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마음을 노래로-401화 (401/502)

00401  2019  =========================================================================

#401

“강지혁이 아니, 지혁 선배님이 시크릿 심사위원 아닌 가봐.”

“맞아 시크릿 심사위원이면 여정 언니랑 지영 언니 그리고 우희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지. 그런데 이름도 여정이만 알고 있다 잖아. 그것도 명탐정 K 같이 촬영해서 알고 있다고...”

“대박 그럼 도대체 누구지?”

“난 진짜 시크릿 심사위원이 강지혁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이러면 나가린데...”

자신들의 대기실로 돌아온 나인 테일 멤버들의 입은 잠시도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그녀들의 손에는 강지혁이 한 아름씩 안겨다 준 과자들과 음료들이 쥐어져 있었다.

“그런데 진짜 멋있다. 키도 크고 다리도 길고...”

“응... 여정이 진짜 부럽다. 강지혁이랑 매주 만나고. 그런데 진짜 대박이긴 하네. 시크릿 심사위원이 강지혁이 아니라니. 그럼 도대체 누구지? 너무 확신하고 있어서 이젠 후보도 없는데... 하아... 진짜 궁금해 미치겠네?”

“언론에서 확실하다는 식으로 보도해서... 증거도 나름 확실하고 그래서 당연히 지혁 선배님인 줄 알았는데... 쇼크다. 쇼크.”

그렇게 다른 멤버들이 시크릿 심사위원이 강지혁이 아니라는 점에 혼란을 겪고 있을 때 여정만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치... 두고 봐.’

지혁이 생각보다 장난 끼가 많다는 점 그리고 능청스러운 면모가 존재한다는 점을 모르지 않은 여정이기에 그녀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지혁이 시크릿 심사위원이라는 점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방금 전 대화를 통해 그 점을 더욱 확신하게 되었을 뿐.

그렇게 여정은 며칠 뒤로 다가온 명탐정 K 촬영을 고대하고 기대하게 되었다.

*

[콩]

[악!]

[콩!]

[으윽!]

꿀밤 두 개를 더 놓아주는 것과 메뉴를 원래대로 바꾸는 것으로 다인 녀석의 행동을 제지할 수 있었다. 하긴, 사람이 그렇게 바뀌면 죽는 거라던데, 그럼 그렇지.

“작곡 수업은 잘 돼?”

“응? 응... 그런데 너무 어려워서. 힝... 나 아무래도...”

그렇게 주문한 음식이 나오자 분위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괜찮아졌다. 분위기 다운의 주범이었던 자매도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얼굴이 그다지 어둡지 않았고 다인 또한 내게 맞은 꿀밤 덕에 약간이나마 남아있던 어색함을 떨쳐낸 듯 했으니까. 뭐, 지수야 말 해 입이 아팠고.

“쓰읍! 오빠가 전에 그랬지? 누구나 다 어려운 거야. 처음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정말? 난 잘 모르겠어. 내가 재능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오빠도 작곡 할 때 어렵다는 것도 잘 안 믿기고.”

“으구 내 동생 안 본 사이에 바보가 됐네? 응?”

“어, 어?”

한 달에 한 두 번씩은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를 함께했었다. 작곡, 작사 수업을 들으며 뮤지션으로서의 변모를 꾀하고 있는 동생에게 얼굴도 볼 겸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빠가 그랬잖아. 영화에서처럼 몇 분 만에 술술 써지는 곡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곡들은 머리 쥐어뜯으면서 만들어진다고. 그만큼 창작이라는 건 어려운 거니까.”

뭐, 그 조언을 한답시고 자꾸 거짓말을 하게 돼 양심에 찔리긴 했다. 조금 재수 없는 말이긴 하지만, 머리 쥐어뜯으면서까지 작곡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사람마다 느끼는 감정도 다르고 풀어내는 스타일도 달라. 그리고 무엇보다, 지수 네가 작곡을 너무 고차원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 그냥 네 얘기를 풀어내는 거라고 생각해. 내 얘기를 사람들이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공감 받고 싶다. 이런 거 있잖아.”

“응...”

“다른 사람한테 내 속 얘기 꺼내면 시원해질 때 있잖아. 위로 받지 않아도 누가 내 얘기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뭔가 위안을 얻는? 오빠는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

“그렇구나...”

“다음에 볼 때는 수아도 데리고 갈 테니까, 같이 얘기도 나눠봐. 오빠는 오빠 스타일이 있듯이 수아도 수아 나름대로 스타일이 있어서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될 거야. 정승현이나 크리스는 너무 벼락치기라서 걔들은 좀... 재능충이거든.”

“오빠 고마워. 신경 써줘서.”

그래도 뭐라도 내가 도움이 된다는 게 무척이나 기뻤다. 새롭게 도전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러한 별 것 아닌 도움이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그나저나 저 둘은 목 안 막히나? 말 한 마디 안하고 초밥만 먹고 있는데, 아침을 안 먹고 온 거야. 뭐야. 나 원 참. 뭐, 내가 끌고 오다시피 데리고 와서 할 말은 없다만.

*

“입맛에 꽤 맞나봐? 말도 안하고 정신없이 먹는 거 보면?”

“어.”

초밥을 먹는 입이 잠시도 쉬지 않는 유지연의 모습에 강지혁이 처음으로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그녀의 대답은 역시나 단답형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행동에도 불구하고 강지혁은 포기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요즘 드라마 핫 하다던데? 시청률도 장난 아니고? CF도 엄청 찍었다며? 또?”

“어.”

자신의 질문에 단답형으로만 일관하는 유지연의 대답에도 강지혁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으니 말이다.

“천손 시청률 뛰어넘을 수도 있을 거라던데. 진짜 그럴 것 같아?”

“어.”

“진짜? 그러길 바라?”

“어. 물론.”

“야 그러니까, 조금 서운하네. 뭐 배우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욕심이긴 하겠지만... 흠... 그럼 30대 되니까, 어때? 피부가 쳐지는 게 느껴져? 이제 생얼로는 못 다니겠지? 아침마다 세수할 때 깜짝 깜짝 놀라지? 우울해지고.”

“어...”

“그렇구나. 흠... 역시 제 아무리 유지연이라도... 30대는 어쩔 수 없구나. 하긴... 20대 후반 때도 약간 쳐져 보였으니까.”

“어... 뭐, 뭐? 아... 야! 너!”

그런 강지혁의 행동으로 인해 주변의 시선이 자신과 강지혁에게 쏠린 것을 느껴서일까. 아니면 마지막 질문으로 인해 발끈해서일까.

냉담하게만 대응했던 유지연의 시선이 강지혁을 오롯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대체 뭐하는 짓이냐는 듯한 유지연의 그런 시선에 강지혁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데 너무 쌀쌀하네. 누가 얼음공주 아니랄까봐. 아! 얼음공주가 아니라 유지연이라고 불러서 그런가? 그런 거야?”

[콜록콜록]

[콜록콜록]

그러나 이는 다소 섣부른 판단이었다. 이내 강지혁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지수와 다인의 입에서 헛기침을 이끌어낼 정도의 파장을 지녔으니 말이다.

“얼음 공주? 지연 언니가?”

“지연 언니 얼음 공주?”

다소 엄격한 언니. 자기 관리가 철저하고 동생인 유재연에게 자주 혼을 내는 언니.

그녀들이 지난 수년 동안 보아왔던 유지연의 이미지는 얼음이라는 단어와 충분히 어울렸다. 더불어 그녀의 미모 또한 이러한 조합에 어울렸고 말이다.

하지만 그 얼음과 결합된 공주라는 단어가 초밥을 먹고 있던 그녀들을 놀랍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당사자인 유지연을 발끈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잠재력을 품고 있었다.

“이게 이상한 건가? 천손 찍을 때 시도 때도 없이 얼음 공주라고 불렀는데? 그래서 난 당연히,”

“너 애들 앞에서 무슨 소리를!”

“그때 얼음공주라고 부르면 대답도 하고 그랬지 아마? 기억 안나?”

발끈하는 유지연의 모습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어서일까. 단답형으로 차갑게만 대꾸하던 유지연이 변했다는 점에서 강지혁은 더욱 신이 난 듯 이를 더욱 물고 늘어졌다.

그리고 이는 다인과 지수의 본의 아닌 지원을 받아 강지혁을 더욱 의기양양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언니, 진짜에요?”

“대박! 근데 어울린다! 언니 나도 얼음공주라고 불러줄까요?”

“안 돼!”

그렇게 포커페이스를 한 채 차가움을 물씬 퍼트리던 유지연의 무너짐에 따라 식사 자리는 더더욱 ‘화기애애’해졌다. 굳이 강지혁이 더 나서지 않아도 유지연의 색다른 모습에 놀란 다인과 지수가 그의 역할을 대신해줬으니까.

*

한바탕 소란스러움도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내 얼굴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유지연의 시선에 낯이 뜨거워졌다. 진짜 시선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내가 조금 심했나?

하지만 그런 그녀와는 달리 내 마음은 후련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장난 끼가 충족되어서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저 내 마음이 그랬다.

“연기 준비한다는 데 그건 잘 돼가? 살짝 듣기론 이번에 시트콤에 출연한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 어... 시트콤에 출연하기로 했어.”

“언니한테 도움 받으면 되겠네. 유지연도 데뷔 시트콤으로 하지 않았,”

“야!”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의도한 게 아니었다. 나름 유지연 연기 인생 가운데 흑 역사로 꼽을 수 있는, 유지연의 데뷔작인 시트콤을 언급한 건 오롯이 동생 유재연과의 대화 중 나온 자연스러운 대목이었으니까.

뭐, 내가 방금 전까지 벌여놓은 상황이 있었는지라, 억울해도 소용이 없었다. 누가 봐도 시트콤 언급은 방금 전 상황의 연장선상으로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하아. 여기서 더 하면 그때는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을 것만 같았는지라 땀이 이마 사이로 삐질 흘러나왔다.

“그런데 오빠.”

“어?”

그런데 이 타이밍에 다인이 갑작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이는 찝찝한 불안감을 내게 안겼고, 애써 끝내려 했던 상황을 다시금 잇게 만들어버렸다.

“오빠는 왜 지연 언니한테 반말해요?”

“어?”

“어?”

이 꼬맹이가. 잠시나마 녀석이 변했다고 생각한 내가 어리석었다. 아니 한심스러웠다. 심지어 조신하다고까지 생각했으니 오죽할까.

“그게 나한테는 반말하라고 하더라고.”

“진짜요?”

에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언제부터 반말을 하게 됐는지, 왜 반말을 하게 됐는지 자체가 너무 오래전 일이기도 하거니와, 마치 그동안 못 쳤던 장난을 여기서 다 풀어버리겠다는 듯 또다시 내 입이 나대기 저절로 나대기 시작했으니까.

“그렇다니까? 반말하라 하면서 편하게 대하라고 하더라고. 내가 오빠처럼 느껴진다나 뭐라나?”

“야! 내가 언제!”

“아! 미안. 다른 사람들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했지?”

이 정도까지 하면 유지연이 어떻게 반응할지 눈에 훤했기에 내가 원하는 결론을 위해 너무 차가워서 뜨겁게 까지 느껴지는 시선을 감내하기로 했다.

“지연이가 부끄러움이 많은 편이야. 너네들 앞에서는 언니이고 또 전체적인 이미지가 차가운 게 조금 있어서 그렇지 부끄러움도 의외로 많더라고.”

“에에? 언니한테 그런 면이?”

“언니 진짜에요?”

뭐, 그러다가 초밥 먹다가 체할 수도 있겠지만.

*

[생방송 끝나고 봐.]

단순한 7글자 톡이었지만, 이를 보낸 이의 감정이 물씬 풍겨져왔다.

열이 많이 받았나보다. 오늘 식사 자리에 있었던 나의 행동들로 인해서.

하긴 유치하기도 했고 나대기도 너무 나댔지. 감정에 취해서 그것도 엄청.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와 눈빛이 떠오르자 조금 두려웠지만, 나로서는 내가 원하던 결과물을 가져올 수 있어 상관없었다.

“지혁아! 삼촌이 늦었지? 후우... 스케줄이 조금 늦어져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지금부터라도 준비하면 되죠. 연습은 많이 하셨죠?”

그렇게 마음속을 차오르는 묘한 안도감이 그만큼 익숙했는지는 몰라도 생방송 무대가 꽤나 기다려졌다. 그게 생방송 무대를 기대한 것인지 아니면 그 무대를 끝마치고 볼 수 있는 누군가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혁이 너 체했다고 들어서 삼촌이 소화제 사왔어. 잘했지?”

“네? 아, 네. 감사해요. 삼촌.”

그나저나 체 끼는 도대체 언제 가라앉은 건지. 하아. 속이 막혀서 답답해 미치겠다. 초밥 그거 몇 개 한다고 진짜로 체하다니, 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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