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20 2019 =========================================================================
#420
[그래, 난 헬 조선 출신 고아. Now I'm standing at glory place, next to celebrity. But, 난 절대로 잊지 않아. 난 헬 조선 출신 고아. 지옥 같은 헬 조선에서 모든 것을 이뤄냈기에 세상 어디에서든 해낼 수 있어.]
성료(盛了)라는 단어가 가장 적합했다. 어제 있었던 청음회를 설명하기엔.
[대마를 하면 래퍼답다 여기지. 문신을 하면 래퍼답다 여기지. 발음을 꼬면 래퍼답다 여기지. 겉모습에 홀려 고고한 래퍼의 영혼을 더럽히는 우물 안 개구리들. 무엇보다 먼저 고쳐야 될 건 네 실력. Now I live on every chart of the world.]
아직도 어제의 흥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그래, 난 헬 조선 출신 고아. 현실만을 비관하다 점점 형편없어지는 그들과는 달라. 꿈이 담겨있던 여자들의 멋있는 눈동자가 사라지고 꿈을 향한 남자들의 열정적인 땀방울은 흩어져버렸지. 그저 필사적으로 불만만 내뱉는 저능아들만 남아있을 뿐이야. 하지만 난 그런 좆같은 헬 조선에서도 꿈을 꿨지. 이유 모를 좌절과 맞서 싸웠지. 난 헬 조선 출신 고아. 지옥 같은 헬 조선에서 모든 것을 이뤄냈기에 세상 어디에서든 해낼 수 있어.]
8번 트랙 Goyang of Dream의 랩 부분을 소화하기 시작하자 온몸으로 느껴졌던 관객들의 놀람과
[Goyang. 네가 못할 건 단 하나도 없어. 모두의 꿈이 하나로 이뤄지는 곳. 이곳이 너의 New York, 이곳이 네 꿈의 시작, 종착지. Fantastic Goyang will make you feel dream. Let's hear it for the dreamer. Let's hear it for the Goyang. Goyang. Goyang. Goyang.]
곧이어 깜짝 게스트로 등장한 테일러의 후크 부분을 들은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까지.
[랩은 모두의 것. 권위의식에 취해 자기가 최고라 여기며 주변을 비웃는 우물 안 개구리들. 무엇보다 먼저 고쳐야 될 건 네 실력. Now I live on every chart of the world.]
[Goyang. Put your hands up for the Goyang. 헬 조선은 잊어.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but 이제는 완전히 깨어나야 할 때, 온 세상 모든 꿈을 일깨우지. No place in the world that can compare. Goyang. Goyang. Goyang.]
단순히 그 한곡을 불렀을 뿐인데 느낄 수 있는 충족감이 그 어떤 때와 비교할 수 없었다. 마약이 있다면 바로 이런 쾌락을 일컫는 듯 했다. 그 정도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물론 이런 쾌락과 흥분이 다른 곡들에서 느낄 수 없었던 것은 아니다. 모두가 내 감정이 물씬 담겨져 있는, 내 이야기가 녹아들어있는 곡들이었기에 환호와 함성이 가져다주는 감정들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랩 장르의 특성에 맞게, 8번 트랙과 10번 트랙에 담겨 있는 감정과 이야기가 보다 노골적이고 군더더기 없어서 그리고 가장 최근의 주변 상황과 딱 들어맞아서, 기억에 보다 남게 되었지만 말이다.
[랩은 아무나 할 수 없다고 보는 병신들. 너희들에게는 안 됐지만 너흰 우물 안 개구리. 빌보드, 오리콘, UK차트 정상에 올라섰지. 너희들이 감지덕지 할 방송 출연들 퇴짜 놓기 미안해. 그렇지만 그건 너희 개구리들 몫. 난 불우이웃을 도울 줄 알지. 내가 아이 돌 연습 생이었다는 건 너희에겐 유일한 낙. 깔 게 그것밖에 없는 너희들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인터넷 포털 사이트, 일간지 등에서 나와 관련된 기사들이 도배되었다는 점이 지금처럼 뿌듯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해외 반응 또한 엄청나다는 민재 삼촌의 말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너희들의 같잖은 돈 자랑에 정신 팔려있을 때, 난 내 음악을 위해 맞서 싸웠지. 그게 푸른 지붕에 살고 있는 이라도, 봉황을 타고 다니는 이여도. 순수한 능력으로 승부해. 아무개 피쳐링으로 유명해져. 누구랑 아는 사이라서 이름을 알려. 개구리들 인맥 자랑은 관심 없어. 너희들이 가진 것들 다 합쳐도 내 집 한 채 값. 난 오로지 실력. 그래서 너희들은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
그동안의 나답지 않은 가사.
그래서인지 8번 트랙 Goyang of Dream과 10번 트랙 Rough Candy에 관해서 벌써부터 내가 의도한 바를 정확히 집어내는 이들이 생겨났다.
[Cause I`m a Lough Candy, Lough Candy. 누구든지 날 우습게 보다 간 난리날걸. 푸른 집에 살든, 우물 안에 살든 난 상관 안 해. Cause I`m a Lough Candy, Lough Candy.]
아니, 솔직히 모르는 게 이상했다.
힙찔이들을 디스하는 내용은 그저 겉 부분에 불과했다.
8번 트랙의 ‘이유 모를 좌절과 맞서 싸웠지’의 가사 말이 비교적 간접적이었다면,
10번 트랙의
‘너희들의 같잖은 돈 자랑에 정신 팔려있을 때, 난 내 음악을 위해 맞서 싸웠지. 그게 푸른 지붕에 살고 있는 이라도, 봉황을 타고 다니는 이여도.’
‘누구든지 날 우습게 보다 간 난리날걸. 푸른 집에 살든, 우물 안에 살든 난 상관 안 해’ 등과 같은 가사는 웬만한 한국인이라면 모를 수가 없을 정도로 직접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으니까.
-헐... 진짜 대통령이었어. 헐...
-왜 대통령임??? 뭔 말?
-푸른 집 = 청와대, 봉황 = 대통령 상징...
-이거 너무 짜 맞추기 아님?
-미친 뭘 짜 맞춰. 이건 모르는 게 이상한 거지. 누가 봐도 박아진이잖아. 씨발 내가 이럴 줄 알았다. 박아진 꿈 아레나랑 꿈 기숙사 얼쩡거리는 거 한 두 번임? 얼마 전 국회연설만 봐도 딱 답이 나오네. 그거 진짜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박아진이 지돈 들여서 꿈 아레나랑 꿈 기숙사 지은 줄 알걸?
후련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일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기 위해 모였고 또한 환호했다.
열정적인 사람들의 반응이 내게 ‘함께’라는 충만함을 가져다주었다.
[이 정도면 역대 급! 단 10곡뿐이지만 그 어떤 때보다 진솔하고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
-와... 진짜 안 좋은 트랙이 없다. 안 좋은 트랙이.
-9번 인생의 회전바퀴 대박인 듯. 강지혁 진짜 개 천재. 클래식 음악 하나도 모르는 데, 이건 진짜... 와...
[어느 것 하나 소홀한 곡이 없다! 한국이 나은 천재 강지혁! 다시금 세상에 이름을 알리다!]
-힙합, 알앤비소울, 발라드, 뉴 에이지 클래식 거기다 재즈 팝까지... 진짜 세상 불공평하다.
[일본에서도 대만에서도, 중국에서도 그리고 이를 포함한 전 세계 82개국 음원 차트들에서 1위......]
더욱이 음원이 공개되자마자 각종 음원사이트들의 1위부터 10위까지를 전부 싹쓸이 했는지라 이런 감정들은 좀처럼 식을 생각하지 않았다. 급하게 준비한 만큼 걱정도 많았으나 오히려 이런 점들이 그런 기분을 더욱 북돋는 듯 했다.
[축하드립니다. 미스터 강.]
어느새 내 눈앞까지 다가온 이의 기척에 순간 상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의도치는 않았을 지라도, 내게 도움을 준 것은 사실이고 또한 예전에 나도 초대를 받았던 적이 있었기에 미국 대통령에게 초대의사를 건넸었다.
솔직히 거절당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고 애당초 기대를 별로 하진 않았다. 그의 가족이 한국에 온 것이 그가 원해서도 아니고 그저 딸이 원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은 너무나도 흔쾌히 나의 초대를 받아주었다. 물론 때때로 뭔가 나를 마음에 안 드는 눈빛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말이다.
[도리어 제가 감사드려야죠. 세상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미스터 강의 사인 CD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저희를 이런 멋진 저택에 초대해주시지 않았습니까? 하하.]
[감사해요. 미스터 강. 사실 남편이 개인 휴가인데도 자꾸 일을 하려고 해서 불만이 많았거든요.]
[여, 여보?]
[흥! 이번에 스텔라가 한국에 가자고 해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크흠...]
어쨌든 잠시 후면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떠날 사람이기에 내게도 큰 부담은 없었다. 경호야 미군들이 때 거지로 몰려와 해주어 신경 쓸 필요도 없었고 음식이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이수복 요리사님이 흔쾌히 도와주셔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 하룻밤인데요. 뭘. 예전 크리스마스 전야제 파티 때 잘 대해주신 것에 비하면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다음에 무거운 자리에서 벗어나셨을 때, 다시 한국에 와주세요. 그때는 더 알차게 휴가를 보내실 수 있도록 초대하겠습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공항까지 배웅을 나갔다. 떠나는 길 마지막이라고 한국 기자들에게 잠시의 인터뷰 시간을 허용했기에 주한미군에게 공여된 공항이 아닌 인천공항을 이용해야 했고 이에 마냥 집에서만 그를 배웅하기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 문화 예술의 힘이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일정이 무척이나 짧았지만 그 덕에 오히려 한국에 다시 와보고 싶어졌습니다. 물론 미스터 강의 초대로 묵게 된 그의 집이 무척이나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말입니다. 하하! 미스터 강이 또다시 초대를 해줬기 때문에, 무거운 짐을 벗게 된 후 다시금 한국에 꼭 오겠습니다.]
인터뷰는 정치적 내용을 최대한 배제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따라서 나와 관련된 얘기가 꽤나 빈번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나로서는 무형적인 반사이익을 상당히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일이 너무 순조롭게 흘렀나 싶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것도 대통령과 그의 가족이 에어포스 원에 올라타기 직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고마워요. 정말 당신은 최고에요!]
전날과는 달리 하루 종일 시무룩해 있던 대통령 딸이 굉장히 밝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봐 조금 의아하긴 했다.
하지만 이내 이해가 되긴 했다. 예전 크리스마스 전야제에서 봤던 꼬맹이였다면 모를까, 이제는 170CM에 가까운 키를 지닌, 어엿한 숙녀가 된 대통령 딸이었기에, ‘하긴 마지막까지 어두운 표정을 하진 않겠지.’라는 생각이 이내 들었으니까.
“어, 어?”
하지만 그녀가 밝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온 것은, 마냥 내가 생각했던 이유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어? 저, 저기?”
순간 다가오는, 아니 다가와도 너무 다가오는 그림자에 당황하고 말았다.
[쪽]
그리고 이내 들려오는 감촉과 소리에 몸이 그 상태로 굳어버렸다.
[스텔라!]
[어머!]
[너, 너 이 자식. 우리 스텔라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아니, 그 아저씨, 내가 한 게 아니라 당한 거라니까? 저기, 고정하세요. 고정! 다, 당시 대통령이야. 대통령!
지금 주변에서 사람들이 다 보고 있다고... 어? 하아...
[찰칵]
[찰칵]
“대박! 미국 대통령 딸이 강지혁한테 뽀뽀했어. 대박!”
“와... 내가 잘 못 본 거 아니지? 지금? 너도 본 거지?”
“대박이다. 대박! 강지혁 봐봐. 지금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잖아. 어, 어? 저기 대통령이 강지혁 멱살...”
하아... 세상은 썩었어.
*
[강지혁! 미국 대통령의 사위가 되다? 미국 대통령이 1박 2일의 짧은 방한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 강지혁의 열혈 팬이라는 스텔라 오바바가 생각보다 더 강지혁을...... 한편 강지혁 측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백악관 측은 강한 부정으로 이번 이슈에 대응하고......]
미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을 배웅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인터넷에 또다시 나와 관련된 기사들이 도배되어 있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걱정이 되었다. 하아. 망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걱정은 이내 걸려온 전화로 인해 뭉텅이로 날라 가버렸다.
“그게... 오해야. 진짜 난 가만히 있었... 응? 삼촌?”
[지혁아! 지금 난리 났다. 난리 났어!]
삼촌 그래, 난리 났지. 난리 났어.
뒤늦은 뒷북을 쳐오는 민재 삼촌의 목소리에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나 이제 큰일 났다고 삼촌!
[지금 KTBS뉴스에서......]
그런데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삼촌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들떠있었다. 나와 유지연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는 삼촌이라기엔 너무나도 이상할 정도로. 그리고 무엇인가 다른 일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벌어졌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