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37화 (437/502)

00437  2019  =========================================================================

#437

“아...”

해가 지는 이곳 해변의 광경은 유지연조차 절로 감탄사를 내뱉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휴가다운 휴가를 보냈다.

주변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함께하고 싶은 이가 곁에 있다는 점. 섹스. 여유. 맛있는 음식.

휴양지의 시끌벅적한, 그렇지만 휴양지를 휴양지답게 만드는 광경이 함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으나 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그렇고 그녀도 그리고 나머지 녀석들도 이미 그런 시끌벅적한 휴양지에서 휴양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으니까.

“서울 갔다가 바로 두바이에 간다고?”

“어, 어? 어...”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휴가가 소중한 것은 이제 한국을 떠날 때가지 그녀와 이렇다 할 접점을 갖기가 힘들다는 점이었다.

“가족들 전부 가 있어서. 가봐야 할 것 같아.”

“유재연도?”

“어.”

“그럼 다시 이 예쁜 얼굴 보려면 얼마나 기다려야 하나?”

이미 정해져 있지 않은 스케줄이었다면, 계약서를 이미 작성하지 않았더라면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솔직한 말로 계약서를 파기하고 싶은 마음도 더러 들었다.

그 정도로 지금 이 순간이 소중했고 또한 아쉬웠다. 그리고 이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인 듯 했고.

“찾아갈게. 미국으로.”

“진짜?”

“어.”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아마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더욱 그러했을 지도 모른다. 사랑했지만, 바쁜 스케줄을 명분삼아 사랑하던 이를 소홀히 했던 적이 있었고 이로 인해 견디기 힘든 아픔을 겪었기에 다시는 그런 과정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촬영 열심히 해. 불시에 찾아가서 농땡이 피우고 있으면 가만 안 둘 테니까.”

“알았어. 열심히 할게.”

그녀의 당부 아닌 당부에 절로 얼굴이 밝아졌다. 알게 모르게 신경 쓰고 있었던 점에 상당한 위안과 안도감을 얻게 되었다.

“우리 공개 열애할까?”

“뭐?”

하지만 욕심이라는 게 마냥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공개열애를 하면 자유롭게 서로 오고 가고, 기사에 신경 쓸 거리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그래서 공개 열애를 하자는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버렸다. 이내 바로 후회하게 됐고.

“미안. 그냥 해본 말이야. 신경 쓰지 마. 나는 단지.”

여배우에게 있어 열애는 독이었다. 연인과의 훈훈한 모습에 대중들이 호응을 보내준다는 소리는 다 개소리였다. 맡을 수 있는 배역에서부터 열애중인 여배우와 솔로인 여배우는 알게 모르게 차별대우를 받았다.

“난 공개열애 해도 상관없다는 소리였어. 네 편할 대로 하라는 소리였고.”

더욱이 나와의 열애는 그녀에게 있어 좋지 못한 영향을 잔뜩 줄 게 분명했다.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애호박에 무장해제 당한......]

[도도한 이미지고 차가운 이미지고 할 것 없이 대물이면 그냥 아작 나는 구나 아작......]

[몇 번이나 했을까? 유지연 이미 헐었겠지? 애호박에......]

절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으니 오죽할까.

물론 인지도는 확연히 올라갈 것이다. 그녀가 이미 확고한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아시아 지역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하지만 그것조차 배우인 그녀에게 있어 결코 좋다고 볼 수는 없었다. 그녀가 그동안 쌓아왔던 배우로서의 이미지보다 강지혁의 연인이라는 이미지가 더욱 큰 고정관념이 되어 그녀를 따라다닐 테니까.

“미안.”

“네가 뭘 미안해? 그냥 내 생각만 하다가 공개열애 얘기가 나온 건데.”

특히 그녀와 나 사이에는 유재연이라는 접점이 존재하기에 공개 열애는 아무래도 힘들 것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괜히 이 얘기를 꺼냈나 싶었고.

유재연.

이미 10년 가까이 된 유재연과의 이별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녀가 유지연의 동생이라는 점이 공개열애의 가장 큰 장애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나와 유재연간의 열애가 밝혀질 일은 없겠지만, 너무나도 오래전 일이지만 자신의 언니가 나와 사귄다는 사실은 유재연에게는 제법 큰 상처로 다가갈게 분명했다. 그것을 유지연이 염려하고 있는 것이고.

흐음. 말 한마디 잘못 꺼냈다가 괜스레 분위기만 무겁게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화제를 돌리려했다. 해는 이미 수평선 너머로 자취를 감춰버렸고 그 여운만이 남아 바다를 물들이고 있었다. 이제 곧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한 시간인 만큼 더욱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고 이런 분위기로 지금 이 자리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였다. 유지연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흘러나온 것은.

“재연이 아직도 원망해?”

*

[재연이 아직도 원망해?]

며칠 전 들었던 그녀의 말이 아직도 생생했다. 그리고 이러한 생생함은 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질문 그 자체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섞여 있는 것일까.

단순히 전화상으로 유재연을 원망하냐는 말을 전해 들었다면 이다지도 고민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 당시 그 질문을 건네받을 때 보았던 유지연의 눈빛은 그 정도로 깊고 짙었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으니까.

“지혁씨! 준비 다 되셨나요?”

때마침 들려오는 촬영 스태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계속해서 상념에 빠져있었을 것이다. 어느새 굳어진 얼굴 표정을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아, 예. 준비 다 됐습니다.”

그렇게 방 안에 마련된 거울로 다시금 옷맵시와 얼굴 상태를 점검한 뒤, 이내 방을 나섰다.

“1시간 쯤 후면 도착한다고 하니까, 그 사이에 카메라 설치에 관해서......”

오늘 이 자리는 지금까지의 상념들과는 확연히 다를 기분으로 맞이해야했기에 복잡한 생각을 잠시 머리 저편으로 치워버렸다. 그리고 현실이 아닌 카메라 앵글 사이로 뛰어 들어갔다. 비교적 밝은 표정을 한 채.

*

“언니! 진짜, 진짜 너무 오랜만이에요!”

“애는... 일주일 전에 봐놓고 무슨.”

“에이 그래도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

그룹이 해체되었을 때, 소녀들은 이렇게 다 같이 모여 무엇인가를 함께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룹이 해체되지 않았을 때도 유닛 활동에 절반 가까이를 소모했던 것이 프리티 스타였다. 따라서 각 소속사들이 다시금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모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리 만무했다.

프리티 스타는 이미 해체되었고 이제는 새로운 그룹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새롭게 소속사의 수익을 창출해야 할 자사 소속 프리티 스타 출신 멤버들이, 프리티 스타로서 모여 활동을 하게 된 다면 새로운 걸 그룹으로서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희미해질 게 분명했으니까.

하지만 소녀들은 일주일쯤 전에 있었던 한류월드 뮤직 어워드 참석에 이어 지금 또한 한 자리에 모여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언니 솔로 데뷔 준비한다면서요?”

“어머? 그거 어떻게 알았어?”

“인터넷에 파다하던데요. 뭘. 어쨌든 잘 될 것 같아요. 언니는 안무도 잘 만들고 노래도 잘 하니까.”

그래서 소녀들의 얼굴은 반가움과 기쁨이 공존했다. 지금 자신들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의식해서가 아닌, 진심으로 말이다.

“결희 너는 더 예뻐졌네? 어쩜 그래? 진짜?”

“에이, 뭐가! 사돈 남 말하네!”

“그래, 한국어 실력도 더 늘었네. 나 참.”

소녀들은 저마다 끼리끼리 모여 그동안 밀렸던 대화를 나누었다. 1주일쯤 전에 만나긴 했지만, 그때는 시상식 준비로 인해 좀처럼 이렇게 얘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던 만큼 소녀들의 이야기보따리는 넘칠 정도로 많은 근황들을 담고 있었다.

“지현이 이제 곧 데뷔한다며? 수정이랑 같이.”

“응. 근데 조금 미뤄질 것 같아. 다른 멤버들도 오디션으로 뽑고 그래야 한데서... 어쨌든 언니 이번에 컴백한다면서? 이번엔 1위할 거라고 막 그러던데?”

“에이, 열심히 해야지. 허허...”

“아, 뭐야. 그 아저씨 같은 웃음! 여전하네. 진짜.”

“지영아. 1주일 전에도 들었으면 왜 그래? 지현이도 가만히 있는데? 허허.”

그렇게 소녀들을 태운 미니버스는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와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언니 저번에 명탐정 K 진짜 잘 봤어요! 나 진짜 하나도 안 빠지고 다 본방 사수!”

“으구구! 그랬어? 지영이 덕에 시청률 잘 나왔나보다. 허허.”

“근데 언니 추리는 완전 꽝이던데?”

“뭐? 지영이 너?”

그렇게 소녀들이 버스에 탄지 1시간가량 지났을 때였다. 왁자지껄하던 버스 내부가 일순간 감탄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우와!”

“대박. 나 처음 봐! 인터넷에서만 봤는데!”

“진짜 크네?”

“성 같아. 성.”

“그러게 진짜 성 같다. 성.”

이 미니버스의 종착지가 드러나자 소녀들이 시선을 한데 모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오늘 그녀들이 모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눈앞 건물 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람의 존재덕분이었으니까. 더욱이 눈앞 건물이 무척이나 인상 깊은 외형을 지니고 있었으니 오죽할까.

“우와... 저것 봐.”

“진짜 예쁘다!”

이내 소녀들을 태운 미니버스와 수많은 제작진 차량이 엄청난 대문을 열고 저택 내부에 들어섰다. 그리고 이는 소녀들이 고대하고 기대하던 만남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저거 경복궁에 있던 건데? 맞지! 그치?”

“응. 근데 저게 더 멋있는 것 같아. 헤헤.”

물론 기다리기는 제작진들이 더욱 기다렸겠지만.

*

[정규 5집 앨범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강지혁! 미스터 지 후속편 촬영 전 일본에서 유일한 생방송 라이브 무대를 펼칠 것으로 알려져! 강지혁의 해외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JS ENTERTAINMENT의 발표에 따르면, “경색된 한일관계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예약 판매량이라는 성원을 보내준 일본 팬들에게 생방송 무대를 보여주고 싶다는 강지혁의 요청에 의해......” ...... 한편 유일한 생방송 라이브 무대를 일본에서 치른다는 점에서 한국 팬들의 서운함과 일각에서는 비난까지......]

- 이 새끼 진짜 돈독 올랐네. 일본에서 앨범 존나 팔아주니까, 바로 일본 똥꼬 파는 클라스. 키야! 지리구여, 오지구여! 우익들 지금 강지혁 오면 죽여버릴 거라고 그러던데, 뒤져버려라! 강지혁 친일파 새끼. 일본 쪽바리한테 뒤지겠네 ㅋㅋㅋㅋㅋㅋㅋ

- 또 열폭종자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 일본 똥꼬 빠는 건 니들이 품번, 품번 거리면서 딸 치는 게 똥꼬 빠는 거지. 병신들아. 무대 한 번 하는 거 가지고 열등감 폭발하네 ㅋㅋㅋㅋ

- 좆같으면 앨범 사든가 빙신들아. 일본에서 3백만 장이나 넘게 팔렸는데, 그럼 입 싹 닫고 넘어가냐? 하여튼 집에서 컴터만 두드리고 있는 새끼들이 문제라니까. 니들이랑 일본 우익들이랑 뭔 차이냐? 병신들. ㅉㅉ

- 아... 근데 아쉽다. 한국에서도 라이브 방송 해주지.

- 저거 일본 생방도 한국 출국하고 일본에서 라이브 방송 한 다음에 바로 미국으로 가는 거임. 따로 날 빼서 현지 행사 같은 거 하는 것도 아니고 딱 음악 방송만 하는 거. 뭐... 서운해도 어쩔 수 없지. 국내에서 방송 하려면 방송 4사 다 나가야함. 그럴 거면 차라리 일본가서 무대 하나 하는 게 낫지. 앨범도 가장 많이 팔아줬는데.

- 그래도 강지혁 미국 가기 전에 예능 프로 많이 했잖슴. 팬들 자주 못 볼 거라고. 이 정도면 혜자라고 봄. 나가는 예능마다 다 재밌기도 재밌었고. 뭐, 생방송 무대야, 예전에도 일본에서 처음으로 하지 않았음? 앨범 많이 팔아줘서? 아닌가? 초동이었나? 어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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