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17화 (417/502)

00417  2019  =========================================================================

#417

서울의 한 대학 동아리 실.

그곳에서는 공강인 동아리 학생들이 저마다 모여 동아리 방 한편에 마련된 TV를 보고 있었다.

“저게 진짜 한국에 생긴다고? 말이 돼?”

그들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방금 전 점심식사를 마쳤기에 평소 때라면 식곤증을 핑계 삼아 숙면을 취했을 테지만 TV 화면은 그들로 하여금 익숙한 본능마저도 이겨내도록 만들었다.

“장난 아니네. 무슨 아파트야? 아니지. 솔직히 아파트보다 시설 좋았으면 좋았지... 우리 집보다 낫잖아! 와... 대박이네.”

“운동시설부터 공부시설 그리고 연극, 보컬 관련 시설까지... 없는 게 없네. 진짜. 거기다 건물은 뭐가 저렇게 예뻐? 도넛처럼 생겼는데 진짜 랜드마크네. 랜드마크!”

“동아리 구역? 기숙사 내부에 동아리도 지원되나본데? 대박이다. 동아리 실 하나, 하나가 우리 동방 두 배 아니 세 배도 넘겠다. 소극장도 많고 대극장도 있어? 이야... 지렸다. 거기에 녹음실도 있고... 와... 저거 실화야?”

“아씨. 우리 학교는 저기랑 코앞인데, 뭐하고 있었냐? 진짜? 아 좆같다. 설명 들으면 들을수록. 솔직히 누가 봐도 우리학교 겨냥해서 만든 위치잖아. 하아... 내 자취방 월에 50인데 저기 4인 룸보다 못하면 어쩌자는 거냐고! 하아...”

꿈 기숙사의 공사 진행과정 및 기숙사 시설을 설명하고 있는 사성건설 부사장의 모습이 TV화면을 가득 채웠고 틈틈이 조감도 자료들이 화면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소 지루할 수 있었다. 이런 식의 진행은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진행이었으니까. 하지만 학생들의 눈에서는 단 하나의 지루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TV가 보여주는 화면 자체가 그들 세대를 겨냥한 방송을 보여주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해당 방송을 대학생들만이 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 장난 아니다. 장학 혜택도 엄청 많아.”

“그러니까, 공부를 해! 공부를! 너도 이제 내년이면 고2인데, 공부 열심히 해야 저기 들어갈 거 아니야! 기숙사비도 싸고 밥도 잘 준다고 하고! 들어가기만 하면 너도 좋고 엄마, 아빠도 좋고 다들 얼마나 좋겠니? 외국인 친구도 사귈 수 있고! 응?”

TV화면은 어느새 또 다른 사람이 단상위로 올라와 꿈 기숙사의 비전과 기타 세부사항에 대한 사안을 설명하고 있었다.

“치... 저거 입소할 땐 거의 가정형편만 본다고...”

“말대꾸 하지 말고! 혜진아... 장혜진! 오늘 개교기념일이라고 집에서 놀지만 말고 공부도 좀 해라. 지금부터라도 진짜, 진짜 열심히 하면 저기에 있는 대학이라도 들어갈 수 있으니까, 응?”

[짝]

“악! 아, 아파, 엄마! 진짜 엄마! 힝...”

지방에 거주하고 있는, 고1 딸 한명을 자식으로 두고 있는 주부처럼 전국의 학부모들 또한 이 방송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말은 제주도로, 사람은 서울로’ 라는 말이 있듯이 자식들을 열심히 공부시켜 서울로 보낼 생각인 엄마, 아빠들에게는 이 같은 꿈 기숙사 착공식이 결코 남 일로 비춰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물며, 서울에 대학생 자녀를 혼자 보내둔 부모들은 오죽할까.

하지만 TV로만 이를 보고 있던 이들은 알지 못했다. 전국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꿈 기숙사 착공식이 정작 그 현장에서는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

착공식의 분위기는 기쁜 날이라고 보기엔 지독히도 가라앉아 있었다. 사성전자 부사장과 관리사님의 발표 중간, 중간마다 박수소리가 우레와 같이 실내를 장악했지만 그마저도 효과가 없는 듯 했다.

이 모든 게 다 나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관계자들 자리 정중앙에 앉은 불청객 때문이었다.

소개 멘트 순서가 끝나자마자, 어두운 표정으로 자리를 벗어나려는 불청객을 주변 보좌관들이 가까스로 말리는 것을 두 눈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관계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불청객들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것이 나는 지금 참으로 마음에 안 들었고.

어쨌든 내가 덤덤하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불청객의 행동을 감내했다고 생각했었을 삼촌들과 관리사님에게 미안하긴 했다. 소개 멘트 때의 벌인 일을 마주하자마자 삼촌들과 관리사님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해버렸으니까.

하지만 후회는 없었다. 참을 만큼 참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분이 풀리지 않았다.

착공식의 마무리는 나의 멘트와 함께 커팅 식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관계자들이 줄줄이 서 커팅 식을 위한 준비를 하는 동안 다시금 마이크를 부여잡았다.

“꿈을 꾸는 데 발판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고아인 제 자신 또한 삼촌의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가수가, 배우가 될 수 없었을 테니까요.”

말을 하는 와중에도 불청객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 지를 주시했다. 어느새 줄 앞에 나란히 선 관계자들 또한 불청객을 주시했다.

저들 입장에서는 불청객이 커팅 식에 참가하기위해 줄로 다가올 경우, 어떻게 대처할 지가 꽤나 걱정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걱정과는 달리 불청객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그저 나를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불청객의 곁에 있던 보좌관들과 경호원들 또한 마찬가지였고.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느낄 수만 있다면 부모님의 부재도, 어려운 가정 형편도 모두!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들의 시선을 가벼운 피식 웃음으로 무시한 뒤, 오롯이 내가 하고자 하는 말에만 신경을 썼다. 그리고 어느새 관계자들의 시선 또한 내게 집중되어 있었다.

“자신처럼 고아인 아이들이 아프지 않게 의사가 되겠다는 아이, 불우한 아이들이 방황하지 않게, 나쁜 길에 빠지지 않게 도와주고 싶다면서 경찰대에 진학한 아이, 자신 같은 아이들을 불우한 가정환경에 상처받지 않게 보듬어주고 싶다며 교육대학에 진학한 아이 등 수많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갔고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꿈 기숙사를 기획한 이유가 너무 소중했기에 불청객이 나타나서는 안 됐다. 꿈과 희망이 가득 찼으면 좋겠다는 마음처럼 그 시작을 상징하는 착공식이 불청객으로 인해 옥의 티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 분했다.

“제가 후원하고 있는 고아 아이들의 현재를 말씀드린 것입니다. 이는! 제 자랑을 하고자 말씀드린 것이 아닙니다. 저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일지라도 자기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마음을 느낄 수만 있다면 부모님의 부재도, 어려운 가정 형편도 모두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입니다.”

오늘 내가 벌인 행동과 ‘벌일’ 행동들로 인해 어떤 골치 아픈 일이 생길지 상상만 해도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생각들을 아예 머리 밖으로 날려버렸다.

“그렇게 후원했던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모두 자기의 꿈을 위해 하루, 하루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고 싶어서 또한 그 아이들과 함께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후배 가수, 연기자 지망생 분들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학생들을 위해 꿈 기숙사 계획을 세웠습니다.”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다. 다소 즉흥적이고 감정에 너무나도 치우친 상태여서 이런 행동을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먼저 선을 넘은 것은 불청객이었다.

“그래서 오늘 꿈 기숙사의 착공식이 제게는 무척이나 뜻 깊습니다.”

크게 숨을 한번 내쉬었다. 방금 전까지가 내가 준비한 멘트였고 오늘 오전 리허설 삼아 관리사님과 삼촌들 앞에서 했던 내용이었다. 다시 한 번 숨을 크게 내쉬었다. 현실감이 돌아오고 몸이 떨려왔다.

아까 전 몸 떨림이 분노에 의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두려움과 걱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머리 바깥으로 치워버리려 했지만 치우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그만 둘까?’, ‘더 하다간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와 같은 관련된 생각들이 다시금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런 속내와는 달리 내 입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열렸다.

“제발 꿈 기숙사와 꿈 아레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세요. 당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될 정도로 아이들의 꿈과 문화, 예술인들의 열정은 가볍지도 값싸지도 않습니다.”

멀리서 삼촌들과 관리사님이 그리고 심지어 대사관 대사들을 제외한 관계자들도 방금 전 내 발언에 놀란 듯 했다.

“꿈 아레나 계획을 세울 때, 꿈 아레나가 완공되었을 때 집요하게 이권을 요구하는 곳이 있었습니다.”

특히나 삼촌들과 관리사님의 얼굴은 놀랐다고 보기엔 지나칠 정도로 굳어져있었고 또한 어두워져 있었다.

“매번 거절했음에도 자신들이 투자를 하게 해달라며, 투자 금 대비 어이없을 정도로 많은 지분을 수십, 수백 번 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입은 마치 랩을 하는 것처럼 그동안 묵혀놨던, 참아야했던 사안들을 모조리 털어내고 있었다.

“이를 끝까지 거절한 대가라는 게 무척 컸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언급하기 힘들 정도로 압박을 받아야 했고 해외 활동에 전념해야만 했습니다. 저는 가수이고 배우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정치권의 눈치를 받아야 하고 그들의 압박을 받아야 하는 지 도무지 이해가 안됐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너무나도 당당한 행동에 그저 이를 감내하고 참아와야만 했습니다.”

아까 전보다 훨씬, 아니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란 듯한 불청객과 따까리들 모습이 너무나도 통쾌했다.

“그런데 최근 또다시 그 쪽에서 꿈 기숙사에 손을 뻗기 시작했습니다.”

지상파 방송사들은 철저히 불청객을 화면 앵글 속에서 배제시켰다. 대중들은 오늘 이 자리에 불청객이 자리한 것을 모를 것이다. 지금 당장은.

“제가 이번 꿈 기숙사의 사업비를 모두 저의 사비에서 출자한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의 마수가 또다시 더럽혀져서는 안 될 곳으로 뻗어왔기에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최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언론은 지상파 방송사들만이 아니었다.

“오늘도 착공식을 중단하려 했습니다.”

주요 일간지 그리고 심지어 꿈 기숙사와 관계된 국가 소속 기자들 또한 이 자리에 있었기에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 이 자리에 불청객이 자리했다는 것을. 그리고 오늘 내가 그 불청객을 대한 태도와 지금 내뱉고 있는 멘트들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공식을 계속 진행한 것은 도움을 요청하기 위함입니다. 이는 팬 여러분들에게 국한되어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꿈을 지켜주고 싶은 분들 문화, 예술을 사랑하시는 분들 모두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것이 그나마 내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힘이었다.

“오로지 학생들의, 청춘들의 꿈을 위해 존속해야할 꿈 기숙사를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권력도 압박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의 정치싸움에 꿈 기숙사가 이용되지 않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두의 힘으로.”

일개 개인이 권력의 정점에 있는 이에게 맞선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오늘 착공식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커팅 식을 거행하면서 이만 착공식을 마치겠습니다.”

[싹]

가로 한 줄로 서있던 관계자들 정 중앙으로 끼어들어가 가위로 줄을 끊었다. 그런 나를 따라 다른 관계자들 또한 억지든, 자연스러운 것이든 웃음을 지으며 줄을 끊었다.

이를 미리 고용한 사진사가 찍었고 착공식은 이내 마무리 되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는 어느 무리들의 시선이 너무나도 따가웠으나 떨려오는 다리와 손을 애써 다잡았다. 다른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마저 못한 대화를 나눴으며 끝까지 당당하게 행동했다.

하지만 그런 당당함마저도 대기실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이 나고 말았다.

[털썩]

“지혁아! 어쩌려고 너 그런... 지, 지혁아!”

“왜? 무슨 일이야? 지혁아!”

“지혁아!

대기실로 들어서자마자 물밀 듯이 쏟아져오는 안도감과 앞으로의 걱정들 때문에 다리에 절로 힘이 풀렸다. 좀처럼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아직까지는. 아직까지는 그런 걱정들 보다는 방금 전 느꼈던 막대한 개운함의 여운이 컸다.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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