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7 2019 =========================================================================
#427
“올해의 프로듀서 상 최종 수상자는!”
모든 이들의 시선이 내게 쏠려있음을 그리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카메라들이 저마다 수상자의 얼굴을 비추고 있었지만, 이미 결과는 나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애당초 수상자가 나란 사실을 주최 측으로부터, 어차피 내가 주최자 측이기에 조금 어감이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그 사실을 건네받았기 때문에 시크릿 심사위원이 나임을 밝히겠다고 결정한 것이고 따라서 나 또한 모르지 않았다. 내가 이 상의 주인공이라는 점을.
“프로젝트 데뷔 시즌 2 프로그램 그리고 프리티 스타의 여러 활동들에서 활약한 시크릿 심사위원입니다!”
역시나 송현 삼촌의 입은 시크릿 심사위원이라는 단어를 흘려보냈고 모두가 한층 더 내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후우...”
갈아입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옷의 꺼끌꺼끌함을 느끼며 자리에서 살며시 일어섰다.
[우와! 대박!]
[맞다! 맞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아레나 내부 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고 이는 이내 거친 환호와 함성소리로 변했다.
[갓지혁!]
[강지혁!] [강지혁!]
확신에 가까운 추측일지라도, 앞선 프리티 스타의 행동이 그 추측을 확정지었다 할지라도 본인 스스로가 이를 인정한 것과는 꽤나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모두의 입에서 환호성이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그런 사람들의 환호성과 주변에 앉아있던 삼촌들 그리고 시상식 참가 연예인들의 뜨거운 눈빛을 받으며 한걸음, 한걸음 무대 위로 올라섰다.
그런데 좀 전까지 내가 있었던 시상식대로 가는 이는 나 혼자 뿐이 아니었다.
시상식대에 올라 관중석을 바라보니, 어느새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번에는 콧물이며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뭐, 옷을 또다시 갈아입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잘 됐다면 잘 된 거겠지. 후우.
“안녕하세요.”
[와아아아!]
[강지혁! 강지혁!]
인사 한마디를 건넸을 뿐인데, 수많은 환호성이 몰려들어와 자칫 휩쓸릴 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고 있음에도 사람들의 환호성에 내 목소리가 묻히는 듯 했으니까.
“이렇게 제 1회 HMA에서 상을 받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그래도 수상 소감을 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는 탓인지, 관객들의 환호성도 이내 잠잠해졌다.
“별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제와 이런 말을 자꾸 언급해서 재성 삼촌에게는 미안하지만...”
카메라가 일순간 관계자 석에 앉아있던 재성삼촌을 비추고 관객들의 입에서 가벼운 탄성이 흘러나왔다.
“10년이 넘게 연습 생 생활을 했으면서도 끝내 아이돌이 되지 못했던 그때의 좌절감과 두려움, 절망감이 일종의 콤플렉스이자 트라우마로 제게 남아있었습니다. 항상 트레이너 선생님들은 말했습니다. 실력이 뛰어나다. 이미 데뷔한 아이돌과 비교해도 월등할 정도로 실력은 뛰어나다. 그래서 더 힘들었습니다. 실력이 모자란 것도 아니고 자꾸만 같잖지도 않은 이유로 데뷔가 미뤄지고 엎어졌으니까요.”
삼촌에게는 미안한 감이 없지 않았다. 사실 나 때문에, 내 자랑 같아서 조금 그렇지만 세계적인 가수를 몰라보고 10년 동안 주구장창 연습생만 시킨 ‘안목 없는’ 사장이라는 비판이 아직까지 삼촌의 곁에 남아있음을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수상소감을 말하는 김에 삼촌을 위해 약간의 변명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같잖지 않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아이 돌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팀 전체의 조화를 먼저 생각해야한다는 점. 개인의 음악적 성향도 중요하지만 아이 돌로서의, 팀으로서의 성향 또한 중요하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제가 불평했던 모든 것들은 아이 돌 준비생으로서는 의미 없을 뿐이라는 점 등을요.”
삼촌도 삼촌 나름대로 고뇌하고 또 고민했을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그때는 비록 엄격하고 진지하기만 하던 삼촌이었지만, 지금에 와 조카바보짓을 서슴없이 해대는 삼촌을 보자면 그때도 속내는 마냥 다르지 않았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머리로는 이를 이해하고 있을 지라도 가슴은 여전히 이해를 못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순전히 그 때문에 프로그램에 참가했습니다. 실력은 있지만 번번이 오디션에 탈락한 소녀, 실력은 없지만 꿈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소녀, 기회를 아깝게 놓친 소녀, 누군가가 옆에서 조금만 도와줬다면 대성했을 소녀... 이런 소녀들이 제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요.”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수상소감의 주된 주인공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삼촌 얘기를 꺼낸 것 자체가 그 주인공을 위해서였다. 그래서 수상소감을 이어감에 내 뒤에 있을 프리티 스타 멤버들에게 슬쩍 시선을 주었다.
“명성이나 인지도, 인기 등 대중들의 환호를 받기 위해서 참가한 것이 아니었던 만큼 끝까지 정체를 밝힐 생각이 없었지만... 보셨다시피 그게 잘 안됐네요. 하하... 참 배은망덕하죠? 하하...”
나를 어미 오리 보듯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있는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그런 나의 눈빛과 이내 이어진 멘트에 움찔하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덕에 조금은 무거워졌던 장내의 분위기가 일순간 원래대로 회복된 듯 했다.
“비록 프리티 스타라는 그룹은 해체되었지만 여러분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 새로운 길을 앞두고 있는 프리티 스타 멤버들에게 변함없는 응원과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상 소감을 말하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을 잡아먹은 듯 해 마음이 조금 조급해졌다. 메인 상도 아니고 무려 5개국에서 동시 송출되고 있는 시상식인 만큼 방송에 지장이 가게끔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여러분들은 제가 한 일을 은혜다 뭐다 하시지만, 소녀들에게 있어 가장 큰 기회이자 행복은 프리티 스타에게로 향했던 여러분들 자신의 관심과 응원이었다는 점 기억해주시고요. 후에... 아주 먼 미래에... 여러분의 소녀들이 각자의 길에서 훌륭히 자신의 꿈을 펼쳤을 때, 그때 다시금 하나 된 프리티 스타를 볼 수 있길 기도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감사합니다.”
수상 소감을 마치자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언제 준비한 것인지 모를 꽃다발을 내게 건넸다.
그리고 이를 축하한다는 듯,
마지막으로 당부했던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에 알겠다는 답변을 한 듯,
다시금 하나 된 프리티 스타를 기다리겠다는 듯,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소리와 함성소리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수상소감을 마치고 무대에 내려와 자리에 앉았을 때까지. 계속.
*
감정의 홍수가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것은 부끄러움이었다. 이게 다 프리티 스타 때문이다. 너무 울어대는 바람에 나 또한 덩달아 눈물을 살짝 내보이고 말았던 것이다.
하아.
그렇게 한동안 패닉 상태로 멍하니 시상식을 바라보았다. 꽤나 낯익은 멜로디가 울려 퍼질 때까지.
“This is JS style.”
5년도 더 전에 공개된 곡이건만 듣는 순간부터 알았다. 굳이 첫 가사를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곡은 내가 연습생 시절부터 간직해왔었던 곡이었으니까.
축제의 장을 표방하고 있는 HMA답게, 참석 가수들의 여러 콜라보 무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가수들끼리 서로의 타이틀곡을 바꿔서 소화해낸다던가, 과거 가수들의 곡을 자기들 식으로 재해석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갑작스럽게 들려온 내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에 반가웠을지언정 놀라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내 곡의 리메이크 승인을 내주지 않아 조금 껄끄러울 수는 있었으나, 그 대상이 내가 담당했던 프리티 스타와 그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현재 소속된 그룹 멤버들이어서 딱히 상관은 없었다.
“너희들 전부 잘 들어. 난 너네들과 달라. 오로지 나만의 길을 걸어 갈 거니까. 니들이 남자랑 희희낙락거릴 때, 난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지. 니들이 클럽에서 춤출 때, 난 연습실 구석에서 밤새 춤을 췄지.”
가사와 퍼포먼스 자체가 워낙 파워풀해 걸 그룹이 소화하기 어려울 법도 하건만 편곡이 대체적으로 잘 되어서인지 제법 잘 소화해내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긴 했다.
“놀랄 필요 없어. 그저 듣기만 하면 돼. 매일 Fantastic! Come on! 난 미쳤어.”
옆에 않아있던 재성 삼촌과 민재 삼촌의 어깨가 으쓱하는 것으로 보아 두 사람의 작품인 것 같았다. 뭐, 삼촌들이 편곡했으면 이 정도는 당연한 거겠지.
“다음 주 중으로 자리 한번 마련해줘. 안석준 CP님한테 연락 없이 그냥 사적으로 보고 싶은데, 그건 아무래도 조금 그러겠지? 미리 약속한 것도 있고 지금까지 계속 비밀 지켜줬는데? 아무튼 그렇게 해줘. 주말엔 나 여행가니까, 조금 그렇고.”
내 노래의 흥에 겨워 몸을 나도 모르게 들썩이는 가운데, 민재 삼촌에게 부탁을 했다. 프리티 스타 멤버들과 따로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뭐, 정체를 밝힌다면 한 번쯤은 식사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으니까.
*
“제 1회 HMA의 대상은...”
“축하합니다. 아미가!”
대상 수상자는 놀랍게도 아미가였다.
“아미가는 12년 10월 초에 데뷔한 이래...... 계약기간이 4개월도 더 남은 6년 8개월 차 현재, 이미 멤버 전원이 재계약을 결정하며 팬들을 기쁘게 했는데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미리 결과를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놀랄 만한 일 일진데, 하물며 모르고 있는 상태였으니 오죽할까.
“작년 하반기 한국, 일본 투어, 올해 상반기 아시아 투어 등을 성공적으로 마친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걸 그룹 아미가가 제 1회 HMA 대상을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가요관련 시상식에서의 대상은 남자 아이 돌 그룹의 전유물이었다.
당연했다. 애당초 여성 열혈 팬들을 얼마나 보유했냐가 음반 판매량에 직결되는 만큼 걸 그룹은 보이 그룹의 음반 판매량을 따라잡을래야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미가가 제 1회 HMA의 대상을 수상했다는 점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결과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머뭇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
[꿈 아레나와 한류월드가 만든, 만들어갈 HMA! 10만 명의 환호 속에 대상은 레전드 걸 그룹으로 자리 잡은 아미가가 차지하였다. 아미가는 작년 상반기부터 시작된 아시아 투어를 성공적으로...... 그동안 숱한 화제를 불러 모았던 시크릿 심사위원이 강지혁으로 밝혀졌다는 점 또한 HMA의 성공적인 개최에 큰 몫을...... 시청률 9.4% 그리고 한, 중, 일, 대만, 필리핀 등 5개국 동시 송출이라는 전대미문의 성공을 거둔......]
[HMA! 내년부터는 한류월드 문화 시상식으로 개명하여 1월에 개최될 듯! 음악, 연기를 포괄한 시상식으로서 외연을 확장! 또한 대상 수상 도우미로 나선 이해영 고양시장의 말에 따르면 “꿈 아레나는 상반기 HCA(한류월드 문화 시상식), 하반기 HI-FESTIVAL(한류월드 인디문화 페스티벌)를 중점으로 문화산업의 전반적인 상생을 통해 예술인들의 꿈을 위한 장을 지속적으로 응원할 예정...... 내년 상반기 완공될 아시아 최대 규모 백제 워터파크는 한류월드 테마파크의 콘텐츠를 질적, 양적으로 향상시키는 또 다른 교두보가 될 것!” 전국에서 유일하게 플러스 지역 경제 성장률을, 그것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한 보인 고양시의 앞날이......]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험한 시위! 금한령으로 한류 콘텐츠에 제약을 가한 중국과 마찬가지로 일본까지 경색된 동북아시아 정세에......]
[피터 제이크 감독의 판타지 영화 운명의 전쟁 드디어 촬영 시작! 3부작 총제작비 6억 4천만 달러로 역대 최대 제작비 영화 1위에 등극할 예정으로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불러 모으고...... 영화 운명의 전쟁은 영화 스타워즈의 각본을 맡으며 세계 최고의 SF작가로 발돋움한 스테인 루카스가 각본을 맡으며...... 한편 이르면 내년 상반기에 개봉할 운명의 전쟁 1부작의 제목은 운명의 전쟁, 어둠의 범람......]
[포이보스 뮤직이 새로운 뮤지션을? 강지혁, 크리스 김, 정승현, 권수아, 이수아 등 거의 9년 전 5명의 새로운 뮤지션을 영입하며 뮤지션 소속사로서의 위치를 다시금 단단하게 만들었던 포이보스 뮤직이 이번 해 하반기 중으로 새로운 뮤지션을 선발, 영입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어제 있었던 HMA에서 포이보스 뮤직의 대표인 유민재가 베스트 퍼포먼스 상의 수상 도우미로 나와 언급...... 관련 소식이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 랭킹 상위권에 자리 잡을 정도로 대중들의 관심이 뜨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