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25화 (425/502)

00425  2019  =========================================================================

#425

수상 도우미 대기실을 가보니, 파트너가 이미 도착해 있었다.

하이힐 착용 여부와는 상관없이 족히 170CM는 넘어 보이는 키, 천이 비싸서 그런지 옷을 만들다 만듯한 드레스와 이에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볼륨감 그리고 서구적인 얼굴.

누가 봐도 미인이라 여길 여자가 눈앞에 있었기에 잠시나마 침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대기 시간이었기에 서둘러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오늘 같이 수상 도우미를 맡은 강지혁입니다. 반갑습니다.”

“어머! 어머!”

HMA의 관계자로서 참석한 이유에는 이렇게 수상 도우미를 맡게 되었다는 점도 포함이었다. 뭐, 막말로 며칠 전에 정규 5집 앨범 음원을 공개하긴 했지만, 이번 HMA는 2018년도를 대상으로 거행되는 시상식인지라 관계자 신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곳에 올 이유자체가 없었으니 말이다.

사실 HMA를 후원하고 개최한 입장이긴 하지만 HMC 시상식의 구성에 대해서 관여를 하지 않았기에 내가 수상 도우미를 맡는다는 것도 꽤나 최근에 알게 되었다. 도우미를 맡을 상이 신인상이라는 것은 오늘 알았고.

“진짜 팬이에요. 모델일이랑 배우일 하고 있는 이수나에요. 반가워요. 오빠.”

그런데 일이 이렇게 되다보니 관여를 할 걸 그랬나 싶었다. 물론 수상 도우미를 맡아서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니었다.

“오, 오빠?”

“저번에 밥 차들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했어요. 스태프들도 그렇고 출연진들도 전부 지쳐있었는데, 몸보신 제대로 했거든요. 후훗.”

그녀는 유지연과 같은 드라마에 출연했던 여배우였다. 그것도 드라마 상에서나 현실상에서나 유지연과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닌.

[여배우들끼리는 그런 게 심해. 더군다나, 드라마 상에서 맡은 역할이 부딪히는 관계이면 더욱.]

“지연 언니랑 같이 드라마하셔서 그런지 아직까지 연락하고 지내시나 봐요?”

“아, 네...”

아무튼 그러다보니 이수나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유지연이 내게 살며시 털어놓았던 말들이 떠올라 마냥 속까지 웃고 있을 수는 없었다.

[어떤 화에서는 어떤 여배우가 더 예뻤다. 몸매가 어디가 더 좋더라.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비교당하는 게 여배우들 세계야.]

“저랑도 언제 한번 드라마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정말, 정말 팬이거든요. 오빠!”

“아, 하하... 감사합니다.”

[악역인 경우 확실히 불리하긴 해. 몸매나 얼굴이 착한 역할을 압도할 정도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악역을 미워하거든. 그... 나랑 같이 출연하고 있는 이수나도 마찬가지야. 이번 드라마가 잘 될 수 있었던 이유들 중 하나가... 나랑 걔랑 계속해서 언론에서 비교하고 그랬거든. 그래서 덩달아 사이가 나빠질 수밖에 없었어. 드라마 상에서도 서로 머리채잡고 싸울 정도로 사이가 안 좋은 관계이기도 했고.]

유지연이 처음으로 내게 고민 아닌 고민을 털어놓았던 것이, ‘냉혹하고 치열한 여배우 세계에서 살아남는 게 무척 힘들다.’는 점이었기에 오늘 이 사람과의 만남이 꽤나 부담되었다.

물론 매력적인 여성과 눈 호강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남성의 본능은 무척이나 반겼다. 이런 말 하긴 조금 그렇지만, 그녀는 유지연으로서는 감히 비벼볼 수도 없을 정도로 대단한 볼륨감과 쭉 길게 뻗은 다리를 자랑했고 이는 내 자신도 모르게 절로 군침을 삼키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사람에게 끌려서라기보다는 이 여자와의 사소한 행동과 말 한마디, 한마디를 유지연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뭐, 이는 다르게 말하자면 유지연이 의외로 꽤나 질투를 많이 한다는 것을 의미할 테지만.

“호호. 노래 정말 좋더라고요. 음반 예약도 벌써 했는걸요?”

“아, 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고마우면 나중에 밥 한 끼 사주시면 안 될까요? 오빠?”

“네, 네?”

그런데 이 여자 뭔가 심상치 않았다. 나야 애당초 이 여자에게 별 감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뭔가 꺼림칙한 게 느껴졌다. 유지연이 대놓고 싫어하는 기색을 내보였다는 점을 떠나서, 뭔가 말하는 것에서 너무나도 적극적인 면이 느껴졌는지라 본능적으로 부담스러워졌다. 어느 정도 사회적인 인지도와 재력을 가진 뒤부터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수많은 여성들을 경험해봤었는지라 더더욱.

“제가 정말 팬이라서요. 안 돼요? 오빠?”

물론 정말 내 팬이라서, 그래서 그런 거였을 수도 있다. 유지연의 말로 인해 경계심이 너무 끌어올려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맛있는 수박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괜히 참외에 관심을 주다 수박을 못 먹기는 싫었기에 따로 식사나 한 끼 하자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 다만, 그 거절의 명분이 떠오르지 않아 조금 당황했을 뿐. 아니, 언제 봤다고 오빠야? 뭐, 크흠... 기분이 나쁜 건 아니지만.

“아, 그게...”

“제가 정말 좋아하는 한정식 집 있는데... 저 오빠 앨범들에 사인도 받고 싶고 그래서요.”

일부러 가슴골을 보여주려는 듯, 자신의 각선미를 부각시키려는 듯 몸을 밀착시키는 그녀의 행동에 두 눈이 질끈 감겼다. 이 여자 뭐야? 도대체? 나이도 어린 게 어디서 이런 걸?

괜히 외국 출생 모델이 아니라는 듯, 요즘 섹시 스타로서 괜히 서린과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게 아니라는 듯 그녀의 행동은 적극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그녀의 행동이, 거절의 명분을 떠올려야 하는 나의 상황이 이내 들려오는 석준 삼촌의 구원 줄 같은 목소리에 일거에 해소되었다는 점이었다.

“신인상 수상에는 가수이자 배우로서 전 세계를 배경으로 활약하고 계신 강지혁 씨와 모델 출신으로 이번에 드라마 팔숙이에서 홍성빈, 유지연씨와 함께 열연을 펼쳐주신 이수나 씨께서 수고해주시겠습니다.”

석준 삼촌의 소개말이 들리자마자,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이는 옆에 있던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손 잡으세요.”

“아! 고마워요.”

“그럼 가 볼까요?”

좀 전까지의 찝찝함은 애써 지워버린 채 분을 그녀를 에스코트하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쨌든 오늘 이 자리에서 내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이니만큼 굳이 인상을 찌푸릴만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강지혁입니다.”

“안녕하세요. 배우 이수나입니다.”

[와아아아!]

[갓지혁!] [갓지혁!]

수상을 위해서가 아닌, 또한 공연을 하기 위해서가 아닌 일로 무대에 서게 되니 보다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어떤 경우에서든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게 된 것은 매 한가지였지만.

“오늘 지혁 선배님을 실제로 처음 뵙게 되었는데요. 정말 멋있으세요.”

“아... 감사합니다. 이수나씨도 정말 아름다우시네요.”

“지혁 선배님은 최근에 어떻게 지내고 계세요?”

“아, 저는 며칠 전에 정규 5집 음원을 공개함으로써.”

[와아아아!]

[갓지혁! 갓지혁!]

“감사합니다. 음원 발표와 이제 곧 있으면 있을 앨범 발매를 그동안 중점적으로 준비해왔던 것 같습니다.”

“노래 너무 좋더라고요.”

“하하!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수나씨는 굉장히 유명한 모델인데다가 최근에는 드라마에서도 활약을 하고 계시던데 많이 바쁘셨겠어요?”

“네, 여러분들이 드라마를 많이 사랑해주셔서 마지막 촬영까지 정말 열심히 했고요! 다음 달에 여름 화보 촬영을 해야 해서 외국에서 시간을 많이 보낼 거라 그 준비하느라 조금 바빴어요. 히힛!”

그렇게 여느 수상 도우미가 그렇듯 간단히 근황을 주고받으며 정해진 대본에 충실했다. 다른 애드리브를 나눌 만큼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지라 그녀 또한 나와 마찬가지인 듯 했다.

“제가 정말 지혁 선배님 팬인데, 이 자리를 빌어서 질문 하나 드려도 될까요?”

“네?”

그런데 적극적으로 내게 호감 표시를 하던 그녀를 너무 얕본 것일까. 갑작스럽게 대본에 없는 질문을 던진 그녀로 인해 적지 않게 당황하고 말았다.

“지혁 오빠는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상형이요?”

해외 활동을 할 시, 각종 협찬 사 행사를 할 때마다 수많은 여인들의 대시를 받았었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부끄러워하기보다 당당하게 표현하는 편인 서양 여자들의 행동은 그때도 그렇고 최근에도 그다지 익숙해지지 않았다.

물론 협찬 사 행사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미모를 겸비한 배우 또는 모델이기에 내심 뜨거운 밤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있었다. 다만 그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뿐.

“저는... 음...”

그래서 내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현하는 이 여자의 의도를 사전에 차단하기로 했다. 내게는 그녀를 막을 만한 방패가 있었으니까.

“남들한테는 차가워도 저한테는 따뜻한 여자. 그리고 얼굴도 몸매도 마음씨도 예쁜 그런 여자가 이상형입니다! 아! 그리고 장어 요리와 추어탕을 잘 끓여야 합니다!”

“에이, 너무 욕심쟁이신데요?”

“원래 이상형은 욕심을 부려야지, 이상형 아닌가요? 하하.”

이걸로 점수 좀 딸 수 있겠지? 내심 신의 한수를 생각해냈다며 뿌듯해졌다.

“그럼 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 하하...”

그나저나 이 여자가 정도를 알아야지. 이 정도로 말 했으면 어느 정도 눈치를 채야하는 게 맞았다. 아니 눈치를 챘을 것이다. 내가 곤란해 하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이러는 것을 보면 역시 유지연의 말이 맞았나보다. 이수나가 여우 중의 상 여우라는 말이.

“자! 그럼 제 1회 HMA의 신인상 후보부터 만나볼까요?”

“어머! 너무하시네요. 답 피하시는 건가요? 호호.”

“지금 바로 남자 신인상 후보부터 만나보시죠.”

잡담이 길어졌다는 것을 무기삼아 대본대로 시상식을 진행해버렸다. 내게 이상형을 묻는 이수나와 당황해하는 나를 보며 관객들은 이를 콩트로 여긴 듯 웃음소리와 환호소리를 보내줬지만, 뭐, 진실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

[...... 이 자리에서 서게 해주신 팬 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울프 파이어 분들 신인상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럼 다음은 여자 신인상 후보입니다.”

요즘 새롭게 뜨고 있는 남자 아이 돌 그룹인 듯 난생 처음 보는 아이 돌이 남자 신인상을 수상하여 감회가 새로웠고 또한 덤덤했다. 겉으로는 축하한다며 기쁘게 웃어줬지만.

어느새 세월이 이렇게 흐른 것인지.

막 신인이었던 나는 서른을 앞두고 있었고 방금 전 보았던 남자 신인상 후보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여자 신인상 후보들 가운데 낯이 익은 이는 거의 없었다. 알고 있는 이들도 내가 프로젝트 데뷔 시즌 2에 참석하게 되면서 알게 된 것이 전부였고.

하긴 아미가도 트렌디도, 마이식스도 그리고 WIX도 어느새 아이 돌 계에서는 대선배급으로 군림하고 있으니 세월이 흘러도 너무 많이 흘렀지. 후우.

“신인상은 가수든 배우든 인생에서 딱 한해에만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되는데요.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이분들에게 있어 이번 신인상은 보다 큰 의미를 지닐 것 같습니다.”

후보 영상화면이 끝이 나고 더 이상 상념을 계속하고 있을 수 없었다. 식순도 식순이거니와 이내 열어본 봉투 안에 적힌 여자 신인상 수상자가 나와 무척이나 관계 깊은, 내가 아는 얼마 안 되는 신인 아이 돌 그룹이었으니까.

“축하합니다. 여자 신인상! 프리티 스타!”

[와아아아!]

[프리티!] [프리티!]

이수나의 목소리가 프리티 스타를 외치자마자 아레나 홀이 관중들의 함성소리에 파묻혀 버렸다. 이는 조금 전 남자 신인상을 시상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이었다.

잘 해 왔구나 싶었다. 해체되고 반 년 만에 다시 이 시상식을 위해 뭉쳤을 진데, 아직까지 팬들의 머릿속에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는 점은 이를 충분히 증명해주었다.

그런데 다 좋았다. 수상 소감도 눈물을 흘리며 팬들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것도 그리고 이에 화답하듯 엄청난 함성을 질러대는 팬들의 반응도 다 좋았다. 다 좋았는데,

“흑흑! 으아앙!”

대체 왜 나한테 달려드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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