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38화 (438/502)

00438  2019  =========================================================================

#438

자연스럽게. 별도의 플롯 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하라는 게 제작진의 요청이자, 부탁이었다. 그래서 쉽게, 쉽게 생각했다. 막상 마주하게 된 이들이 숨 막힐 듯 고요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못 생각했나 싶었지만.

아니, 나한테 달려들어서 콧물이며 눈물까지 다 닦아낼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나 원 참.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아, 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몸이 꺾일 정도로 허리를 숙여대는 프리티 스타 멤버들을 보자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시상식 할 때나 이렇게 어렵게 대해주지 그랬수? 참.

“식사 안 하셨죠?”

“네? 네!”

“네!”

카메라가 있어서 그러나 싶어 고정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실내로 그녀들을 안내했다. 찍히는 거야 매 한가지겠지만, 그래도 사람이 있고 없고가 꽤나 차이가 있을 테니까.

“우와... 저기 봐! 진짜 멋있다.”

“분수 진짜 멋있다.”

중앙 분수대에서 본채로 가는 길 사이, 사이에 감탄을 터트리는 그녀들을 보아하니,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소녀티를 벗어내지 못한 듯 했다. 하긴, 이제 20대에 막 접어들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대, 대박!”

“우와!”

이내 석조전 홀에 도착한 프리티 스타 멤버들의 입에는 전과 확연히 다른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덕분에 나는 더욱 소외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아예 뒷전으로 밀려나 석조전 홀에 마련된 음식들을 눈이 빠져라 바라보는 소녀들을 바라봐야 했으니까.

“크흠.”

음식들을 보기 위해 정신없이 쏘다니는 그녀들을 통제할 필요성이 느껴졌다. 적어도 인사는 제대로 하고 음식을 먹든지, 말든지 해야 할 거 아닌가?

“지영아?”

“어, 어? 아!”

“우희야!”

“아!”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나의 기침소리에 몇몇 멤버들이 다른 멤버들을 추스르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얼씨구. 이제 와서 얼굴 붉히고 조신한척 해봤자 소용없네요. 그럴 거면 나한테 콧물이며 눈물 같은 걸 닦아내지 말았어야지. 장난치나.

“프로젝트 데뷔 시즌 2 그리고 프리티 스타로서 1년 동안 수고했다는 점에서 이번 자리 만들었으니까. 각자 맛있게들 먹도록 해요.”

괜히 붙잡아놓고 일장연설을 해봤자, 내가 핍박을 하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 최대한 내가 하고자 했던 말을 짧게 요약해 건넸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내가 말을 길게 했으면 어쩌려고 저렇게 저돌적으로 달려드는지. 며칠 굶은 듯한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가도, 저런 모습이 가장 프리티 스타다워 나 또한 이내 접시 하나를 집어 들었다.

“대박! 이거 훠궈야! 훠궈!”

“훠궈?”

“이거 중국음식이야!”

[단품으로 중국 저장성 요리 동파육과 거지 닭, 서호 생선찜 등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원하실 경우 주문을 해주시면 즉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우, 우와! 아저씨 중국 사람이에요? 게다가 저장성? 나 집이 저장성이에요!]

신경 써서 준비한 만큼 음식들을 화려했다. 중국 멤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중국인 요리사를 하루 고용해 각종 중국 요리를 준비했을 정도로.

“우와 이거 스테이크 구워주시는 거에요?”

“네. 굽기 정도와 채끝, 등심, 안심 등 고기 종류를 선택해주시면 직접 서빙 해드리겠습니다.”

“대박!”

“또한 숙성 고기를 원하실 경우, 드라이 에이징을 통해 숙성시킨 티본스테이크를......”

뷔페형식을 기본으로 양식, 중식, 한식을 준비했는지라 멤버들 입맛을 걱정할 필요는 없는 듯 했다. 그래서 나 또한 내 식사에 전념하기로 했다. 뭐, 얘기를 좀 더 나눠볼까 싶었지만 이는 식사를 하는 와중에나 아니면 식사 후 티타임 때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으니까.

흐음. 체중관리하기 전에 실컷 한번 먹어볼까나?

*

제작진이 준비했다는 별도의 영상을 티타임을 가지며 보게 되었다. 아니, 나한테 영상 준비했다고 말 안 해줬잖아? 뭐야, 이거? 마음대로 하라더니.

“음... 저는 여기서 쓸게요. 특권.”

갑작스런 영상 시청 시간.

하지만 정작 나와 소녀들을 당황시킨 것은 그 시간 자체 때문이 아니었다.

“노래 잘하니까, 앞으로도 지켜볼게요. 음... 피쉬앤칩스 김여정 연습생? 나도 참. 이걸 왜 찍고 있는 거에요? 어차피 안 밝힐 건데.”

프로젝트 데뷔 시즌 2의 시작을 알렸던 첫 촬영 평가에서의 내 모습에 나 또한 색다른 감회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영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는 대중들이 아니라, 제 노래를 부를 연습생 소녀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면서 노래를 만들어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진솔해질 수 있을 때, 그때 관객들의 감동과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이번 Girlish Pop팀 소녀들이 ‘나를 잊었더라도, 내 노래가 들릴 때면’이 다른 사람 얘기가 아닌, 본인들 스스로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Girlish Pop팀의 작곡가로서 ‘나를 잊었더라도, 내 노래가 들릴 때면’과 관련되어 Girlish Pop팀 소녀들에게 당부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은 영상,

[지! 무슨 마카롱을 그렇게 사는 거야? 마카롱에 미쳤어?]

[하하! 챙겨줘야 할 사람들이 있는데, 보다시피 촬영 중이잖아요. 여기가 마카롱 유명하다는 곳이라면서요?]

[뭐, 그렇지?]

[여자들도 좋아하는?]

[당연하지? 아주 환장한다구? 하하! 우리 마누라가 여기 마카롱에 아주 환장하지. 환장해. 하하! 부부싸움 할 때 효과 직빵이라니까? 하하!]

파리 로케 촬영에서 크리스 오웬의 소개로 유명한 마카롱 집을 들렀을 때의 영상이 흘러나오자 소녀들의 반응이 한결 거세졌다. 특히 해당 마카롱을 직접 받았었던, Girlish Pop팀으로서 활약했던 소녀들 같은 경우 더더욱.

“너무 아쉽잖아요. 저들 중에 몇 명은 최종 선발되지 못하고 탈락할 텐데. 그래서 알려주고 싶었어요. 경쟁을 떠나서 지금 자신들이 쏟아 붓고 있는 노력과 열정이 결코 헛된 게 아니라는 거. 그래서 만든 곡이 ‘봄비가 내릴 때면’이에요.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하자는......”

영상은 내가 인지하고 있는 것들보다 훨씬 길었다. 나조차도 영상을 보고나서야, ‘아! 이런 영상을 찍었었지?’하고 되새길 정도로. 그렇게 영상은 최종 경연을 앞둔 소녀들을 위한 곡 ‘봄비가 내릴 때면’과 관련된 영상과

“이런데서 생활하게 한다고요?”

“그것이... 아무래도 제작비 여건도 있고 활동을 전담하게 될 소속사도 규모가 큰 곳이 아닌지라...”

“숙소는 제가 마련해드릴게요.”

“예?”

데뷔를 앞둔 소녀들이 어떻게 해서 한국에서 가장 비싼 집이라는 잠실 타워 고층을 숙소로 사용할 수 있었는 지와 관련된 영상 그리고 내가 작곡했던 곡들과 관련된 영상들로 물 흐르듯이 이어져갔다.

“Bad Man 안무를 직접 짰다고요? 흐음... 마음에 드냐고요? 당연히 들죠. 대단해요. 대단해.”

“그 아줌마들이 아니, 다른 심사위원 분들이 자꾸 알려달라고 했다고요? 나 참. 됐어요. 끝까지 비밀로 해주세요. 알면 날 얼마나 보챌지. 어휴. 아무튼 전 끝까지 안 밝히는 조건으로 이 프로그램 참가한 거니까. 그렇게 해주세요.”

“Bad Man도 그렇고 자꾸만 자꾸만도 1위했다면서요? 흠... 제가 따로 예약해놓을 테니까. 잘했다는 의미로 데려가서 배터지도록 먹게 해주세요. 활동 준비 기간부터 해서 활동하는 내내 체중관리 했을 텐데. 돈 상관없이 마음껏 먹게 해주세요. 가게에서 파는 소고기 바닥나도 상관없으니까.”

언제 이런 영상들을 다 찍어놓은 건지. 나 또한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말문이 턱하니 막혀버렸다. 안석준 저 무서운 사람. 내가 정체 안 밝힌다고 그렇게 단언했을 때도 이런 영상들을 찍었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저 사람 엄청 무서운 사람이라고. 허허.

“타이틀곡은 힘들 것 같다고요? 괜찮아요. 이곡은 다른 사람들한테 들려주려고 만든 곡이 아니니까. 저는 그냥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이 노래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만으로도 족해요.”

분위기가 처음엔 놀라움으로 가득 찼었는데,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꽤나 무거워져있었다. 이거 불안했다. 또다시 옷을 갈아입어야 할 것만 같은 본능이 내게 끊임없이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슬슬 영상의 재생시간이 마무리로 가까워질 무렵, 전혀 예상치 못한 장면이 이 영상의 마무리를 장식하고 있음에 나도 몰래 두 눈이 휘둥그레져버렸다.

“이렇게 얼굴 마주보고 얘기하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네요.”

영상 속의 내가 내뱉은 첫 마디를 듣는 순간 모를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장면이 어떤 것을 드러내고자 함인지.

“오랜만입니다. 영화가 정말 잘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때는 안석준 CP와 정말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할 때였다. 그것도 내가 먼저 요청해서.

“12월 말이던가요?”

“예? 아! 그렇습니다. 프리티 스타 계약기간은 그때까집니다.”

“CP님도 JJ E&M쪽에 속해있으시고 어느 정도 높은 자리에 있으신 만큼 제 사정이 어떤지는 아실 거라고 믿어요. 맞죠?”

앞선 영상들과는 조금 다른 진지함이 묻어나와, 장내는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P님에게 제안을 할 게 있어서 이렇게 따로 자리를 잡아서 연락을 드린 거에요. 사실 이번 일이 아니어도 프리티 스타 멤버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어요. 마지막을 최대한 팬들과 본인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게요.”

“아!”

“아레나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주려고 했어요.”

선물이되, 선물일 수 없게 되어버린 선물.

굳이 영상을 보지 않아도 안석준 CP의 얼굴이 굳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그때의 분위기는 어두웠고 또한 무거웠으니까.

“본의 아니게 선물이 아니라, 계륵이 되어버린 아니 어쩌면 부담만 될 선물이겠지만 일단 말씀은 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어떤 선택을 하든 저는 CP님의 선택을 존중할게요.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제 뜻이 왜곡되어질 것 같아서 조금 그렇지만요.”

지금은 내가 누구로부터 꾸준한 압박을 받아왔는지가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대중화된 사실이 되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극소수만이 알고 있는 비밀 중의 비밀이었다. 그마저도, 알면서 모른 척 해야 했던.

“다시... 흑흑! 만날 때까지... 잊지...”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울지 마! 울지 마!]

결과적으로 영상은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꿈 아레나에서 공연을 하는 것으로, 눈물을 내보이며 팬들이 외치는 ‘잊지 않을게’, ‘울지 마’ 등의 목소리를 듣는 장면에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내게 달려든 프리티 스타 멤버들의 눈물이 콘서트 때의 장면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제작진들과 나 또한 모르지 않았다.

이 영상을 보고나니, 내가 해왔던 행동들이 프리티 스타 멤버들에게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갔을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했었는지라 그 행동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었지만, 이러한 행동을 직접적으로 느낀 프리티 스타 멤버들에게는 확실히 내 자신이 든든한 보호자로서 느껴졌을 테니까.

후우.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눈물을 쏟아내는, 일부는 콧물까지 흘려... 응?

“흥!”

“흥!”

다시금 내 겉옷에 얼룩을 만드는, 겉옷을 휴지로 여긴 듯 코를 풀어대는 이들 덕에 싱숭생숭해졌던 마음이 단번에 정리되고 말았다. 하아. 그럼 그렇지. 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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