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06 2019 =========================================================================
#406
“그래. 드라마 촬영 잘 하고. 이제 촬영하는 거 3주 정도 남았다고 했나? 그래, 그래. 형이 지금부터라도 챙겨볼게. 그래, 수고해라.”
아무리 한주 간 결방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결코 주연 배우의 부담을 덜어주지는 않았다. 더욱이 그 주연 배우가 출연하고 있는 드라마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상태라면 말이다.
그래서 명탐정 K에 출연하기 위해 무리한 스케줄을 감내하기로 한 녀석이 무척이나 대견스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내 팬이라는 이유하나로 그 모든 것을 감내하기엔, 촬영 스케줄이라는 게 결코 만만치 않을 테니까.
자식.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연기도 잘하는 게 예의도 바르단 말이지? 크흠...
“누구야? 누군데 그렇게 살가워?”
나름 흐뭇한 기분이 들어 얼굴이 절로 밝아졌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을 맞은 편 소파에 앉아있던 민재삼촌이 보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오늘도 기분 좋나보네?”
“어?”
기분이 좋았기에 얼굴이 밝아졌을 테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 이것이 언급되자 더욱 또렷해졌다. 지니고 있던 감정들이 그리고 내심 뜨끔하게 만드는 못난 행동들이.
“며칠 전에 명탐정 K 촬영 다녀와서부터는 안색도 괜찮아졌고 눈동자도 다시 초롱초롱해졌,”
“삼촌 명탐정 K 촬영 때문은 아닐걸요? 그거 촬영 갔다 와서 이틀? 그 정도는 시무룩해져서 심심하면 책상 치고 인상 찌푸리고 그랬음.”
“진짜?”
정승현 저게 진짜. 낄 데 안 낄 데 구분을 못 하네 진짜.
내가 언제 저렇게 행동했다는 건지. 크흠... 내가 연기자가 맞긴 맞는 건지. 아주 속내를 다 흘리고 다녔구나. 어휴.
“다들 무슨 소리야. 삼촌도 그렇고 정승현 너도. 나야 항상 좋지. 저번엔 그냥 음반 작업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거야.”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그렇다 치자니, 진짜라니까?”
그렇다고 치자라니. 이 정도면 확실했다. 삼촌이 무엇인가를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더욱이.
“갑자기 무슨 화보야? 너 미국 가기 전에 해야 할 협찬 사 화보 작업들도 서너 개쯤 있는데 거기서 또 화보를 찍는다고?”
“데뷔 초에 패션 매거진에 실을 화보 작업 몇 개 있었잖아, 그거 담당해준 사진작가님이 시간되면,”
“그걸 누가 몰라? 네 앨범 화보집도 담당했던 작가잖아.”
“어, 어 그렇지...”
“그리고 네가 먼저 나가겠다고 말했다던데? 섭외 비 상관없이 하겠다고?”
“그, 그게..."
저번 명탐정 K 촬영 때 충동적으로 하겠다고 한 화보집과 관련된 사안에서까지 의아함을 표현하고 있었으니 오죽할까. 이 정도면 갑작스런 내 행동의 변화와 이 같은 사안과의 연관성을 의심하는 게 당연할 테지.
“오빠 대박!”
순간 휴게실 문을 박차고 들어온 수아 녀석이 아니었다면 큰일 날 뻔 했다. 뭐가 이리 날카로운지, 잘못했다간 내 속내를 내 스스로 모두 털어놓을 뻔 했으니까.
“크흠... 뭔데? 수아야?”
아직까지 의심의 눈빛을 거두지 않는 민재 삼촌 때문에 수아를 내 옆에 앉힌 뒤, 화제를 돌리려했다. 뭐, 녀석이 대박이라고까지 한 것이 뭔지 궁금하기도 했고.
“오빠 진짜 이거 이대로 짓는 거야?”
“응?”
“이거 말이야! 이거!”
*
[기존 길음 재개발 지역의 두 배에 달하는 대지면적 43,117㎡(13043평)이 최종적으로 꿈 기숙사의 건립지로 결정! 총 사업비 3842억, 총 기숙사 정원은 기존 3천명에서 1천명 늘어난 4천명, 지상 10층, 지하 4층에 달하는 강지혁의 사회 기부사업이라는 점과 더불어 오늘 오전 9시 공개된 꿈 기숙사 정원 배정 안과 임시 조감도 그리고 시설 구성내역에 대중들의 관심과 호응이 극대화 돼!]
[중국 남부의 하카 부족의 건축 토루에서 모티브를 따온 꿈 기숙사는 기본적으로 원형 건축물...... 1인실(8평), 2인실(12평), 3인실(16평), 4인실(20평)의 면적을 기준으로 저렴한 기숙사 비,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공동체 기숙사를 표방하고 있다. 각 기숙사 실은 개개인의 방과 샤워실, 화장실, 테라스로 구성되어 있으며 3인실, 4인실 같은 경우 거실이 구비되어 있으며...... 성별 구분만 있을 뿐, 내, 외국인 학생 구분 없이 배정될 예정이다.]
녀석이 내게 건넨 스마트 폰의 화면에는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안이 담겨있었다.
“아... 발표됐나보네.”
“응! 응! 지금 인터넷에서 난리야! 난리! 오빠 이거 진짜 맞지?”
“아마도 그럴 걸? 그래, 인터넷에선 뭐 때문에 난리인데? 안 좋은 말이라도 있어?”
“안 좋은 말이라니! 지금 갓지혁, 갓지혁 난리라구!”
잠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던 사이에 일이 언제 이렇게까지 진행된 것인지. 물론 얼핏 익숙한 것이, 관리사님의 보고 내용에 이 같은 조감도가 실려 있었던 것 같긴 했다. 다만 내가 이를 머리에 담아놓을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지만.
어쨌든 중국 남부 소수 민족의 건축물인 토루에서 모티브를 얻었다는 이 조감도를 보니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는지라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추가적인 부지 매입으로 인해 예상보다 800억이 넘는 자금이 투입되었지만 그걸 떠나서 조감도와 시설 내역이 보여준 꿈 기숙사의 모습은 너무나도 환상적이었으니까.
더욱이 이를 바라보는 다른 대중들 또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오히려 더한 반응들을 보여줬으니 오죽할까.
-와 지렸네. 무슨 호텔임? 진짜 멋있다. 원형으로 둘러 쌓여있고 도넛처럼 생겼네. 외부랑 약간 단절된? 그런 이미지네. 정원도 내부 홀에 있고...
-조감도처럼만 완공되면 역대 급이다. 역대 급. 방도 완전 고급스럽고 기숙사비 실화냐? 1인실 30만원, 2인실 15만원, 3인실 10만원, 4인실 7만원 ㅎㄷㄷ 거기다 1명당 방 1개씩 쓸 수 있어서 이건 기숙사가 아니라 그냥 아파트네. 지렸다. 지렸어. 웃음밖에 안 나온다... 평수에 비해 진짜 개 혜자 아니냐? 4인실은 20평이나 되는데, 개인당 7만원 ㅋㅋㅋㅋㅋ화장실 1개여도 개인 방 있고 거실 있으면 장땡이지. 부엌이야 공용 부엌 있고 구내식당까지 있는데 뭔 필요? ㅋㅋㅋㅋㅋ
-ㅋㅋㅋ요즘 노량진이나 대학가 주변 보셈. 한 두 평짜리 졸라 거지같은 방도 3, 40만원임. 고시원도 방에 화장실 있는 거는 30만원 기본 넘고.ㅋㅋㅋ진짜 개 혜자다. 혜자. 근데 오히려 1인실이나 2인실 보다 4인실이 개 재밌겠다. 거실도 있어서 사람들끼리 교류하기도 편하고. 뭐, 3인실도 거실 있긴 하지만 그래도 3명이랑 4명은 뭔가 어감부터 다르니까.
-중요한 건 그게 식비랑 시설 이용비 포함이라는 거임. 대박이다. 하아... 우리 가족 나포함 4명이서 18평짜리 아파트에 사는데... 저긴 7만원만 내면 우리 집보다 넓고 시설도 완전... 하아... 현자 타임 오네...
일단 기숙사 비와 조감도로 알 수 있는 환상적인 기숙사 겉모습 등과 관련된 네티즌들의 부러움 섞인 반응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최고의 기숙사를 만들고 싶다는 내 의도가 적절하게 먹힌 것 같아 절로 흐뭇해졌다.
또한 기숙사 비 같은 경우도 수익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애당초 대출 따위는 없이 순수 나만의 자금으로 이뤄진 계획의 일환으로서 민자 기숙사에 비할 수 없이 저렴했는지라 이런 반응들은 더욱 힘을 얻은 듯 했다.
-아파트 18평은 18평이 아니지 ㅋㅋㅋ주차공간이랑 뭐 기타 시설 같은 거 고려하면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작은 거임. 근데 저거는 순수 주거 면적이니까 ㅋㅋ진짜 개혜자지. 혜자.
-2천석 규모 독서실, 500석 규모 도서관, 세미나 시설 20개... 와...
-테니스, 농구, 풋살, 족구, 당구, 볼링, 탁구, 체력단련시설까지 다 있음. 그것도 공짜로 ㅎㄷㄷ... 옥상에 있는 농구랑 풋살, 족구 시설은 진짜 부럽다. 경치 완전 죽일 것 같은데...
-도너츠 모양이라서 1층 내부 정원도 그렇고 옥상 정원도 너무 멋질 것 같음. 잔디밭에 누워서 책도 보고 노트북으로 영화도 보고... 진짜 꿈에 그리던 기숙사다 기숙사.
-예술 쪽 애들 많이 뽑은 이유가 있네. 지하에 동아리 활동구역도 따로 있고 대극장 1개, 녹음 작업실 5개 하다못해 녹음 작업실까지 5개나 있음. 대강당이랑 다목적실도 있고 ㅋㅋㅋㅋ진짜 대박이다.
나름 심혈을 기울인 내부 시설 구성에 네티즌들이 부러움과 감탄을 넘어선, 찬양까지 해준 덕에 절로 마음이 풍성해졌다. 나를 의심에 찬 눈빛으로 보던 민재 삼촌 또한 어느새 나와 비슷한 눈으로 관련 기사들을 살피고 있었고 말이다.
“지혁아 그런데 그거 커플화보던데, 혹시?”
아, 아닌가? 거 참. 이사람 참 집요하네.
*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길래, 이렇게 가까이 올 때까지 몰라? 어? 꿈 기숙사 보고 있었냐? 하긴... 네가 몇 천억이나 쏟아 부어서 기획한 건데, 기사들 살펴봐야지.”
형 말마따나, 요즘 들어 넋을 놓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한쪽에 집중하느라 다른 쪽을 신경 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물론 예전처럼 유지연 때문에 이런 것은 아니었다. 유지연 생각을 하루에도 쉴 새 없이 하긴 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꿈 기숙사에 상당부분의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대학정원 1640명, 지자체 정원 400명, 국제정원 1200명, 강지혁 개인 정원 760명...... 6개국 대사관의 추천 하에 꿈 기숙사가 선발할 1200명의 국제정원 학생들과의 언어교류 프로그램 또한 적극적으로 고려중이라는 꿈 기숙사 측의 발표에 따라 네티즌들의 관심 폭발! 4천명에 달하는...... 한편 꿈 기숙사는 올해 안으로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며 완공 기일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꿈 기숙사와 관련된 공식정보가 하나, 하나 발표되고 있었다. 저번 1차 발표로 조감도와 전체적인 사업 개관 그리고 건설사가 발표되었다면 2차 발표에는 입소, 퇴소 기준이 그리고 이번 3차 발표에는 전체 정원과 관련된 정보가 공개된 것처럼 말이다.
이런 발표들이 담고 있는 정보에 온, 오프라인 상 대중들의 반응이 무척이나 뜨거워, 그것도 내 예상을 훨씬 뛰어 넘을 정도로 대단해 처음에는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만큼 기숙사와 관련된 부분은 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그런 학생들을 자식으로 둔 학부모 세대들까지 모두의 관심을 끌만한 이슈 사업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지렸다... 독일, 프랑스, 미국, 대만, 일본, 스페인... 미친 강지혁 영향력 이 정도임? 하아... 팬티 갈아입어야겠다...
-와! 내가 들어가고 싶은 대학인데 정원 있네! 이거 언제부터 입소 가능한 건가요? 저소득층 전형까지 합치면 750명이나 TO있네. 연극영화과 지원하려고 했는데, 무조건 노려야겠다. 언어 교류도 끌리고 ㅋㅋㅋㅋ 길바닥에 채일 정도로 많은 짱개말고 다른 외국인들이랑 교류하고 싶음. 대학생의 로망!
-완공되려면 적어도 2년은 있어야 할 듯. ㅋㅋㅋ 웬일로 우리학교도 있네. 지렸따리. 근데 정원 20%면... 학년별 5%안에 들어야 한다는... 하아... A+ 받아도 못 들어 갈 수 있다는 거네.
-입소기준 성적 10점, 가정형편 90점, 지역고려 10점/ 퇴소기준 성적 90점, 가정형편 10점, 내부 활동 10점.... 이거 보면 모름? 입소할 땐 거의 가정형편 어려운 애들만 뽑겠다는 거임. 그 대신 계속 살려면 성적 존나 신경써야할 듯. 성적 낮으면 가족들 길바닥에서 살아도 못 남아있음...
-아 미친. 우리 학교 뭐했음? 기숙사 위치 우리학교 코앞인데? 씨발 학교 일 안 하냐? 좆같네.
-꿈 아레나 있어서 고양시랑 경기도 티오도 있네. 대박이긴 하다. 진짜. 근데 강지혁 개인 후원 700명 넘는 거 저거는 자기 개인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고아들이랑 대학 안다니고 연극하는 사람들한테 배정할 예정이라던데 이거 팩트임?
어쨌든 하루, 하루가 기분이 좋았다. 유지연만 옆에 있었다면 더더욱 좋았을 테지만, 그녀가 없다는 공백 감을 꿈 기숙사 계획이 가져다주는 뿌듯함으로 꾸역꾸역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뭐,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미봉책이 언제까지고 효과를 내보일 수는 없을 테지만.
“반응들이 엄청 좋던데? 새로운 정보들 나오면 네티즌들 벌떼처럼 달려들고. 얼마 전엔 9시 뉴스에도 나왔지? 어디였더라?”
“다 나왔어. 케이블, 지상파 안 가리고.”
“뭐야? 다 봤나보네? 자식. 어쨌든 군대에 있을 때 노래 꽤나 잘 부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유명한 사람이 될...”
형의 말마따나 방송사들 9시 뉴스에까지 언급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었는지라, 주머니에 꺼내들었던 스마트 폰을 다시금 꺼내들었다.
9시 뉴스에 언급된 거 다시 봐야겠다. 그래, 이건 어디까지나 언론에 어떻게 보도됐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어서야. 혹시나 잘못된 정보가 있으면... 크흠 뭐, 어제, 그제 하루 종일 봤지만 그래도 사람인지라 실수가 있을 수 있으니까.
“너가 준비하라던 것들 촬영 스튜디오 가면 다 준비돼 있을 거야. 더 필요하면 형한테 언제든지 연락하고. 형 차 안에 있을 테니까.”
“됐어. 화보 촬영 오래 걸리는 데 뭐 하러 그래. 필요하면 전화할 테니까, 회사 가 있어.”
“여기랑 회사가 멀잖아. 너 필요할 때 바로 달려와야 하는데, 회사 가 있으면 그럴 수가 없잖어. 그러니까, 넌 형 걱정하지 말고 네 할 일에 열중해. 형도 형 일에 열중할 테니까.
“어휴. 진짜 못 말린다. 못 말려.”
그렇게 9시 뉴스들을 다시금 되돌려보다 보니, 어느새 목적지를 코앞에 두게 되었다. 그래서 미련 없이 스마트 폰을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었다.
“그나저나 오늘 화보 촬영은 누구랑 하는 데? 설마 오늘 이거 하고 모레 제주도 촬영까지 하는 데 아직까지 몰라? 거기서 아직까지 안 알려줬어?”
“아니, 알고 있어. 아주 잘.”
“그래? 누군데?”
“비밀.”
“뭐?”
미봉책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있는 만큼,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후우. 후우. 쉼 호흡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