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16 2019 =========================================================================
#416
삼촌이 착공식과 관련해 내게 말해주려고 했던 사안이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렸다. 방금 전까지 좋았던 기분이 싹 다 날라 가버렸다.
“저 사람이 왜 저기 있는 건데?”
“그게...”
“관리사님 말 좀 해보세요. 저 사람이 왜 저기 있죠?”
착공식에 참가할 수 있는 이들은 오로지 꿈 기숙사 관계자들과 선별된 몇몇 공중파, 일간지 기자들뿐이었다. 애당초 떠들썩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방송사와 일간지 관계자들을 착공식에 초대한 것도 많이 양보한 것이었다. 그런데 행복만 가득해야할 곳에 불청객이 찾아왔다. 그것도 너무나도 당당하게.
꿈 기숙사 정원과 관계된 각국 대사관 대사와 이해영 고양시장 그리고 대학 총장들.
꿈 기숙사 1층에 대규모로 자리 잡을 청소년 교육 기관과 관련해 자리에 참석한 성북구청장과 구내 청소년 관련 시설장들.
이번 꿈 기숙사의 시공을 맡게 된 사성건설 부사장.
이번 계획에 꽤나 큰 도움을 준 주훈 삼촌을 비롯한 삼촌들.
착공식 행사가 시작되기 전 도착한 ‘예정된’ 손님들 또한 뜻밖의 불청객에 당황한 듯 했다. 하지만 그 불청객의 지위가 지위인지라,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그 불청객을 중심으로 모여 있었다. 아니 그 사람이 서슴없이 그 틈으로 끼어들었다. 자신이 중심이 되겠다는 듯이.
여기가 어디라고 온 것일까. 보좌관들과 경호원들로 보이는, 거의 50여명은 되어 보이는 인원까지 대동한 탓에 불청객이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손과 발 아니 몸 전체가 부르르 떨렸다.
“지혁아. 진정하고. 삼촌 말 들어봐. 응?”
“지혁씨. 잠시 진정하시고...”
온 몸이 뜨거워지고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내 얼굴이 붉어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꿈 아레나도 그렇고 요즘 꿈 기숙사에도 발걸음을,”
“그걸 지금에 와서! 하아...”
모두 다 내 잘못이다. 상대가 지금 상황을 예견할 수 있게 무척이나 친절하게 알려줬음에도, 내 상태가 온전치 못해 이를 대처하지 못했다. 괜스레 주변 사람들만 머리 아프게 만들었다. 하아.
“반갑군요. 이렇게 직접 얼굴을 마주한 건 처음이네요. 강지혁씨.”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런 내게 그 불청객이 다가왔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주 훌륭한 일을 하셨어요. 꿈 아레나도 그렇고 꿈 기숙사도.”
얼마나 많은 추잡한 손들을 뻗쳐왔는지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당사자가 꿈 아레나와 꿈 기숙사를 입에 담자 역겨웠다. 아니 토악질이 절로 나왔다. 입안이 목구멍으로부터 넘어온 신물로 씁쓸해질 정도로.
그렇게 쉽게 입에 담아서는 안 돼. 감히, 감히.
당장이라도 이 자리에서 꺼지라고 당장 사라지라고 말하고 싶었다. 경호관들이 두 눈을 부릅뜨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보는 눈이 많았다. 어떻게든 내가 끌어올릴 수 있는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나랏일 하느라 바쁘실 텐데.”
“제가 후보 시절 공약했던 주거 빈곤층 지원, 한류문화 지원책의 결실이 하나, 하나 맺어지고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나요. 호호.”
그렇지만 갈수록 가관인 불청객의 행태에 그 인내심조차 바닥이 나고 말았다. 말문이 턱하니 막혔다. 내가 이 상황을 감내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이유, 주변에서 나를 보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잔뜩 보내고 있는 삼촌들과 관리사님이 아니었다면 진즉에 사단이 벌어졌을 것이다. 그 정도였다.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의 소용돌이가.
“제가 공약을 내건 사안들이 하나, 둘 시행되고 있는 것 같아 너무나도 뿌듯하군요. 국민들과의 약속을 지킨 것 같아 굉장히...... 앞으로도 이런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네요.”
불청객의 말과 시선 그리고 행동들이 나로 하여금 선을 넘게 만들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끓어올랐던 강렬한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가 내 입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왔다.
“곧 착공식이 시행될 예정입니다. 초대받으신 분들은 자리에 착석해주시기 바랍니다.”
행사를 진행하겠다는 내 말에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있던 이들도 저마다 마련된 자리로 돌아가 착석했다. 갑작스럽게 추가된 인원에 착공식 준비 스태프들이 서둘러 추가 의자와 원형 테이블을 가져와 설치했다. 그리고 그 테이블과 의자의 위치는 착공식 참가 인원들의 정중앙이었다.
그런 장내의 풍경을 슬쩍 바라보다, 단상에 오르기 전 대기실에 잠시 들렀다. 메이크업과 의상을 간단히 점검했다. 그런 내 행동은 무덤덤했고 얼굴 또한 그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혁아 잘했다. 지혁아 지금은 참기 힘들겠......”
“지혁씨 잘하셨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지혁아... 어쩌겠냐. 조금만 참다보면...”
삼촌들이 이내 대기실에 있는 내게 다가왔다.
내 속내를 짐작하고 있던 삼촌들과 관리사님이었기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인내심으로 차분한 대처를 행한 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삼촌들과 관리사님의 그런 위로의 말을 받을 자격이 내게는 없었다.
*
지상파 방송사들의 카메라에 일제히 붉은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이와 함께 이번 착공식의 메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강지혁의 멘트가 시작됐다.
“오늘 꿈 기숙사 착공식에 참석해주신 내, 외빈 여러분 감사합니다. 저는 가수 겸 배우이자 이번 꿈 기숙사 계획을 주도적으로 추진한 꿈 재단의 대표이사 강지혁입니다. 반갑습니다.”
[짝짝짝]
[짝짝짝]
수많은 사회적 이슈를 자아내고 있는 사안이었기에, 대중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복지천국 북유럽을 연상시키는, 아니 북유럽에서도 존재하기 힘든 기숙사 건립 사업이라는 점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큰 화제를 불러 모았고 이는 착공식의 국내 생중계라는 전무후무한 광경을 자아낼 정도였다.
오후 1시.
착공식이 시작된 지 10분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각 방송사들 모두가 현재 시청시간대에는 꿈도 꿀 수 없는 5% 이상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저 방송사들마다 관련전문가 몇 명을 데려다 착공식을 생중계함과 동시에 주거 빈곤층과 관련된 사회문제를 언급할 뿐이었다. 그런데도 시청률이 벌써부터 대단하다는 것은 대중들이 그만큼 이번 사안에 대해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렇게 뜨거운 관심과 함께 꿈 기숙사 착공식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번 사업의 투자 금 전액을 출자한 강지혁의 진행은 꿈 기숙사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만큼이나 순조롭게 이어졌다.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귀빈 분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주한 미국 대사관 대사님께서 자리해주셨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짝짝짝]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회의...... 한국과 미국은 혈맹입니다. 이번 사업에 동참할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본 대사와 직원들은 꿈 기숙사에 입소할 자국 학생들뿐만 아니라 타국 학생들의 꿈까지도 적극 지원할 것입니다.]
“주한 프랑스 대사관 대사님께서...”
“주한 일본 대사관...”
“주한 스페인...”
“주한 독일...”
“주한 대만...”
주한 미국 대사관 대사가 소개된 것을 시작으로 프랑스, 일본, 스페인, 독일, 대만 등 총 6개국 대사들이 차례대로 소개되었다.
각국 대사관과 꿈 기숙사측에서 ‘선별한’ 외국인 학생들이 꿈 기숙사에 머문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차별 점이었다. 제2 외국어도 모자라 제3 외국어조차 필수가 되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기숙사 룸메이트로 다국적 또래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은 엄청난 메리트였으니까.
이에 시청률 그래프를 보고 있던 각 방송사 PD들의 얼굴은 무척이나 밝았다.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시청률은 착공식 생중계가 이 방송의 주된 시청자일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음을 증명해주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렇게 모두의 얼굴을 밝게 만드는 것으로 강지혁이 진행하고 있는 관계자 소개 식순은 성공적으로 흘러갔다.
“동학대학교 총장님 총장님께서 자리에 함께해주셨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입소 시에는 가정환경이, 입소 연장 시에는 성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알고 있습니다. 나라의 동량을 키워내는 대학교의 장으로서 앞으로 우리 학교 학생들이 가정 형편에 구애받지 않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꿈 기숙사의 정원을 배정받은 세 개 대학 총장들이
“경기도와 고양시를 대표하여 이해영 고양시장님이 자리에 함께해주셨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청년들을 향한 투자는 아깝지 않습니다. 복지 정책의 가장 후순위에 자리 잡은 청년들을 위해 경기도와 고양시는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며 이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
지자체로서는 유일하게 정원을 배정받은 경기도와 고양시를 대표해 이해영 고양시장이
“성북구청장님께서 자리에 함께해주셨습니다.”
“꿈 기숙사 1층에 자리 잡을 청소년 교육 센터를 통해 사교육을 지양하고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리고 불우한 가정환경을 지닌 지역 내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를......”
청소년 시설과 관련해 혜택을 받게 된 성북구의 구청장이 그리고
“이번 꿈 기숙사 시공을 맡아주실 사성건설 최준우 부사장님이십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단순히 이익을 생각하여 이 공사에 입찰하지 않았습니다. 사회 기부의 일환으로 그리고 세계최고의 기숙사를 사성건설이 짓겠다는 의지만으로 이 사업에 참가하였습니다. 최고의 기숙사! 가장 안전한 기숙사! 청년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기숙사! 사성 건설이......”
꿈 기숙사 사업 입찰에 성공한 사성건설의 부사장,
“연기자 차준우입니다. 연기자 후배들이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를 포함한 선배 배우들은 최선을 다해......”
비 대학생들의 선발과 관련해 큰 도움을 줬고 앞으로도 도움을 줄 선배 배우들의 대표로 자리에 함께한 연기자 차준우까지.
강지혁은 착공식 분위기를 주도하며 관계자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장내의 박수를 유도했다. 그리고 그가 이내 기존에 초대받았던 관계자들의 이름을 모두 호명했을 때, 장내의 시선은 오로지 한곳으로 향했다.
초대를 받지 못했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 가운데 어떻게 보면 가장 이름값과 지위가 높은, 그리고 아직까지 이름을 불리지 못한 이에게로.
하지만 장내의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강지혁은 여전히 자신을 찍고 있는, 생방송으로 착공식을 중계하고 있는 지상파 방송 3사의 카메라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충격적이었다.
“이상 이 자리에 함께해주신, ‘초대받은’ 관계자분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소개받지 못한 이가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모르지 않았다. 장내의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아있던 관계자들도 강지혁을 열심히 찍고 있던 방송 관계자들도 그리고 관계자들을 소개하고 있던 강지혁도.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로지 강지혁 만이 태연했다. 전혀 다른 곳, 다른 시간에 있는 것처럼.
“이어서 꿈 기숙사의 공사 진행과정 및 기숙사 시설과 관련된 내용은 최준우 사성건설 부사장님께서, 꿈 기숙사의 비전과 기타 세부사항에 대한 사안은 재단법인 꿈의 조영환 이사님께서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번 착공식의 마무리 때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이상입니다.”
그렇게 기쁨으로 가득찰 것으로 예상됐던, 평이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됐던 꿈 기숙사 착공식은 불청객의 등장 이후 또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