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02화 (402/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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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2

요즘 한창 활동 중이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레전드 걸 그룹으로서 아직까지 수많은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꽤나 대단하다고 생각됐다. 두세 번의 리허설 사이사이에 스케줄을 갔다 올 정도로 바쁘다는 것은 제 아무리 경험이 많은 레전드 걸 그룹일지라도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강지혁입니다.”

차가운 눈동자를 마주할 거라 생각했건만, 내가 문을 열자마자 보게 된 눈빛은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어?”

“야! 다들 일어나봐!”

소파에 큰 대자로 엎드려 있는 부류, 턱하니 탁자에 발을 올려둔 채 스마트 폰 게임에 빠져있는 부류, 거울 앞에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부류.

나를 맞이한 이는 이 세 부류에 속하지 않은 유일한 존재였지만 나머지 6명의 인원들은 어김없이 이 세 부류에 속해 있었다.

여성시대.

2012년 KMA에 참석했을 때 바로 옆 테이블에 앉은 그녀들과 간단히 서로 인사를 주고받은 것이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 후 그룹 자체와는 직접적인 접점이 없었지만, 그래도 마냥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성시대의 리더 김해연과 피쳐링 작업 그리고 ‘잊고 싶은 것들’과 관련해서 접점을 가졌었고 내 자신이 TS ENTERTAINMENT의 대주주로서 자리매김 한 뒤로는 소속 가수와 주주의 위치에서 접점을 안 가질래야 안 가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긴 어떻게...”

그래서인지, 내 방문이 그녀들에게는 꽤나 의외로 또한 불편하고 어렵게 다가갔을 것이다. 아니 왠지 그럴 것만 같았다.

대주주이자,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 돌 기획사 자리에서 TS를 끌어내린 장본인으로서의 나는, TS소속 가수로서 TS의 시대를 만들었고 또한 이끌었던 이들에게는 꽤나 복잡한 존재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였다.

여느 후배 가수들이 선배 가수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는 것처럼 나 또한 그녀들을 찾아왔다는 말에 대기실의 분위기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메이크업과 의상 담당 스타일리스트들 그리고 매니저들조차 그런 분위기에 편승해 할 일을 멈췄고 이내 그들의 시선은 오롯이 나와 여성시대 멤버들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인사드려야 하나요?”

“후배 가수로 왔으니, 후배 가수처럼 대해주시면 됩니다.”

주주. 그것도 TS ENTERTAINMENT의 최대주주인 나이기에 그들의 행동은 더욱 불편해보였고 일종의 어려움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등기 이사라는 점을 되새긴 것인지 아니면 여성시대의 리더라는 자각을 해서인지 김해연이 내 앞으로 나섬으로써 막혀있던 대화의 물꼬가 터졌다.

“음반 냈었나요? 음반 냈다는 소식은 못 들은 것 같은데.”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 일로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오늘 하루 만요.”

“그렇군요...”

하지만 그 물꼬라는 게 워낙에 좁다보니, 대화라는 것이 애당초 길게 지속될 수가 없었다. 김해연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 같은 경우 나와 대화라는 것을 해볼 생각을 애당초 갖지 않은 듯 했고 나 또한 인사 그 이상, 이하의 의미를 찾으려 이곳을 방문한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본 무대가 곧 이라서.”

굳이 더 있을 필요도 그렇다고 저쪽에서 나를 잡을 생각도 하지 않았는지라, 미련을 갖지 않고 대기실에서 빠져나왔다.

과연 TS인가?

워낙에 선배 라인이 탄탄하다보니, 이렇다 할 신인 그룹을 론칭하고 있지 않음에도 사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어쨌든 할 일을 다 마친 터라, 이제는 오롯이 무대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뭐,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로부터 오늘까지의 공백 그리고 무대 당일 날 집중된 스케줄 등으로 인해 걱정할 만한 수준의 상태를 보이는 순한 삼촌 때문에 머리가 조금 아파왔지만.

*

확실히 모자란 녀석들 가요제에서 느꼈던 흥분과 열기를 고스란히 느끼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내가 이번 뮤직코어 무대에 선다는 사실을 알고선 수많은 팬들이 응원을 해주러 직접 찾아와줬지만, 10만 명이라는 관객 앞에서 전율마저 느꼈던 그날의 감동에는 조금 손색이 있는 게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지혁아 수고했다. 마음 같아선 오늘 뒤풀이라도 거창하게 하고 싶은데, 삼촌이 스케줄이 하나 더 남아있어서... 다음에 기회......]

그렇게 잘나가는 연예인으로서 수많은 스케줄을 소화하기 바쁜 순한 삼촌과 헤어지는 것으로 공식적인 모든 스케줄을 끝맺을 수 있었다.

“A룸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네? 아, 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자마자 서둘러 다시금 집을 나섰다.

[꿀꺽]

그리고 맞이하게 됐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나를 바라보는 그녀를.

전체적으로 어두운 조명. 방들로 구성된 카페. 방음이 잘 되어 있는 것인지 아니면 손님이 없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고요한 실내.

그녀가 어째서 이곳을 만나는 장소로 결정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래서 더욱 목이 말라왔다.

“무대하고 와서 배고픈데, 여기 끼니 때울 만한 건 안 팔겠지?”

“만날 거면 음식점에서 만나지 왜 이런 데를 잡았어? 어두컴컴하고 좀 그렇다야.”

“넌 뭐 안 마셔? 난 조금 목마른 데. 뭐라도 시킬까?”

분위기를 띄워보려는 내 노력이 무색하게, 안 그래도 고요한 실내에서 숨이 막힐 듯한 차가운 시선을, 이 방을 들어선 순간부터 쭉 받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 아니 왜 그러는 건데요? 강지혁씨.”

하지만 이내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로 인해 숨이 막힐 듯한 고요가 깨졌음에도 여전히 나는 숨이 막혀왔다.

“우리 사이 모두 정리한 거 아니었나요?”

존댓말을 하는 유지연의 모습에서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냥 짜증나서 그랬어. 너무 아무렇지 않게 연락 끊고, 너무 아무렇지 않게 모른 척 하길래. 그래도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그냥... 인사도 없이 순식간에 끝내는 건 너무 매정하잖아.]

[웃기지? 오는 사람 안 잡고, 떠나는 사람 안 잡는다고 했는데,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그래도 얼굴 좀 풀어라. 오늘이 마지막이잖아. 마지막으로 보는 건데, 가기 전까지 그렇게 차가운, 아니 걱정하는 눈빛으로 볼래?]

그녀 입장도 이해는 됐다. 모든 관계가 정리됐고 그 마지막을 최종적으로 언급한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찌푸려진 인상은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왜 갑자기 존댓말? 아까까지는 나한테 ‘야’, ‘너’ 잘만 하더니.”

“강지혁씨.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도대체 왜 그래요? 우리 다 끝난 사이 아니었나요?”

“난 그냥 트렌디 애들이랑 밥 한 끼 하고 싶었어. 그런데 그 자리에 네가 있었을 뿐.”

“지금 나랑 장난해요?”

나와 명백히 거리를 두려는 그녀의 행동에 자연스레 언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도리어 적반하장 격으로 나섰다.

“난 제안을 했고 그쪽은 거부했지. 그런데 유재연이 받아들였잖아? 그럼 너가 안 따라오면 된 거 아니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쪽이 먼저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니까, 당연히... 아니 애당초 그런 식으로 접점을 안 만드는 게 최소한의 예의 아닌 가요?”

내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던 것일까. 그녀의 얼굴과 목소리에서 약간의 당황스러움이 묻어나왔으나 그것 또한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같은 나의 발언은 시작에 불과했다.

“내가 너한테 의미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그런 거 대놓고 드러내려고 따라 온 거 아니냐, 이 말이야. 난.”

“그게 무슨!”

그리고 이렇게 내 입에서 나온 노골적이고 저돌적인 말들은 그녀의 두 눈을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보다 놀란 것은 정작 그 말들을 내뱉은 내 자신이었다.

오늘 뮤직코어 방송을 위해 방송국에 갈 때까지 아니 이곳에 도착하고 숨이 막힐 듯한 고요를 경험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이런 행동으로 그녀를 마주할 지는 꿈에도 몰랐으니까.

“그런데 그런 행동이 오히려 말해주잖아. 내가 너한테 의미 없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뭐?”

마치 사춘기 시절의 이유모를 행동처럼,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애써 외면한 채 그녀에게 알 수 없는 행동들을 했었는데, 방금 전 내 입에서 나온 말로 인해 그 이유를 비로소 명확히 자각할 수 있게 아니 받아들이게 됐다.

내 자신이 왜 이런 행동들로 하여금 그녀와의 접점을 유지하려고 하는 지.

한동안 그녀와 나 둘 다 말을 잇지 못했다. 나로서는 받아들이게 된 사실을 되새길 시간이, 그녀에게는 내가 내뱉은 말의 진의를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열애설 사실이야?”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에게 건네진 질문은 확실히 뜬금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뭐?”

“홍세빈인가 홍수빈인가. 열애설 났던데?”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너 왜 날 못 괴롭혀서 난리인 건데?”

내가 이러는 게 괴롭히는 것이라는 그녀의 말이 너무나도 날카롭게 느껴졌다. 내가 유재연과 만났던 10년도 더 된 과거가 이다지도 큰 장벽이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그녀는 그동안 나와의 관계에서 육체적인 관계, 이를 넘어선 감정을 한 치도 느끼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내 스스로의 감정을 외면하는 동안 그녀에게 남아있던 그 이상의 감정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것일까.

확인하고 싶어졌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결과가 되었든, 그 반대가 되었든.

“그냥 끝내기 아쉬워졌, 아니 싫어졌어.”

“끝내주겠다며! 끝내 주겠... 뭐?”

“네가 필요해. 고민이 있든 없든. 그래서 중요해. 열애설이 사실인지, 아닌지가.”

방금 전 내뱉은 말과 지금 이곳의 분위기와 걸맞지 않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안 그래도 큰 두 눈이 거기서 얼마나 더 커지려고 하는 지. 내가 말을 할 때마다 그녀 얼굴의 차가움이 일시나마 사라진다는 점이 꽤나 만족스러웠다.

“자꾸 생각이 났어. 끝이 애매해서 그런 가보다 싶었고. 그래서 그 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만났을 때 모든 게 깔끔하게 끝날 줄 알았어. 그런데 미련이 자꾸 남더라고.”

“너 지금 무슨,”

“홍세빈인가 그 자식이랑 너랑 열애설 났을 땐 그게 단순 미련이 아닌 다른 감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런데... 오늘 너랑 우연히 마주쳤을 때 확신하게 된 것 같아. 그 감정들이 단순 미련이 아니라는 거.”

더욱이 방금 전 내 말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직접적으로 무엇을 언급하지 않아도, 바보가 아니라면 알 수 있는 그 의미를 그녀 또한 알아챘다는 것이 그 같은 표정에 드러났으니 오죽할까.

“왜? 내가 쉬워 보여? 네가 투정부리면 한 번씩 자주니까?”

그런데 막상 듣게 된 그녀의 이어진 말은 가시가 무척이나 돋아나 있었다. 그녀의 마음 또한 확인하고 싶어졌던, 결과가 어찌됐건 이를 확인하고 싶어졌던 마음이 무색할 정도로.

하지만 이는 약과에 불과했다.

“그리고 홍성빈이야. 이름.”

“뭐?”

“성빈이는 너한테 놈, 자식 소리 들을 애 아니야.”

눈앞이 캄캄해졌다. 성빈이?

홍성빈도 아닌 성빈이라는, 친밀감이 물씬 풍겨져 나오는 호칭에 말문이 턱하니 막혀버렸다. 지금 이곳의 조명이 어둡다는 걸 떠나서 눈앞에 점점 어두워졌고 몸에 힘이 빠져나갔다.

다가올 불길함을 예감한 듯한 몸 상태를 애써 무시한 채 기운을 차리려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열애설 아니야. 실제로 사귀는 거 맞아. 성빈이랑 나. 그러니까, 네가 무슨 마음으로 오늘처럼 그런 짓을 했든, 방금 전 그런 말을 꺼냈든 앞으로는 그러지 않았으면, 아니 그러지 말아.”

그녀 또한 내게 어느 정도 마음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게 나만의 착각이었던 것일까. 아니면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 내가 너무 늦은 것일까.

“공개열애 할 생각 없어요. 모른 척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 정도쯤은 내가 충분히 강지혁 씨한테 부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내가 강지혁씨한테 할 말은 이게 다에요.”

마치 못들을 걸 들었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의 마지막 말에 나도 모르게 그녀의 팔목을 잡아버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너 진짜!”

“진짜야? 열애설?”

다시 한 번 물었다. 열애설이 사실인지를.

“그럼 그 눈빛은 뭔데.”

“무슨!”

“내가 네 눈빛하나 모를 것 같아? 너 지금 거짓말 하는 거잖아.”

뒤돌아서 가려는 그녀의 얼굴은 10초도 안 되는 사이에 촉촉해져있었고 이내 이를 지적한 나의 말에 당황한 기색마저 어려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마지막 말은 그녀 자신의 팔목을 잡고 있던 나의 힘을 앗아가기에 충분했다.

“성빈이한테 미안할 짓 하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더 이상 그쪽 이미지 망치지 않게 해줘요. 그나마 남아있던 강지혁씨에 대한 좋은 기억들... 그런 것들 다 빛바래게 하지 말고.”

낯선 공간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 이다지도 괴로운 것일까. 그렇게 나는 낯선 공간에서 한동안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멍하니 반대쪽만을 바라 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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