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10화 (410/502)

00410  2019  =========================================================================

#410

“강지혁!”

“잠시만 삼촌.”

들려오는 목소리의 주인공도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이유도 모두 알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서라도 인상이 찌푸려지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삼촌 나 작업 중인데, 갑자기 들어오면 어떡해? 나 이런 거 예민,”

“이게! 사고 쳐놓고 이렇게 뻔뻔하게 나오시겠다?”

후우. 아무래도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할 것 같아 장비에서 시선을 떼 삼촌을 바라보았다.

[탁]

삼촌이 내 앞 테이블에 내려놓은 신문. 그 신문의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소식 하나가 이 모든 소란의 원인이었다.

[연기자이자 가수로서 월드스타의 반열에 오른 강지혁이 3년 만에 음반 발매 소식을 밝혀! 강지혁의 국내 매니지먼트를 담당하고 있는 포이보스 측의 말에 따르면, 16년도 중반에 발매되었던 정규 4집으로부터 3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고...... 가수로서의 자신을 애타게 기다려준 팬들을 위해서 다소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작업을 한 끝에 총 10곡을 수록한 정규 5집으로 5월말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면서, 또한 팬클럽 회원들 한정 청음 회를 5월 중순 개최. 연기자로서 향후 몇 년간 바쁘게 움직일 자신에 대한 서운함을...... 자세한 사항은 향후 포이보스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될 예정으로......]

하긴 대표가 모르는 소속가수의 음반발매 소식이라니. 삼촌이 충분히 이럴 만도 했다.

“너 요즘 왜 이러는 건데?”

그런데 이런 즉흥적인 일을 자주 벌여 종종 골치를 썩게 만든 것 치고는 삼촌의 반응이 이상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다가 또 괜찮아져서 별 말 안했더니, 요즘엔 왜 이렇게 뭘 못해 안달이야?”

“무슨 소리야. 삼촌. 저번에 음반 작업한다고 말했었잖아. 그때 다 들어놓고선.”

“이게!”

[콩]

“윽!”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 물었을 뿐인데, 돌아온 것은 꿀밤세례였다.

“승현이 음반에 크리스 음반까지 봐주고 그것도 모자라서 네 음반 작업까지 하겠다고? 그것도 한 달도 안 남기고 발매?”

“깜짝 서프라이즈지. 이런 거 한 두 번도 아니면서 왜 그래? 삼촌? 너무 민감하네. 요즘.”

“내가 민감한 게 아니라 네가... 하아... 말을 말지.”

삼촌이 작업실 내에 마련된 소파에 앉으며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새삼 내 자신을 둘러보았다.

뭘 못해 안달이나? 내가?

승현 녀석과 크리스 녀석의 음반 작업을 담당해준 뒤 내 음반 작업을 한 것뿐인데 안 달이나? 가만있어 보자 오늘이 며칠...?

4월 30일.

핸드폰으로 오늘 날짜를 보는 순간 이 모든 상황이 단번에 이해가 돼버렸다. 삼촌이 어째서 저렇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보는지, 그리고 뭘 못해 안달이라는 말까지 내게 건넸는지.

고작해야 2주 동안 한 일이라고 보기엔 지나치게 많았다. 수염이 눈에 띄게 자랄 때까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집에 안 들어간 지 한참이나 된 듯 했다. 녹음실 한편에 칫솔이며 치약, 비누 그리고 수건과 갈아입을 간단한 옷가지들까지. 2주 동안 이곳에서 생활한 티를 여실히 드러내는 물건들이 잔뜩 눈에 들어왔으니까.

“삼촌 내가 너무 오랫동안 음반도 안내고 그래서... 팬들한테 미안해서 서두른다는 게 그만... 그러니까. 걱정 안 해도 돼. 녹음 작업도 거의 끝냈고...”

“뭐? 녹음 작업이 끝나?”

“이제 세 곡만 남았어. 나머지 7곡은 다 끝냈으니까. 아! 삼촌 한 번 들어볼래?”

“야, 인마! 강지혁 너! 하아... 됐다. 강지혁 너! 오늘은 무조건 집에 들어가. 알겠어?”

이내 이해된 주변 상황. 내게 불리할 게 천지라, 화제를 돌려보려 했지만 삼촌의 단호함은 막강했다.

“응? 그게 삼촌... 이제 세 곡만 남았,”

“아님, 재성이한테 연락한다. 너 이 꼬라지로 있다고. 너 재성이한테 음반 작업 핑계 삼아서...”

“아, 알겠어. 아 삼촌도 진짜. 유도리가 없어. 유도리가.”

[콩]

“악!”

괜스레 걱정을 끼친 것 같아 미안했다. ‘너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 ‘안 그래도 흰 머리 많아져서 스트레스인데, 이젠 아예, 한 뭉텅이씩 빠진다. 빠져!’와 같은 삼촌의 이어진 말들은 쉽게 넘길 수 있을 거리가 아니었으니까.

“에이, 삼촌. 마음이 다급해져서 그런 거야.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진짜 쉬엄쉬엄할게. 솔직히 그동안 너무 놀아서 양심에 찔렸다고?”

나이 29살. 이 나이에 할 만한 행동은 아니지만 나 때문에 머리가 아픈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삼촌에게 애교 가득 담긴 말들을 건넸다.

“꿈 기숙사 공사 시작한 거 알지? 거기에 이번에 대통, 아니다. 너 꼴이 이런데, 뭘 더 말하겠니. 후우.”

“응? 꿈 기숙사? 뭔데?”

“아니다. 그나저나 저번에 테일러 한국 온다고 하지 않았나? 언제쯤 온다고 그래? 콘서트 날 맞춰서 오는 게 아니라 꽤 일찍 온다며?”

어쨌든 삼촌 또한 그런 내 모습에 그나마 기분을 푼 듯, 내게 넌지시 다른 화제를 건넸다.

그나저나 테일러가 있었지. 참.

“어? 아! 5월 1일 날 오기로 했어. 뭐, 집에 초대할까 싶었는데, 콘서트 할 때 동선도 그렇고 그냥 한류월드에 있는 호텔 잡아주는 게 낫겠다 싶어서,”

“뭐?”

“어?”

“언제 온다고?”

“5월 1일... 응?”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내가 도움 받은 것도 많고 해서 이번 한국일정동안 묵을 숙소를 직접 구해주겠다고 호언장담했었는데, 민재 삼촌이 아니었다면 녀석이 오는 줄도 모르고 이곳에서 처박혀 있었을 테니까. 어휴. 까먹을 게 따로 있지. 너도 참 답 없다.

*

[오랜만이야! 진짜 얼굴보기 너무 힘든 거 아니야? 스케줄 좀 줄여! 얼굴 보는 데 반년 가까이 걸리는 건 좀 심하잖아?]

누가 누구한테 할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저기요. 지금 월드 투어하고 있는 사람 나 아니고 그쪽이거든요? 나 원 참.

[오! 꽤나 준비 잘 했네? 사실 아시아 투어가 마지막 개최지라 지친감이 없진 않거든. 그런데 바로 앞에 공연장이니까, 좋네! 좋아!]

녀석과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는 게 반년만인지라 보는 순간 자연스럽게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앨범 낸다는 소식 들리던데. 사실이야?]

[어?]

공항에서 헬기를 타고 바로 이곳 한류월드 백제 호텔 옥상으로 왔는지라, 많이 지쳐보였다. 녀석의 말마따나, 월드투어의 마지막 행선지가 이곳이기에 그동안의 피로 또한 상당부분 누적되었을 테니까. 그래서 바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길 바랐다. 그런데 녀석이 그걸 거부했다.

[들어보자! 얼른!]

[괜찮겠어? 피곤하다며. 너 다크 서클 완전히 심한 거 알지?]

[뭐? 진짜?]

결국 녀석의 뜻대로 해주었다. 공연이 5월 중순으로 잡혀 있기에 오늘 하루 정도는 더 무리해도 괜찮겠지 싶었고 이곳에서 한 달 가까이 머무를 예정인 만큼 시차 적응을 하기 위해선 대낮인 지금 자는 것보다 조금 버티다 날이 어두워질 때 자는 게 훨씬 나을 것 같기도 했으니까.

[여기가 집이야? 엄청 괜찮네? 여기서 지낼 걸 그랬나?]

안 그래도 녀석이 방한한다는 소식에 언론에서 난리법석이었는지라, 헬기로 이동이 가능한 한남동 저택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한남동 집을 와 본 이들이 항상 그렇듯, 녀석 또한 저택의 외양이 꽤나 마음에 찬 듯 했다.

[이번에는 트랙이 적네? 10곡?]

[급하게 결정한 거라서. 10곡 정도가 한계더라고. 만들어 놓은 건 많은 데, 막상 집어넣을 만한 건 별로 없더라고.]

[흐음... 뭐,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럼 한 번 들어볼까?]

그렇게 산책 삼아 정원을 한 바퀴 돈 뒤 본채에 마련된 작업실로 이동했다. 나로서는 녀석이 되도록 빨리 음악을 듣고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으면 했고 녀석 입장에서는 빨리 내 음악을 들어보고 싶었는지 생각보다 산책을 오래하지는 않았다.

[왜? 이상해?]

[흠... 아직 녹음 안 한 세곡 있다고 했지? 그것도 들어볼 수 있어?]

[녹음 안 한 거?]

[8번 트랙 들어보자. 가이드는 있을 거 아니야.]

[그건 홍보 목적으로 부탁받아서 만들어 본건데... 생각이상으로 퀄리티가 꽤나 좋게 나와서. 아깝기도 하고 이번 앨범이 워낙 급하게 준비하다보니까... 녹음은 아직 안 했는데, 어쨌든 가이드는 있으니까. 잠시만.]

[흠... 제목이 뭔데?]

“Goyang of Dream.”

그런데 녀석의 반응이 생각보다 더 시원찮았는지라, 꽤나 신경 쓰이게 되었다. 안 그래도 이번 앨범 준비를 서두르느라 미숙한 부분이 있을 까 고민했었는데, 내 음악을 들을 때면 항상 놀람을 표현했던 녀석의 반응이 이번에는 사뭇 달랐으니까.

아니, 아직 녹음 안 한 곡까지 들어야 할 정도로 이번 앨범 트랙들이 별로란 말이야? 진심? 하아. 미치겠네. 진짜.

*

“이번에 광고가 굉장히 많이 들어왔어. 그 중에서 지연이 너한테 어울리는 것들은......”

요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유지연이기에, 광고 섭외 문의 또한 많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녀는 이번 드라마 이전에도 한국 최고의 여배우 반열에 들어선 연기자였다. 다소 차가운 인상이긴 하지만, 이 점이 돋보일 정도로 빼어난 미모는 이를 도도함으로 승화시켰고 여느 미인 배우들이 지니고 있는 연기력 콤플렉스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 그녀를 오히려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지연아 어디 아프니? 안색이 안 좋네? 가만 보자, 지연이 네 스케줄이...”

“아니에요. 대표님. 그냥 어제 잠을 좀 못 잤더니...”

“그래? 음... 드라마 종영 앞두고 있어서 힘들지? 야간 촬영도 많고.”

“아니에요. 대표님.”

어쨌든 그런 그녀를 스카웃 해 데뷔를 시키고 이 자리까지 이끌어온 대표 이수덕은 유지연이 자랑스러웠고 대견스러웠다.

굳이 자신이 간섭하지 않아도 자기관리가 어찌나 철저한지, 제 스스로 모든 일을 척척해나가는 유지연이라는 존재는 그가 관리하는 회사가 오늘날 존재할 수 있는 발판이자, 현재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었으니까.

“이번 드라마 스케줄 끝나면 네 이미지랑 페이 잘 매칭 시켜서 광고만 몇 개 찍고 휴식기 갖자. 여행도 좀 다니고 그러면서 다음 작품 대본 들어온 거 심심하면 살펴보고. 뭐, 지연이 네가 연애한다고 하면...”

“그때 말씀 드렸잖아요. 열애설 사실 아니라고요. 그러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그런 그의 마음과 기대감을 모르지 않았기에, 유지연이 최근 언론을 통해 불거진 열애설에 대한 대표의 걱정을 없애려했다. 유지연 그녀에게도 지금 눈앞에 있는 이수덕 대표는 은인이라 봐도 무방할 고마운 이였으니까.

하지만 그녀의 그런 배려는 이수덕 대표가 원했던 답이 아닌 듯 했다.

“참... 지연이 넌 그게 문제야.”

“네?”

“연애도 좀 하고 쉴 땐 팍 쉬란 말이야. 지연이 너 보면 무슨 아이 돌 같다니까? 절제, 절제, 절제. 경험이 많아야 연기력이 풍성해지는 거야. 간접 경험으로는 한계가... 어휴. 내가 배우 앞에서 연기 얘기를... 아무튼 내 얘기 무슨 뜻인지 알지? 신인 때도 아니고 지연이 너 톱 클래스 여배우야. 그러니까,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도 돼. 그 대신 그럴 때면 나한테 미리 말은 해줘야 하는 거 알지? 대응도 미리 해야 되니까.”

“네, 대표님.”

전혀 뜻밖의 말을 들어서일까. 유지연의 두 눈이 잠시나마 커졌지만 그 또한 순간일 뿐이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연을 곁에서 지켜봤던 이수덕 대표에게 있어 이는 단순한 표정이 아니었다. 유지연에게 있어 이 정도 표정변화는 다른 이들의 일반적인 감정표현과 유사한 정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쪽 광고는 네 이미지랑 잘 안 맞으니까......”

“아직도 텃세 심하고 그래? 후우... 여배우들 기세가 조금 심하긴 한데... 너무 신경 쓰지는 마라.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그리고... 까짓 거 이 바닥 연기 작살나게 잘하거나 기똥차게 예쁘면 갑이야! 갑! 그러니까, 지연이 네가 기세 꺾이고 그럴 필요 없어! 더 당당하게! 뭐, 지연이 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만.”

“해외 쪽에도 슬슬 도전해보는 게 어때? 아니면 영화도 괜찮고. 드라마에서만 활약하면... 물론 너무 잘해주고 있어서 지금도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지연이 너는 여기서 더 비상할 수 있는......”

어쨌든 그들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드라마 촬영 그리고 화보 또는 광고 촬영 때문에 얼굴을 쉽게 마주하지 못했던 최근인지라 그동안 밀려있던 얘기들이 상당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대표 이수덕이 고생하고 있는 유지연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무엇인가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지연이 넌 똑 부러지니까, 알아서 잘 하겠지. 그럼, 가만 보자... 오늘은 드라마 촬영에 내일 점심때는 한류월드 백제 호텔에서 팬 사인회 있네?”

“네. 광고 계약 할 때 조건으로 분기마다 한 번씩 하기로 했으니까요.”

“흠... 그럼 내일은 드라마 촬영 없겠네? 아닌가?”

“네, 오늘 야간부터 내일 오전까지 밤샘 촬영이라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조연 신 몇 개 빼고는.”

“모레에도 오전에는 촬영 없으니까... 좋다! 지연이 너 내일 한류월드 백제 호텔에서 하루 쉬다와. 스파도 받고 마사지도 받으면서 피로도 좀 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대표님?”

갑작스럽게 하루를 쉬다 오라는 이수덕 대표의 권유는 확실히 뜻밖인 것이었다. 유지연이 자연스레 반문을 할 정도로.

“회사에서 전액 부담할 테니까.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뭐, 방이야 네 호텔 백제 광고 계약 조건에 있는 거라 회사에서 내는 건 너 먹고 마시는 것뿐일 테지만...”

“그렇게까지 안 해줘도 돼요.”

“씁! 우리 회사 대들보가 몸 상하는 꼴 못 본다? 다 회사 위해서니까, 잔말 말고 그렇게 해. 뭐, 톱 여배우께서 안하시겠다고 하면... 힘없는 소속사 일개 실장은 그저...”

“그렇게 할게요. 후우...”

“그리고... 남자 친구 있으면 같이 가도 돼. 가서 화끈하게,”

“대표님!”

“아, 알겠어. 거참. 나 방금 얼어 죽을 뻔 했다. 지연아? 눈빛이 아주... 하하...”

평소 때라면, 드라마 촬영 준비를 이유로 이러한 이수덕 대표의 제안을 분명히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녀는 이런 이수덕 대표의 제안을 끝내 받아들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몇 번의 거절과 사소한 소동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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