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22화 (422/502)

00422  2019  =========================================================================

#422

어찌나 적극적으로 달려들던지. 날이 밝을 때까지 격렬한 운동을 하는 바람에, 잠을 별로 자지 못한 채 씻고 바로 촬영장으로 향해야만 했다. 아니 도대체 뭐 때문에 갑자기 그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후우. 지친 기색이 역력한데도 나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던 그 모습이 좀처럼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알면 다시 써먹고 싶은데 답답하다. 정말.

“최종 우승자는 범인으로서 3차례, 탐정으로서 5차례나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신 장현성 씨입니다!”

상념이 꽤나 깊어졌나보다. 우승자가 발표되었는데, 나 혼자 멀뚱히 서있었으니 말이다.

“아, 뭐야. 장현성 감독님 범인을 너무 잘하셨어! 맞추기는 똑같이 맞췄는데!”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이거 너무 아쉬운데요? 하하!”

“축하드려요.”

나 또한 서둘러 다른 사람들 틈에 끼었다. 그리고 이내 박수를 치며 우승자인 장현성 감독님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 3250만원의 상금은 장현성씨의 몫입니다! 나머지 분들 가운데 3등 안에......”

나는 그동안 누적한 상금이 천만 원을 넘기지 못했을 뿐더러 탐정 순위 3등 안에도 들지 못해 결국 쌓아놓은 상금을 획득하지 못했다.

초반만 해도 어느 정도 분위기가 좋았었는데, 유지연 문제도 있고 불청객 문제도 있어서 좀처럼 프로그램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쉬웠다.

물론 돈 때문이 아니었다. 돈이야 숨만 쉬어도 쌓일 정도인지라 딱히 처음부터 상금에 관심을 주지 않았었으니까. 다만, 충분히 내가 잘해낼 수 있는 분야였고 프로그램 자체에서도 꽤나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는데도 본연의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해 아쉬웠다. 무척이나.

“자! 오늘은 상금도 탔는데, 내가 쏴야지! 이 돈으로 영화 찍는데 보탤거라 비싼 건 못 사줘도 오늘 돼지 한 마리 잡읍시다! 제작진들이랑 다같이!”

“와!”

“호우!”

그래도 제법 활약을 펼친 화들도 있거니와 마지막을 맞이해 다 같이 회식을 하기로 한 만큼 마냥 얼굴을 어둡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지글지글]

지글지글 익어가는 돼지고기.

그 돼지고기와 가벼운 소주 몇 잔이 오고가자 분위기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그런 상황에서 출연자들이 앞으로의 근황에 대해서 주고받는 것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지혁아 내일 시상식 참가한다면서?”

“네? 아. 네.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나 또한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제법 많은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첫 화 촬영 때까지만 하더라도 나를 굉장히 부담스럽게 생각하던 다른 출연자들과의 관계는 이미 꽤나 친숙해진 관계로 변모한지 오래였는지라 대화는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선배님 축하드려요.”

“에?”

“올해의 프로듀서 상 유력하시던데요?”

[콜록콜록]

그나저나, 아직도 의심을 거두지 않은 것인지 여정의 눈빛과 말이 굉장히 날카로웠다. 마치 내일 있을 한류월드 뮤직 어워드 얘기가 흘러나오길 기다렸다는 듯, 아예 대놓고 올해의 프로듀서 상과 나를 연관 짓는 것을 보면 말이다.

“상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 HMA 후원이랑 개최를 꿈 아레나에서 전적으로 맡고 있어서, 수상자가 아니라 관계자로 참석하는 거야”

“그, 그런!”

“아직도 오해하고 있네. 나 진짜 시크릿 심사위원아니라니까?”

저렇게까지 집요하게 캐물을 정도로 궁금한 것일까.

그냥 말해줄까 싶다가도, 저런 행동들을 보자니 쉽게 가르쳐주기 싫었다. 내가 내일 시크릿 심사위원으로서 수상 대에 오를지 안 오를지 와는 상관없이.

“지혁씨 이런 말 지금 꺼내서 조금 그렇긴 한데...”

“네? 아, 네 무슨 일이신데요?”

때마침 옆에 있던 장현성 감독님이 내게 말을 걸어 꽤나 자연스럽게 이 상황을 넘어갈 수 있었다. 여정 또한 옆에 있던 다른 출연자들이 말을 거는 바람에 내게 더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지 못했다.

“대본 한번 살펴봤어요?”

“아...”

순간 장현성 감독님의 말을 듣자마자, 머릿속이 번뜩 뜨였다.

이 멍청아, 하마터면 까먹고 그냥 갈 뻔했네. 어휴.

나 또한 장현성 감독님과 관련된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분위기에 취해 이를 깜빡 잊고 있었다. 방금 전 장현성 감독님이 대본이라는 단어를 꺼내기 전까지.

아차 싶은 마음에 내 자신을 잠시 자책했다. 그런데 그게 장현성 감독님 입장에서는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갔나 보다.

“하하. 지혁씨 주변이... 굉장히... 음... 바쁜 거 알아요. 신경 쓸데도 많다는 거. 그러니까 괜히 신경 쓰지 말아요. 하하...”

서둘러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감독님에게 전했다.

“감독님. 대본을 읽어봤어요. 반복해서 읽어본 건 아니지만...”

“정말요?”

그러자 거짓말처럼 감독님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것도 순식간에.

“어때요? 괜찮은 것 같아요?”

“감독님 잠시 만요.”

이럴게 아니라 감독님과 관련된 오늘 할 일을 지금 같이 마무리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자리에서 서둘러 일어났다.

“지혁아? 어디가?”

“지혁씨?”

갑작스럽게 일어난 나를 보며 출연진들 모두가 의아해하며 쳐다봤지만, 이미 내 발걸음은 방을 벗어난 뒤였다.

“석현 형!”

매니저들은 제작진들과 각각 다른 방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기에, 형이 어디서 밥을 먹고 있는지 단번에 찾을 수가 없었다.

“석현 형! 저기 죄송한데, 제 매니저 형 몇 번 방에 있는 지 아시나요?”

그래서 다짜고짜 주변에 있던 스태프들에게 물어, 물어 겨우 형이 있는 방을 찾을 수 있었다.

“형!”

“우리 지혁이 앨범이 지금... 어? 지혁아?”

“형, 나 잠깐 차키 좀.”

“응? 차키?”

휴대폰을 차에 두고 내렸다. 다른 사람들이랑 있을 때는 되도록 휴대폰을 보지 않으려 했고 괜히 술 먹다가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꽤나 골치가 아플 것 같았으니까.

어쨌든 흠... 휴대폰에 파일이 있을 테니까. 그걸 감독님한테 일단 한번 들려드리면...

*

차에서 휴대폰을 가져온 뒤, 곧장 출연진들이 있는 방으로 달려갔다.

“대본 읽었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가슴 깊숙이 뭔가 박히는 듯 했어요.”

“정말요?”

“그런데... 죄송한데 제가 지금 다른 작품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요.”

“아...”

내가 아무래도 출연을 고사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건네자, 장현성 감독님의 얼굴에 아쉬움이 짙게 묻어나왔다.

“괜찮아요. 어쩔 수 없지. 솔직히 대본 준 것도 내 욕심인 데요 뭘. 하하!”

하지만 이내 감독님의 입에서는 아쉬움을 털어내 버리려는 듯한 괜찮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솔직히 이 작품 웬만해서는 꼭 하고 싶었다.

한번. 딱 한번 읽어본 대본이지만 그만큼 괜찮았다. 스토리도 그리고 내가 맡을 주인공 배역의 매력도 전부.

하지만 내 주변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감독님께서 내 해외스케줄에 맞춰 촬영 스케줄을 조율해줄 수 있다고는 하셨지만, 그렇게 된다면 내 마음까지 불편해질 것만 같았다.

나는 베테랑 배우가 아니다. 이제 겨우 영화 1편을 찍어본 초짜 영화배우일 뿐이다. 물론 그 드라마가 엄청난 흥행수익을 거뒀지만, 1편은 1편인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 영화의 촬영 환경과 할리우드 영화의 촬영 환경은 무척이나 다를 것이 자명했고 내 자신이 동시에 몇 편의 영화를 감당해낼 만큼의 내공을 지니지 못 한터라, 쉽사리 대본만 믿고 영화에 참가하기에는 확실히 무리인 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모든 생각들은 이성에 의한 판단일 뿐이었다. 이성적으로는 당연히 거절하는 게 맞았다. 미련을 버리는 게 맞았다. 하지만 영화 대본이 너무나도 매력적이었는지라 쉽사리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물론 이 얘기가 내가 이 영화의 주인공 역을 받아들인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어떻게든 이 영화에 참가하고 싶었다. 그게 꼭 배역을 맡는 형식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

“응?”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는 내 행동이 갑작스러워서일까. 아직까지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던 장현성 감독님의 얼굴에 의아함이 자리 잡았다.

“대본이 너무 좋아서. 그래서 제가 그 작품을 할 수 없다는 게 굉장히 아쉽더라고요.”

꼭 배역을 맡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영화 대본을 보자마자 불연 듯 떠오르는 악상이 그 생각을 합리화시킨 경향이 없진 않았다.

어쨌든 그때 당시의 풍부하다 못해 과할 정도로 흘러넘쳤던 감성이 영화 대본을 만나 노래 한곡을 즉석에서 만들어냈었다.

“대본 보다가 순간 악상이 떠올라서요. 사실 이번 앨범에 실어볼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한참 유지연 때문에 감정이 오락가락하던 때라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삼촌들과 주변인들을 꽤나 걱정시킬 뻔 했는지라 그때 생각이 떠오른 지금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에? 그럼 이거?”

“들어보시고 혹시 OST에 어울린다면...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갑작스러운 나의 음악 선물에 장현성 감독님의 얼굴엔 아쉬움과 의아함이라는 기존의 감정들이 아닌 놀람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는 이 방에 함께 있던 다른 출연진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우와!”

“장감독님 지금 지혁씨한테 곡 받은 거에요? 대박!”

“지혁이 곡은 받고 싶어도 못 받는 건데! 장감독님 계 타셨네. 계 타셨어.”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나와 장현성 감독님의 얘기에 신경을 쓰고 있었는 듯 했다. 별다른 부연설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장현성 감독님이 내 핸드폰을 잠시 받아들자마자, 주변에서 부러움 담긴 축하인사가 터져 나왔으니 말이다.

“일단 한번 들어보세요. 그... 꼭 써달라는 말씀은 아니니까요. 그냥 들어만 보세요. 제가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만들어서... 잘 만들어졌는지 확신을 못하겠네요.”

그나저나, 곤란하게 생겼다. 계 탔다느니, 대박이라느니 와 같은 말까지 튀어나왔는데, 정작 노래가 장현성 감독님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을 테니까.

흐음... 이렇게 다들 있는데서 들려드릴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 크흠.

“우리는 아마 인연이라는 복잡한 실타래에 갇혀 있는 사람인가 봐. 너는 내게 수많은 것들을 베풀어주었어.”

이내 핸드폰에서 선율과 가사가 흘러나왔다. 솔직히 유지연 때문에 미쳐있을 때라, 이 노래 또한 유지연에 대한 감성이 어느 정도는 녹아들어있었다.

아니 솔직히 절반은 유지연 몫이다. 그 정도로 그때는 정신이 오락가락했었고 이로 인한 감성의 폭풍이 대본 하나에서 느껴진 악상을 증폭시키는 데 톡톡히 제몫을 다했으니까.

“친구처럼 그리고 남남처럼. 그저 지금처럼 지내야만 하는 것일까. 수많은 이별과 만남 속에서도 너는 항상 제자리에 있어.”

제대로 된 음향설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소리가 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실내 방이라는 점 그리고 같은 방에 있는 출연진들 모두가 소리 죽여 휴대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 덕에 노래를 듣는 데 큰 부담은 없었다.

“내가 살아가는 이유가 너라는 것을 잘 알아. 지금처럼 한숨만 내쉬지 않기 위해서 이제는 네게로 더 다가가야겠지만. 나의 불안함과 두려움 그리고 이를 이미 알고 있는 듯한 너의 눈빛. 그 결과는 가시밭길을 걷는 사랑. 나로 인해 힘들어 할 테니까, 나는 네게 고통과 사랑 둘 모두를 함께 가져다 줄 사람이니까. 그래서 네게서 떠나 줄 거야.”

노래는 생각보다 일찍 끝을 맺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노래가 끝났음에도 주변 자체가 너무나도 조용했다.

노래가 이상했던 것일까. 노래가 틀어지기 직전까지만 하더라도 대박이니, 계 탔다느니 와 같은 말을 내뱉던 주변 출연진들의 입은 열릴 줄 모른 채 닫혀 있었고 노래의 좋고 나쁨을 판단해야 할 장현성 감독님 또한 아예 눈까지 감은 채 입을 닫고 있었다.

“크흠...”

“어, 어, 그래. 잘 들었어요. 지혁씨.”

내가 헛기침을 하자, 장현성 감독님이 이내 눈을 떴지만 분위기는 여전히 살아나지 않았다.

“제목은 공감이라고 정했는데... 괜찮으세요? 그... 영화 제목이 DITTO라고 그러셔서... 그게 프랑스 어로 동감? 공감? 그 뜻이더라고요. 아닌가요?”

“그, 그렇지.”

에? 뭐야, 이거. 노래가 그렇게 이상했나? 이 정도면 그래도 엄청 대단한 건 아니어도 들어줄 만은 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쩝.

괜히 여기서 들려줬네. 창피하게. 후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