곧 철수할 겁니다.”
“네?”
그래서 이어진 안석준 CP의 말이 더욱 뜻밖이었다.
“필요한 영상도 이 정도면 됐고 프리티 스타 멤버들도 오랜만에 만났을 텐데 같이 있을 시간을 만들어 주자라는 의견이 대다수라...”
촬영을 접는다는 말과 일맥상통한 안석준 CP의 말은 확실히 의외였다. 방송 만드는 사람이 이번 기회를 이 선에서 접는다는 말은.
촬영을 할 수 있으면 어떻게든 촬영을 지속하는 것이 방송 만드는 사람들의 특징이었다. 대중들이 보는 TV화면은 수많은 편집을 거친 것들이기에, 영상 자체를 많이 보유해야 퀄리티 있는 화면을 보여줄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시면 각 소속사별로 멤버들을 데리러 올 겁니다. 대략 8시에서 9시 사이정도? 아마 그쯤이 되겠군요.”
단순히 우리 집을 최대한 많이 들어나게만 해도 시청률은 제법 나올 것이다. 지금껏 촬영 팀에게 내부시설이 이토록 공개된 적이 없었을 뿐더러, 이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 또한 꽤나 많은 것으로 알고 있었으니까.
“다음에 다시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만.”
뭐, 서너 시간 사이에 모든 것들을 찍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으나, 제작진들은 안석준 CP가 할 말을 다하고 방을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모두들 철수했다. 정말로.
에라 모르겠다. 프리티 스타 멤버들 입장에서 카메라 없이 자신들끼리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을 테니, 나쁘게만, 의아하게만 볼 필요가 없었다. 다만, 내가 저들 사이에 껴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프리티 스타 멤버들만의 시간을 온전히 보전해줘야 하나가 고민으로 떠오르기 시작했을 뿐. 흐음.
*
“선배님. 옷 갈아입으셨네요?”
고민에 대한 결론은, 그저 프리티 스타 멤버들에게 맡기자는 것이었다. 굳이 내가 멤버들을 모아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내게 오고 싶으면 오고 멤버들끼리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멤버들끼리 시간을 보내는, 그런 결정들을 말이다.
“뭐, 누가 내 옷에 또... 코를 풀어서 말이지.”
아이스커피 한잔과 쿠키 몇 개를 든 채 본채 앞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그런 내게 이내 여정과 몇몇의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다가왔다. 아마, 분수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던 멤버들인 듯 했다. 분수대와 내가 지금 앉아 있는 본채 앞 벤치는 정면에서 바로 마주칠 수 있는 포지션이었으니까.
“그, 그건 저 아닌데요?”
“아, 예. 예. 그러시겠죠. 코찔찔이.”
“에? 저 진짜 아니에요!”
“옆에 앉아요. 계속 그렇게 서있을 거에요?”
“네? 아, 아니요...”
계속 서있을 게 아닌데 뭐하고 있냐는 듯 내 앞자리를 눈짓했다. 그러자 여정과 같이 있었던 두 명의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하나, 둘 벤치에 앉기 시작했다.
“얼른 앉아! 다리 아프잖아.”
“어, 어? 여정아. 내가 움직일게. 나도 다리 있어.”
“여정아?”
그나저나, 동갑끼리 모여 있었던 것일까? 특유의 넉살을 발휘하는 여정을 보아하니, 딱히 동갑으로 한정시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서로를 꽤나 편하게 대하는 것으로 보아 동갑이 맞는 듯 했다.
“수진... 맞죠? 수진 양?”
“네, 네? 네, 임수진입니다. 선배님.”
다소 얼굴이 어두워, 아니 무표정이라 기분을 가늠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가 이름을 부르자, 희미하게나마 얼굴을 밝히는 임수진 양을 보자니 기분이 나쁜 건 아닌 듯 했다.
“랩 담당하고 있지 않았나요? 봄비가 내릴 때면 때 메인 랩 부분 맡았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떠오른 게 많았다. 그동안 정체를 숨기고 있었고 여러모로 바쁜 일이 많았지만 그래도 이것이 프리티 스타 멤버들의 활동에 대해 할 말이 없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우와... 선배님 혹시 저희 팬? 모르는 게 없으시네요? 허허.”
저기요. 그 웃음소리 좀 어떻게 하시면 안 될까요? 그리고 답변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그쪽이 답변을 하시나요? 네?
“네. 선배님이 랩 부분 잘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확실히 표정 변화가 없었다. 기쁜 게 확실한 것 같은데, 얼굴은 거의 무표정이었으니까. 말 톤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내가 억지로 그녀를 이곳에 앉힌 거라 생각했었을 것이다. 아니, 억지로 앉힌 건 맞나? 흠... 뭐, 아무튼.
“새연 양이라고 했죠?”
“네? 네. 선배님.”
“아! Bad Man 안무 짰던 게 새연 양이라고 들었어요. 다른 스케줄 때문에 안무 짤 시간이 도저히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무대 보니까, 정말 멋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요. 고마워요.”
“아, 아니에요. 다 같이 만든 건데요. 뭘.”
“에이. 새연이 네가 다 만들었잖아? 왜 갑자기 부끄러워하고 그래? 개방적인 아메리카에서 살다가 왔다고 우리들한테, 어, 어? 허허... 읍읍!”
대화는 순조롭게 이어져갔다. 특히나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새연 양 같은 경우, 내가 감탄을 금치 못했던 Bad Man 안무를 만든 이이기에 더욱. 그나저나 개방적인 아메리카?
“여정아... 흠흠. 선배님 정말 감사합니다. 여러모로 많이 챙겨주셔서...”
무엇인가를 말하려고 하다가, 새연 양에 의해 입이 막혀버린 여정을 보자니, 피식 웃음이 터졌다. 저놈의 웃음소리는 진짜.
“감사합니다.”
“잘 마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주방 이모에게 부탁해 아이스티 석 잔을 그녀들에게 건넸다. 아무래도 날씨도 덥고 나만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마시고 있기엔 조금 양심에 찔린다고나 할까?
어쨌든 대화를 하다 보니, 예전 내 생각도 나고 그래서 좋았다. 내가 해준 말들이 저들에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저는 지금 나인 테일 활동하면서,”
“그쪽 말고요.”
“헐... 진짜 너무하세요. 선배님.”
하지만 마냥 그 대화라는 게 밝은 부분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저랑 결희는 연습생 다른 친구들이랑 해서 곧 데뷔할 것 같아요. 사실 프로젝트 데뷔 나가기 전부터 같이 연습했던 친구들이기도 하고 프로젝트 데뷔에도 같이 나갔었거든요. 결과적으로 저랑 결희만 프리티 스타가 됐지만...”
프리티 스타 멤버들 가운데 탄탄한 소속사를 지니고 있는 멤버들이 있는 가하면,
“저는... 아무래도 조금 기다려야 할 것 같아요.”
그렇지 못한 멤버들도 있었으니까.
같이 프리티 스타 멤버로서 수많은 대중들을 감동시키고 또한 뿌듯하게 만들었지만, 그런 그녀들일지라도 그룹이 해체된 여파를 마냥 피해갈 수는 없는 듯 했다.
“아, 미안해요. 괜히 물어봤네요.”
프리티 스타 활동 중에 이미 소속사 차원에서 데뷔를 한 여정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데뷔를 앞두고 있다는 수진 양과는 달리, 새연 양은 이렇다 할 앞으로의 계획이 아직 없는 듯 했다.
Bad Man 안무를 혼자 만들었을 정도로 출중한 재능에 노래실력까지 겸비했음에도.
“아니에요. 걱정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동안 챙겨주신 게 얼마나 많은데... 걱정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럼 편히 쉬어요. 다른 걱정들 하지 말고.
그래서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아 버렸다. 수진 양과 여정이 새연 양의 눈치를 보면서, 그런 분위기를 깨닫고 새연 양이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보다 밝아졌다는 점에서 더욱.
이 입이 문제다. 입이. 어휴.
*
“이거 이번에 나온 앨범이에요. 별건 아닌데, 한 장씩 가져가요.”
“우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녁때가 되어 다시금 한자리에 모인 프리티 스타 멤버들의 얼굴을 확실히 밝아져있었다. 이는 내가 앨범을 줘서가 아니었다. 소속사 눈치 없이 다 같이 모여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게 그만큼 그녀들에게는 큰 기쁨이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조금 서글퍼졌다. 같은 그룹이었고 또 그 그룹을 통해 수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았음에도 현재에 와서는 같이 만나기도 애매해진, 그런 프리티 스타 멤버들의 현실이.
“다른 멤버로 활동하게 되겠지만, 아니 되었지만 그래도 한 팀이었다는 거 잊지 말고 계속해서 인연 이어나가길 바랄게요. 자! 배고플 텐데 저녁 먹죠.”
괜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더욱이 가만 보아하니, 이별의 순간이 다가옴에 따라 멤버들이 보다 과장되게 웃고 즐거워하는 게, 차츰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저녁은 삼겹살 준비했어요. 조금 더 비싸고 몸에 좋은 거 준비할까 하다가, 그래도 멤버들끼리 같이 엠티 온 것처럼 해주고 싶었거든요. 괜찮죠?”
“네!”
“네!”
“저는 다 잘 먹어요. 선배님. 허허.”
고맙게도 고기를 초벌해서 가져다주신 주방 이모들의 도움 덕에, 나 홀로 고기를 굽느라 저녁 시간을 다 소모할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말이 10명이지, 그 10명이 배불리 먹을 만한 고기를 혼자 감내했더라면 연기에 질식했을 것이다. 진심.
“지영 양은 연기자 준비하고 있다고요?”
“네? 네! 저는 아무래도...”
그렇게 고기를 먹으면서 프리티 스타 멤버들과 비교적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녁 전에 3명의 멤버들 하고만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서, 최소한 헤어지기 전에 개인적으로 몇 마디 정도의 대화 정도는 나누고 싶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기대할게요. 꾸준히 하다보면 팬들이 좋아해줄, 응원하고 싶은 그런 배우가 될 수 있을 거에요.”
“감사합니다!”
노래와 춤 실력이 아닌, 노력하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 대중들의 선택을 받은 지영 양의 연기자 도전 소식에 진심으로 응원을 해주었다. 비록 무대 위의 가수로서, 아이 돌로서 대중들의 사랑을 다시금 받진 못하겠지만, 배우 또한 대중들에게 여러 감정들을 안겨다 줄 수 있는 좋은 직업이었으니까.
“JS ENTERTAINMENT.”
그렇게 나머지 멤버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니, 나와 개인적으로 대화를 나누지 못한 멤버는 어느새 단 한명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도 민지 양이 소속된 곳에서 연습생 엄청 오래했거든요. JS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됐나 봐요?”
주민지 양이 JS 소속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프로젝트 데뷔 시즌 2의 심사를 맡을 때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으레 JS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연습생이라 생각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JS에서 10년도 넘게 연습생을 한 사람이 나란 사람이다. 따라서 내가 모르는 사람이 그때 당시 나와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던 이라고는 생각할래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욱이 당사자가 나이 또한 어렸으니 오죽할까.
“저는...”
그런데 잠시 뜸을 들인 주민지 양의 이어진 말은 나를 당황케 만들기에 충분했다.
“저도 10년 정도 했어요.”
“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나와 접점이 있을 거라고는.
그러나 놀라기엔 아직 일렀다.
“그럼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혹시 나 회사에서 본 적 있어요?”
“네.”
“연습생인 나를?”
“네.”
나를 회사에서 본적이 있다는 사실 그것도 연습생인 나를 회사에서 본 적이 있다는 주민지 양의 단언에 말문이 턱하니 막히고 말았다. 뭐지? 그때 당시 내가 얼굴을 모르는 연습생이 있을 리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