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6 2019 =========================================================================
#426
“흑흑...”
[울지 마! 울지 마!]
“한 해 동안 너무 많은... 흑흑... 사...랑 주셔서 팬...분들에게 너무 흑흑...”
[울지 마 여정아!] [울지 마 우희야!] [울지 마! 울지 마!] [결희 야 웃어! 울지 마!]
[프리티! 프리티!]
눈물 없이는 못 볼 정도의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많다면 많은 10명의 멤버들로 구성된 프리티 스타일진데, 어느 한 명 벗어나지 않고 죄다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잊...지 않아주셔서... 흑흑 감사합니다...”
[잊지 않을게!]
[잊지 않을게!]
잘 해 왔구나 싶었다. 해체되고 반 년 만에 다시 이 시상식을 위해 뭉쳤을 진데, 팬들이 이 정도로 그들을 그리워하고 또 응원해주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런데 다 좋았다. 수상 소감도 눈물을 흘리며 팬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도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엄청난 함성을 질러대는 팬들의 반응도 다 좋았다. 다 좋았는데...
“그리고... 시크릿 심사위원님 너무 감사...드려요. 저희한테 좋은 곡들 그리고 안무도 짜주시고... 흑흑... 팬 분들에게 좋은 모습, 예쁜 모습으로 기억에 남을 수 있어서... 시크릿 심사위원님...”
“누구신지... 알려만 주시면 정말... 감사할 텐데... 흑흑... 으아앙!”
“으아아앙!”
“흑흑! 으아앙!”
순간 달려드는 소녀들로 인해 몸이 굳어버렸다. 그 누구도 예기치 못한 전개에 나 또한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아니, 시크릿 심사위원한테 고맙다고 한 건 그래, 나도 고맙다. 덕분에 무척 뿌듯해졌어. 그런데 왜 나한테 달려드는 거야? 누구인지 알려주면 고맙다고 해놓고 다 알고 있다는 듯 나한테 달려들면, 이거 완전 이상한 거 아니야? 어, 어? 얼씨구?
“저, 저기 잠깐만. 저기 프리티 스타 분들? 저기요?”
“흑흑.”
“으앙!”
하아. 이러면 빼박인데...
*
“크흠...”
본인들 얼굴이 아이 돌에 어울리지 않다는 것을 알아챈 것인지. 아니면 내게 달려들어 울고불고 한 것을 이성적으로 생각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프리티 스타 멤버들은 마음이 진정되자마자 서둘러 수상 대를 벗어났다.
그래서 이 모든 시선을 오롯이 나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아니, 사고는 지들이 쳐놓고 뒷수습을 나한테 맡겨? 나 원 참.
[시크릿 심사위원 강지혁 맞나봐.]
[대박! 진짜였어. 진짜.]
[근데 왜 숨긴 거야? 시크릿 심사위원......]
[거의 확정이었잖아. 솔직히 누가 몰라. 마카롱부터 그동안 행적이 다 드러났잖아......]
가까이에 있는 관중들의 말소리가 상황을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후우. 일단 재킷부터 벗어야겠네.
무슨 여자 아이 돌이 콧물을 이다지도 흘리는지. 재킷이 콧물, 눈물 자국으로 범벅이 되었는지라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까지 찝찝했다.
“크흠...”
뭐 그것과는 별개로 관중들은 그런 내 모습에 웃음을 터트렸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신인상 수상 기념 무대를 펼치기 위해 중앙 무대에 올라섰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내게 쏟아지던 시선들이 다시금 이 무대의 주인공인 이들에게로 옮겨졌다. 아니 그런 줄로만 알았다.
“자꾸만 자꾸만 가식적으로 말하지 마. 사랑하지도 않는데 자꾸만 자꾸만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
마지막 정규 앨범 타이틀곡을 거의 반년 만에 무대에서 펼치는 것일 텐데도 프리티 스타 멤버들의 움직임은 정교했고 또한 자연스러웠다.
“남자들은 다 똑같아. 그저 좋아하면 다 넘어오는 줄 알아.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야. 너는 정말 특별해. 자꾸만 자꾸만 거짓말 하지 마.”
그래, 그것까지는 좋았다. 내가 만든 곡이라는 점을 떠나서 멤버들이 즐거워하고 팬들도 즐거워하면 됐다. 그런데 왜 자꾸 카메라가 나를 비추는 것인지 모르겠다.
멤버들에게 오롯이 비춰져야 할 스포트라이트를 빼앗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또한 이제는 아주 대놓고 내가 시크릿 심사위원이라는 점을 끄집어내는 것 같아 꺼려졌다. 지금 이 상황이.
“......정말로 내가 좋으면 정말로 내가 특별하면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말해줘.”
표정관리를 하고는 있지만 마냥 굳어지는 얼굴을 숨길 수가 없었다.
“봄비를 맞으며 내 마음도 복잡해져요. 계속 내려줘요. 이 비가 여우비일까, 두려워져요.”
두 번째 곡이 흘러나오고 아레나 내부 홀 조명이 전체적으로 어두워졌기에 망정이지, 그마저도 안 됐다면 분명 논란이 되었을 것이다. 끼고 있던 이어폰 너머에서 표정관리를 해달라는 요청까지 들려왔으니 오죽할까.
그런 점에서 내게 표정관리를 해달라는 말을 건넨 PD양반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기분인지 알았다면 그따위 말을 건네지는 못했을 텐데, 참 아쉬웠다. 조명이 어두워지지 않고 계속해서 틈틈이 나를 찍었다면 내가 무슨 행동을 했을지 참 재밌었을 텐데 말이다.
“아직 부족해요. 금방 그칠 여우비란 걸 알지만, 그래도 계속 내리길 바라요.”
어쨌든 뒤늦게나마 무대의 주인공들에게 관중들의 모든 관심이 쏟아져 그마나 마음이 풀어질 수 있었다. 노래의 분위기 자체도 크게 한 몫 했고.
“그치면 안 돼요. 내 눈가에 흐르는 빗물을 들키고 싶지 않아요. 빗물에 몸이 젖어 추워지겠지만, 떨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계속 내리길 바라요. 너무 걱정 말아요. 금방 그칠 여우비니까.”
녹음할 때 꽤나 애를 먹었다고 했던가?
직접 녹음을 담당하진 않았지만 안석준 CP로부터 전해 들었었다. 이 노래를 녹음할 때 모두 울고불고 난리였다고.
그래서인지 프리티 스타 멤버들의 얼굴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다시금 맺혀있었다. 이때만큼은 꿈 아레나가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콘서트 현장과도 같이 느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또다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진 것은.
“그저 금방 그칠 여우비니까. 날 향한 그대의 마음도 이럴까요. 그대가 내 곁에 다가왔을 때부터 수많은 기억들을 함께했어요.”
아니 왜 자꾸 눈물만 흘리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중앙 무대에서 내가 서있는 수상 대까지 길게 늘어선 루트를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걸어오는 것까진 뭐, 그러려니 했다. 중앙에 마련된 무대에서 내가 있는 북쪽 좌석은 상대적으로 소외될 수 있는 방향인지라 이를 배려하는 행동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쪽으로 향하는 프리티 스타 멤버들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모두들 하나같이 시선을 내게 두고 있다는 점이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아. 미치겠네. 진짜.
*
“그 순간들을 붙잡고 있을게요. 이 빗물에 씻겨 내려가지 않도록.”
비록 그녀들이 그룹 자체에 소속될 수 있었던 것도 애당초 그런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도 모두 JJ E&M 측과 프로젝트 데뷔 제작진 덕분일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에게 있어 시크릿 심사위원은 그저 단순한 의미가 아니었다.
“이 비가 그칠 때, 내 눈가에 빗물이 흐르지 않을 때,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매일 꿈꿔왔던 아이 돌 가수가 되었지만 소녀들에게 있어 이는 마냥 창창한 앞날을 의미하지 않았다. 그룹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반 토막이 날 지경이었으며 팬들은 그런 상황을 야기한 소속사보다 힘없는 소녀들 자체를 탓하며 등을 돌리기 시작했으니까.
이런 현실에서 소녀들이 본연의 꿈을 위해, 무대에서 땀 흘리고 팬들의 환호와 응원을 받게 해준 시크릿 심사위원은 프리티 스타 멤버들에게 무척이나 큰 의미일 수밖에 없었다. 시크릿 심사위원의 정체가 강지혁이라는 점을 알고 나서는 더더욱.
불편함 없는 넓고 쾌적한 숙소부터 소녀들 자신에게 딱 맞는 음악과 안무 그리고 톱니바퀴처럼 잘 맞아떨어지는 시크릿 심사위원의 행적과 강지혁의 행적 등의 이유로 강지혁이 시크릿 심사위원일 거란 확신 가까운 추측이 온, 오프라인 상을 휩쓸었고 이는 소녀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큰 의미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물며 케이블 서바이벌 오디션 출신 프리티 스타의 자사 음악방송 출연을 꺼려하던 지상파 방송사들이 어느 순간부터 별다른 제한을 가하지 않았다는 점 또한 이런 추측에 확신을 더했으니 오죽할까.
뒷배가 든든하다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일까.
흔하디흔한 방송사 PD들의 갑질조차 느끼지 못해 그룹이 해체되고 비로소 각자의 길을 나섰을 때가 되어서야 PD들의 갑질을 경험해봤을 정도로 소녀들에게 있어 프리티 스타로서의 1년은 무척이나 뜻 깊고 잊을 수 없는 시간임에 틀림없었다. 특히나 유닛 활동과 완전체 활동을 모두 경험한 멤버들에게는 더더욱.
“수많은 기억들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을까요.”
그 누구보다 소녀들 자신을 위한 사람.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게 만들어줬던, 꿈이었던 무대에서 후회되지 않게끔 해줬던 사람. 노래하나, 하나 자신들을 생각해서 만들었다는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느끼게 해줬던 사람.
그랬기에 소녀들은 자신들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노래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사전에 얘기된 바가 전혀 없는 행동을 했다. 하나, 둘 무엇인가에 홀리듯, 어린 오리 새끼들이 어미의 품을 본능적으로 찾아가듯 소녀들은 어느새 시크릿 심사위원의 주위를 빙 두르고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싶다는 시크릿 심사위원의 뜻은 무척이나 강경했다. 그래서 사소한 단서를 가지고 강지혁이 시크릿 심사위원이라는 점을 밝혀낸 익명의 팬이 아니었다면 소녀들은 영영 이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 컸다.
“흑흑.”
“으아아앙!”
자신들이 받은 것들이 너무나도 크고 많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기에 소녀들은 다소 무례일 수 있는 행동을 자행했다. 정체를 숨기고 싶다는 것이 시크릿 심사위원의 뜻이고 이런 행동이 그런 시크릿 심사위원의 의도를 무너뜨리고 그를 곤란하게 만들 것이 자명했지만 그것보다 자신들이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으니까.
그렇게 시상식 장은 또다시 울음바다가 되었다. 예기치 않은 장면이 연달아 카메라에 비춰졌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대만, 필리핀 등 총 다섯 개국에 동시 송출되고 있는 HMA였기에 이는 확실히 방송 사고였다.
하지만 단순 방송 사고라고 하기엔 이것이 가져온 결과가 사뭇 달랐다. 실시간으로 시청률을 점검하고 있던 CP의 얼굴에 기쁨을 넘어선 놀람이 가득할 정도로.
*
내가 자리 잡은 공간이 관계자 전용으로 배정된 VIP석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신인상 수상을 끝으로 1부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면 꽤나 난감했을 것이다. 방금 전 사태로 인한 관중들의 따가운 시선은 그렇다 쳐도, 재킷도 모자라 와이셔츠에까지 눈물과 콧물을 범벅 해놓은 바람에 졸지에 옷을 갈아입어야 했으니까.
“지혁아 와이셔츠 이거 입고 재킷은 이거 입어.”
“어, 어? 어. 고마워. 누나.”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가 별다른 메이크업을 받지 않는 연예인이라는 점이었다. 만약 다른 연예인들처럼 메이크업을 받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분주해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부끄럽긴 하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는지라 아직도 눈가가 촉촉했으니까.
그나저나 왜 이렇게 얼굴이 따가운지 모르겠다. 단순히 관중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연예인들의 연예인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농담 섞인 놀림이 효력이라도 얻은 것일까. 아니면 방금 전 상황이 워낙 드라마틱해서 그런 것일까.
주변 동료, 선, 후배 가수들의 눈초리 또한 강렬하게 느껴졌는지라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아니, 남 옷 갈아입는 거 처음 보나? 뭘 저렇게 쳐다봐? 부담스럽게.
“2부 생방송 5초 전입니다!”
“5!”
“4!”
“3!”
“2!”
“1!”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내 휴식 시간이 끝을 맺고 생방송이 재개되었다는 점이었다.
“다음은 올해의 프로듀서 상입니다. 수상에는 걸 그룹 레전드 여성시대의 메인보컬 김해연씨와 이제는 예능인이 익숙한 뮤지션 윤송현씨가 수고해주시겠습니다!”
하아. 다행인 것은 그것 뿐 이었다. 이내 시상하게 될 상의 이름이 올해의 프로듀서 상이라는 점이 방금 전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주변의 반응을 내게 선사했다.
“후보부터 보시죠!”
이쯤 되니 자포자기였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수도 없고 이 모든 게 오늘 상을 받겠다고 나선 내 잘못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아니, 애당초 정체를 숨긴 게 잘못이었나?
어쨌든 올해의 프로듀서 상의 후보자들 영상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렸다.
시상식에 참여한 이유들 중 가장 메인이 바로 시크릿 심사위원이 나라는 점을 밝히겠다는 것인 만큼 이런 반응 정도는 당연한 것이었으니까. 뭐, 예기치 않게 프리티 스타로 인해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 한발 앞서 완벽한 확신이 되어버린 것 같아 조금 떨떠름하긴 했지만.
“시크릿 심사위원”
얼씨구? 이제와 무슨 시크릿 심사위원타령인지. 지들끼리 이미 실컷 나로 확정지어놓고 있는 주제에. 나 원 참.
[아직 부족해요. 금방 그칠 여우비란 걸 알지만, 그래도 계속 내리길 바라요.]
[Bad Man, Bad Man. 알고 있어 너는 Bad Man.]
[정말로 내가 좋으면 정말로 내가 특별하면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말해줘.]
카메라가 아주 대놓고 나를 찍고 있는 지라 어이가 없었다. 프리티 스타의 히트 곡이자 시크릿 심사위원이 작곡, 작사한 ‘여우비’, ‘Bad Man’, ‘자꾸만 자꾸만’의 짤막한 한 소절 뮤직 비디오 영상에 아주 대놓고 말이다.
“이상 후보자들을 모두 소개해드렸는데요. 해연씨는 개인적으로 누가 올해의 프로듀서 상을 수상할 것 같으신가요?”
환호 소리부터가 달랐다. 다른 후보자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그래서 어째서 프리티 스타가 1년 만에 국민 걸 그룹의 자리를 차지했는지 알 수 있었다. 덩달아 나로서는 민망하기 그지없었지만.
나 원 참. 이럴 거면 차라리 내 이름 석 자 써놓으시지 그러셨어요? 상을 받겠다고 사전에 연락을 취하긴 했어도 이정도로 노골 적일 줄은 몰랐는지라 허탈했다. 그래서 절로 웃음이 터져 나왔고.
그래, 될 대로 되라. 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