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3 2019 =========================================================================
#423
[...... 언어와 장르를 뛰어넘는 강지혁의 천재성에 전 세계의 음악 평론가들의 호평이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북미 일부 흑인 계층에서는 강지혁의 이번 앨범 랩, 힙합 곡에 대한 강한 반발이......]
[과연 강지혁의 선 결제 예약 주문 성과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 선 결제 예약 주문량의 절반 가까이 그리고 전체 앨범 판매량의 3분의 1 가량을 차지하는 일본 지역이 현재 전국적인 혐한 시위로 인해서...... 다만 유럽지역, 북미, 남미 지역 앨범 판매량을 합쳐도 일본 지역 판매량보다 못하다는 점에서 이번 강지혁의 정규 5집 앨범이 전 세계 평론가들의 연이은 호평과 대중들의 뜨거운 호응에도 불구하고 정규 4집 앨범 1840만 9435장의 기록을 깨기 힘들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더욱이 정규 4집의 선 결제 예약 주문 기간이 한 달인 반면에 이번 정규 5집은 겨우 일주일이라는 점이 선 결제 예약 주문에 강한 면모를 보이던 강지혁에게는 부정적인 ......]
[이해영 고양시장의 섹스 스캔들! 조작된 것으로 판명 나! 혼외 섹스 스캔들로 골치를 썩던 이해영 고양시장이 유출된 비디오 속 인물이 고묘하게 합성되었다는 것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화제의 HMA! 예매 개시 3분 만에 전 좌석 매진! 상반기를 대표할 시상식으로의 첫걸음이 성공적이라는 점에서 주최 측의 의도가...... 10만석의 좌석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4만 7천여석이 외국인들이라는 점에서 HMA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시상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짐...... 경기가 악화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전국에서 유일하게 지역 내 총생산의 플러스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고양시가 이번에도 관광 특수를 얻게 될 것이 자명해진......]
[충격의 연속!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닌 꼭두각시, 허수아비였다! 권력의 실세가 일반인이라는 점 심지어 기밀문서까지 해당 인물에게 유출되었다는 점은...... 영상 파일과 녹음 파일이 너무나도 적나라할 뿐만 아니라 인터넷상에 대대적으로 유포되어 상황을 수습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운......]
*
“대박. 진짜 넓다.”
“그러게. 10만 명이나 들어갈 수 있어서 그런지 넓긴 넓네.”
리허설 준비로 이른 새벽부터 꿈 아레나를 찾은 가수들의 얼굴에는 저마다 놀라움과 감탄이 서려있었다.
“우리도 언젠간 여기서 공연할 수 있겠지?”
당연했다. 10만 명이나 되는 좌석 규모를 지닌 꿈 아레나는 가수들에게 있어 말 그대로 꿈의 장소일 테니까.
“더 열심히 하자. 최정상급 아이 돌 돼서 여기에 딱 공연하면! 그때 딱 지금이 떠오를 수 있게.”
“오케이! 음... 그런데 이거 그거지? 강지혁 선배님 노래.”
“응. 8번 수록곡이잖아. 크크. 대박이다. 고양, 고양!”
“중독성 진짜 대박이다. 그나저나 오늘 강지혁 선배님 오신다며?”
“그래? 아! 시크릿 심사위원? 그거?”
“아니, 그건 잘 모르겠는데 HMA 위원회 위원들 중에 강지혁 선배님도 있잖아. 아무튼 진짜 쩐다 쩔어......”
어쨌든 신인이든 베테랑이든 리허설에 임하는 저마다의 마음은 기대감으로 젖어 있었다.
예매 개시 3분도 되지 않아 전좌석이 매진된 HMA.
최고의 아이돌이 아닌 이상, 지금의 그들에게 있어 이곳에서의 콘서트는 그저 꿈이었다. 강력한 인지도를 바탕으로 큰 티켓파워를 지닌 톱 아이돌이 아닌 이상, 베테랑 뮤지션들도 10만 명에 달하는 좌석을 가득 채우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 그들에게 허락된 몇 분의 시간은 아이 돌, 비 아이 돌, 신인, 베테랑 이 모든 분류를 떠나서 그 꿈을 간접경험 시켜줄 소중한 기회가 되기에 충분했다.
“강지혁 선배님한테 오늘 인사드릴 수 있을까? 위원회 자격으로 오셔서 가수 대기실에는 안 계시려나?”
“글쎄... 음... 아마도? 그리고 연예인들의 연예인인데, 혹여나 대기실 와도 만나기 어려울 걸...?”
“자! 다음 팀 리허설 가실게요! 일단 동선 파악부터 하시고 특수효과는 다음 리허설 때......”
“아쉽다. 가면 사진 찍어... 아! 예! 지금 가겠습니다!”
“예!”
그렇게 HMA는 10만 명의 관객들을 열광시키게 만들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
모두의 침묵 속에서 식사 자리가 어영부영 마무리되었고 덕분에 나는 찝찝한 기분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이내 장현성 감독님의 전화가 따로 걸려올 때까지.
[지혁씨! 정말 고마워! 아니 고마워요! 어떻게 이런! 나 눈물 날까봐서 계속 눈 감고 있었잖아. 아니 어떻게 이런 곡을!]
아니, 노래가 괜찮았다면 진즉에 말해주지. 괜스레 원망스러웠다. 내가 얼마나 뻘쭘했었는데, 나 원 참.
[진짜 노래 좋았어. 지혁아. 역시 넌 천재인가 보다야. 하하!]
[정말 노래 너무 좋았어요. 영화 내용을 잘 모르지만, 영화 나오면 꼭 봐봐야겠어요. 지혁씨 명탐정 K동안 고생 많았고 다음에 또 만나요.]
[지혁아 진짜 최고다. 최고!]
[지혁 선배님. 노래 정말 좋았어요. 아까는 너무... 노래에 몰입해있어서... 그런데 진짜 시크릿 심사위원 아니세요? 정말?]
그래도 장현성 감독님의 전화에 이어 다른 사람들의 전화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반응들을 담고 있었는지라 크게 안도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여정이 쟤는 고집이 센 건지, 뚝심이 강한 건지. 어휴.
아직 개인 휴대폰도 없으면서 회사 전화를 이용해 전화를 건 것까진 괜찮았다. 아니 고마웠다. 내 음악이 좋았다고 말해주기 위해서 회사 전화까지 이용했다는 것은 충분히 고마워할 만한 사안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전화의 핵심이 왠지 음악 때문이 아닌 것 같아 조금 문제였다.
후우, 상황이 이렇게 되어버려 내가 시크릿 심사위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가 약간 두려워졌다. 이놈의 장난 끼가 문제지. 문제야. 즉흥적으로 사고치는 것도 문제고.
나는 반말과 존대를 섞어서, 여정은 내게 존댓말을 쓰고 있어 주변인들에게 조금 거리감 있어 보이겠지만 사실 명탐정 K를 통해 꽤나 친밀해진 사이가 되었고 무엇보다 여정은 프리티 스타 멤버들 가운데 나와 꽤나 인연이 깊은 존재였으니까. 하아. 부디 평범하게 넘어가기를.
“지혁아 여기 옷 입어봐. 협찬 사에서 저번 주부터 의상들 계속해서 보내왔거든? 여기 일단 와이셔츠부터...”
괄괄한 목소리와 함께 의상 스타일리스트 누나들이 의상을 한 아름씩 가져오는 것을 보며 이내 상념을 멈췄다. 오늘 시상식에서 내가 소화해야할 무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시상식은 연예인들에게 있어 무척이나 중요한 행사였으니까.
*
“너! 한국에 있을 때는 본가에서,”
“삼촌 잘 지내셨어요.”
“그래, 지혁아. 오랜만이다. 그치?”
“지, 지혁이 너! 삼촌이 말하고 있는데 지금!”
HMA는 한류월드와 꿈 아레나가 후원, 주최하는 행사이다. 그래서인지 본의 아니게 HMA 위원회의 위원직을 맡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무슨 특별한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약간의 명예를 얻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행사 관련 사안을 조율할 수 있는 권한 등이 해당 위원회가 지닌 권한의 전부였으니까.
“이게 이제 다 컸다고 삼촌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고! 응? 네 작은 엄마가 날 얼마나!”
“알았어. 알았어.”
한국에 있을 때는 되도록 본가에서 지내라는 삼촌의 말을 거의 듣지 않았는지라, 오랜만에 본 삼촌의 잔소리 실탄을 상당히 보유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나도 남자라고 남은 시간만큼은 유지연과 함께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러려면 본가나 한남동 저택보다 잠실 타워가 훨씬 편했다.
“오늘부터 미국가기 전까지는 무조건 집에서 자. 알겠어? 너 주려고 네 작은 엄마가 전복에 홍삼에다가......”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미안하긴 했다. 솔직히 주변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이 언제든 원하면 볼 수 있다는 점을 변명삼아 최근 들어 가족들을 소홀히 대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나 주말에 여행 가려고. 삼촌.”
더욱이 미국으로 떠나기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에 친구들과 여행 간다는 말을, 그것도 뜬금없이 통보하듯 건넸으니 오죽할까.
“본가에 와서... 뭐, 뭐? 여행? 여어행?”
“미국 가기 전에 제주도 별장에서 친구들이랑 하루, 이틀 정도 있다가 가려고.”
그런데 그게 도화선이 되었는지 삼촌이 이제는 아예 주변 눈치를 보지 않기 시작했다.
“기껏 키워놨더니, 이제는 아주... 아이고 내 신세야. 누나! 우리 지혁이가 이제 나를! 똥 기저귀 갈아가면서 내 손으로 키웠는데! 흑흑...”
하아. 도대체 왜 저러는 건지. 지금 이 자리에 동혁 삼촌과 민재 삼촌만 있어서 다행이지, JJ E&M과 호텔 백제 측 HMA 위원들이 있었다면 부끄러워서 참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리고 거기서 갑자기 엄마가 왜 나와? 거기다 기저귀는 무슨! 초등학교 들어가기 직전부터 삼촌이 키웠지, 그 전까지는 여자 만나느라 집에도 잘 안 왔으면서! 그리고 우는 척하는 건 또 뭔데? 나 원 참.
“그럼 다음 주 주말에 한번 보는 걸로. 어때?”
“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동혁 삼촌이 나를 구원해줬다는 점이었다. 안 그랬으면 삼촌의 저런 행동에 꽤나 곤란해질 뻔 했다. 어휴, 저 조카바보.
“그래도 지혁이 너 미국 가기 전에 한번 봐야지. 안 그래?”
“아! 그럼 그렇게 해요. 아니, 차라리 가족 분들이랑 다 같이 오세요. 맛있는 것도 많이 준비해둘게요.”
“아, 그럼 그렇게 할까?”
“응? 가족들이랑 다? 우리끼리 말고? 그냥 우리끼리......”
뭔가 민재 삼촌에게서 듣지 말아야 될 걸 들은 것 같지만 애써 무시한 채 방을 나섰다. 아직까지 삼촌은 기저귀 타령을 하고 있었고 다른 삼촌들 또한 소속 가수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듯 했으니까. 뭐, 나도 갈 데가 따로 있었고.
“야, 대박. 대박. 강지혁이야. 강지혁.”
“얼른 가서 인사하자. 얼른.”
“가서 사진 찍어달라고 할까? 그 선배들 말 들어보면......”
“음... 일단 가까이 가서 인사부터 하자. 얼른! 사람들 곧 몰려오겠다!”
오늘 시상식에 참가하는 가수들 가운데 꽤나 반가운 얼굴들이 많았는지라, 나 또한 가수 대기실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마스크라도 쓰고 올 걸 그랬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신인가수......”
“안녕하세요. 신인가수......”
“안녕하세요. 선배님!”
리허설, 의상점검, 메이크업 점검 등 해야 할 일이 엄청날 텐데도 용케 내 얼굴을 알아본 이들 덕에, 졸지에 내가 그들의 시간을 빼앗은 것이 되어버렸다.
“선배님 존경합니다! 저기... 사인 좀 해주실 수......”
“야, 여기 왜 이렇게 막혀있어?”
“저기 강지혁 있잖아. 강지혁!”
“뭐? 진짜? 어디어디?”
“선배님 정말 팬입니다! 앨범도 샀습니다. 저기 악수한번만... 가능할까요?”
존댓말을 할 거면 존댓말을 쭉 하든가. 반말과 존댓말이 사방에서 귀로 섞여들어 왔는지라 머리가 아팠다. 뭐, 나도 선배들 앞에서는 존댓말을 하고 사적인 자리에서는 그냥 반말을 써왔는지라 딱히 할 말은 없었지만.
“미안한데, 내가 지금 갈 곳이 있어서요. 미안해요.”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선배라는 위치에 내가 자리 잡고 있어서인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에게 어느 정도 말이 먹혔다는 점이었다.
“다들 미안해요. 전 그럼 이만... 저기 잠깐 길 좀 비켜줄래요?”
잠깐 길을 비켜달라는 말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통로에 길이 생겨 말문이 턱하니 막혔다. 어휴, 얼른 지나가야겠다. 이게 무슨 꼴이니. 동물원 원숭이도 아니고.
서둘러 그들 사이를 지나갔다.
“대박 키도 엄청 커. 거기다 비율 봐. 와... 괜히 화보집으로만 수백억......”
“나 강지혁 실물로 처음 봐. 와... 저러니까 영화 배우......”
“...... 미스터 지 극장가서 세 번이나 봤다니까? 진짜 슉슉슉! 이렇게 액션...... 진짜 지린다. 지려.”
저마다 소곤 소곤대며 나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후배 가수들의 눈빛이 내 얼굴을 굉장히 뜨겁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내 목적지가 그곳에서 꽤나 가까웠다는 점이었다.
[똑똑똑]
노크를 하고 대답이 들리기도 전에 서둘러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데 그게 또 다른 문제꺼리를 만들고 말았다.
“어휴. 마스크라도 쓰고 다녀야겠다. 다들 오랜만... 어?”
마주할 수 있었다. 웬일인지 썰렁한 분위기를 그리고 봐선 안 될 광경을.
일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나도 그리고 저편에서 서로 얼싸안고 있는 남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