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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노래로-431화 (431/502)

00431  2019  =========================================================================

#431

고작 하룻밤을 딸들 집에서 보낸 그녀의 부모는 서둘러 한국을 떠났다. 다른 점이 있다면 올 때보다 일행의 수가 한명이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부모가 그리고 그녀가 느꼈던 아쉬움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도 끝났고 스케줄도 없는데 우리 큰 딸이 엄청 바빠서 아빠가 너무, 너무 아쉽네. 우리 작은 딸은 시트콤 촬영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도 시간 냈는데...]

[정말로 죄송해요. 이미 선약이 있어서요. 앞으로 시간 많으니까, 조만간 찾아갈게요. 죄송해요. 아빠.]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의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고 또한 같이 있는 시간이 하룻밤뿐일 지라도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애써 아쉬워하는 부모님을 떠나보낼 뿐이었다.

[누군지는 몰라도 어중간한 놈이면 절대 허락 안 할 테니까, 알아서 해. 피임은 확실히 하고. 알겠어?]

뭐, 그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눈치도 빠른 편인 어머니가 조금은 날카로운 당부를 건네 그녀 자신을 당황시키긴 했지만.

어쨌든 그녀는 후일을 기약하며 그녀의 부모 그리고 동생을 배웅한 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행선지는 좀 전까지 가족들이 모여 있었던 자신의 집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

[삑]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후덥지근한 공기가 실내에 아무도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거실 소파에 당도했을 때, 그녀는 소파 구석에 쭈그려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에어컨도 안 켜고 혼자 뭐... 무슨 일 있어?”

후덥지근한 날씨는 저녁이 깊었음에도 여전한 기세를 뽐냈다. 그래서 집안에 있으면서도 에어컨을 켜지 않은, 그렇다고 해서 창문을 열거나 그러지도 않은 그의 행동을 상식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하지만 정작 그녀를 주춤하게 만든 것은 그런 그의 행동 때문이 아니었다.

“왔어...?”

기운이 없어 보이는 얼굴. 다짜고짜 자신을 품속으로 껴안는 그의 행동.

순간 코끝을 찌르는 땀 냄새는 그가 이다지도 더운 실내에서 꽤나 오래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 했다. 하지만 그보다도 어떤 일이 그를 이렇게 마음 쓰게 만들었는지, 그게 지금 유지연 그녀를 미칠 듯이 괴롭혔다. 자신의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

“언제 왔... 아! 꿈이 아니었구나.”

건조하기 그지없는 목소리. 하지만 유지연은 그런 그의 목소리에 적잖은 안도감을 느꼈다.

“일어나.”

궁금하긴 했다.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어째서 어제 그런 몰골을 자신에게 보였는지가.

하지만 유지연은 이를 캐묻지 않았다. 또한 이와 관련된 티를 내지 않았다.

그저 어제의 감정을 어느 정도 갈무리한 듯한 그의 모습에 안도감을 느꼈고 또한 더 나은 기분이 되도록 노력할 뿐이었다.

“아, 맞다. 내일 여행가기로 했지?”

주말에 제주도로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것이 떠올랐는지, 그의 얼굴이 한층 더 밝아졌다. 그리고 그에 걸맞게 유지연 그녀의 속마음도 더욱 밝아졌다.

“벌써 11시네. 짐은 다 챙겼어? 집에 다녀온 거야?”

“어.”

“어? 나 밥 먹으라고 아침도 차려놓은 거야? 아니, 점심인가? 어쨌든 그런 거야?”

“뭐래.”

마음 같아선 애교도 부리고 싶고 품에 안겨 내숭도 떨고 싶었지만 그녀는 그저 평소 모습 그대로 퉁명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이를 바로 후회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도 사랑스럽다는 듯, 그는 그런 그녀를 자신의 품안으로 거칠게 끌어당겼다.

“이거 안 놔?”

“이리와. 예쁜 짓 했으니까, 상 받아야지. 싫어?”

“뭐래.”

“싫어?”

품속에서 느껴지는 땀 냄새와 독특한 채취가 섞여 그에게서 풍겨오는 냄새는 객관적으로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그의 품속이 너무나도 좋았다.

“나한테 예쁨 받으려고 요리도 해놓고 화장까지 했... 아! 땀 냄새 나겠다. 어제 안 씻고 잤더니. 잠깐만... 에?”

차가움을 방패삼던 얼굴은 어느새 무장해제를 당했다. 그녀는 그런 자신의 얼굴을 숨기기 위해 그의 집요한 물음에 대꾸를 안 한 것치고는 지나치게 깊숙이 그의 품속으로 얼굴을 묻었다. 도리어 자신의 땀 냄새를 의식한 그가 그녀를 떨어뜨려놓으려 했을 정도로.

“아주 귀여운 짓을 하네?”

“뭐래.”

“씻고 금방 다시 안아줄 테니까. 좀 누워있어. 아침부터 화장하랴 밥상 차리랴 고생했을 텐데.”

그가 자신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어준 뒤에서야 그녀는 그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동안 계속해서 그곳에 그대로 누워 남아있는 그의 채취와 체온을 느꼈다. 이내 내일 여행을 대비해 준비할 것들이 꽤나 많다는 것을 떠올리기 전까지.

*

“뭘 그렇게 예쁘게 차려입었어?”

“뭐?”

“사람 설레게.”

그의 말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지만, 그녀는 그저 퉁명스럽게 그리고 별 관심 없다는 듯 그를 대했다.

모든 게 완벽했다. 단 하나만 빼고.

“어떻게 할 건데?”

“글쎄...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데?”

몇 시간을 들여 고민했던 옷차림도, 마찬가지로 신경 써서 준비했던 화장도 모두 그의 마음에 꼭 들었지만 정작 날씨가 이를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빗방울이 끝도 없이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그럼?”

그래서였을까. 그녀 얼굴에 스며들어있던 차가움이 그때만큼은 기세를 잃어버렸다.

“우쭈쭈. 아쉬웠어?”

“뭐?”

“하하하!”

하지만 그런 그녀의 얼굴에 잠시나마 자리 잡았던 실망감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걱정 마. 제주도는 쌩쌩하다니까. 그리고 비가 오면 어때? 비가와도 제주도는 나름 정취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하아...”

“그리고 무엇보다 비 오는 날 별장은 더 끝내주니까... 에?”

자신의 얼굴에 차가움이 잠시나마 사라지는 것이 그렇게나 좋을까. 날씨 때문에 여행이 취소되었다는 식의 장난을 한 그로 인해 유지연의 얼굴이 다시금 본래의 표정을 되찾았다.

“삐졌어?”

도대체 이럴 거면 왜 장난을 친 건지.

금세 자신의 눈치를 보며 슬며시 옆으로 다가온 그를 보고 있자니, 그녀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물론 그녀가 본래의 표정을 되찾은 것은 결코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도리어 여행이 취소되지 않았다는 점은 그녀에게 무척이나 큰 안도감을 안겨다 주었다. 다만, 여행이 취소되었다는 장난에 너무나도 일희일비한 자신이 놀랍기도 하고 적응이 되지 않아 표정이 굳어졌을 뿐.

“삐졌어? 우쭈쭈.”

삐질 일이 아닌데, 자꾸만 옆에서 삐졌냐는 말을 듣게 되니, 자신도 모르게 절로 울컥하게 됐지만 그녀는 이내 그의 품속에 안기는 것으로 이 상황을 종결시켜버렸다. 그의 품속에서 느껴지는 포근함과 따스함에 절로 녹아버리는 자신의 얼굴을 숨긴 채.

*

하지만 그녀는 이내 떨어지기 싫은 그의 품에서 떨어져야만 했다.

“와... 비 장난 아닌데?”

“왔냐?”

이내 오늘 여행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손님인 양성준과 그의 연인 서린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의 얼굴이 다시금 원래의 차가움을 회복했다.

“안녕하세요. 누나!”

활기찬 성격으로 일행의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하는 성준의 인사에 그녀가 살짝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례인사를 건넸다.

“누나, 쟤랑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이더니 결국 이렇게 됐네요?”

하지만 화보 촬영과 가상결혼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 번 그것도 지혁과 함께 마주쳤던 접점들이 존재했는지라, 양성준의 짓궂음 가득 담긴 말과 시선을 마냥 덤덤히 받아들이기란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네,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안녕하세요. 서린 씨. 우리 그때 이후로 처음이죠?”

그래서 그녀는 양성준의 시선을 지혁에게 떠넘기기 위해 옆에 있던 서린에게로 대화의 추를 옮겼다.

“아! 네! 선배님!”

“반가워요.”

“저, 저도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오고가다 한, 두 번씩 마주쳤던 적이 있었고 저번 여름 화보 촬영 때 함께 작업을 해봤던 적까지 있었기에 비교적 어렵지 않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두 눈은 이전과는 다른 목적으로 눈앞 이를 훑기 시작했다.

자신보다 3, 4CM는 커 보이는 키와 길쭉한 다리. 청순하면서도 섹시한, 누가 봐도 예쁘장한 얼굴. 그리고 무엇보다 괜히 섹시 스타가 아니라는 듯, 일종의 후광까지 돋보이는 듯한 몸매까지.

[지혁이 밤마다 날 얼마나 괴롭혔는지 모르지? 지혁이 뒤로 하는 거 엄청 좋아하는데, 그것 까진 안 해봤겠지? 거기다 가슴으로 해주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푸훗, 뭐, 그쪽은 그것도 못해주겠지만.]

문득 떠오르는 불쾌한 기억에 그녀의 아미가 순간 찌푸려졌다.

허리와 골반까지 이어지는 아찔한 선. 그가 좋아하는 ‘어떠한 행위’를 하기엔 다소 부족할 것 같지만, 명백히 자신보다 커 보이는 무엇.

묘하게 자신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점들이 속속들이 그녀의 두 눈에 들어왔고 이는 이내 그녀 자신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한번 시작된 ‘망상 아닌 망상’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내 또 다른 망상들이 꼬리를 잇듯 멈출 줄 모르고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나이가 많아서......]

[연륜이 많은 건가......]

그동안 애써 억누르고, 신경 안 쓰는 척 해왔던.

자신이 그보다 나이가 많을 진데, 눈앞 이는 아직 파릇파릇한 20대라는 점이 그녀 자신을 자극 시켰고,

[저는 이상형이 강지혁 선배님이에요! 데뷔하고 나서 지금까지 쭉!]

이미 공개열애 대상이 있고 그 대상자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눈앞 이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항상 자신의 이상형을 강지혁으로 뽑았다는 점 등이 사뭇 크게 그녀에게 다가왔던 것이다.

“서, 선배님?”

그런 그녀를 망상 속에서 구원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망상 속 대상이었던 서린이었다.

“아, 아! 미안해요. 잠깐 헛생각이. 목마르죠? 뭐라도 마실래요?”

“네? 아! 네! 선배님!”

자신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그런 변화가 너무나도 노골적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애써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놀랐을지언정, 지금 상황을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이 왜 이렇게 변해가는 지 그 원인을 모르지 않았고 이를 부정할 생각이 그녀에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고 어느새 받아들여가고 있었다. 지금의 변화가 앞으로 더욱더 익숙해질 것이고 또한 이런 감정들이 이내 겉으로도 하나, 둘 표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

[이게 나라냐! 쏟아지는 국정농단의 증거물에 국민들의 분노 폭발! 일개 개인이...... 특히나 이번 사태의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연예인 K씨가 그동안 겪었다던 수많은 압박의 증거물이 대량 포착된 가운데......]

[일본 65개 혐한 단체! 일본진출 한국 연예인들을 보이콧 및 협박하는 것으로 모자라, 한류 관련 콘텐츠를 제작한 방송사 PD에게 살해협박을 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자아냈다. 현재 일본 정부와 각 지자체에서 이와 관련된 혐한 시위를 방관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진출을 선언했고 또한 한창 활약하고 있던...... 중국과 더불어 한류 콘텐츠의 주된 소비국이었던 일본에서의 이번 혐한 시위로 인해 한류의 불씨를 사그라들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외교부에서는 일본을 황색 경보지역으로 선정! 체류자들에게 신변안전특별 유의를 당부했으며, 여행 예정자들에게는 여행 필요성의 신중 검토를 요구......]

[3부작 총제작비 6억 4천만 달러로 역대 최대 제작비 영화 1위에 등극할 것으로 화제를 불러 모은 피터 제이크 감독의 판타지영화에 아시안 계 배우가 출연한다는 극비 사실이 유출되었다. 전체적인 배경이 북유럽 신화를 주로 다루고 있는 만큼 아시안 계 배우가 운명의 전쟁에 출연한다는 점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소식일 수밖에 없어, 해당 영화에 기대를 쏟고 있는 대중들의 시선이 대부분 부정적인...... 세계 최고의 SF작가 스테인 루카스는 이번 이슈에 대해, “팬들이 걱정할 필요 없는 사안이다. 믿고 기다려주길 바란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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